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04/11/29 예수 이야기 1
  2. 2004/11/28 튀나가는 아이
  3. 2004/11/26 새들은
  4. 2004/11/23 웬만하면 웃으며 살자
  5. 2004/11/20 붕어빵
  6. 2004/11/18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7. 2004/11/17 살 만한 나라
  8. 2004/11/16 바람
  9. 2004/11/14 처남댁
  10. 2004/11/13 말러
  11. 2004/11/11 꼬마 니꼴라식으로 말해서
  12. 2004/11/11 공포가 혐오를 이겼다?
  13. 2004/11/09 소설들
  14. 2004/11/07 다도
  15. 2004/11/06 손님
  16. 2004/11/03 인정이 누나와 형숙이
  17. 2004/11/03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18. 2004/11/02 집.. 은.. 검.. 다
  19. 2004/11/01 무엇이 문제인가
2004/11/29 21:55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잘못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나 예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무엇보다 예수와 (예수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거리에서 나온다. 사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적은 없다. 그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하느님의 뜻’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그 때문에 죽임까지 당했지만, 바로 그 점에서 보듯 그의 활동은 ‘유대교 갱신운동’의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허물어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이 무엇이었든 그가 죽은 후 그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가 생겼다. 처음에 기독교는 예수가 그랬듯 하층계급 인민들을 위한 종교였고 그런 계급성에 걸맞게 가혹한 탄압도 받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그 정체성을 잃어갔다. 기독교는 예수를 처형했던 로마의 국교가 되고부터 지배계급의 종교가 되어 세계를 점령해갔다. 점령은 예수가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보듯, 인류가 겪는 가장 악랄한 사건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다.

한국에서 사정도 그리 나을 게 없다. 근래 몇몇 대형교회의 불거진 행태가 말썽을 빚고 있지만 그런 경향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관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한국엔 교회가 많다. 밤이면 온 세상이 붉은 네온 십자가들로 넘쳐 난다. 한국에 이렇게 교회가 많아진 건 박정희 군사 파시즘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군사 파시즘의 홍위병이자 가장 충직한 선교사였으며 인민들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공간이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신앙관은 “하면 된다” 라는 군사 파시즘의 구호에 봉사했다. 한국 교회의 철저한 빨갱이 콤플렉스는 군사 파시즘의 존립 기반이던 반공주의에 봉사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인민들(특히 파시즘과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이중적 억압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른바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고 그 저급한 신앙관은 다시 가장 반동적인 사회의식으로 작동한다. 오늘 한국 인민들의 반동적인 사회의식을 생산하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는 ‘수구신문’이 아니라 교회다. 오늘 한국에서 교회 문제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진지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교회문제는 ‘운동과 별개의, 교회에 안 나가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와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단지 ‘교회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비판은 결국 교회 체제의 내부에 기생하게 마련이다. 해결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던 예수의 선언처럼 좀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건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 질문만이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 교회를 빙자한 상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 연재. 이 글은 예수전은 아닙니다.)
2004/11/29 21:55 2004/11/29 21:55
2004/11/28 18:50
041128.jpg

"이곳이 답답하지 않니. 우리 나가자."
"흥 어떻게 나가. 온통 사각틀인데."
"잘 봐. 시작!"
"진짜 나갔네! 우와 우와!"

(고래가그랬어 15호 표지 그림, 유승하)
2004/11/28 18:50 2004/11/28 18:50
2004/11/26 12:24
새들은 항상 가슴에 기분 좋은 생각들만 가득할까.
그래서 그렇게 쉽게 날아 오를까.

