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3 09:27
1. 누군가에게 그의 의지와 욕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노력이 폭력이다. 물리적 폭력은 폭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정신적, 심리적 폭력도 있고 사회적, 정치적 폭력도 있고 우리가 주목하지 않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있다.

2. 폭력은 그 형태만으로 폭력성의 경중이나 윤리적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를테면 흔히 신체적 폭력보다는 언어적 폭력이 덜 폭력적이고 더 인간적이라 생각하지만, 언어적 폭력이 신체적 폭력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말로도 얼마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

3. 모든 지배가 폭력이듯 모든 저항도 폭력이다. 비폭력 저항 역시 '물리적 폭력을 배제한' 폭력 저항이다. 150만 명이 광장에 모여 소리치거나 96퍼센트가 반대 의사를 보임으로써 박근혜로 하여금 하기 싫은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면, 우리는 박근혜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4. 근대 이후 지배계급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라는 가짜 논란을 저항 세력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우리가 고민할 것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가 아니라 '어떤 폭력'인가다. 지금까지 선택한 폭력이 겉치레 사과와 허튼수작만을 낳았다면, 우리는 당연히 '다른 폭력'을 고민해야 한다.
2016/12/03 09:27 2016/12/03 09:27
2016/12/02 16:40
역시 저들이 느끼기에 우리의 시위는 '규모에 비해 위협적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시위, 평화로운 시위, 축제 같은 시위 물론 다 좋다. 그러나 시위의 목적은 '시위 문화'가 아니다. 덜 아름답더라도, 덜 평화롭더라도, 덜 축제 같더라도 시위는 저들을 위협해야 한다.
2016/12/02 16:40 2016/12/02 16:40
2016/12/02 15:13
시민은 사실을 좇지만 우민은 사이다를 좇는다.
2016/12/02 15:13 2016/12/02 15:13
2016/12/02 15:12
필리버스터 때도 그랬지만, 민주당 의원 중 당의 태도나 정책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무작정 찬사를 보내는 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들의 진정성이 온전한 것이라면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당과 지도부의 태도와 정책을 비판하며 갈등을 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데서 우리는 그들 역시 (필리버스터처럼 아예 당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진행된 상황은 아니더라도) 당의 세트 구성물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다른 행동은 당의 태도와 정책에 영향을 주어 현실 변화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당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희석하여 당의 태도와 정책을 보호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행동으로 불편과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대중의 인기와 당에 대한 공헌을 동시에 얻는다. 그들이 그 모든 걸 의식하고 계산하며 행동하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사실이다.
2016/12/02 15:12 2016/12/02 15:12
2016/12/01 13:25
오늘 민주당이 대다수 인민의 삶보다 자본/자산가의 삶을 옹호하는 정당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 당 의원들이 다 도둑놈들이고 신의를 모르는 악한이라서 라기보다, 그 당의 물적 토대와 이념 정체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새누리 2중대'의 속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누리와 다를 수 있는 여지는 그들의 처지 때문이다. 그들은 대중의 시각에서 '새누리와 달라보이는 순간까지만' 존재 가능하다. 사회 진보에 그들을 활용할 작은 여지 또한 거기에서 나온다. 복잡하지 않다. 그들의 속성과 처지 사이의 긴장은 매우 단순한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응원하고 옹호하면 대놓고 배신하고(제 속성을 드러내고), 대중이 돌아서려 하면 잠시라도 끌려온다(제 처지를 되새긴다). 결국, 민주당을 조금이라도 활용하고 싶다면, 더는 그들에게 일희일비하며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면 돌아서라. 그들에게서 돌아설 때 비로소 그들이 돌아볼 것이다.
2016/12/01 13:25 2016/12/01 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