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31건
- 2010/01/31 전교조 (1)
- 2010/01/29 예수전 1장 14절
- 2010/01/27 예수전 1장 10~13절 (1)
- 2010/01/26 나도 시작
- 2010/01/25 고래 트위터 시작
- 2010/01/24 예수전 4장 26~34절
- 2010/01/24 8년
- 2010/01/23 네 이념대로 찍어라
- 2010/01/23 비처럼
- 2010/01/22 전노협 20주년
- 2010/01/20 ‘우리 안의 이명박’은 무엇을 말하는가
- 2010/01/20 그 아이들은 정말 앞선 걸까
- 2010/01/18 연하장
- 2010/01/18 왼뺨 오른뺨
- 2010/01/14 용산 부활도
- 2010/01/14 활력부장
- 2010/01/14 강기갑과 이정희
- 2010/01/14 예수전 1장 7~9절
- 2010/01/13 산, 강, 길
- 2010/01/13 '현실적'인 것과 현실
14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하셨다.
로마가 이스라엘의 괴뢰 왕으로 헤로데를 세운 게 BC 41년이다. 헤로데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두매아인이었기에 선민의식에 가득 찬 순혈주의자들의 왕이 되기엔 부적절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헤로데는 로마에서 벌어진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권력투쟁의 틈바구니를 노회하게 줄타기한 끝에 유대의 왕이 되었다. 헤로데는 아내 두 명과 아들 셋, 처남들을 반역죄로 몰아 죽일 만큼 잔혹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방인 폭군을 극도로 증오했다.
BC 4년 헤로데가 죽자 로마는 헤로데의 세 아들에게 팔레스타인을 나누어 통치하게 했다. 아켈라오에겐 유다와 사마리아를 안티파스에겐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그리고 필립보에겐 요르단 동부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그런데 아켈라오는 하도 통치를 못해서 10년 만에 폐위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순혈의 왕을 바랐지만 로마는 다시 왕을 세우지 않고 총독 코포니우스를 보내 이 지역을 직접 다스리기 시작한다.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본디오 빌라도는 5대 총독(AD 26~36)이다. 헤로데의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예수의 생애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그 아비의 노회함과 잔혹함을 쏙 빼닮았다는 갈릴래아의 영주 안티파스다.
요한은 결국 안티파스에게 체포되어 참수형에 처해진다.(6:17~29) 예수는 요한의 뒤를 잇기라도 하듯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가 다가왔음을 알리며 회개를 촉구한다. 그런데 앞으로 예수의 입을 통해 거듭 전해질 하느님 나라는 세례자 요한을 비롯해 대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던 하느님 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로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하고 초대하는 잔치 같은 것이다.
예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즉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말한 '회개'를 단지 종교적 회심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예수는 자신의 종교라 할 유대교 안에서 회심하라는 게 아니며, 아직 생기지도 않은 기독교 안에서 회심하라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예수는 종교적 회심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더 근본적인 회심을 촉구한다. 예수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10 그리고 즉시 물에서 올라오면서 보시니 하늘이 갈라지고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에게 내려왔다. 11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 12 그리고 즉시 영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냈다. 13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예수는 신비체험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확인한다. 말하자면 예수는 '득도'한다. 예수는 광야로 나간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탈출한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지낸 이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광야는 시련과 성찰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예수는 사탄에게서 유혹을 받는다. 모든 세속적인 욕망들을 접고 세상을 바꾸는 삶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한 지 오래지만,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 번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따뜻한 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도, 오순도순 식구를 건사하며 평화롭게 일생을 보내는 범부의 삶도 이제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예수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지내면서(「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금식하면서"라 되어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이런저런 욕망의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사명을 받아 마땅한 '아들'(딸이 아닌)이라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마가복음」이 지어질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가부장적 사고가 인간의 보편적 양식과 어긋난다는 걸 아는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예수가 남성이었다는 걸 부인할 이유는 없지만, 예수가 여성이었더라도 하느님의 권위와 소명을 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거리낌 없이 인정되어야 한다.
