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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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어느 골목..

2011/11/30 12:21 2011/11/30 12:21
2011/11/30 10:26

(아프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읽고 '곰곰' 생각해봤으면 하는 편지.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도 굳이 남의 글을 읽거나 의견을 듣는 이유는 내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지, 내 생각과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규항 님께

트윗을 하다가 문득 누군가의 응원을 받고 싶어져서 규항 님을 불렀습니다.

나꼼수는 왜 늘 뒷북 공연을 할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문재인과의 상관관계를 깨달으면서
(그동안 제가 본 트윗에서는 이런 얘기 한 번도 못 봤다는 것도 참 이상하네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 거였구나.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준 날치기 일주일 전에야 반대 입장을 밝히고
(지금 생각해보면 '폐기'가 아니라 '날치기 반대'였던 것 같군요)
문재인은 '착한FTA'는 찬성한다는 둥 얼척이 없는 발언을 하는 와중에
서울 시위에 몇 번 참가하면서 왜 맨날 정당연설회일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꼼수와 문재인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이제 이 판은 끝난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민노총도, 전농도 운동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한 시민들 수천명 맨날 촛불 켜본들 국회의원들 선거용 들러리밖에 안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FTA 재앙을 고스란히 겪어야하는구나.
딱 한 가지 방법, 완전 폐기파의 절대 다수 당선과 대통령까지...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다 알지요.
지금까지 대선 후보자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 폐기파는 없지요.
그걸 어제 한순간에 와르르 깨닫는 순간, 가슴이 문드러질 듯이 아팠습니다.
노무현은 삼성과 손잡으면서 FTA를 시작했고, 동시에 비정규직화와 농민운동 파괴를 자행했으며,
이명박이 그것을 이어받아 종편 허용과 방송사 언론을 장악하면서
국민들을 심각한 수준으로 우민화시켰구나,

설사 자각을 한다해도 트윗 밀실 안에서나 찧고 떠들어댈 뿐
제대로 저항할 세력도 힘도 조직도 없어진 거죠.
거기에 나꼼수가 제대로 밑밥을 쳤다는 것까지 알겠습니다.
이명박의 죄악이 '꼼수'로 표현되는 순간 사람들은 조롱과 희열을 느끼겠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죄는 꼼수 정도로 죄질이 낮아지고 국민들은 만성불감증에 걸리게 만들었습니다.

나꼼수는 6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의 귀를 묶어둔 채
한미FTA가 왜 잘못인지, 왜 전면 폐기를 해야 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죠.
그들을 거리로 나가라고 선동하지 않았죠. 희희낙낙 즐기기만 하라고 붙들어매었죠.
나꼼수.... 가카 헌정방송이 아니라 문재인(혹은 노무현) 헌정방송이죠.
내년 선거가 어떻게 돌아갈지 그림이 뻔해지면서 저는 더이상 촛불을 키지 않기로 했습니다.
달리, 전면 폐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지만, 더는 거리로 나가지 않으렵니다.

이런 내용의 트윗 글을 연속해서 올렸건만 정말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게 더 충격이었습니다.
옳다, 아니다, 맞다, 틀렸다...뭐 이런 반응 자체도 없더군요. 리트윗도 알티도...
뭐야, 다들 알고 있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확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규항 님께 검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제 판단이 맞는지, 오류가 있는지...

한밤중이 되어서야 조금씩 반응이 오긴 했지만....
트윗 하는 사람들 중에 반MB 중에 노빠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노무현이 잘못 시작했다는 멘션 날렸다가(화가 나서 '놈현'이라고 하긴 했습니다만)
'년' 소리도 듣고 욕도 얻어먹고...바로 언팔도 당하고...
트윗이 나꼼수와 같은 폐해가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반MB의 밀실이면서, 여기서 화내고 욕하고 떠들면서 울분을 다 삭히고 말죠.
광장으로 나가야 할 힘을 여기서 다 소진하면서 '그래도 나는 뭔가 하고 있구나'
'내 생각과 같은 사람 엄청 많구나. 그래 우린 이길 거야'라고 위안하죠.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는 줄 뻔히 알면서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제가 우둔해서 너무 늦게 깨달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더군요.

