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단체의 회의나 토론회에서 혹은 집회에서 종종 그를 만나곤 한다. 얼마간 뜸하다 만난 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을 만치 말도 행동도 차분했다. 물어보니 지금이 제 모습이고 전에 에너지가 넘치던 모습이 ‘조증’ 상태였단다. 그는 해고 후 스물한명의 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떠난 동료들이 겪었던 고통을 역시 겪으며 제 전투를 수행 중이다. 그 죽음들을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를 밝히는 노력과 그 거대한 구조 앞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의 일상과 문화를 일구어내는 숙제는 그 전투의 중요한 일부다.
김규항=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내면서 그 죽음에 대한 보도자료를 쓰는 일을 해왔는데요.
이창근=힘든 일이었어요. 특히 “또 한 번의 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세상의 대답은 없고 죽음은 자꾸 늘어가고. 나중엔 이걸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이렇게 써야겠다 저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제 감정에 충실하게 되더군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눈물이 납니다”라고 썼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김규항=단지 그 상황에 연대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그 상황의 당사자라는 점이 고통을 배가시켰을 것 같습니다.
이창근=죽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요. 이상하게도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나중에 겁이 나더라고요. 근조 플래카드나 검정으로 도배된 풍경들, 이런 게 세상에 상황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그걸 보는 해고자나 희망퇴직자에겐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만장기 들고 이런 게 점점 싫어지더군요.
김규항=쌍용차에서 유독 죽음이 많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창근=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보도자료를 쓸 때 자살 방법이나 상황을 너무 자세히 묘사했나 하는 생각까지 해봤죠. 그런데 쌍용차는 누적된 게 있어요. 상하이로 넘어가고 분명히 기술 유출하고 먹튀했는데 법적으로 해도 안되고 파업해도 다 작살나고 어용노조가 다 덮고 넘어가고 하면서 쌓이고 쌓인 울화통이 있는 거죠.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죽은 분들은 파업 때 마지막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싸운다는 건 이기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우뚝 세우는 체험이죠. 그 체험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구요. 죽은 분들도 많지만 해고 노동자들이 가족 관계나 삶 전반에 고통을 겪는 걸 많이 봅니다. 그걸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라고만 보긴 어려운데요.
이창근=경제적 어려움을 다들 겪지만 그 문제만은 아닙니다. 해고되고 나니까 가족 관계,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모든 게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에서 교육도 참 많이 했는데 대체 살아가는 것과 관련해서 무슨 교육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김규항=아이가 있지요?
이창근=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파업하고 감옥 갔다가 나왔는데 어느 날 경찰 놀이를 한다고 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 녀석이 시위 진압하는 전경들처럼 낭심 가리개를 만들어서 차고 있더라구요. 의자나 물건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화를 잘 안내던 아이인데 자꾸만 화를 내고. 안되겠다 싶어서 놀이 치료하는 곳에 데려갔는데 한 달 동안 계속 고함만 지르더군요. 토해내는 거죠. 아찔했어요.
김규항=무심코 넘어갔다면 결국 나중에 더 병리적으로 드러났을 테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해고되고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뭔가요.
이창근=구속되었을 때 참 많은 사람들이 구속자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구나, 세상이 이렇기도 하구나 새삼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의 너머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해고 노동자들이 또 집회도 많고 해서 많이 걷거든요. 그러면서 전보다 많은 생각도 하게 되고요. 이명박 정권을 넘어선 체제의 구조에 대한 고민도 늘고요.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나와의 차이 같은 게 공장에 있을 땐 또렷했는데 나와서 같이 투쟁하다보니 많이 극복된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김규항=정규와 비정규. 자본이 만들어놓은 골인데 정리해고되고 싸우는 노동자조차 그 골이 사라지지 않으니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뒤집어보면 정리해고라는 공식적인 삶의 파괴 이전에 이미 노동자 일상과 문화가 파괴된 상태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쳇바퀴 돌 듯 일상을 보낼 땐 잘 모르지만 그 일상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알게 되는.