(최근 글들에 참고가 되는 내용이라 순서를 바꾸어 먼저 싣는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경우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묻고 27 밤과 낮에 자고 일어나는데,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가 돋아나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28 저절로 땅은 열매를 내는데, 처음에는 줄기, 다음에는 이삭, 다음에는 이삭에 가득한 낟알을 냅니다. 29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그 사람은 즉시 낫을 댑니다. 추수(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30 그리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할까, 혹은 무슨 비유로 그것을 표현할까? 31 겨자 씨앗과 같습니다. 그것이 땅에 뿌려질 때는 땅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작습니다. 32 그러나 뿌려지면 자라서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되어 큰 가지들을 뻗칩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됩니다." 33 그리고 이와 같은 많은 비유로써 그들에게 말씀을 설파하셨는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하셨다. 34 비유가 아니면 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고, 당신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싸우고 헌신하는 사람이 싸우고 헌신하는 그만큼 세상이 변화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면, 그래서 시시각각 보람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은 늘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며 또 포기하곤 한다. 지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 문턱에 다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걸 염두에 두고 예수는 말한다. 씨를 뿌린 사람도 못 알아차리는 사이에 어느새 싹이 돋고 이삭이 패고 마침내 알찬 낟알이 맺힌다고.
예수가 말한 "겨자"는 당시 팔레스타인에 많이 자란 '시나퍼'라는 변종 겨자다. 시나퍼의 씨앗은 그 어떤 풀씨보다 더 작지만 다 자라면 3미터가 넘어 어지간한 나무보다 크고 무성하다. 변화의 씨앗은 언제나 작고 보잘것없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변화를 좇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보다는 비웃거나 조롱한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그런다고 세상이 변하나.' 좀더 진지하고 양식 있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 보잘것없는 세력이 어느 세월에 세상을 바꾼단 말인가.' '승산도 없는 싸움에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최악이라도 막는 게 최선이지.' 그들은 '변화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선택들'을 제시한다. 그런 선택들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그런 선택들은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는 듯하지만 실은 현실의 모순을 순화하고 인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누그러트림으로써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곤 한다.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사람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세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일어난 혜택은 시나퍼의 그늘처럼 모든 사람,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적대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진다. 역사에서 보듯 세상의 변화는 늘 그래 왔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지금 쉬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었다'는 건 자신의 제자와 여느 사람들을 차등했다는 게 아니다. 앞서 말했듯 '열두 제자'란 상징적인 의미이거니와, 여기에서 '제자들'이란 어떤 자격이나 임명의 의미보다는 여느 사람들보다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라 인정된 자들이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마음의 귀가 닫힌 사람에게 지나치게 연연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것은 성실한 계몽의 태도가 아니라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렇게 쉽게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면 이미 변화가 필요 없는 세상일 것이다. 예수는 낙관적이지만 터무니없는 몽상가는 아니다. 예수는 대개 많은 사람에게 제한 없이 말하지만, 동시에 변화는 들을 귀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진행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그들을 집중해서 가르친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를 다시 올리며 짧은 소감을 적으려다 (스스로 조금 안쓰러워져서)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이 글을 쓰고 8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이후에도 여전히 “비판적 지지”를 외치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오늘 ‘민주대연합’으로 이명박 정권이 풍기는 악취라도 우선 덜어내자며 또 비지를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다. 그것은 악취를 사라지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줄이기 위한 것임을. 그것은 지난 10년의 세월이 잘 말해주고 있다. 악취없는 깨끗한 세상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념대로 찍어라. 그러나 그전에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자본에 의해 언제든지 유린당할 수 있는 노동자 혹은 세입자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보다 ‘당선가능성’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자신의 이념이 누군가의(언론, 교육, 정치) 공포심 조작에 의해 굳어진 것은 아닌지를. (감동이)
비판적 지지를 하는 이들 대부분은, 적어도 자신만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진보를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정한 진보 후보는 어차피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변화를 바라는데 변화를 이뤄줄 수 없다고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건 충분히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까요. 지난 8년동안 지지한 놈들의 배신과 살기 어려워진 세상을 똑똑히 보고 느끼면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잘못되어가는 이유를 되돌아보고 다른 생각과 새로운 방향을 궁리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진정한 진보를 대표하는 후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반드시 떨어질 것입니다. 반드시 떨어질 후보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곧 비판적 지지로 선택한 놈에게 걸었던 꿈과 바람을 이뤄낼 수 있는 시작이라는 걸 깨달을 수는 없을까요. 사회 변화는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천천히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애쓴다 해도 꿈꾸고 바라는 변화를 이루거나 누릴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가 진정한 진보로 바뀔 때 변화는 조금씩 보이지 않게 확실히 일어납니다. 비판적 지지가 계속된다면 지난 8년 동안 목격했듯 변화는 확실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광현)