(김우경, '머피와 두칠이'에서)
2004/11/26 12:24 2004/11/26 12:24
2004/11/23 14:18
이따금씩 아이들을 앉혀 놓고 “아빠가 고쳐야 할 게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김단과는 평소보다 진지한 대화 시간이 되기도 하고, 김건은 "마루치아라치 이야기(마루치아라치의 캐릭터를 차용하여 아이들 잠잘 때 들려주다 그 유치함을 견딜 수 없어 57탄인가에서 그만 둔 말도 안 되는 모험담.) 다시 해줘." 따위의 요구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고쳐야 할 것‘ 수준의 요구는 없었는데 처음으로 나왔다. 김단이 제 미간을 가리키며 “아빠 여기에 줄이 잡혔어.” 했다. 근래 내 얼굴이 그리 밝지 못했던 게 그에게도 느껴졌던 모양이다. "자기 기분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건 못난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작자가 잘 하는 짓이다. 두말 않고 “알았어. 줄 안 잡히게 할게.” 하고 나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 찬찬히 내 속도 들여다보고 생전 안 보던 웃기는 동영상 따위도 찾아보고. '어디서나 좋은 사람 소리 듣는 사람'을 최악의 인간이라 생각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만주의 지사도 아니니... 웬만하면 웃으며 살자, 그게 소결론이다.
2004/11/23 14:18 2004/11/23 14:18
2004/11/20 16:53
집 근처에 붕어빵 파는 곳이 네 군데나 생겼다. 제 철이라고는 하지만 한 동네에 네 군데라니 살기 어렵긴 어려운 시절이다. 나는 '153은어빵'과 '월척붕어빵‘을 번갈아 찾는다. 둘 다 부부가 한다. 남편은 굽고 아내는 담고 계산한다. 한 눈에 이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천원에 네 개. 미리 많이 구워 놓지 않기 때문에 먼저 온 손님이 있거나 삼천 원 어치 이상을 사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 153은어빵은 기다리는 동안 잘못 구운 빵을 먹으라고 권한다. “멀쩡한데 그냥 파세요” 하면 “바삭하게 안 구워져서 팔긴 좀 그래요” 한다. 나는 못 이기는 체 한 개를 먹는다. 갈 때마다 그러는 걸 보면 부러 그러는가 싶기도 하다. 아까는 월척붕어빵 옆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데 붕어빵 굽는 냄새가 솔솔 났다. 어릴 적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저녁밥 짓는 연기가 생각났다.
2004/11/20 16:53 2004/11/20 16:53
2004/11/18 23:16
041118.jpg

현존하는 최고의 남자 춤꾼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왼쪽부터 양산학춤 김덕명, 묵중춤 박영수, 동래입춤 문장원, 밀양북춤 하용부, 고깔소고춤 정인삼, 채상소고춤 김운태, 덧배기춤 이윤석. 무대에 지팡이를 짚고 나온 문장원 선생이 펄펄 날고 들어가자, 공연을 꾸리고 진행을 맡은 진옥섭이 말한다. “하루라도 저렇게 살 수 있다면 당장 늙고 병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누가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구질구질하게 말했던가. 조선의 춤과 음악은 인류 예술사를 통틀어 최고 경지에 이른 예술들이다.
2004/11/18 23:16 2004/11/18 23:16
2004/11/17 12:28
파월이 물러나면서 미국의 대북한정책이 강경해질 거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마치 미국이 나름의 어떤 세계관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을 기반으로 한다. 미국은 세계관이 아니라 ‘오로지’ 지배계급의 이윤 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다. 이윤이 있다면 어떤 국제적 비난도 무릅쓰지만 이윤이 없다면 어떤 명분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려면 북한의 이윤 가치가 달라져야 한다.

파월과 라이스의 차이, 심지어 부시와 캐리의 차이는 자유주의 정치 평론가들이 떠들어대는 만큼 큰 게 아니다. 캐리가 된다고 해서 미국의 대외 정책이 크게 달라지 게 아니라는 건, ‘인권 대통령’ 카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나라가 고작 부시와 캐리의 차이에 매달리는 나라라는 점이다. 미국에게 필요한 건 부시와 캐리의 차이가 아니라 부시와 캐리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차이다. 그것은 그 나라가 오로지 지배계급의 이윤가치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하는 힘, 바로 좌파 정치세력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 혹은 북구 나라들이 그나마 사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나라에 좌파 정치세력이 강력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세력이 그 나라를 지배계급의 이윤 가치로만 움직이지 않게 ‘억지’하기에 그 나라가 살 만한 나라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 역시 좌파 정치세력의 성장에 달려 있다. 왜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 파병을 막지 못했는가? 좌파 정치세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선 동아니, 수구반동세력이니 하는 것들을 척결할 수 있는 좀 더 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좌파 정치세력의 성장이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좌파는 거의 순수하게 유익하며 앞으로도 한참은 그렇다. 좌파의 성장을 현실사회주의의 폐해와 연결시키는 걱정은 좌파가 정치세력의 절반쯤 될 때 해도 충분하다. 오늘 모니터 앞에 앉아 온밤을 꼬박 새워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차이에 집중하는 청년들에게 민노당 정도는 보통이 될 때, 한국은 비로소 살 만한 나라가 된다.
2004/11/17 12:28 2004/11/17 12:28
2004/11/16 20:13
041117.jpg