규항 님 생각을 들려주세요.
그리고 이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씀해주세요.
지옥 같은 FTA  치하에서 저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습니다.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1/30 10:26 2011/11/30 10:26
2011/11/24 16:08
이명박 경찰의 시위 강경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하의 날씨에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는 놈들은 인간성을 포기한 놈들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규탄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마치 노무현 정권 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몰아가는 정치적 꼼수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정권 땐 강경진압을 넘어 살인적 진압이 횡행했다. 경찰들은 방패 끝을 칼날처럼 갈아 시위대를 찍기 일쑤였고 피칠갑이 되어 널부러진 시위대나 노동자들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시위농민 두 분이 사망한 사건은 그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평택에선 경찰이 아니라 군대가 시위진압에 투입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진과 함께 ‘노무현 정권처럼 화끈하게 빨갱이들을 진압할 것을 촉구’하는 우익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먹고살만한 중산층 인텔리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꽤나 괜찮은 정권이었다. 그러나 노동자 인민들에게 그들의 저항에 이명박 정권보다 덜한 정권은 결코 아니었다. 이 나라의 정권들은 극우정권이든 민주화정권이든 노동자 인민의 저항에는 똑같이 잔혹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모두 삼성과 자본의 하수인이었거나 하수인이므로.

2011/11/24 16:08 2011/11/24 16:08
2011/11/24 10:18
한미FTA는 노무현과 이명박의 공동작품입니다. 안희정, 송영길 따위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죠. 비집권 시엔 우리 편, 집권 시엔 삼성 편인(일) 세력을 직시합시다. 다급할 땐 최대한 연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 우리 편은 아님을 기억합시다. 전술적 연대는 '눈 딱 감고 손을 잡는 것'이 아닌 '손은 잡되 눈은 더 크게 뜨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2011/11/24 10:18 2011/11/24 10:18
2011/11/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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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새 식구들. 신라 토우 밴드.
2011/11/21 11:12 2011/11/21 11:12
2011/11/20 23:24
우연히 '뽕똘'을 봤는데 뭐 이런 영화가 있나 싶어, 혹은 대체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싶어 같은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을 구해 봤다. 좋더라. 깃이 헤진 옷 같은 감성이 제주 유수암의 풍광과 만나고 미워해 마땅하나 미워하기 어려운 찌질이 마초들이 연신 노래 부른다. '어이그 저 귓것'은 귀신도 안잡아 갈 못난 놈들이라는 뜻이라지.



2011/11/20 23:24 2011/11/20 23:24
2011/11/17 18:09
편해문달력_web
2011/11/17 18:09 2011/11/17 18:09
2011/11/17 14:19
이명박의 FTA는 노무현의 FTA와 다르다.(김어준)
노무현의 FTA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이명박의 FTA에는 분노가 인다.(조국)
이명박의 FTA는 노무현의 FTA의 ‘짝퉁’이다.(노무현재단)