근본적으로 묻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일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며 행했던 도전들, 획일적이고 교묘하게 통제되는 사회 분위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가꾸던 스타일,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누리던 규칙을 조롱하는 문화들, 그렇게 해서 존재의 자유로움과 특별함을 쟁취하고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던 모든 행위들은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지 못하는 한 결국은 벗어나고 해방되고 넘어서기를 원했던 일상과 규칙과 사회를 더 훌륭하게 유지시키는 일에 협조하는 것일 뿐이다. 이 자기모순과 이율배반은 한결같이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단서를 단 민주화, 자유화, 민영화, 세계화 따위로 낙착되는 걸 지난 8년 동안 목격했다. 기회가 있었고 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차고 넘쳤다. 수없이 민주주의를 이야기 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8년 전 바로 그 자리 그대로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무엇이 모자랐을까? (홍여사)
한나라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당신의 ‘이념’은 여전히 비겁하게 숨길 셈인가. 그 비겁함에 신자유주의 맹신도들은 더욱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이 세상을 미처 돌아가게 하는데도 말이다. 그 비겁함이 지속되는 한 당신에게 돌아갈 건 준엄한 경고뿐이다. 어디서도 ‘진보’, ‘희망’, ‘미래’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라는! 비루한 겁쟁이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나마 희미하게라도 숨을 이어가는 ‘진보’ ‘희망’ ‘미래’의 순결한 세포를 죽여가기 때문이다. (skypolar)
비판적 지지에 대해 더 이상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미 두차례 대선을 거치면서 '비지'의 과정과 말로와 폐해를 두루두루 겪어왔고 또 논의했으며 이해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다시 되살아나는 '비판적 지지'란, 사실 단순한 선거 전략이나 지지 후보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들 개개인의 계급적 성향과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비지'에 대한 그 숱한 반성에도 불구하고, 때만 되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제 '비지'를 하면 안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보를 가치로 내세우는 세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를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비판적 지지에 대한 말을 아끼기로 한다. 예수도 말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고 거기서 떠나시오"라고.. (호남)
지금의 정부하에서 사는 것이 힘겹다고 이야기하지 말자. 우리가 뽑은 정부이고 대통령이다. 과거 8년을 그리워하지 말자. 눈을 감고 되내어보자. 그들의 정권하에서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었나. 우리의 삶이 나아진 것이 있는가. 솔직히 이야기하자. 지금의 이명박은 고귀한 우리의 미감을 살짝 거스를 뿐이지, 실제로 과거로 후퇴한 건 그다지 없다. 다만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후퇴하고 있는 것이라곤 우리하곤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우리 ‘서민’들의 삶뿐이다. ‘비판적지지’니 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꾼들이 뱉어내는 감언이설의 개소리일 뿐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우리는 수 없이 다양한 부류의 정권을 경험해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비판적지지’ 운운 하면서 또다시 이들과 닮은 사람을 선택한다면 세상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뒤로 달려갈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다. 이제는 다른 세상을 경험해볼 준비를 하여야 한다. 꿈을 꾸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이다. 내 아이들이 적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나은 곳에서 살게 하고 싶다면 당장은 불가능해보이지만 ‘가능한 것’이 아닌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참된시작)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겪으면서 그들이 근본적으로 지금의 정권과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이 지금의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나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명박을 쫓아내고 다시 개혁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지난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듣지를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싸우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처절하다. 이제 해야할 일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고, 그 세상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내고 보여주는 것이다. (심통)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그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예수께서 경계하라고 일러 말한 '그들'은 로마가 아니라 바리사이다. 복음의 공식으로 말하자면.. 'MB=로마' '비지를 외치는 자=바리사이' 되겠다. 혹은, '우리 안에 이명박' 역시 예쁘장하게 꽃 피운... 냄새 구린... 바리사이의 누룩 되겠다..(bigmama 여사님)
이명박의 패악으로, 노무현의 죽음으로, 전 정권이 서민대중을 배반했던 죄를 사면받기 이전, 사람들이 노무현을 선택했던 자신들의 비지가 틀렸다는 걸 잠시나마 인정했던 시간이 있었다. 2007년 대선정국. 민주당으론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었단 걸 깨달은 사람들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또 다른 비지의 대상을 물색했다. 문국현이었다. 모두가 문국현의 참모습을 알고 있는 지금 만약 당시 희망대로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본 적 있는지. 김대중이 아니었다면, 노무현이 아니라 진짜 진보후보를,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문국현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진짜 진보후보를 선택했어야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는 영원히 유예될 뿐이다. (수수밭)
잘 자랄 수 있을까 근심하며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그 곳에선 아무것도 자랄 수 없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지난 시간은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일구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땅에 씨를 뿌리고 가꿔가면 10년. 20년 후에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외계소녀)
(2002년 4월.. 16대 대선을 앞두고 쓴 글..)
