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1 16:33
미술계의 국외자인, 한 사람의 관객일 뿐인 사람이 미술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즉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지드래곤 현대미술 전시회-피스마이너스원:무대를 넘어서전>이라면 좀 다르다. 워낙 말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워낙 말이 안되는 일은 특정한 ‘계’를 넘어 사회 성원들의 보편적 문제가 된다.

지드래곤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자격이 없다. 그가 대중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다.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만한 자격을 갖추면 그만이다. 자격은 다른 공간에서 한 전시들과 그에 대한 비평과 관객의 평가를 포함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지드래곤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할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 자격은커녕 아무런 이력조차 없다. 이력을 쌓고 자격을 갖추는 데 일정한 시간이 수반되는 건 물론이다. 현재 같은 미술관 1층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윤석남 작가가 미술가로서 경과한 시간은 괜한 것이 아니다.

이번 전시는 김홍희 관장 자신의 미술관 운영 원칙, 적지 않은 진지한 사람이 그를 지지한 이유이기도 한 운영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김홍희 관장은 2012년 초 관장에 취임하며 “앞으로 외부기획사에 의존한 대형블록버스터 전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에선 이번 전시가 외부 기획이 아니라 ‘공동기획’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이 전시는 공간 대관에 ‘공동기획’이라는 명의까지 패키지로 판매된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외부 기획이다. 소속사 YG는 지드래곤의 홍보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전시를 기획했고 서울시립미술관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몇 곳을 접촉했다. ‘뜻밖에도’ YG는 서울시립미술관의 공간과 권위를 패키지로 대관할 수 있었다. 공동기획이니 괜찮은 게 아니라 공동기획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데이빗 보위를 사례로 들기도 하는 모양인데, 진심이라면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이른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디자인 뮤지엄 런던 빅토리아&알버트(V&A)가 ‘데이빗 보위 이즈’라는 전시를 연 건 보위에게 그럴 자격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보위는 대중연예인 혹은 뮤지션이라는 타이틀로 규정할 수 없는 존경받는 아티스트다. 그가 선도한 글램록이 패션, 무대예술, 디자인 등에 미친 영향은 예술사적 차원이다. 여전히 현역인 보위가 가사는 물론 사운드에까지 제 철학과 미학을 불어넣어 카운터컬처의 기수로 공인된 건 이미 54년 전이다. 그런 사람을 상업적 기획사에 의해 픽업되고 길러진 20대 아이돌 가수와 비교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물론 보위의 전시는 보위 소속사의 기획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김홍희 관장은 이번 전시를 ‘포스트 뮤지엄’ 의 개념으로 해명한다. 일반적으로 포스트 뮤지엄은 계몽이나 교육을 기조로 한 근대적 미술관을 넘어 적극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국에서 불었던 포스트모던 바람에 대해 돼새길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들어 지식인 사회에 불어닥친 포스트모던 바람은 1980년대 변혁운동의 경직된 정신세계(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예술에서 예술을 소멸하기도 한)와 결부되어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의미있는 화두를 선사했다. 그러나 결국 포스트모던 바람이 남긴 건 살아숨쉬는 진리(들)가 아니라, 누구도 진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 지적 괴멸이었다. 괴멸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길을 터주고 온 사회성원의 정신과 신체를 열어젖히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김홍희 관장은 그런 과정을 생뚱맞을 만큼 뒤늦게 공공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명화 감상 겸 가족 나들이 공간’을 ‘기업 홍보관’으로 바꾸는 게 과연 포스트 뮤지엄의 한국적 적용인가.

나는 이 전시를 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볼 필요 역시 느끼지 않았다. 나는, 혹은 지금 우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하는 게 온당한지에 대해, 즉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지 이 전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본 지인이 ‘생각보다 감각 있어 보이더라’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세월이 지나 지드래곤이 아이돌의 굴레를 벗고 데이빗 보위처럼 고유한 예술세계를 이룬 존경받는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드래곤은 그런 아티스트가 아니다. (월간미술 2015년 8월)