바람이 차가워지기에 미선이 효순이에게 들렀다.
벙커들이 줄을 선,
앞을 보면 앞이 캄캄하고 뒤를 보면 뒤가 캄캄한 그 길에.
양놈 차도 조선놈 차도 여전히 씽씽 잘도 달린다.
바람이 물었다.
너희들의 인생이 잠시 속도를 줄이지 않을 만큼 대단하니?
아이들은 쉬고 있니?
못난 나라, 못난 사람들을 떠난 그 아이들은?
2004/11/16 20:13 2004/11/16 20:13
2004/11/14 22:40
처남댁은 참 밝고 씩씩한 사람이다. 본 지 15년이 되어가지만 한 번도 궂은 얼굴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맏딸로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다 해냈고 결혼해선 처갓집의 든든한 기둥 노릇이 되었다. 장인이 병원에 계신지 두해가 넘고 장모의 사업이 기울면서 늘 쪼들리는 살림이지만 그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있어 처갓집엔 여전히 그늘이 없다. 오늘 아침, 그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소식을 듣고 내려간 아내에게 “은숙 씨는 어때?” 그랬더니 “안 좋지.” 한다. 사람의 슬픔을 계량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밝고 씩씩한 사람일수록 슬픔은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김단과 김건을 잠깐 앉혀놓고 “동우 오빠(처남 아들)의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며칠만이라도 그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에게 확실한 것 한 가지가 뭐지?” “죽는 거.” “그래, 죽는 거지. 어떻게 보면 사람은 죽으려고 태어나는 셈이지. 그래서...” 나는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설교를 피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본다. 둘은 죽음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치기어린, 그러나 죽음이라는 주제에 치기 없는 이가 몇이나 될까. 치기는 유지되며 치기를 포장하는 말만 달라지는 것, 그게 우리의 인생이다.
2004/11/14 22:40 2004/11/14 22:40
2004/11/13 16:55
041113.jpg