2011/11/17 14:19 2011/11/17 14:19
2011/11/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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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1500일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 사측과 정부에선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열명 남짓의 노동자들이 벌이는 싸움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의 속내는 무엇일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유명자씨를 서울시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김규항 = 1500일이 되어간다.
유명자 = 곰도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곰보다 못한 처지인 모양이다. 1500일이 돌이켜보면 참 길지만 하루하루 동지들과 함께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김규항 = 재능노조가 만들어진 게 1999년이고 한때 노조원이 3000명에 달했다. 이젠 열명 남짓이 싸우고 있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유명자 = 특고(특수고용 노동자)라는 말이 우리가 99년에 단체협상하고 노조 인정받으면서 생겨났다. 그 이듬해부터 보험 모집인, 건설 레미콘, 덤프, 경기 보조원 이런 데들이 막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자본 측에선 그 흐름에 긴장했고 노조 방해공작과 법적 차단에 들어갔다.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이름도 특수고용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다. ‘너희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들이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 잘 살 수 있다’는 선전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깊이 심어졌다.
김규항 = 대부분 여성들이라 장기 농성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유명자 = 거리에서 하는 농성이라 여성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돌아가면서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없다. 남성 위주 공장 같은 데는 사수대도 있고 용역깡패가 들어와도 맞짱 뜨고 싸우고 한다지만 우린 용역들이 들어왔을 때 훨씬 무력하다. 용역들의 행태도 많이 다르다. 성적 수치심이나 신변의 위협들, ‘너희 집 가봤는데 집 앞에 자전거 좋더라. 네 새끼 거냐’는 식의 협박들. 불면증, 정신적인 쇠약에 정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김규항 = 이명박 정권 이후 노동운동 진영 전체가 갖는 흐름이 있고 그런 것에서 속앓이는 없는가.
유명자 = 언제쯤이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번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다른 건 좋은데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민주노총에서 너무 심하게 박원순 일변도로 몰아붙여서 회의 때 한 번 토해낸 적 있다. 분위기 싸해지고. 나는 어느 정파의 이해관계에서 말하려는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계급의식 속에서 토론하고 판단하자는 건데 그런 논쟁이 어렵다. 이명박만 넘어서면 된다는 생각에 모두 빠져있는 거야말로 자본이 바라는 상태 아닐까.
김규항 = 한국의 자본과 지배계급은 갈수록 철저한 계급의식을 갖고 행동하는데 운동진영은 여전히 윤리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계급의 편인가가 아니라 나쁜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가 주제가 되면 그들을 넘어설 방법이 없다.
유명자 =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진보적인 경향의 인사들이 ‘이 정도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우리로선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현실에선 이명박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이 더 잔혹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체험한 일인데 다들 너무 쉽게 잊는다.
김규항 =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게 노동이나 경제만 양극화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이 양극화한다. 소설 같은 것도 신경숙 공지영은 뭘 내도 몇십만부 팔리지만 여타의 의미있는 작품들은 아예 독자들의 눈 밖인 경우가 많다. 재능투쟁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그런 면이 있는데.
유명자 = 많은 분들이 왜 재능지부 싸움이 그렇게 이슈화나 쟁점이 안 될까 궁금해 한다. 그렇게 부각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학습지 산업 자체가 산업적인 파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라는 게 입법하고 정부 측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 실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레미콘이나 덤프처럼 조직화된 수만명 조합원이 있는 곳도 많이 싸웠지만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전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어려움으로 생각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싸움으로 생각하게 된다.
김규항 =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노동자 계급의 문제로 사고한다니 존중심이 든다. 사실 학습지 노동자들의 싸움은 한국의 서민부모들이 공분할 문제다. 재능교육 사주는 타워팰리스에 살지만 이미 부자의 아이들은 학습지로 공부하지 않는다. 학습지라는 것은 돈이 성적을 만드는 한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서민들이 선택하는 경쟁 방법이다. 그렇게 서민의 돈을 우려 부자가 된 사람들이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명자 = 처음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할 때 그런 점에서 부모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내 아이 가르치는 선생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구나, 이게 개선이 되어야만 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있었다. 한달 넘게 파업을 했는데 그렇게 교육열이 높은 엄마들이, 돈 생각 나고 아이들 교재 한 권 안하면 그렇게 아깝고 뭔가 뒤처진다고 조바심내는 엄마들이 90%가 넘게 우리를 기다려줬다. 그 힘을 받아서 2001년도에는 회비 인상 저지 투쟁도 했다. 우린 회비에 따라서 몇 퍼센트를 받기 때문에 회비가 오르면 임금이 오른다. 그러나 IMF 이후 실직하거나 어렵게 된 가정을 생각해서 회비 인상을 반대했던 것이다.
김규항 = 내가 발행인 노릇을 하고 있는 ‘고래가그랬어’의 기본적인 편집 철학이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래의 노동자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랐으면 하는가.
유명자 = 말씀대로 아이들의 99%는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가 노동자로 살길 바라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가치관이 형성될 여지가 없다. 국어 논술 교재에 ‘아이아코카의 선택’이라고 해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열에 아홉은 그런다. ‘회사 살리려면 당연하지요.’ ‘그러면 아빠가 그렇게 잘리면 어떻게 해?’ 하면 다들 ‘우리 아빠는 그런 일 하는 사람 아니에요’ 말한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기름 묻히고 일하는 사람만 노동자라 생각한다. 부모들의 변화가 중요하다.