10여년 전, 재야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선배는"나중에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발 벗고 뛸 거"라 말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이변이라 불릴 만큼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 이미지는 대개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하고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진보 후보를 찍어 죽은 표를 만드느니 좀더 나은 보수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의 두번째 대상으로 그가 거론되는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다들 내가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즈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의 원인은 김대중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실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김대중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기대는 그가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마이너로서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메이저인 파시스트들에게서 오랫동안 견제 받는 모습을 통해 생긴 판타지였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으로 보상하려는 심정이야 인간적으로 이해 안가는 바 아니나, 정치적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노무현이 김대중보다 인격적으로 신뢰가 가는가. 나 역시 그래 보이지만, 개인의 인격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은 텔레비전 궁중사극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노무현은 하층계급의 싸움에 연대하는가.
김대중의 정치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나쁜 보수와좋은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특히 오늘처럼 극단적 파시즘이 이면으로 물러난 상황에선 더욱 더)을 충분히 깨닫게 할 만했다. 좋은 보수후보에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노회한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지분(득표율, 혹은 국회의원 수로 계량할 수 있는)이 하다못해 '김종필의 당' 만큼이 되어, 캐스팅보트 노릇이라도 가능해진 다음에나 생각할 일이다. 진보주의자, 혹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오로지 '털끝 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이는 것'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씨네21 2002/04/03)
김현식 20주년 추모앨범 <비처럼>과 <음악처럼> 중 먼저 나온 <비처럼>을 벅스에서 들어봤는데 가수들 떼로 노래방 간 느낌. 10년에 한번씩 만드는 건데 잘좀 만들 순 없는 걸까. 가는 ‘들을 만한’, 나는 ‘그저 그런’, 다는 ‘뺐으면’..
넋두리 신성우 (다. 10주년 추모앨범에서의 최민수인데 맨 앞에 배치하니 듣는 고통은 배가) 추억 만들기 린(나) 골목길 바비 킴(나. 기대 이하) 사랑사랑사랑 W & Whale(가) 어둠, 그 별빛 김경호(다. 무슨 노래든 똑같이 부르는 건 습성일까 재주일까) 사랑했어요 호란(나) 여름밤의 꿈 유리상자(나) 쓸쓸한 오후 봄여름가을겨울(나. 근래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면 수십년 소주 먹다 이젠 와인만 홀짝거리는 아저씨들 느낌이) 슬퍼하지 말아요 박기영(나) 떠나가 버렸네 김동욱(나) 이별의 종착역 박강성(다. 미사리구나) 봄여름가을겨울 이현우(나. 기대 이하) 환상 홍경민(나. ‘얘기할 수 없어요’ 리메이크와 동일) 비오는 어느 저녁 사랑과 평화(가. 어이 김종진 이 형님들은 그래도 흥겹잖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신촌 블루스(가. 엄인호에 정경화에 김동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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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씨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 합니다. 저희 둘째가 6학년인데 어느 날 보니까 동무들과 ‘이명박 놀이’를 하더군요. 한 아이가 이명박 술래가 되어서 다들 그 친구를 놀리고 괴롭히는 놀이. 하여튼 이명박 싫어하는 사람 이명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니 바로 우리에게 이명박은 우리 삶의 외부에서 침략한 악한, 다스베이더 같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건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지요. 이명박은 다스베이더도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군인대통령도 아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대체 이명박은 왜 대통령에 당선이 된 걸까요? 이명박이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라거나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학자들 말대로 한국인들이 보수화 우경화해서? 여러 분석들이 있지만 저는 한국인들이 대통령을 뽑는 가치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사장을 뽑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명박을 뽑은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를 잘 운영할 사람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최선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사장 말입니다. 이명박 스스로 말하듯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말입니다.
