'2005/02'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5/02/28 독도?
  2. 2005/02/27 예수 이야기 5
  3. 2005/02/24 금관의 예수
  4. 2005/02/23 새 화폐의 인물은?
  5. 2005/02/20 대사
  6. 2005/02/19 대열
  7. 2005/02/17 평범한 사람
  8. 2005/02/16 못된 아들
  9. 2005/02/15 우표
  10. 2005/02/08
  11. 2005/02/07 기다려주는 사람
  12. 2005/02/01 야생
2005/02/28 10:01
“아무개일보의 아무개 기자다. ‘독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특별한 의견이 없다.”
“손석희 씨가 일본 극우 정치인을 엿 먹인 건 어떻게 생각하나?”
“잘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의견이 없다는 건가?”
“독도야 온 국민의 ‘전자동 흥분장치’가 된 지 수십 년인데 특별히 할 말이 뭐 있겠는가. 당신이 바라는 대답을 그대로 할 사람을 찾는다면 다른 데 알아봐라.”
“참고 거리라도 달라.”
“내 블로그 아나?”
“안다.”
“검색창에 ‘민족’을 쳐봐라.”

검색해 보면 여러 개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세 개(통일, 친일파?, 민족과 계급 메모)가 이른바 ‘민족 문제’에 대한 내 의견이라 할 수 있다. 독도라.. 독도에 흥분하기 전에(부디 ‘온 나라가 충분히 흥분하는 것엔 굳이 나까지 흥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길) 이런 질문부터 해보는 건 어떨까?
1. 이건희와 나는 같은 민족인가?
2. 일본의 비정규 노동자와 극우 정치인은 같은 쪽발이 새낀가?
세상은 민족이나 국가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계급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세상은 계급으로 구분된다는 생각이 소홀하게 여겨지는 사회는 없다. 그게 문제다. 그게 늘 우리의 정신을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게 한다.
2005/02/28 10:01 2005/02/28 10:01
2005/02/27 16:27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80년대 그 시절 나는 다른 모든 진지한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 동안 맑스를 읽으면서도 예수와 수운을 함께 읽어야 비로소 안도감을 얻곤 했다. 나는 당시 그런 나 자신을 늘 미심쩍어 했고(‘나는 왜 이리 리버럴할까’ 하는)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선 그런 것에 한눈 팔 여유도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미심쩍은 행동들이야말로 소중한 것이었다 싶다. 그 미심쩍은 것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나는 나와 함께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던 많은 청년들이 그랬듯 맑스주의를 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사실은 맑스는 인간 해방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명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맑스는 여성이나 환경, 혹은 문화 예술의 문제에서 별다른 진척을 남기지 않았거나 당시의 습속에 사로잡힌 평범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맑스에게 책임 지울 문제가 아니며 ‘맑스주의의 결함’은 더더욱 아니다. 맑스는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이 인간 해방의 완전한 방법이라고 공언한 적이 없다. 맑스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철저하게 한정했다. 맑스는 인간 해방의 문제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라 여겨진 정치 경제적 문제를 해명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맑스는 인류의 가장 큰 적으로 나타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해명하고 그것을 잡는 방안을 ‘시안’ 형태로 제시했다.

