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28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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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는 1976년 3월 발행인 한창기, 편집장 윤구병 체제로 창간해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했다.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잡지에서 처음으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을 했다. 잡지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훌륭한 건 기획과 내용이었다. 여전히 서구의 문물을 소개하는 수준이던 70년대 지식인 사회에 뿌리깊은나무는 한국적인 것, 민중적인 것을 기조로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청계천을 수십 번 오가며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았다. 한 일년은 그걸 끼고 살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면서도 알아먹을 수 있게 쓸 수 있었던 데는 그 일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80년대 말에 안산에서 운동하던 선배가 노동자 도서실을 만든다며 책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뿌리깊은나무를 몽땅 보냈다. 선배는 이듬해 운동을 그만두고 영화판에 들어갔고 뿌리깊은나무는 사라졌다.

언젠가는 다시 구해야지 구해야지 하며 10여년이 흘렀다. 얼마 전 고래가그랬어의 개비를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뿌리깊은나무를 생각했다. 인터넷 헌책방을 뒤진 끝에 고구마에서 한권에 3천 원씩 주고 스무 권 쯤 구했다. 사과 상자에 부쳐 온 뿌리깊은나무를 꺼내며 퀴퀴한 종이 냄새에 잠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나머지도 구해서 아귀를 맞출 생각이다.

뿌리깊은나무가 되어먹지 못한 장군들에 의해 폐간한 후 그 스타일을 차용한 잡지가 몇 개 있다. 허술(나중에 조갑제)이 편집장을 맡고 안상수가 디자인을 맡은 마당이라는 잡지가 있고, 84년에 뿌리깊은나무에서 창간한 여성지 샘이깊은물이 있다. 샘이깊은물은 뿌리깊은나무를 그대로 빼어박았지만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샘이깊은물은 2001년 말부터 휴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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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의 가장 딱한 형태는 2001년 초 열림원에서 사진가 이지누가 편집장을 맡아 나온 디새집이다. 디새집은 뿌리깊은나무를 추억하는 중산층에 봉사하는 잡지다. 디새집은 흙과 자연과 민중으로 빼곡하다. 그러나 디새집의 흙과 자연과 민중은 '당대의 흙과 자연과 민중'이 아니라 중산층의 찻잔에 든 흙과 자연과 민중이다. 디새집은 이지누가 빠지고 '생태잡지'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보진 못했다.

뿌리깊은나무를 넘어설 만한 잡지가 없다는 얘기는 곧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넘어서는 잡지가 없다는 뜻이다. 보편적이면 쓰레기이고 불온하면 보편적이지 않기 십상이다. 반년 쯤 지나 고래가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갖길 바란다. 고래는 어린이잡지로선 이미 불온하지만 아직 보편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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