무엇이 한국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신자유주의 자본화’의 결과입니다. 군사파시즘 시절에 지배계급이 인민을 지배하는 방식은 온갖 권위주의적인 방법들이었죠. 권위적으로 억누르고 말 안 들으면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지배계급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지배방식이죠.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가 된 후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죠. 민주화 이후 지배방식은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인민에게 심어주어, 즉 자본의 가치관과 욕망을 심어주어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되면 그런 풍요가 잘사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만 심어주면, 굳이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지 않아도 스스로 복종하는 겁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금욕주의자라도 된 양,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게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당연히 잘 살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법이지요. 문제는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할 때 그 '잘'과 '행복'의 기준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바로 그 기준이 변해버렸습니다. 돈으로 말입니다. 이명박의 당선은 그런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명박 씨가 만일 그보다 5년 전에 대선에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회창 씨가 자기 아들 병역문제 때문에 치명타를 입었던 그 대선 말입니다. 이명박 씨는 이회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통령 후보로서 윤리적 흠결이 많았죠. 그 중 하나가BBK인데 대선 직전에 그게 자기 회사임을 인정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었습니다. BBK가 이명박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별 타격을 받지 않았죠. 5년 전이었다면 후보 시절에 낙마하고도 남았을 텐데 대체 왜일까요?
사람들이 변한 거죠. 사람들에게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 거죠. 거짓말쟁이에 도둑놈이라 해도 사장 노릇만 잘하면 대통령감이라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불과 5년 사이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보면 신자유주의 자본화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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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명박을 찍지 않았다. 반이명박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가? 촛불, 대운하, 4대강, 미디어악법, 세종시 문제 등에서 이명박을 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연 다른가? 사람이 자기 삶에, 자기 이해관계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문제엔 얼마든 훌륭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삶에 직접 관련된 문제를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그런 가장 보편적인 문제라 할 교육문제를 살펴보면, 반이명박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명박 진영의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교육문제의 공식적인 견해나 성명서나 토론 같은 것 말고 제 아이 교육문제에서 모습을 살펴보면 말입니다.
저는 박정희 시절에 초중고를 다 다녔습니다. 교사들은 폭력적이었고 학교는 병영 같았죠. 제가 초등학교 1학년 겨울엔가 국민교육헌장이란 게 나왔고 한때는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 거수경례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방과 후엔 군사파시즘은 아이들과 별 무관했죠. 당시에 오후 3시에 소재가 분명히 파악되는 아이는 아픈 아이와 벌 받는 아이뿐이었습니다. 나머진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잡으러다닐 때까지’ 놀았죠. 아이들의 사회적 임무가 뭡니까? 노는 겁니다. 제대로 놀아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고, 그래야만 그 사회에 미래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오후 3시에 한 시간 가량 소재 파악이 안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사고상황이 됩니다. 그만큼 아이의 오후 일정이 빈틈없이 짜여 있다는 것이지요.
세계화니 글로벌경쟁 시대니 해서 온세상이 다 이런 줄 알지만 초등연령대 아이들이 오후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괴상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지금 한국에서 보수적인 부모와 진보적인 부모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넣고 진보적인 부모는 ‘매우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넣는 겁니다. 똑같은 짓은 하면서도, 나는 이게 좋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드러내는 겁니다.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입니다. 정말 엄청난 차이지요?
