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1 21:27
계몽이라는 말을 지도하려 드는 것, 쯤으로 오해하고 반감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계몽은 오히려 지도 받는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 제 눈을 뜨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그런 오해(의 만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인민의 의식이 자신들의 헤게모니 확대에 장애가 되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걸 차단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계몽이 극우 세력 비판 정도일 때는 한껏 부추기지만, 자본주의/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넘어갈라 치면 정색을 하고 '좌파가 당신을 지도하려 든다!' 호들갑 떠는 것이다. 비열한 자유주의자들.
2017/03/21 21:27 2017/03/21 21:27
2017/03/19 18:46
모를 일이지만, 홍석현 씨가 이번 대선에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진 않을 것이다. 검토는 치밀하게 꽤 오래 전부터 해왔으니, 할 거면 좀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후보로 나서든 안 나서든 홍석현의 정치 활동 본격화는 보수의 혁신이 본격화했음을 알려준다. 한국 보수의 기본 틀은 반공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조선일보의 힘은 꽤 지속되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힘이지 생성되는 힘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펼쳐낸 풍경은 보수의 현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수의 혁신 작업이 만들어내는 과거의 불꽃 같은 것이다. 강준만 선생이 ‘손석희 현상’이라는 새 책에 내 글 '매트릭스'를 언급하며 ‘김규항의 손석희 걱정’이라는 글을 썼다는데, 아직 읽진 못했지만 현재 상황에선 지나치게 소박한 비평이 아닌가 짐작된다. 내가 오늘 현실을 '매트릭스'라고 표현한 건 보수가 어지간한 민주시민의 진보와 정의는 품어버리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상식, 정의, 공정 보도, 친일 독재 척결 같은 구호들이 무력해진 후를 고민해야 한다. 구 보수의 야만과 저급함을 진열하고 개탄하는 일만으로, 자본주의 문제와 대면하지 않고도 진보 시민의 지위를 확보하는 게으름은 끝낼 때가 되었다.

손석희 뉴스의 위기나 변질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홍석현이 자신의 최대 정치 자산을 섣불리 망가트릴 이유가 없고, 손석희 씨도 그런 상황을 수용할 만큼 머리가 나쁜(혹은 양식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2017/03/19 18:46 2017/03/19 18:46
2017/03/19 10:28
먼저 내가 바라는 사회의 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현실에서 구현해나가는 데 부합하는 혹은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후보를 선택한다.(모든 후보가 지나치게 어긋난다면 선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게 선거에 임하는 민주 시민의 기본이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가 선택한 후보에 모든 걸 맞추고 조정한다. 시민이길 포기하고 정치종교의 신도가 된 사람들, 그들의 신앙심이 민주주의를 망가트린다.
2017/03/19 10:28 2017/03/19 10:28
2017/03/18 15:47
어쩌면 지금을 '부끄러움을 잊은 시절'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파는 완전한 부끄러움을 추구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고 좌파는 나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을 게시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는다.
2017/03/18 15:47 2017/03/18 15:47
2017/03/14 15:01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심각하고 시급한 사회적 사건과 현안들의 홍수 속을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워낙 일들이 거듭 터지고 또 그에 반응하다보면 불과 몇달만 지나도 몇달 전 일인지 몇년 전 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문제는 그런 일상을 살다 보면 현실을 좀더 장기적인 관점, 즉 진행 중인 역사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사유하는 능력이 갈수록 퇴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현실의 반복'이다. 늘 치열하게 싸우고 낱개로 보면 분명히 해결도 되는 것 같은데 좀더 장기적인 맥락에서 보면 현실이 계속 반복된다. 박근혜 탄핵을 이루어낸 우리에겐 그 싸움을 치르느라 퇴화한 것을 회복하는 숙제가 있다.
2017/03/14 15:01 2017/03/14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