김규항 = 고래가그랬어도 결국 부모 문제라는 생각에서 부모서명운동과, 다른 고민을 하는 부모들의 전국적인 커뮤니티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 문제를 보면 사실 보수진보가 없다. 진보교육을 말하고 진보교육감 말하는 사람들도 제 아이는 일찌감치 외국에 보내거나 적어도 외고엔 보낸다.
유명자 = 일제 고사 반대할 때 전교조 조합원들 10퍼센트만 참여해도 일제고사를 없앴을 것 아닌가. 상급 노동운동가 중에도 알게 모르게 기러기아빠들이 있다. 불안감에 내몰리는 서민 부모들 앞에서 너무들 하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계급적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김규항 = 부모들 강연 가면 말하곤 한다. ‘지금 이 자리엔 여럿인 것 같지만 동네로 돌아가면 다들 혼자시죠?’ 그럼 다들 씁쓸하게 웃는다. 교육문제든 노동문제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다. 어떤 사람들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자본이나 지배자들은 톨레랑스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넘쳐서 노동자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처럼 하는데 까르푸 자본이 한국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보듯 자본이나 지배 계급의 습성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다른 건 그곳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문제에 연대하고 우린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자 = 우리 싸움에 연대해온 대학생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연대해 주러 온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라, 너희가 시간되고 사회의식이 있어서 불쌍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싸우는데 와서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라. 너희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것인데 자본과 어떻게 싸우고 대응하고 어떤 원칙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배우길 바란다. 청소노동자들에게 대학생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호칭엔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노동자가 아니라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의 의미가 느껴진다.
김규항 = 참 중요한 말이다. 연대와 불우이웃 돕기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함께 되새겼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관점으로 사람들의 선의를 재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구분되지 않으면 그런 싸움을 지지하는 체하면서 그런 싸움을 낳은 구조를 챙기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과 시민들의 의식이 놀라운 속도로 진전하고 있으니 나아질 거라 본다. 김진숙씨가 309일 만에 무사히 내려왔다.
유명자 = 한진 싸움도 희망버스가 뜨기 전까지 굉장히 외롭고 된 상태였지 않은가. 김진숙씨가 처음 올라갔을 때 운동진영에서조차 영웅주의니 해가면서 비판들이 있었고. 희망버스가 이렇게 세상을 들썩이게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참 큰일을 했다. 그러나 그만큼 희망버스에는 거품도 많았다. 한진 싸움이 일단 권고안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규항 = 김진숙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 이상을 충분히 했으니 이젠 우리가 할 일이 남은 셈이다.
유명자 = 민주노조를 지키면서 합의안이 이행되도록 싸워나가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다. 조남호는 쌍용차 이상의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고 ‘1년 유예’라는 조건 자체가 그 준비 기간인 셈이다.
김규항 = 진보정당도 아닌 정동영씨가 그만큼 애를 쓴 것, 김여진씨의 인간적 진정성은 그 자체로 상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승리의 축제 분위기에서 희망버스 활동가들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 보이더라.
유명자 =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 김진숙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김진숙을 만들어낸 구조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 김진숙의 생환을 기뻐하면서 승리감에 취하지 않고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김규항 = 선생 역시 생각이 많아 보인다. 재능 투쟁과 결부지어 좀더 듣고 싶다.
유명자 = 사실 많이 걱정된다. 근래 몇 년 동안 투쟁 사업장 하나하나 합의되고 마무리될 때마다 자본은 거의 업종과 산업을 넘어 똑같은 합의안을 제시하고 있다. 소수 몇 명을 일시에 복직시킨다고 해서 큰 비용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1년, 2년, 3년씩 유예 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조금씩 들여보내선 현장에서 고립시켜서 빼내고 고립시켜서 빼내고 해서 결국 고사시킨다. 우리는 지금 ‘열두명 전원의 유예없는 일시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저 꼴통들 힘도 제일 없는 것들이 쪽수도 제일 안 되는 것들이 답답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그렇게 내걸고 그것에 맞춰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툴툴 거릴 게 아니라 자본이 연대하는 것의 반의반이라도 연대하면 분명히 그렇게 풀린다. 불가능한 싸움은 없다.
김규항 = 열번 백번 생각해도 결국은 연대다. 1500일 안에 승리하기 위해 ‘100일 집중투쟁’을 벌이고 있고 ‘시민 1500인 선언’도 조직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참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살아온 걸 후회하는가.
유명자 =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나는 원래 운동권도 아니었고 학습지 교사 노릇하다가 ‘이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노조에 참여하고 현장 간부하고 중앙간부하고 투쟁 사업장의 지부장까지 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많은 걸 배웠고 성장했다.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득한 것도 스스로 대견하다.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투쟁하지 않았으면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이명박보단 노무현이 훌륭하고 나경원보단 박원순이 훌륭하다는 생각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
김규항 = 마치 성공한 부자의 말처럼 들린다.
유명자 =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난 정말 부자다. 투쟁으로 만난 이 소중한 인연들, 나를 위로하고 내 삶을 정화시켜주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모른다.

