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1 13:27
2012년 5월, 고래가그랬어는 경향신문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4.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아이의 미래와 관련하여 분명한 것 하나는 대개의 아이는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래서 아이의 삶과 노동자의 삶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노동자들이 비교적 인간적 삶을 누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사회치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없다. 노동자의 싸움에 연대하는 일은 내 아이의 삶에 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항목은 신문에 실릴 때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라는 다소 모호한 말로 바뀌었다. 교육 캠페인에 노동자라는 말이 들어갈 때 독자의 거부감이 예상되니 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경향 측 요청이 있었다. 조중동도 아닌 경향이 그런다는 게 매우 애석했지만, 캠페인의 출발 시점에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수용했다. 물론 기사 외에 모든 활동에선 본디 내용을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요 며칠 페북에서 아이들의 노동 의식이 많이 왜곡되었다는 경향신문 카드뉴스가 많이 공유되는 걸 본다. 4년 동안 우리는 적어도 그만큼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절망과 우울 속에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2016/05/01 13:27 2016/05/01 13:27
2016/04/27 17:24
불거지게, 혹은 조용히 반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엘리트 관료 중엔 소문난 수재 출신이 많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머리는 좋은데 왜 저러고 살까' 개탄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에서 이른바 수재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는 매우 협소한 일부(지능, 성적 등으로 표현되는 생물학적인 부분)일 뿐이다. 인간의 머리가 그런 부분에 그친다면 인간이 여느 동물과 구분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인간 머리의 좀더 본격적인 부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어떤 세계를 원하는가 등으로 표현되는 지성적 부분이다. 그러니 머리는 좋은데 왜 저러고 살까, 라는 말은 거꾸로 된 것이다. 머리가 나쁘니까 그러고 사는 것이다.
2016/04/27 17:24 2016/04/27 17:24
2016/04/27 13:15
직접 확인하지 않은 루머를 근거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전파하는 사람을 보면 경박함에 실망하게 된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이 루머의 피해자인 적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루머로 판단하거나, 루머의 피해자가 되고도 다른 사람을 루머로 판단했던 일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경박함이란.
2016/04/27 13:15 2016/04/27 13:15
2016/04/26 13:17
‘빌어먹을, 또.’ 옥시(옥시레킷벤키저)가 사람이 죽어나간 게 자사의 가습기 소독제 때문이 아니라 봄철 황사 때문이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훅 한숨이 나왔다. “김앤장의 자문을 받아”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몇해 전 일이 떠올랐다. 낯모르는 고등학교 후배 몇이 불쑥 찾아왔다. 유유상종이라,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다들 주류 사회에서 행세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죄라도 지은 듯, 명함을 건네며 유난히 겸연쩍어했다. 김앤장 변호사였다. 어디서고 대접받는 게 습관이 되었을 텐데, 다른 생각 하는 선배 앞이라고 그러는 게 밉지 않아서 “밥벌이가 거기서 거기지 뭘 그래” 하고 말았다. 오버였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 밥벌이, 끔찍한 밥벌이가 있다.

세상이 어떤가를 아는 가장 정확한 방법 중 하나는 가장 머리 좋은 청년들이 어떤 밥벌이에 몰리는가를 보는 것이다. 1980년대는 그런 청년들이 변혁운동에 투신했다. 변혁운동은 밥벌이가 아니다. 그러나 밥벌이를 작파하고 다른 가치에 투신하는 게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 청년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기분이 켕기긴 하지만, 어쨌거나 80년대는 변혁의 세상이었다는 뜻이다. 근래 머리 좋은 청년들은 어떤 밥벌이에 몰리는가. 가장 머리 좋은 청년들은 이미 충분히 양극화한 세상에서 1%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1%의 악행을 덮는 이런저런 밥벌이를 선호한다. 김앤장 같은 대형로펌을 비롯, 유수의 투자(투기), 유수의 금융, 유수의 컨설팅 따위 이름이 붙은 밥벌이들이다. 근래 세상은 변혁이 불가능한 세상, 1%가 완전히 틀어쥔 세상이라는 뜻이다.

2016/04/26 13:17 2016/04/26 13:17
2016/04/24 12:07
끔찍한 밥벌이

또 김앤장. 몇해 전 불쑥 찾아온 고등학교 후배 몇 중 하나가 명함을 주며 죄라도 지은 듯 겸연쩍어 했다. 김앤장 변호사였다. 대접받는 게 습관이 되었을 텐데, 다른 생각하는 선배 앞이라고 그러는게 밉지 않아서 '밥벌이가 거기서 거기지 뭘 그래' 하고 말았다. 오버였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 밥벌이가 있다. 가장 끔찍한 경우는 좋은 머리를 1%의 악행을 덮는 데, 이미 충분히 양극화한 세상에서 1%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데 쓰는 밥벌이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끔찍한 건 가장 머리 좋은 청년들이 그런 밥벌이를 선택하고, 그런 밥벌이가 진심으로 자랑이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6/04/24 12:07 2016/04/24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