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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주 전 동네친구들과 바람 쐬러 헤이리에 들었을 때 영식이가 다기 세트를 사주었다. 생활도예 갤러리를 구경하던 내가 ‘이거 예쁘군’ 한 걸 들었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영식이가 포장을 한 다기를 슬그머니 건네주었다. 소박하지만 내가 고른 게 맞나, 싶을 만치 앙증맞은 다기다. 그날부터 차를 많이 먹게 되었다. 책상에만 앉으면 쉬지 않고 차를 먹는다.

차를 많이 먹으니 성욱이 형 생각이 난다. 그는 다도에 관심이 많았다. 88년에 볼쇼이 발레단 표가 있다며 나를 끌고 세종문화회관에 갔을 때도 가방 안의 다기 때문에 검문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붙들어 놓고 다도를 가르치려 애를 쓰곤 했다. “니한테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나는 '고작 미역 쪼가리 같은 걸 물에 우려먹으면서 복잡한 격식을 갖추는 일'에 내내 시큰둥해 했다. 그는 몹시 서운해 했다.

차를 많이 먹는다지만 아직 다도를 배울 생각은 없다. 그저 더운 물을 부어 찻잔에 따라 후루룩 먹을 뿐이다. 차를 먹는 일을 수양의 차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배워보는 것도 좋을 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면 굳이 격식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삶의 격식은 언제나 삶의 내용보다 넘치지 않는 게 좋다.

하여튼 차를 많이 먹으니 성욱이 형 생각이 난다. 배우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게 무슨 반동적인 짓이라도 되는 양, 그리 못되게 굴었나 싶다. 결국 나중에 만날 텐데, 다도를 배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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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규항넷/펌] 이성욱.

    Tracked from 예쁜 세상이 오면 한껏 만화속에 파묻혀 살겠다 2004/11/07 20:10  삭제

    두어 주 전 동네친구들과 바람 쐬러 헤이리에 들었을 때 영식이가 다기 세트를 사주었다. 생활도예 갤러리를 구경하던 내가 ‘이거 예쁘군’ 한 걸 들었던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영식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