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9 16:59
대개의 동물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실을 그 자체로 대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 특히 자본주의 하의 인간은 현실을 그 자체로 대면하는 걸 거의 본능적일 만치 두려워한다. 인간이 ‘현실적인 선택’ ‘현실적인 방법’이라 말하는 것들은 실은 그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안간힘이다. 인간은 현실을 그 자체로 대면하는 모든 시도를 ‘비현실적이야!’라고 비난한다. 두려움에 젖은 얼굴로.
2014/04/09 16:59 2014/04/09 16:59
2014/04/08 09:26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찬사가 많다. 자본주의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등 그의 발언과 행보는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인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한 인물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꼴통’이라 비판받는 염수정씨의 추기경 임명에서 드러나듯 교황은 로마 가톨릭 체제라는 정치적 컨텍스트 안에서 작동하는 존재다. 인물보다는 그 개혁성 자체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걸 이끌어낸 요한 23세 교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한 23세는 시쳇말로 ‘듣보잡’ 교황 후보였다. 개성이 강했던 전임 교황이 만들어낸 피로감에다 유력한 두 교황 후보의 각축전이 지속되자 가톨릭 지도부는 일종의 ‘징검다리’ 교황으로 요한 23세를 선출했다. 나이가 워낙 많아서(1958년 교황에 즉위했을 때 78살이었다) 어차피 교황을 오래 맡기도 어려웠고 특별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듣보잡 징검다리’ 교황이 가톨릭 역사를 뒤집어 놓는다. 요한 23세는 1959년 1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명한다.

4년의 준비를 거쳐 1962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4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이라는 방대한 성과를 남겼다. 그중 몇 가지를 들면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라틴어로 봉헌되던 가톨릭 미사가 각 나라 언어로 봉헌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에 대한 ‘열교’라는 멸시적 표현을 ‘분리된 형제’로 고쳤고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도 적시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불의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항하는 예언자적인 책임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남미의 해방신학 운동을 비롯, 가난하고 약한 인민들과 함께하는 교회에 힘을 실어준 건 물론이다.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리의 면에서 혁신은 ‘교회 밖의 구원’을 인정한 것이다.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면, 다른 종교를 믿거나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은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야만과 제국주의 수탈의 빌미가 되었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으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해도 하느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교회라는 감옥에서 풀려난 것이다.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1963년 6월 선종한다. 보수세력은 후임 바오로 6세가 그 ‘경악할 만한 상황’을 종식하길 기대했지만 바오로 6세는 공의회를 지속하여 완료한다. 이후 30여년 동안 교황 이름은 ‘요한바오로’가 된다.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개혁정신을 이어받는 의미다. 2005년 ‘요한바오로’라는 이름을 떼고 즉위한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의 개혁 정신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2013년 3월 자진 사임했고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개혁 정신을 잇고 있다.

가톨릭의 거듭된 개혁적 갱신이 가능한 가장 결정적 이유는 ‘독재 체제’다. 만일 개신교처럼 민주주의 체제라면 제아무리 개혁적인 교황이 나와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개혁에 불만(은 물론 신학적 견해 차이를 넘어 냉혹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것이다)을 억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오랫동안 독재 체제와 싸워 정치적 민주주의를 회복한 한국의 진지한 시민들에겐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서 오늘 민주주의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을 얻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는 독재가 물러나고 민주화가 되어 좋은 세상이 열렸는가? 대통령을 욕해도 죽진 않게 되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자본 독재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실체를 더욱 훼손해왔다. 학원 민주화의 열망은 대학이 모조리 기업으로 변신하는 걸로 귀결했다. 악취나는 한국 보수개신교 교회 문제도 결국 교회가 자본주의에 먹혀버린 현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든 교회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상충한다는 사실, 민주주의가 실체를 가지는가 여부는 자본주의의 통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수는 이미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마가 6:24)고 못을 박았다. 자본주의는 ‘공식적인 마몬의 체제’다.

자본주의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교황은 괜스레, 우연찮게 출현한 게 아니다. 가톨릭의 개혁 정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서 잦아들었고 앞서 언급한 베네딕토 16세 시기엔 ‘제3차 바티칸 공의회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 여론이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교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쁜 교회 때문에 신도들이 고통받는다는 말은 사실이되, 절반만 사실이다. 교회는 신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도는 나쁜 교회를 만들며 심지어 하느님을 살해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구심이었던 칼 라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건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넘어 다른 모든 종교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4/04/08 09:26 2014/04/08 09:26
2014/03/19 13:48
한 인권운동가의 페북에서 수원시장 염태영 씨가 종종 언급되기에 옛 글을 꺼내 읽었다. 염태영은 이 글에 나오는 진보 교회의 청년부 회장이었다. 당시 수원 지역의 학생운동은 오래 전부터 있던 서울대 농대에 몇해 전 서울에서 옮겨온 한신대가 보태어진 형국이었는데, 염태영 은 나보다 두어 살 많은 서울대 농대 학생이었다. 그는 학생운동을 했고 시민운동(환경운동)을 했으며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에서 일했고 수원시장이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오늘 한국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매우 전형적인 행로를 걸어왔다. 두달 만에 교회에 나타난 나에게 ‘네 무책임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질책하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질책은 정당했지만 우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날 교회를 나오는 나를 쫓아와 소주를 사준 C형이 생각난다. C형은 식품회사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후 복사가게를 하며 지역 노동운동에 열심이었다. 염태영의 '모범적 처신'에 늘 씁쓸해 하던 C형은 이젠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른다. 한 사람은 운동으로 제도에 진출했고 한 사람은 운동으로 제도에 스러져갔다. 돌이켜보면 두 사람의 다른 현재는 그 즈음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사적으로 알지 못한 수많은 운동권들의 다른 현재도 그 즈음에 다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오늘 역시 많은 것들이 정해지고 있다.
2014/03/19 13:48 2014/03/19 13:48
2014/03/19 01:06
여전히 안철수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정말 안철수에게 더는 실망하지 않길 기대하는 걸까. 혹시 그들은 앞으로도 안철수에게 거듭 실망하길, 안철수에 대한 실망감의 토로를 통해 제 알량한 사회의식을 거듭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하는 건 아닐까.
2014/03/19 01:06 2014/03/19 01:06
2014/03/18 09:58