맑스는 그의 동지와 후배들에게 ‘맑스주의’라는 숙제를 남겼다. 자신의 성취에 살을 입히고 피를 통하게 하는 숙제. 맑스주의에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담아내는 숙제. 그러나 “나는 적어도 맑스주의자는 아니다”라는 맑스의 자조대로 그의 동지와 후배들은 그 숙제에 소홀했다. 특히 맑스의 ‘시안’을 근거로 만들어진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맑스주의는 ‘이미 완성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완성된 맑스주의’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 경제적 해명 말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주의’나 ‘개인’과 같은 부르주아들의 정신적 성취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지도자 동지’의 주검 앞에서 울부짖다 수천 명이 깔려죽는 ‘봉건적 풍경’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앙상한 맑스주의.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뿐 아니라 20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였다. 한국처럼 80년대 중반 이후 불과 몇 년 동안 급진화한 사회에서 그런 편향들은 더욱 압축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자 다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동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남은 맑스주의자들은 그 앙상한 맑스주의가 만들어낸 모든 오해와 편견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의 잔류한 맑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벌이기 전에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앙상한 맑스주의자가 아님부터 증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엉망으로 꼬여버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얽힌 실타래를 풀듯 그 문제의 경과를 천천히 복기해보는 것이다. 엉켜버린 우리의 맑스주의도 그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특히 우리는 80년대 중반을 넘어 우리가 급격하게 맑스주의에 빠져들 무렵 우리 스스로 ‘운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 미심쩍어 했던 것들을 기억해낼 필요가 있다. 그런 미심쩍은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맑스주의에 살을 입히고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 ‘미심쩍은 것들’ 가운데 하나가 70년대와 80년대의 사이에 꽃을 피웠던 예수와 관련한 성찰들이다. 그것은 변혁운동에 대한 의지와 전망을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의지와 전망을 표현하는 우회적인 방법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우회’가 그 성찰들을 더욱 농익게 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변혁에 대한 의지의 조화의 면에서 한국의 사회운동 역사상 가장 성숙한 정신적 성취였다. 동지들은 장일담을 아는가?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2005/02/27 16:27 2005/02/27 16:27
2005/02/24 21:57
세뱃돈은 늘 어미가 ‘보관’ 명목으로 수거하곤 했는데 이젠 좀 크고 했으니 필요한 걸 사게 하기로 했다. 김단은 저보다 한 살 많은 외사촌 오빠가 세뱃돈을 모아 엠피쓰리플레이어를 사겠다는 걸 듣고는 자기도 그걸 사고 싶다고 했다.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는데 김단의 세뱃돈은 그걸 사기에는 모자랐다. 해서 내가 김건에게 작업을 했다. “이번에 누나 도와주고 내년엔 누나가 너 도와주면 좋잖아.” “부루마블 사야 되는데.” “좋아, 그건 아빠가 따로 사줄게. 어때.” “알겠어요, 아빠.” 김단은 인터넷을 뒤져 물건을 고르고 나와 함께 거기에 넣을 음악 파일들을 준비했다. 김단은 댄스가요엔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그걸 좋아한다고 해도 그의 취향으로 존중해야 하겠지만 하여튼 현재로선 그렇다. 김단은 평소에 자주 듣던 음악들, 말하자면 제가 사는 집에서 자주 틀어지는 음악들 가운데서 제 마음에 드는 걸 골랐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OST 가운데서 몇 곡, 비틀즈 전집에서 몇 곡, 트래비스의 ‘12 Memories' 전곡.. 특히 와이키키에 나오는 ‘I Love Rock & Roll'은 가사를 프린트해서 연습까지 하기에 조안젯의 원곡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리메이크도 구해주었다. 김단은 열심히 그것들을 듣고 있는데 아직 100메가 정도는 남았다. 그 일부엔 김민기를 넣어줄 생각이다. 노래을 고르기 위해 오늘 김민기 1~4집을 듣다가 한 곡에 콱 가슴이 막혔다. 그리고 푸바(내가 좋아하는, 가장 간결한 플레이어)에 그것만 넣고 끝없이 재생하고 있다. ‘금관의 예수’다. 스무 살 무렵 비로소 예수를 만날 때 이 노래가 나를 얼마나 떨게 했던가.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복받쳐 올라 이 노래를 부러 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딸 덕에 꼼짝없이 이 노래에 사로잡힌다.

금관의 예수

김지하 작사
김민기 작곡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 견디겠네 차디찬 이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2005/02/24 21:57 2005/02/24 21:57
2005/02/23 14:18
당연히 전.태.일. 이다.
2005/02/23 14:18 2005/02/23 14:18
2005/02/20 10:27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초원이 몸매는?”
“끝내줘요."

영화 ‘말아톤’
단 네 마디의 대사가 관객을 매혹시킨다.

“왜 이렇게 생각날까 떠난 줄을 알면서도
사랑했던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없나요.
처음 만난 그날처럼 당신의 고운 얼굴이
날이면 날마다 꿈처럼 피어나서
아아아 오늘도 눈동자엔 이슬이 맺혀지네”