이창근=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생활이라는 게 그런 대로 안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멀쩡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죠. 어떻게 웰빙을 즐길 건지가 아니라 내가 일하며 어떻게 살 건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 건지 이런 게 전혀 없더라는 거죠. 교육 문제만 해도 만약 우리가 공동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교육을 고민하고 시도해왔다면 똑같이 맞아도 데미지가 달랐을 거예요.
김규항=노동운동이 뭐냐, 노동해방이 자본가처럼 잘 먹고 잘사는 거냐라는 질문이 사라졌어요. 우리가 구조적 가난과 싸우지만, 더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상품이 되어 경쟁하지 않아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자본가처럼 살아야 한다는 목표밖엔 없게 되죠. 자본은 그런 욕망을 이용해 정규직을 체제내화하고 비정규를 배제하면서 손쉽게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요. 연이은 죽음이 사회적으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또렷한 해결의 실마리는 안보입니다.
이창근=쌍용차 문제가 연이은 죽음의 문제로 고착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쌍용차는 부침의 역사거든요. 여기 팔리고 저기 팔리고 그러면서 2000년 초반 1만명이 넘던 노동자들이 이젠 4000명이니 잘려나간 6000명이 그 동안 쌍용차를 유지시킨 근거였던 셈이죠. 그런 과정에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이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김규항=파업 투쟁과 살인적인 진압이 이 문제의 시작은 아닌데요.
이창근=민주당이 이 문제의 책임당사자죠. 노무현 정권 때 쌍용차 매각을 진행했죠. 당시에도 먹튀 논란이 많았는데 강행했던 거잖아요. 이런 사실에 대한 민주당 쪽의 반성이나 기조 변화 같은 게 없어요. 정동영 의원이 현장에 와서 계속 뭘 하더라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런 이유가 있죠. 당시 산자부 장관이라든지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매각 당시 세 개 은행에서 매각대금이 나왔는데 그게 진짜인지부터 시작해서 따지고 밝혀야 할 게 참 많거든요. 그런데 이걸 이명박 정권의 폭력진압에서 시작한 문제, 죽음의 문제, 안타깝고 불쌍한 문제로만 몰아가는 건 해결을 요원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규항=저도 이런 소리가 지겨울 정도입니다만, 쌍용차뿐 아니라 근래 주요한 사회 문제들이 하나같이 노무현 정권이 벌이고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하는 일들이죠. 며칠 전 한명숙 대표가 제주 구럼비에 가선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물으며 비난하더군요.
이창근=평택 대추리 때 마지막 날 저도 있었어요. 진압 작전 이름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던가요. 그 때 군대가 투입되어서 우리를 밤새 두들겨 패서 끌고 갔죠. 그걸 강행한 국무총리가 한명숙씨였어요.
김규항=그런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이명박 정권의 일인 양 욕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또 속아주고 심지어 희망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창근=민주당이 정말 해결의지가 있으면 몇몇 의원들이 다닐 문제가 아니라 당 차원으로 끌고가서 국정조사단을 만들었겠죠.
김규항=민주당이 사실 철저하게 반노동자적인 당이다보니 예외가 되는 의원, 현장을 자주 찾고 함께하는 의원은 상대적으로 미화가 되는데요. 좀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치인은 개인적 선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죠. 정치인이 할 일은 개인 활동을 통해 다른 정치인이다, 좋은 정치인이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에서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싸워야죠. 그러면 여론도 가만있진 않을 것이구요.
이창근=아쉽게도 거기까진 못가는 것 같아요. 쇼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당내에서 적극적인 전투를 했으면 좋겠어요.
김규항=쇼인가 아닌가, 사람의 내심은 알 수 없고 굳이 따질 필요도 없죠. 이건 연애가 아니라 정치니까. 정치인에게 정치인으로서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나 타당한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시점에 맞물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창근=파업 당시에도 많이 느꼈는데요. 말은 총자본과 총노동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는 걸 봐야 했죠. 김진숙씨 싸움과 희망버스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밑에서 밀고 올라왔으면 민주노총이 더 조직하고 밀어붙여서 한진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거든요. 민주노총이 제 구실을 못하니까 결국 정치권에서 적당히 마무리해버렸죠.