2011/11/17 13:44 2011/11/17 13:44
2011/11/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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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송별 모임. 불콰해진 송경동과 나, 이창근.
'건강히 잘 다녀오길..'

2011/11/15 16:23 2011/11/15 16:23
2011/11/13 12:00

나꼼수를 잘 듣지 않습니다. 김어준 씨와 개인적으로 가깝고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아는 편이라 굳이 듣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두어 편은 들어보았는데 제 짐작에서 벗어나는 지점이 없기도 했습니다. 사실 나꼼수의 내용은 언제나 '하나'지요. 하여튼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그가 노선배가 유시민, 심상정 씨와 함께 출연한 '나꼼수 떨거지 편’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선배가 '참회의 시간'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주한 이야기를 추궁 받고는 ‘한명숙의 낙선에 영향을 줄지 몰랐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노동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라며 망연해 했습니다. 다음날 몇몇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비슷한 생각들이었습니다. 어제 트위터에 지나가듯 적었고 노선배가 답을 달았지요.

“노회찬 씨가 나꿈수 '떨거지 편'에서 서울시장선거 완주 건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득표할 줄 몰랐다'고 했다지요. 정치적 입장의 변화야 그의 선택이라지만 지나친 비굴함은, 글쎄요.”

“그렇게 말한 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한명숙의 낙선에 영향을 줄지 몰랐다'는 뜻의 발언이 아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많이 득표할 줄 몰랐다"는 제 말은 '한명숙이 그렇게 많이 득표할 줄 몰랐다'는 뜻이었는데 주어가 없으니 '내가 그렇게 많이 득표할 줄 몰랐다'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한명숙의 낙선에 영향을 줄지 몰랐다’는 취지인 건 마찬가지지요. 어쨌거나 발언 당사자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니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오늘 아침에 나꼼수 해당 편을 들었습니다. 1시간 즈음부터 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역시 ‘한명숙의 낙선에 영향을 줄지 몰랐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습니다.

그 발언은 김어준 씨를 비롯하여 선거의 의미를 반한나라당의 차원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겐, 그래서 그 완주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겐 공감과 설득력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후보로 출마한 진보정당 후보(이자 당 대표)가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한명숙이 이기든 지든 무작정 완주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고려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진보정당 후보가 선거에서 굳이 자유주의 후보와 별개로 독자 출마하는 건 당선인가 낙선인가를 떠나 ‘선거라는 공간을 활용한 정치활동’이라는 고유한 의미가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 의미가 없다면 진보정당은 영원히 자유주의 정당의 부속물일 수밖에 없으며 굳이 따로 존재할 이유도 없습니다.

노선배의 발언엔 그 부분이 완전하게 생략, 혹은 무시되어 있습니다. 만일 노선배의 발언이 선거 당시의 생각이라면 노선배는 독자후보와 완주라는 선택을 지지한 진보신당의 당원들을 기만한 셈입니다. 그리고 “떨거지”가 된 입장에서 진보신당을 탈당한 지금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면 ‘비굴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25년 이상 반복되어 온 '비판적 지지'와 '묻지마 연합'이 진보정치를 망가트려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그걸 두고 논란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노선배에게는 ‘진보정치의 독자성’보다는 ‘민주당이나 국참당이나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반한나라당 전선에서 하나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더 중요하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적어도 독자후보로 출마했을 때나 진보정당 대표로 일할 때보다는 더 그렇겠지요. 노선배의 상황을 그 상황에 대한 제 견해와 무관하게 존중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노선배가 스스로 평생을 지켜온 가치와 옛 동지들을 존중하길 기대합니다. 저에게 나꼼수에서 노선배 발언을 전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라고 말한 노동자의 심정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노선배의 발언이 ‘노회찬과 심상정은 노무현 유시민하고는 다른 진짜 노동자 편’이라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노선배와 심상정 씨가 떠나버리고 예순다섯의 홍세화 선생이 진보신당 당대표로 나서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일생을 평당원으로 살길 바랬던 그가 그런 짐을 떠맡은 고뇌를 존중하는 건 이념이 아니라 인간적 예의일 것입니다. 생각과 노선은 달라졌더라도 옛 동지들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시길 거듭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린 행로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같지 않은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1/11/13 12:00 2011/11/13 12:00
2011/11/11 12:08