번스타인의 말러 전집을 노트북에 몽땅 넣어놓고 말러를 듣고 있다. 오래 전, 음악평론을 하는 후배가 나에게 잘 맞을 거라며 말러 시디를 몇 개 준 적도 있지만 제대로 듣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말러리안’이 되려는 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이 문제적 예술가의 '견해'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아도르노의 말을 빌면 “공허하고 거대한 세상에 대한, 인간이 기계부속처럼 맞물려 들어가 있는 후기 시민 사회의 맹목적 세계 운행에 대한 대응 방식"에 대해 말이다.
2004/11/13 16:55 2004/11/13 16:55
2004/11/11 09:39
어준이가 방송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었다. 강유원도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들어본 적은 없다. 워낙 영리한 친구니 들을 만할 거라 짐작만 하고 있다. 하여튼 방송을 시작하고는 이따금 비슷한 시간에 문자를 보내곤 한다.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걸까? 내용은 늘 뜬금없고 별 개연성도 없다. “형 뭐해” “연애는 좀 어때” 뭐 그런 거고 나 역시 “지구를 지켜” “바보야” 하고 마는 식이다. 어젠 드물게 문자가 대화의 꼴을 갖추었다. “책은 좀 어때” “도울 궁리를 좀 해라” “돈만 빼고 뭐가 젤 필요해” “홍보” “형 내가 다섯 시 넘어서 전화할게”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그랬다. “너 갑자기 고래에 관심 갖는 척 하는 이유가 뭔지부터 말해봐.” “그냥 생각나서 그러지.” “자식아 고래가 생각나면 관심 갖는 거냐.” “우하하...” “바보 같은 놈이 웃기는.” “바보? 와 그런 심한 욕을 하다니. 우하하...” “형이나 너한테 바보라고 해주지 다른 놈들은 다 니가 똑똑한 줄 알잖아.” “맞어 형. 그런데 있잖아...” 그냥 생각나서든 계획적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고래를 도울 궁리를 하다니 (꼬마 니꼴라식으로 말해서) 어준이는 참 좋은 사람이다.
2004/11/11 09:39 2004/11/11 09:39
2004/11/11 08:14
역사 속에서 민중의 선택을 엄격하게 말하지 않는 건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믿는 엘리트들의 오랜 습성이다. 민중의 힘이나 민중의 위대한 선택은 강조되지만 그런 선택의 시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점에서 존재하는 민중의 무지나 비굴은 언제나 생략된다. 이를테면, 박정희 이후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 온 군사파시즘에 대한 민중의 선택은 그저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민중들’이라 기술되곤 한다. 물론 그건 사실과 다르다. 과연 그 시절 신음하던 민중이 몇이나 있었던가? 신음하면 죽거나 다치던 시절이었다. 대개의 민중들은 제 식구나 챙기며,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 말하며 살았을 뿐이다. 민중들의 그런 무지나 비굴은 위대한 선택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한 가지 진실만을 부각하려는 진보적 엘리트들에게 민중은 실제 현실 속의 민중이라기보다는 제 관념 속의 ‘민중상’에 가깝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두고 “공포가 혐오를 이겼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다. ‘부시는 나쁜 놈이지만 미국 민중들은 죄 없는 피해자’라는 식의 이야기는 미국 민중의 무지나 비굴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보적 엘리트들의 욕구에 봉사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미국 민중들은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투표를 한 건 미국 민중들인데 투표의 결과엔 미국 민중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건 역시 관념 속의 민중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미국 민중들이 부시라는 나쁜 놈에 사로잡힌 것인지, 미국 민중들의 저급한 사회의식과 국가주의를 부시가 반영할 뿐인지, 혹은 그 중간 어디인지를 따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오늘 미국 민중들의 사회의식과 국가주의의 상당 부분이 오랜 여론 조작과 이데올로기 공작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미국 민중들을 두둔하는 것 역시 온당하지만은 않다. 그런 태도는 실은 미국 민중들을 바보 취급하는(자신의 의식에 대해 어떤 주체적 능력도 없이 여론 조작과 이데올로기 공작에 조정당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것이며, 오늘 미국 민중들이 공포에 빠지게 된 원인이라 말하는 9.11 사건과 같은 공포를 평생 겪으면서도 복수가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복수의 희망조차 포기한 수많은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모욕이다. 최소한의 인간미를 가진 어떤 사람도 9.11 사건 이후 미국 민중들의 공포를 무시하지 않겠지만 그 공포가 다른 모든 공포들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공포인 건 아니다. 미국 민중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분명히 말해주는 게 좋다. “너희들의 저급한 사회의식과 국가주의가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2004/11/11 08:14 2004/11/11 08:14
2004/11/09 12:56
여전히 진지한,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소설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짬짬이 책갈피를 다시 끼워가며 읽을 만한 소설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말이다. 지난주에 경성트로이카를 읽었는데 작가와 소주 한잔 하고 싶을 만큼 근사했다. 지금은 내 생의 적들을 읽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운동가' 이야기고 '국가보안법' 이야기라 꺼려지는가? 걱정마시라. 좋은 소설은 소재와 상관없이 좋은 법이다.
2004/11/09 12:56 2004/11/09 12:56
2004/11/07 02:44
041106.jpg


두어 주 전 동네친구들과 바람 쐬러 헤이리에 들었을 때 영식이가 다기 세트를 사주었다. 생활도예 갤러리를 구경하던 내가 ‘이거 예쁘군’ 한 걸 들었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영식이가 포장을 한 다기를 슬그머니 건네주었다. 소박하지만 내가 고른 게 맞나, 싶을 만치 앙증맞은 다기다. 그날부터 차를 많이 먹게 되었다. 책상에만 앉으면 쉬지 않고 차를 먹는다.