김규항=우리 사회는 좌파 정치랄까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가 의회정치에 없다시피하다보니 의회 밖의 정치, 운동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민주노총은 그 중요한 결실이고 담지자이기도 하죠. 이석행 전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나선 일로 시끄럽습니다.
이창근=예사로 볼 문제가 아니죠.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자기고백을 한 것 아닌가, 포기를 공식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일에 대한 민주노총 논평이라는 게 딱 세 줄인가 그랬어요. 위원장 사퇴 이후 어떠한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번 일 역시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일 뿐 민주노총과는 무관하다, 끝. 어이없는 일이죠.
김규항=거액의 손배소가 걸려있잖아요. 쌍용차 사측에서 노조 간부와 대의원 140명을 상대로 50억원, 경찰이 파업 참가자 103명을 상대로 20억원, 메리츠화재에서 141명에게 110억원.
이창근=저도 그렇고 다들 출소하고 나서 한동안 그 문제에 진을 뺐어요. 집도 다 가압류 들어오고 이걸 어떡해야 하나 걱정들이 많았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건 못 갚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 에이, 잡아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그러니까 마음은 편해졌어요. 마음이 편해졌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로선 미루어놓은 큰 산이죠.
김규항=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는 근래 어느 사업장에서나 애용되는 자본의 무기인데, 우리가 지키는 법이라는 게 얼마나 자본의 편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죠. 대화하다 보니 해고 후 노동자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군요.
이창근=노동자들, 특히 대공장에서 컨베이어 타는 사람들의 문화라는 게 정말 앙상해요. 일하고 마치면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우리 이야기는 언론에서 안 다루어준다고 투덜대면서 신문도 잘 안 보고 책도 안 보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상태론 위기가 닥치면 큰 일일 뿐 아니라 늘 해오던 싸움도 밀릴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80년대 활발했던 노동자문화 운동은 노동자들의 일상이 소비적 시민문화에 포섭되면서 지속적으로 쇠락하거나 협소한 시위문화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죠. 근래 보면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게 감지되기도 해요. 그러면서 옛 문화를 무작정 깔보는 우려스러운 경향도 종종 보이구요.
이창근=희망버스 때 다들 새로운 시위문화의 발랄함 유쾌함을 얘기하는데 기존의 시위문화에 대해선 아예 경멸을 하더라구요.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생각하는 희망버스는 실사구시였어요. 해왔던 것을 조금씩 바꾸고 보태고 하면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거였거든요. 시위문화라는 게 무거울 땐 무거워야 하고 발랄할 땐 발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규항=그런 진통들이 건강한 노동자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해요. 국제적으로도 이른바 ‘신좌파’ 문화라는 게 구좌파의 문제들에 대한 부정에 집착하다보니 엉뚱하게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부응해버린 경향에 대한 비판들이 근래 있습니다. 발랄함이 무거움을 경멸하는 경향을 비판했지만, 여러 매체에 기고도 하고 늘 아이패드를 끼고 다니는 ‘신식 노동자’인데요.
이창근=시위 아이디어랄 것까진 없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파란 잔디 위에서 5000명이 모여서 조용히 책을 읽는 거예요. 주제가 만일 삼성 비판이라면 삼성 문제와 관련한 모든 책과 자료들을 다 모아서 앰프나 확성기는 일절 쓰지 않고 조용히 그걸 읽는 거죠. 저놈들이 정말 아파하는 일을 함께 해보는 거죠.
김규항=수천 명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여 밤새 레이브파티를 하면서 한국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광경을 생각한 적이 있는데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이야기군요. 발랄하게 그리고 무겁게, 조용하게 그리고 시끄럽게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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