가진 진정성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표현해야 하는 직업은 참 불행하다. 정치인이 그렇다. 그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중심을 보고있다 착각하는 정치부 기자도 마찬가지.


2011/11/11 12:08 2011/11/11 12:08
2011/11/1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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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00:57 2011/11/11 00:57
2011/11/1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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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2011/11/10 00:51 2011/11/10 00:51
2011/11/05 10:46
온갖 편견을 갖고 있는 중간계급의 혁명적 행동 없이, 지주, 교회, 군주제의 억압 등에 반대하지만 아직 정치적 의식은 없는 노동자와 반(半)노동자 대중의 운동 없이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결국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한 무리가 어떤 곳에 늘어서서‘우리는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하고 다른 무리는 다른 곳에 늘어서서 ‘우리는 제국주의에 찬성한다’고 하는 것이 사회혁명일 것이다! 그런 ‘순수한’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누구도 살아생전에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뭔지 알지도 못한 채 말로만 혁명을 떠드는 것이다.

늘 되새기는 레닌의 말.


2011/11/05 10:46 2011/11/05 10:46
2011/11/03 13:18
한미 FTA 반대 대열엔 진짜 반대자들, 즉 노동자 인민의 삶에 의거하여 반대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이명박 정권에 씌우기 위해 혹은 재집권 운동의 일환으로 끼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한미 FTA 반대 대열의 세를 위해선 그런 사람들을 당장 배제하긴 어렵다. 하다못해 시위의 쪽수를 위해서라도.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분명히 기억하는 게 좋다. 연대의 의미를 부인하거나 사람에게 낙인을 찍겠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철학과 세계관으로 보건대 재집권하거나 힘을 행사하게 되면 없던 한미 FTA도 해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민주당, 국참당 같은 틀 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진보개혁세력’의 이름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식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침 잣대로 삼기 맞춤한 정치적 상황이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당선운동에 대한 태도와 한미 FTA 반대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를 압도한다면 바로 그들이다. 진짜 반대자들, 즉 노동자 인민의 삶에 의거하여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다. 예외는 없다. 역시 철학과 세계관의 순정한 반영이기 때문이다.