차를 많이 먹으니 성욱이 형 생각이 난다. 그는 다도에 관심이 많았다. 88년에 볼쇼이 발레단 표가 있다며 나를 끌고 세종문화회관에 갔을 때도 가방 안의 다기 때문에 검문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붙들어 놓고 다도를 가르치려 애를 쓰곤 했다. “니한테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나는 '고작 미역 쪼가리 같은 걸 물에 우려먹으면서 복잡한 격식을 갖추는 일'에 내내 시큰둥해 했다. 그는 몹시 서운해 했다.

차를 많이 먹는다지만 아직 다도를 배울 생각은 없다. 그저 더운 물을 부어 찻잔에 따라 후루룩 먹을 뿐이다. 차를 먹는 일을 수양의 차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배워보는 것도 좋을 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면 굳이 격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삶의 격식은 언제나 삶의 내용보다 넘치지 않는 게 좋다.

하여튼 차를 많이 먹으니 성욱이 형 생각이 난다. 배우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게 무슨 반동적인 짓이라도 되는 양, 그리 못되게 굴었나 싶다. 결국 나중에 만날 텐데, 다도를 배워둘까?
2004/11/07 02:44 2004/11/07 02:44
2004/11/06 10:11
건곤씨와 태성씨는 줄곧 마산에서 살아온 노동자들이다. 스타일은 좀 대조적이지만 둘 다 겸손하면서도 진지한 태도가 호감이 간다.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 셋이서 포장마차에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희는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일단 손님이 오면 무조건 반갑게 맞는다 아닙니꺼?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안 그렇더라고예? 자기 기분을 억수로 내색하대예? 진짜 적응 안된다 아닙니꺼?”” 나는 웃으며 긍정했다. 서울 사람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하여튼 그렇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을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마산 사람들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을 참는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 30분이 채 못되었다. 근처에 사는 조중사를 불러내 해장을 하기로 했지만 그만 둔다. 안 그래도 인간 이하로 고생하는데 역시 싱거운 생각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메일을 확인하고 며칠 전 메일을 시작한 김건 생각이 나서 짧은 편지를 쓴다. “단이 건이 안녕? 아빤 지금 미산에서 서울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오랜 만에 새벽의 서울거리를 보고 싶어 버스를 타고 종로로 갔다. 청진동에서 해장국을 사먹고 천천히 종로 거리를 걸었다. 조금씩 차도 사람도 늘어가는데 오늘따라 서울이 그리 밉지가 않다. 아무리 추한 괴물도 눈을 비비며 깨어나는 장면은 밉지 않은 걸까?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한껏 느슨해진다.
6시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는데 타기도 전에 문이 닫혀 오른쪽 어깨를 친다. 모른체 하는 기사에게 한마디 할까 하다가 소란을 피우기 싫어 잠자코 자리에 앉는다. 기사는 계속 그런 식이다. 타고내리는 손님들의 인사는 한번도 받지 않고 마지막에 타는 사람들은 늘 어깨를 친다. 버스는 연신 과속경고벨을 울리며 달린다. 버스는 일산을 지나 교하에 접어든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이고 속으로 '제발 나좀 건드리지 마라' 되내이며 내리려는데 이번엔 내리기도 전에 문이 닫힌다. 버스엔 기사와 나뿐이고 다음이 종점이니 이젠 나도 부담이 없다. “이런 씨발.” 기사를 돌아보며 낮게 욕을 한다. 거울로 나와 눈을 마주친 기사는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듯, 몹시 당황한 얼굴이다. 슬그머니 다시 문이 열리지만 나는 내리지 않는다.
2004/11/06 10:11 2004/11/06 10:11
2004/11/03 22:26
노동영화제가 벌써 8회라니, 십수년 전 서울영상집단 시절이 생각난다. 서교동 연립주택 지하 창고를 근거지로, 우리는 매일 같이 비디오 카메라를 매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나르는 거리를 달리곤 했다. 어느 날 고된 하루를 마치고 사진 하던 균동이형(여균동) 작업실에 들렀을 때 그는 그날 찍은 필름들을 정리하며 와인을 먹고 있었다. 명진이형(주명진 선배)이 나와 양래(김양래)에게 웃으며 속삭였다. "우리는 언제 촬영 마치고 맥주라도 먹어보냐?" 우리는 가난했고 가난했던 만큼 순수했다. 우리는 운동에 전념하느라 정작 영화엔 소홀한 영화운동가들이었다. 90년대 들어 혁명의 열정이 시들어 방송사 피디로 교수로 하나둘씩 떠나고 그 동료들 가운데 여전히 남은 건 둘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인정이 누나(배인정 선배)와 서울영상집단의 형숙이(홍형숙). 그들에게 새삼스런 존경을 보낸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들이 가장 현명했다.
2004/11/03 22:26 2004/11/03 22:26
2004/11/03 00:52
2004/11/02 00:00
041101.jpg