이명박 씨가 처음 취임해서 0교시니 우열반이니 영어몰입교육이니 일제고사니 하는 것들을 공식화하겠다고 하자 진보개혁 진영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 저는 한편으로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순진해서 그렇지, 만일 아이들이 프랑스나 독일 수준의 사회 교육만 받았더라면 당장 들고일어났을 테니까요. 이렇게 외쳤겠지요. “개소리 마. 우리는 이미 당신들 손에 의해 죽어간 지 오래야!” 이 살인적인 경쟁과 시장주의 교육은 이명박이 아니라 이명박의 시장주의 교육을 비판히면서도 내 아이의 시장 경쟁력은 알뜰하게 챙기는 우리에 의해 유지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집단이든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반대한다는 건 그 둘이 다르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다르지 않은데 싸우는 걸 우리는 반대한다고 하지 않고 단지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당사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죠. 싸우는 명분을 가지고 싶어하니까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걸 부각하려 노력하겠죠. 우리와 이명박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명박을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집회나 토론이나 성명서 따위가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부분에서 살펴보면, 이명박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명박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명박을 반대한다면 아이들을 이명박과는 다르게 키워야 할 텐데 다른 건 표정 뿐입니다. 이명박의 잘 산다 행복하다는 가치기준과 우리의 가치기준이 달라야 할 텐데 다르지 않습니다. 이명박뿐인가요? 우리는 이건희 씨를 악덕한 자본가라고 욕하지만 이건희 씨와 이건희 씨를 욕하는 우리가 분명히 다른 건 하나뿐입니다. 이건희 씨는 돈이 많고 이건희 씨를 욕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것 뿐입니다. 인생의 가치 기준에서, 자기 자식의 인생에 대한 계획과 소망에서 우리는 이건희 씨와 분명히 다른 게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는 법입니다. 진보적인 인텔리들은 그걸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박정희 군사파시즘에 신음하던 국민들” 같은 말인데 그게 다 거짓말입니다. 제가 그 시절에 초중고 다녔지만 신음하던 아저씨 아줌마들 못 봤습니다. 신음한 사람들은 잡혀가거나 죽임 당했죠. 대개의 '국민들'은 다들 제 식구 알뜰하게 챙기며 살았죠. 그들이 잡혀가거나 죽임 당한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라도 응원한 것도 아닙니다. “정치란 게 완벽할 수 있나." "아직 철이 없어서 저래.” “북괴와 대치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무슨.” 이렇게 비웃었죠. 그리고 그 대부분의 국민들은 작은 박정희였습니다. 하급자와 여자와 아이들에게 권위주의적이거나 폭력적인 작은 박정희 말입니다. 박정희 군사 파시즘은 박정희의 쿠테타로 시작되었지만, 바로 그 작은 박정희들에 의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그 작은 박정희들이 그래도 조금씩 의식이 변해서 민주주의를 깨닫게 되고 적어도 군사 파시즘은 수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 포악하던 철옹성 같은 군사파시즘은 참으로 무력하게도 무너져 내렸다는 걸 우리는 기억합니다. 6월항쟁이 군사 파시즘을 무너트린 게 아니라 사람들의 변화가 6월항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대통령 이명박’은 반이명박을 외치는 우리를 포함한 오늘 한국인들의 순정한 반영이라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명박이 ‘순진하고 건강한 국민들을 침략해서 괴롭히는 악한’이라는 식의 온갖 수사들은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국민들"이라는 말처럼 거짓말입니다. 그런 말들은 마치 대중을 존중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대중을 구슬러 자기 의도대로 줄세우고 끌고가려는 인텔리들의 욕망이 담긴 말입니다.
오늘 그 인텔리들은 마치 이명박 때문에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사람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이명박 덕에 매우 편안해졌습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 때는 개혁세력도 서민대중의 편은 아니라느니 신자유주의라느니 하는 비판들이 있어서,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같은 수구세력을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체 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편해졌죠. 이명박만 욕하면 충분히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인간적일 수 있으니까요. 이명박은 그들의 원수가 아니라 그들의 허물을 덮는, 그들의 자의식을 사면해주는 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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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게 촛불시위 즈음부터였습니다. 이명박 씨를 ‘쥐’라고 부를 정도로 열띤 분위기에서 제 이야기가 마땅치 않게 여겨지거나 묻히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가 이 포럼에서 '우리 밖의 이명박'이라고 표현한 사회 구조나 제도와의 싸움을 도외시한, 시급한 반이명박 싸움의 전선을 흐트러트리는, 내면 문제에 집착하는 어떤 윤리 선언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오해라는 걸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엔 반이명박 싸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이명박을 반대하고 싸우는 사람들이죠.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은 이미 이명박을 반대하고 싸우는 걸 전제하는 것이지요.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말은 우리 밖의 이명박과 싸우지 말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 밖의 이명박과 진짜 제대로 싸우자는 말입니다.