2011/11/03 13:18 2011/11/03 13:18
2011/11/03 09:59
2011/11/03 09:59 2011/11/03 09:59
2011/11/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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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은 스물다섯 살 때 행글라이더 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지만 장애인으로 살 거라곤, 더구나 장애인 운동가로 살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한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였던 그는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들려나오고, 국회의원 자리마저 고사하는 비타협적인 투사로 변신했다.
김규항 = 장애인 운동에 굳이 ‘진보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뭔가.
박경석 = 장애인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시각들이 있는데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비장애인과 사회로부터 눈물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주류다.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김규항 = 동정과 시혜의 관점은 장애인 운동의 주류이자 사회적 시선의 주류이기도 한데.
박경석 = 우리 사회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시혜와 동정, 불쌍하다 이상의 생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근래 <도가니>라는 영화가 화제인데 영화가 나오기 십년 전부터 피터지게 싸웠고 묻혔었다. <도가니>가 문제를 환기한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영화를 둘러싼 시선과 관심 역시 주류의 틀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김규항 = <도가니>는 이른바 시설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틀을 넘어선다는 건 무엇보다 시설을 넘어선다는 건가.
박경석 = 장애인 시설의 인권유린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살아가게 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임을 기억해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도 인정해주고 활동 보조가 필요한 사람은 활동보조자를 24시간 두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설에 들어가는 돈과 지원을 지역 사회로 돌리면 가능하다. 그게 안 되는 건 시설, 즉 사회복지 법인들이 사유화된 기업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걸 해결하려는 장치가 공익 이사제인데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에 밀려 버렸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와 닿아 있다.
김규항 =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만들 수밖에 없겠다.
박경석 =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는 바로 사회복지의 신자유주의화 시장화로 이어진다. 복지 법인을 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후퇴하거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김규항 = 근대 이전에 장애인은 본인이나 부모가 죄를 지어서 신의 벌을 받는 죄인으로 취급되었는데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장애인은 죄인인 것 같다.
박경석 = 자본주의는 경쟁과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뒤처지는 사람은 죄인 취급을 받으니 장애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 셈이다. 뒤처지는 게 죄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는 세상으로 가는 운동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체제와 반목할 수밖에 없다.
김규항 =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박경석 = 일본의 경우를 보면 예전엔 <도가니> 같은 인권 유린이 있었고 그걸 해결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시설을 극복하려고 ‘내 신체성이 자본주의 거부한다’는 구호를 내건 급진적인 장애인 운동이 활발했는데 이젠 대부분 사업 기관으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다.
김규항 = <도가니> 같은 인권유린도 문제지만 장애인운동이 체제 내로 흡수되어 사멸하는 상황도 참 무서운 것이다. 이명박과 수구 세력을 극복하는 게 진보운동의 유일한 목적이 되면 진보운동이 자유주의 세력에 흡수되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운동의 하한선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원순씨가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와 대기업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기자들 앞에서 하소연하는 걸 보며 민망했다.
박경석 = 결벽증이라 오해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돈을 받으면 운동을 압박하고 종속해서 결국 체제 내적인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극우세력이 ‘좌빨’이라고 해준다고 진보운동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어렵다고 하니 시민들의 후원이 전부인 우린 좀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500일 농성’까지 해가며 10여년을 뼈빠지게 투쟁했는데 먹고사는 문제와 미래 문제로 고민하는 걸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김규항 = 시민들의 대가 없는 후원이 많아져야겠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인데 두 활동을 조화시키는 게 어렵진 않은가.
박경석 = 같이 잘 하려고 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은 교육 적령기를 놓친 장애인들이 오는데 기본적인 학과공부도 하지만 장애인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교육받고 함께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해서 운동과 분리되지 않는다.
김규항 = 학생들이 그런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감하기까진 갈등도 있겠다.
박경석 = ‘1 더하기 1은 2’를 배우러 왔는데 갑자기 데모를 하니 의구심이나 갈등도 많다. 그러나 곧 ‘나를 위해 너무나 당연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사들도 운동이 아니라 그냥 가르치고 싶어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노들야학의 지향점을 놓고 토론이나 논쟁이 아주 많다. 모든 학생과 교사가 조금은 다르면서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는 상태가 된다. 이 공간을 통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노들’이라는 말 그대로, 노란 들판에서 평등하게 함께 나누는 삶을 꿈꾸게 된다.
김규항 = 노들야학에서도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데 그런 공부와 철학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공부는 어떻게 병행되나.
박경석 = 둘을 한데 녹여내려 한다. 한글을 못 쓰는 장애인들에게 ‘철수야 영희야’ 가르치는 것하고 ‘활동 보조’ ‘이동권 권리’ 같은 단어를 써서 가르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