2015/08/01 16:33 2015/08/01 16:33
2015/07/20 15:41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
2015/07/20 15:41 2015/07/20 15:41
2015/07/16 18:54
탄원서에 참여하는 일은 대개 작성된 글에 서명만 보태는 방식이라 어려울 게 없는데, 실은 어렵다. 앞머리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 때문이다. 존경은 개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놈의 존경인가. 사람의 죄를 가리는 일을 하니 존중할 순 있으되 존경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이미 탄원서의 관행이라 빼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어째야 할까. 사상이나 신념에 의한 행동과 관련한 재판의 탄원서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면 어떨까.
2015/07/16 18:54 2015/07/16 18:54
2015/07/16 11:45
둘째(열아홉 살 먹은 남자)는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1주년 즈음 거의 매일 광화문에 나가선 다음날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곤 했다. 평소에도 주요한 집회나 시위에는 나가는 편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연유가 은근히 궁금했다. 얼마 후 둘이 만나 밥을 먹는데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좀 신기한 게 있어요.”
“뭐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이 딱 지나니까 다 사라진 거예요. 외치고 싸우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유가족분들도 그대로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탈학교다 보니까 친구들도 탈학교나 대안교육 이런 쪽이 많은데 그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대부분 진보적인 분들이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이야기를 안 해도 누구 아들이다, 그런 이야기가 결국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게 되게 싫었어요.”
“아빠 아들인 게 창피하다?”
“아뇨. 사람을 누구 아들이다, 그런 식으로 보는 게 우선 별로고요. 누구 아들이니 어떻게 자랐을 것이다, 그런 편견 같은 건 더 기분 나쁘고요.”
“나도 그런 오해를 받곤 해. 저 사람은 유별난 좌파니까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사회의식을 주입시켰을 것이다. 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잖아요. 아빠가 저나 누나한테 사회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한 기억조차 없거든요. 우리가 물어보면 그때나 대답해주는 정도?”
“그랬지.”
“아빠 따라 집회나 시위에 간 기억도 없어요. 아 딱 한 번 있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그땐 정말 몇 달을 그러고 있으니까 한 번은 데리고 가야겠다 싶더라.”
“그런데 심지어 그런 아빠 밑에서 자라서 얼마나 좋으냐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그의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람들의 짐작과 달랐다면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열아홉이 되어 바로 그 일에 대해 ‘이젠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너희 만나기 전에 진보 쪽 운동권 쪽 선배들의 아이들 몇을 봤는데 감탄을 했어. 사회문제에 관한 의식이 어지간한 운동권 대학생 수준을 넘는 거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좀 달라졌지.”
“알 것 같아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야. 똑똑한 아이라 일컬어지며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자기밖에 모른다거나, 어른들이 감당하는 세계가 아닌 자신의 진짜 세계 안에선 오히려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야.”
“아빠는 누나나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행동 같은 건 좀 빡빡하게 야단도 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사회의식이라는 게 재료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거지. 순수한 분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 자신이 본 걸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정열 같은 거 말이야. 그건 지식이나 이념 이전의 것이고, 자기가 감당하는 실제 삶에서 길러지는 거거든. 그런 재료가 성장하지 않는데 만날 집회나 시위에 데리고 다니고 사회 이야기를 들려주면 오히려 불균형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지.”
“이번에 느낀 게 바로 그런 건데요. 진보적인 사람들이나 그 아이들이나 어떤 패턴 같은 게 있더라고요.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행동하고 몰려다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외치고 싸우고 하더니 딱 그 시기가 지나니깐 미리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함께 사라져버리는 그런 거요. 그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에도 혼자 들러보고 그래요. 며칠 전에 갔을 땐 지난번에 인사를 나누었던 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내 손을 잡더니 와줘서 고맙다며 우셨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시점에 어떤 장소에 나가는 걸로 너무 쉽게 ‘문화시민’의 자격을 얻는 것 같아요. 말이 좀 이상한데 하여튼요.”
나는 문화시민이라는 표현이 매우 날카롭다고 느꼈다. 세 해 전 그의 누나(그보다 세 살 위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그녀는 또래 셋과 몇 주 동안 전국여행을 했다. 한층 건강해진 얼굴로 돌아와 여행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던 그녀가 말했다.
“이번 여행을 꾸린 선생님 덕에 지역에선 나름대로 진보적인 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분들 집에서 자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뭔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비슷한 느낌?”
“그분들은 자신을 빨강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데요. 나는 노랑으로 느껴졌어요.”
그녀의 말에 내가 어떻게 대꾸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진보는 대개 진보 코스프레하는 자유주의자들이야’ 식으로 삭막하게 말하진 않았다. 두 사람이 3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나이일 때 들려준 이야기들은 실은 연결되어 있다. 쉽게 문화시민의 자격을 얻는 거대한 빨강 패턴이 존재한다. 빨강으로 보이는 그 패턴은 실은 노랑이다. 패턴은 전 사회적 차원에서 빨강의 가능성과 내용을 노랑 수준으로 억지한다.
거대한 빨강 패턴. 그것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장벽인지도, 대다수 인민들이 진보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가게 된 이유 역시 삶의 직관으로 그 장벽을 직시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15/07/16 11:45 2015/07/16 11:45
2015/07/06 09:11
모든 동물이 정성을 다하고 고생스럽게 제 새끼를 키우고 가르치는 목적은 독립, 즉 새끼가 자신을 제대로 떠나게 하는 데 있다.
2015/07/06 09:11 2015/07/06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