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나무는 1976년 3월 발행인 한창기, 편집장 윤구병 체제로 창간해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했다.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잡지에서 처음으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을 했다. 잡지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훌륭한 건 기획과 내용이었다. 여전히 서구의 문물을 소개하는 수준이던 70년대 지식인 사회에 뿌리깊은나무는 한국적인 것, 민중적인 것을 기조로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청계천을 수십 번 오가며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았다. 한 일년은 그걸 끼고 살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면서도 알아먹을 수 있게 쓸 수 있었던 데는 그 일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80년대 말에 안산에서 운동하던 선배가 노동자 도서실을 만든다며 책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뿌리깊은나무를 몽땅 보냈다. 선배는 이듬해 운동을 그만두고 영화판에 들어갔고 뿌리깊은나무는 사라졌다.
언젠가는 다시 구해야지 구해야지 하며 10여년이 흘렀다. 얼마 전 고래가그랬어의 개비를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뿌리깊은나무를 생각했다. 인터넷 헌책방을 뒤진 끝에 고구마에서 한권에 3천 원씩 주고 스무 권 쯤 구했다. 사과 상자에 부쳐 온 뿌리깊은나무를 꺼내며 퀴퀴한 종이 냄새에 잠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나머지도 구해서 아귀를 맞출 생각이다.
뿌리깊은나무가 되어먹지 못한 장군들에 의해 폐간한 후 그 스타일을 차용한 잡지가 몇 개 있다. 허술(나중에 조갑제)이 편집장을 맡고 안상수가 디자인을 맡은 마당이라는 잡지가 있고, 84년에 뿌리깊은나무에서 창간한 여성지 샘이깊은물이 있다. 샘이깊은물은 뿌리깊은나무를 그대로 빼어박았지만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샘이깊은물은 2001년 말부터 휴간에 들어갔다.

차용의 가장 딱한 형태는 2001년 초 열림원에서 사진가 이지누가 편집장을 맡아 나온 디새집이다. 디새집은 뿌리깊은나무를 추억하는 중산층에 봉사하는 잡지다. 디새집은 흙과 자연과 민중으로 빼곡하다. 그러나 디새집의 흙과 자연과 민중은 '당대의 흙과 자연과 민중'이 아니라 중산층의 찻잔에 든 흙과 자연과 민중이다. 디새집은 이지누가 빠지고 '생태잡지'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보진 못했다.
뿌리깊은나무를 넘어설 만한 잡지가 없다는 얘기는 곧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넘어서는 잡지가 없다는 뜻이다. 보편적이면 쓰레기이고 불온하면 보편적이지 않기 십상이다. 반년 쯤 지나 고래가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갖길 바란다. 고래는 어린이잡지로선 이미 불온하지만 아직 보편적이진 않다.
댓글 ::
고래가 어린이잡지로서 "이미 불온하"다는데 동의합니다.
창간호부터 고래를 쭉 보아온 막내아이 입에서, 전태일, 부안 핵쓰레기장 문제,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 맥도날드해피밀의 장난감을 14세 이하 어린이들이 만든다는 얘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죠. UN어린이권리조약도 "제3조, 어른은 우리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힘을 다해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또박또박 읽어내리데요.-.-;;;
제 아이의 반응이 아직 "보편적"이진 않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밝게, 그리고 자주 입에 올리며 생각을 해나간다면, 아이들이 좀더 건강하게 자라겠죠?
아이는 낼 모레 초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사장 한 아무개가 얼마나 지독히 노조를 싫어하고 독선적이었는지 아신다면 이런 글은 거리낌없이 올리지 못하셨을텐데 ... 용감하시네요.. 뿌리깊은 나무 기자들이 엄연히 눈뜨고 살아있는데!!
저는 발행인이 아니라 잡지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표지를 장식했던 수많은 양갓집 규수들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어렸을 때 들춰보면서, 은근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잡지구나 싶었습니다. ㅎㅎ
앞에 "샘이깊은 물"이라고 썼는데 없어졌네요.. --; 특수문자로 시작하는건 인식을 못하는지.. 글구, 코멘트에 한번 쓰면 수정이나 삭제는 안되네요..--;;
꺽쇠 괄호가 그렇게 되는데 알아보겠습니다. 수정 삭제도..
아아..."녹색평론"...
현재로선 가장 좋은 잡지지요..
느림님.
혹시 제가 알던 예전에 수원서 책빵~하시던
노총각 느림님이신가요?
^^*
저 위에 불온이시라는 분, 시대 공부 좀 하십시오.
뿌리깊은나무 시절에는 노조가 없었습니다.
한창기 사장님은 '노조' 따위는 '싫어하는 게' 아니라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뿌리에 노조가 생긴 건 '샘이깊은물' 시절입니다.
그때는 이미 한창기 사장님이 이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한 사장이 살아 계실 때 뿌리에 근무하던 분들은 노조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대우가 좋았고 자유로왔고 기자들은 존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을 평가할 때는 면밀하게 공부 좀 하시고 비난을 하든 평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