조경수(조승우의 아버지)의 노래 ‘돌려줄 수 없나요’
역시 매혹적인 가사였다.
2005/02/20 10:27 2005/02/20 10:27
2005/02/19 10:45
파시즘의 요체는 억압이 아니라 ‘대열’이다. 억압은 저항하는 극소수에게만 필요할 뿐 나머지는 대열이면 족하다. 늘 대열을 이루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성만 길러 놓으면 수천만 명도 줄에 달린 인형처럼 쉽게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열의 습성은 파시즘이 세상의 전면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혹은 연예든 건강이든 여전히 한 시기에 한 가지 화제와 취향과 기호로 통합되곤 한다. 파시즘이 물러간 후 그 습성은 대개 자본의 차지가 된다. 월드컵의 대열이 대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의 배를 불렸듯이.
2005/02/19 10:45 2005/02/19 10:45
2005/02/17 00:06
‘평범한 사람’이란 학벌이나 재산, 혹은 사회적 지위 따위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완전하게 지배한다. 요컨대 평범한 사람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인데...” “세상이란 게 그런 거지...” 물론 그런 생각은 지배자들이 그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심어준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뭔지 세상이란 게 뭔지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자본주의 사회가 뭔지 세상이란 게 뭔지 영원히 알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외식, 아파트, 차 같은 것이 두게 되며 완전하게 지배된다.
2005/02/17 00:06 2005/02/17 00:06
2005/02/16 01:53
선후배, 혹은 동무인 몇몇 여성들과 이메일로 설 인사를 나누면서 ‘명절과 여성’ 문제는 없었느냐, 물었는데 좋은 답이 없다. 딱 한 사람 “인생의 봄날이라고나 할까.” 했는데 그는 작년에 이혼했다.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명절이 되면 그 습속이 건재를 과시한다. 뼈대가 있다는 집안일 수록 더 그렇다.(하여튼 나라고 집안이고 뼈대는 다 무너져야 한다.) 어머니는 설날 세배를 받고는 아내와 김단을 보며 그랬다. “일흔이 되니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아버지와 지금까지 정을 나누며 잘 살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개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살아보고 싶다. 너희들은 그렇게 살길 바란다.” 어머니는 ‘돈 안 되는’ 춤을 하는 아내의 가장 듬직한 후원자다. 아내가 지방에 전수라도 간다 싶으면 달려와서 아이들을 챙긴다. 단지 며느리 대신 아이를 챙기는 게 아니라 며느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어머니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머니와 아내도 한 때 심각한 고부갈등을 겪었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중간에 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시 내가 취한 태도는 ‘중립’이 아니라 ‘아내 편’을 드는 것이었다. 여성의식 같은 건 별로 없을 때지만, ‘아내는 제 식구를 떠나 혼자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이니 약자고 소수자’라는 소박한 정의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당연히 내 태도에 충격을 받았고 나 역시 많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그게 어머니가 당신과 아내가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재발견하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상황이 좋아지고 난 어느 날 한번은 어머니가 나를 보고 웃으며 그랬다. “못된 아들!” 부디 김단은 나보다 더 못된 아들을 만나고, 김건은 나보다 더 못된 아들이 되길.
2005/02/16 01:53 2005/02/16 01:53
2005/02/1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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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소포 부치러 갔다가 아이들 사다주려고 “기념우표 나온 것 있어요?” 했더니 12일에 나온 게 있단다. 보여 달라고 해서 받아보니 빌어먹을,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배양성공 기념’ 이다. 망설이다 집엔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따위 흉악한 우표도 있다는 걸 떠올리고 샀다. 220원짜리 20장이 붙은 전지는 4천4백원이다. “우표수집회원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보내드리거든요?” 꼼꼼하게 생긴 직원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한다. “네, 아이들한테 한번 물어보죠.”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제야 전부터 궁금했던 게 생각났다. “우표 수집하는 아이들이 좀 있나요?” “별로...” 직원은 우표수집의 쇠락이 제 탓이라도 되는 양 겸연쩍게 웃는다. 우표 수집. 초등학교 시절 새 우포가 나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우체국에 가서 진을 치던 동무들이 떠오른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얼마간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표지에 "Full Sheet Book"이라 적힌 낡은 우표수집책엔 여전히 이런저런 우표들이 전지 혹은 시트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그걸 김단에게 물려주었다. 사진은 ‘대통령영부인 육영수여사 추모 특별우표’(1974)와 ‘박정희 대통령 추모 특별우표’(1980).
2005/02/15 22:56 2005/02/15 22:56
2005/02/08 21:38
아버지 집에 와 동생 방에서 배 깔고 누워 책을 본다. 방구석에 쌓인 책들 속엔 오래 전 내 책들이 간간히 섞여 있다. 평생 간직할 책 몇 권을 빼곤 당장 볼 책이 아니면 치워버리는 버릇 때문에 오래 전 책은 이런 식으로나 만난다. 20여 년 전 책들을 한가롭게 한권씩 빼 보는데 분홍장미 무늬 포장지로 껍질을 씌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내 책이 아닌가? 이런, 노동해방문학(9호)다. 껍질은 검문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분홍장미 무늬라니!’ 혼자 웃으며 목차를 훑어본다.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비판하는 박노해의 글과 조정환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박노해야 언급하기 딱한 사람이 되었지만 조정환은 여전하다. 외양은 천생 책상물림이던데 어디서 그런 뚝심이 나오는 걸까? 마루에선 3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무슨 설 특집 프로그램에선 20여 년 전 코미디를 재연하고 있다. 네로 최양락이 침묵리우스에게 말한다. “넌 여전히 말이 없구나.” 설이다.
2005/02/08 21:38 2005/02/08 21:38
2005/02/07 11:29
그 후로도 간간히 그 말을 생각했다. 지금 다시 대답한다면..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2005/02/07 11:29 2005/02/07 11:29
2005/02/01 01:02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야생의 들짐승
야생의 날짐승
그리고 야생의 여자
야생의 수생짐승
그들을 안아볼 때마다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어두운 밤길에서 만나는
산짐승의 사나운 눈빛도
밤의 숲 속 짐승들의 거친 교미도
저들끼리 싸워 피 흘릴 때도
나무들이 뿜어대는 뜨거운 열기인 양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

저들은 분리되지 앟은,
그리고 분화되지 않은,
무수한 촉수와 날카로운
긴장의 그물을 가졌다
대상과도,
자신의 몸과도

동물은 사람뿐이다

(백무산, 2004)
2005/02/01 01:02 2005/02/01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