개인적으로 지난 10여년 이상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동어반복을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 이야기에 집중해왔던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주도한 개혁세력이 진보를 참칭하고 대중의 눈과 귀를 막음으로써 좌파가 축소되고 사회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현실의 전모를 말하진 않는다. 그런 기만적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좌파는 대중과 호흡하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행로를 걸을 수 있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적다.

좌파의 축소는 단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처럼 좌파가 융성했다가 축소되었는가 한국처럼 미처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는가의 차이가 있지만, 남미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좌파의 축소는 전지구적인 현상이다. 대중은 좌파의 이상과 가치, 즉 계급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적 전망, 인간해방의 신념 따위에 전처럼 호감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이전 시기의 좌파에 대한 반감이나 적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이전 것이 역설적인 의미이라 해도 존중이라면 이젠 무시에 가깝다. 좌파는 어느새 제 이상이나 가치를 정색을 하고 말하려면 ‘낡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걸 감수해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이것은 좌파만의 상황은 아니다. 우파는 제 이상과 가치들을 말하기 좋아졌는가? 국가, 충성, 명예 같은 것을 말한다는 건 이제 ‘재수없는 영감’으로 낙인찍히겠다는 뜻이다. ‘자유 시장이 낙원을 만든다’는 오랫동안 써먹던 설레발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정치 영역을 떠나 문학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어떤 이상이나 가치를 담는 것은 ‘철지난 작가’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작가는 좌든 우든 제 세계관을 작품이 아니라 작가로서 행동 차원으로만 표현한다. 대학이 진리 탐구의 전당이라는 말은 대학이 더는 진리 탐구의 전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판하는 기사에서나 등장한다. 부모들은 더 이상 제 아이에게 ‘인생이란’ ‘사람이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다. 그런 이야기들이 아이를 ‘현실적 위험’에 빠트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속성, 인간의 삶을 완전히 포획하여 인간 정신과 영혼의 말단까지 재구성하는 악마적 속성은 모든 인간의 삶을 축소해 왔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인가 피해자인가마저 무관하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세상을 운영하는 1%는 예외일까? ‘플루토크라트’라 불리는 현대의 왕족인 그들은 이전 시기 어떤 지배계급보다 안락해 보인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들에겐 지배계급의 가장 중요한 특권인 ‘유한함’이 없다. 그들은 일을 노예나 노동자에게 맡기고 예술 감상이나 사랑 놀음을 구가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 덕에 가난해진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바쁘다. 완벽한 양육조건과 교육환경에서 키워지는 그들의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실제적 고아’다.

좌파의 축소는 좌파만의 축소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전체 인간의 전적인 축소 현상의 일부다. 전체가 축소된다는 건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기존의 권력과 기득권은 유지되어야 할 근거 없이도 유지되며(2008년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건재해야 할 근거를 잃은 채 건재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좌파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좌파는 어떻게 다시 힘을 얻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을까. 많은 진지한 좌파들이 그에 대해 고민하고 이런저런 노력과 시도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의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들, 노골적으로 말해서 좌파가 더 이상 낡은 사람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이런저런 궁리와 문화적 포장들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노력들이 대중의 일시적 호감(혹은 측은지심)을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전체 인간의 전적인 축소라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순 없다. 사람이란 어떤 문제로 고민하면 할수록 오히려 미궁에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 그 문제의 본질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교육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는 교육문제의 미궁에 빠지게 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돈버는 일만 고민하는 사람은 돈의 미궁에 빠지게 된다.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에서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좌파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다. 좌파는 유독 자신들만 끝도 없이 축소되어 가는 듯한 세월에 떠밀리고 쏟아지는 투쟁 현안들에 치여 사느라 ‘좌파의 미궁’에 빠져버렸다. 오늘 좌파의 할 일은 쫓기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좌파는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을 하는 것이다. 좌파의 첫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간의 첫 질문에 닿을 수밖에 없다. 좌파의 첫 질문은 실은 인간의 첫 질문의 실천일 뿐이었다. 좌파와 좌파의 공간은 더 이상 누구도 하지 않는 인간의 첫 질문이 넘쳐나는 사람이자 공간이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축소된 세상의 실마리는 누구도 하지 않는 인간의 첫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4/03/18 09:58 2014/03/18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