김규항 = 순진한 장애인을 의식화하려는 게 아니라 장애인들의 실제 일상의 언어일 뿐이다.
박경석 = 일반 교과서는 장애인 자신의 삶과 관련된 단어는 없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훈시적 교육이 아니라 주체들이 대상들이 함께 동참하는 교육이어야 하고 그에 따른 교육 과정, 교재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규항 = 내 살림 챙기기도 어려운데 다른 진보운동과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박경석 = 결국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문제가 풀리면 장애인 운동이 자동으로 풀리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의 문제 해결 없이 장애인 문제만 풀릴 수도 없다. 설사 풀린다고 해도 올바르게 풀리는 게 아니라 망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자본과 노동의 계급 갈등과 차별은 그대로 존재하는데 장애인이 행복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치장거리로 이용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을 내세우면 얼마나 생색내기 좋은가.
김규항 =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경호원들에게 들려나온 사건이 떠오른다.
박경석 =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고 노무현 정부의 치적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만든 건 물론 잘했지만, 장애인 부모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 농성하고 있었고 사회복지 시설 비리 때문에 계속 투쟁하고 있었고 그리고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시장화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다. 나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대통령이 서명하기 전에 우리 장애인들이 밥을 굶으며 투쟁하고 있는 문제를 먼저 알고 서명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했는데 대통령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어 했다. 결국 대통령의 지시로 들려 나갔다.
김규항 = 당시 복지부 장관이 유시민씨였는데 복지를 모조리 시장주의 원칙으로 설계하는 바람에 지금도 애를 먹고 있는데.
박경석 = 이를 테면 활동보조인 서비스 자부담률이 4만원에서 8만원으로 올랐다가 이젠 몇십만원으로 올라버렸는데 그 때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시장주의 원칙이 아니라 복지원칙으로 만들어놓았으면 이명박 정권도 함부로 건드릴 순 없었다.
김규항 = 2004년 총선에 민주노동당 장애인 비례대표로 추천받았었는데 고사했다. 당시 순위로 볼 때 수락했으면 국회의원이 되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장애인 운동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도 많았을 텐데. 옛날에 단병호 선생도 ‘노동자 국회위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한 적이 있고 스스로 하기도 했다.
박경석 = 당시 장애인 문제에 대해 현실적 판단으로 따지면 국회의원이 되는 게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사회변화라는 게 아래로부터의 든든한 기초, 사회 운동, 투쟁을 잘 할 수 있는 대중적인 조직, 건강한 소통 이런 활동들이 더 중요한 것이지 제도 하나 바꾼다고 그래서 예산이 조금 더 늘어난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4년을 싸워서 ‘교통약자 편의증진법’을 만들었는데 예산이 없다고 안하는 걸 보면서 법 하나 만들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단체 예산 따는 거, 운영비 예산 따는 건 잘 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권리를 만드는 투쟁은 제도 하나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제도가 주는 함정도 경계해야 하고.
김규항 = 자칫하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세상을 본다거나 교조주의적이고 독불장군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회변화는 4·19부터 민주화, 촛불시위까지 의회정치가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통해서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최악은 막아야 된다’느니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느니 해서 국회의원이 몇 명이 되느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전부 쓰나미처럼 휩쓸려가 버리는 게 사회 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런 면에서 열악한 장애인 운동의 중견 활동가가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었다.
박경석 = 그때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나는 그걸로 끝났을 것 같다. 노년은 좀 편안히 보낼 수 있었겠지만.
김규항 = 제일 힘 빠질 때는 어떤 때인가.
박경석 = 싸움의 대상이 강해서 이명박 정부가 너무 탄압하기 때문에 힘이 빠지진 않는다. 오히려 힘이 나고 운동을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 힘이 빠지는 건 지난 10여년의 활동에 대해, 직접행동의 투쟁 방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낡았다고 충고할 때다. ‘몸으로 부딪히고 천막치고 농성하는 것 가지고는 요즘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김규항 =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시위의 방식을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촛불 들고 평화 행진하고 기자회견하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면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없는 형편에 벌금 받고 영장받고 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굳이 길에서 싸우고 천막치고 농성하지 않으면 꿈쩍도 안하는 주제가 있는 건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구시대적 방식’이니 한다.
박경석 = 안타깝다. 사실 몸을 쓰는 싸움은 우리 싸움의 일부일 뿐이다. 트위터도 하고 토론도 하고 문화제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가능한 한 부드럽고 온건한 방식을 선택하려 해도 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싸움도 있다는 걸 함께 인정하면 참 좋겠다.
김규항 = 가장 행복할 때, 이렇게 살기를 잘했다 싶을 때는 언제인가.
박경석 = 노들야학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 나는 해병대 출신에 19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한 날라리였다. 그게 정상적인 삶인 줄만 알았던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노들야학 덕이고 동지들 덕이다.
김규항 = 행복해 보인다.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오랜 농성으로 심한 욕창에 걸린 상태였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행복해보였다. 선생의 삶과 선택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길 기대한다.

2011/11/02 10:43 2011/11/02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