싸우려면 당연히 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명박과 싸우는 건 단지 이명박이라는 개인이나 그 패거리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와 그 패거리로 대변되는 정치적 실체를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에서 몰아내려는 것입니다. 그 정치적 실체는 바로 ‘극단적인 자본의 체제’입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을 위한 세상, 극소수 부자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세상, 이미 노동자의 58%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이고 끊임없이 양극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세상 말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새해 덕담으로 주고받고 아이들은 신형 휴대폰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 돈귀신에 든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이 극단적인 자본의 체제는 이명박이 발명하거나 시작했습니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자본화의 광풍은 IMF 와 함께 집권한 김대중 정권에서 시작되어 노무현 정권을 걸쳐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기초를 마치고 노무현 정권에서 거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용산 참사 때 돌아가신 다섯 분의 장례가 있었는데, 그 용산 4구역 개발이라는 것도 2006년 노무현 정권에 시작된 것입니다. 다섯 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용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적어도 언론 표현 집회 등 절차 민주주의를 추구했고 이명박 정권은 그런 것조차 무시하는 참으로 무지스런 정권이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가 오늘 반이명박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두 분이 연이어 돌아가시면서 그런 정서는 더욱 많이 확산되었지요. 저는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종종 그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 차이가 두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자본화의 길로 매진했다는 사실을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노무현 정권이 수구세력과 진보세력의 사이에 끼어 제대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하 노대통령) 본인도 그렇게 토로했지요. 그런 심정마저 부인하려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나름의 고민이 있었겠지요. 노무현은 인간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었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노무현이라는 개인과의 연애사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노무현 정권이 누가 보기에도 정말 최선을 다해 서민대중의 편에 섰다면, 그런데 자본과 지배계급에 의해 그 뜻이 자꾸만 밀렸다면 당연히 진보세력은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고 연대했을 것입니다. 강준만 선생이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에 당연히 진보세력이 연대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갈등은 언론이나 현실 정치권의 문제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한 부분에서만 있었습니다. 정작 본질적인 부분, 즉 사회경제적인 부분에선 외국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신자유주의 자본화의 모범생의 길로 매진” 했습니다. 이건 저의 편향된 주장이 아니라 노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일입니다. 그는 2005년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실제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서로 갈등하고 원수처럼 이르렁거리는 부분들은 국정운영의 본질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 자신의 정책이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참 솔직한 분이었습니다.
노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추모하고 그와 이명박 씨의 차이를 되새기며 그를 기리는 일은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추모가 지나친 감상으로 흘러 그의 정치와 그 정권에 대한 무작정한 미화로 이어지는 것은 올바른 추모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가족 비리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을 때 그와 이명박 정권의 분명한 차이조차 무시하고 손가락질하던 감정적인 태도와 똑같이 닮았습니다. 우리는 노무현을 추모하면서 그의 정치를 사실 그대로 기억해야 하고, 서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3명의 열사들도 함께 추모해야 합니다.
오늘 반이명박 세력의 대부분은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세력입니다. 그들이 신자유주의 자본화로 일관하여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으니 다시는 정치 활동을 못하도록 연좌제를 적용하자거나 저주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그들이 한 일에 대해서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리도 욕하는 이명박 정권을 누가 낳았습니까? 바로 그들입니다. 서민대중의 편에 설 거라는 인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삼성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자본의 편에 섰던 그들입니다. 노동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정규악법과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밀어붙여 고통과 낙심에 찬 대중들이 '민주주의고 개혁이고 다 필요없고 먹고사는 문제나 해결하자'며 이명박으로 몰려가게 한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사실에 대한 인정이나 반성도 없이 마치 민주주의의 수호자인양 행세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그래도 이명박보다는 나았다’는 걸 내세울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바보들이거나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민주세력’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꾼들일 뿐입니다. '우리 안의 이명박'은 바로 그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도하고 있는 반이명박 진영의 실체를 반추함으로써 이 싸움이 그 파렴치한 정치꾼들의 정략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반이명박 연대야 우리 중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이명박을 물리치는 싸움이야 너나할 것 없이 연대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연대에 앞서 짚어야 할 문제는 연대의 목적이 뭔가 하는 것입니다. 이명박이 절차적 민주주의 마저 무시하려 드는 이유가 뭘까요? 이명박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쾌감을 얻으려는 변태인가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려는 것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해가며 자본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반이명박 연대의 목적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자본화 체제와의 싸움이어야 합니다.
반이명박 연대를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명박 이후에 대한 전망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이명박을 물리쳤다 그럼 그 후는 뭐냐,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돌아가는 거냐. 무지스런 자본화 세상에서 덜 무지스런 자본화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냐.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반이명박 싸움은 이명박은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체험과 한계를 넘어서는 전망을 가져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세력이 우리에게 ‘민주세력 연대’를 요구하려면, 먼저 그들이 한 일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있어야 하고, 과거 자신들의 정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재집권 노력에 봉사하는 하수인이나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그걸 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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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명박 진영의 실체는 반이명박 진영의 개체들, 즉 우리 자신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짐짓 불편한 얼굴로 ‘그래도 현실이 어쩔 수 없지’라 말하며 신자유주의 자본화에 매진했던 반이명박 진영의 모습은 바로 ‘그래도 현실이 어쩔 수 없지’라 되내며 아이들을 시장경쟁에 몰아넣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둘은 하나입니다.