이란 시인 포르구 파로흐자드(1935-1967)는 죽은 지 40여년이나 지났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이란 예술가들에게서 여전히 ‘누님’으로 존경받는다. 키아로스타미의 최근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은 파로흐자드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어떤 이의 호의로 파로흐자드가 1962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집은 검다>를 봤다. 한센병(나병) 환자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영화 내내 일그러진 얼굴과 썩어문드러진 손발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들의 외모에 시선을 두기 괴롭듯 그들은 우리의 마음에 시선을 두기 괴롭다.'

영화의 마지막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아름다운 것 네 개를 말해 보거라."
"달, 태양, 꽃 노는 것이요."
"아름답지 못한 것 세 개를 말해 보거라."
"손, 발, 눈이요."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어 보거라."

(한참 망설이던 아이가 칠판에 적는다.)

"집.. 은.. 검.. 다"
2004/11/02 00:00 2004/11/02 00:00
2004/11/01 00:08
"창녀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든, 포주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든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통제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성매매를 통제한 것은 배타적인 남녀관계의 제도로서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여성의 성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는 부계혈통과 사유재산 상속을 위해 일부일처제를 확립했다. 부계혈통 유지를 위해 여성의 성욕은 부정되고 오로지 재생산을 위한 성적 행위만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조개념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고 남성들에게는 자유로운 성욕 추구가 용인되는 이중규범을 형성했다. 여성의 가정으로의 유폐와 성적 억압은 남성의 경제적 지배와 성적 착취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고 가족제도의 성립과 함께 여성을 아내와 창녀로 구분 짓는 역사가 시작된다. 결혼제도를 거부하거나 남편에게 생계를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고자 하는 여성은 남성에 의해 창녀로 불려졌고, ‘창녀-성녀’ 낙인은 여성들에게도 주입되어 창녀가 되지 않고자 스스로 정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거나 창녀를 경멸하는 태도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반면, 남성의 성욕 추구를 위해 성매매는 가족제도를 위협하기는커녕 공존해왔다. 국가가 이러한 일부일처제 가족 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책들을 수행해왔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매매되는 자가 대부분 여성이고, 성을 사는 남성 구매자가 대부분 기혼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역사적으로 금지주의는 성매매를 절대 철폐시키지도 감소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였고, 성매매 여성들을 범죄자로 인식하게하고, 성매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이중적 착취구조에서 더욱더 취약한 위치로 몰아넣었다. 더욱더 문제는 ‘나쁜여성-착한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강화시켜왔다는 점이다. 공창제나 합법화 역시 이러한 이중잣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왜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의 현실을 언어화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어렵게 탈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사회화와 노동 243호, 성매매방지법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


사회화와 노동인권하루소식과 더불어 일반인들이 사회교양으로 읽기에 더없이 좋은 매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개념어가 많고 문장이 딱딱해서 일반인들이 읽기 어렵다는 건데... 누구도 '세상을 바꾸는 언어가 세상을 지키는 언어보다 쉬워야 한다'는 걸 부인하지 않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2004/11/01 00:08 2004/11/01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