촛불광장에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을 감옥의 수인들처럼 보내는 우리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을 반성했습니까? 촛불을 들고 소리높여 쥐박이를 욕하다 자정께 되어 휴대폰으로 아이가 학원에 다녀왔는지 확인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건가요? 우리는 오로지 ‘우리보다 더한’ 이명박의 교육정책만 욕했을 뿐입니다. 아쉽게도 촛불은 그랬습니다. 그 거대한 촛불의 열기가 참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건 바로 그래서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명박 정권이, 이명박이 만들어낸 사회제도 때문에 우리 삶과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명박이 우리의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고, 이명박의 시장주의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다 죽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와 우리의 교육관의 순정한 반영으로 이명박이 이명박의 교육정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러고도 우리가 어른이고 부모고 선생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거짓과 기만 속에서 우리가 제 아무리 반이명박을 외쳐도 이명박 정권의 털끝이나 흔들리겠습니까?
요즘 세종시 문제로 난리가 아닙니다. 야당과 반이명박 진영은 이명박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소리지르는데, 글쎄요 애초에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구호의 정체가 뭡니까? ‘지역 균형 부동산 투기’ 아닙니까? 좌우도 위아래도 없는 돈을 둘러싼 아귀다툼입니다. 다들 돈귀신에 들려 있는데 돈귀신의 괴수 이명박이 왜 겁을 내겠습니까? 이명박은 내 밖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 안의 이명박’은 이명박과 싸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진짜 싸우자는 것입니다. 싸우는 시늉 말고, 싸운다 착각 말고, 진짜 제대로 싸우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캄캄한 현실을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이런 제 이야기가 맞는 말인 건 같은데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른바 ‘비판적 지지’라는 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그게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이유 또한 ‘현실적’이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현실적이라 느끼는 것’과 실제 현실은 언제나 일치하나요? 지난 대통령 선거야말로 ‘현실적인 선택’의 가장 극단이었지 않습니까. ‘개혁이고 민주주의고 다 필요없고 먹고사는 문제나 잘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자’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는데 결과는 가장 비현실적이었지요.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 ‘현실적’인 선택이 실제로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뻔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에 실망해서 이명박을 선택하는 일에 비해, 이명박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무현으로 돌아가는 일은 과연 현실적인가요?
이런 가정을 해보죠. 우리가 노무현의 정치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의 ‘개혁의지 쇠퇴’나 무능력 혹은 수구세력의 저항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노무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비합리적 기대’(자유주의 정권에 좌파정치를 기대한)에서 기인한 것임을 정직하게 성찰하고, 문국현 비판적 지지 따위 솔깃하지 않고, 이제라도 서민대중의 편에 서는 진짜 진보정치를 해보자는 ‘비현실적’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현실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현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아직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진정 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가운데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지금 우리가, 한국의 대부분의 서민 대중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공포에 의한 공황상태 말입니다. 이 공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97년 IMF 사태 때입니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사람이 산으로 오르고 땀흘려 사업을 일구던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하던 풍경을 보면서, 내가 생존의 위기에 빠지면 사회도 국가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걸 생생하게 보면서 한국인들은 생존 공포에 빠졌습니다. 공포는 ‘내 새끼의 생존’에서 더욱 극단화되어 너나할 것없이 교육경쟁에 올인하면서 공황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재난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말입니다.
재난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공황상태에 빠지지요.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잃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 내 새끼를 살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합니다. 심리학에서 그걸 ‘추종행동’이라고 하는데 그저 남들이 많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선 초인적인 영웅이 사람들을 구원하지만 이 재난영화 같은 현실에는 그런 영웅은 없지요. 우리가 공황상태에서 벗어나 함께 힘을 모아서 이 현실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출구가 어디인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구까지 가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곳으로라도 가자는 사람들을 따라 몰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공멸뿐입니다.
우리가 공황상태에서 벗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도 함께 힘을 모아 출구를 향해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사악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앞서 저는 군사 파시즘은 박정희가 아니라 작은 박정희들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작은 박정희들이 그래도 조금씩 의식이 변해서 민주주의를 깨닫게 되고 적어도 군사 파시즘은 수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 포악하던 철옹성 같은 군사파시즘은 참으로 무력하게도 무너져 내렸다고 했습니다. 이 사악한 자본의 체제도 그렇게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이명박과의 싸움을 시작할 때, 우리 아이들을 이명박과 다르게 키우기 시작할 때, 우리의 행복이 이명박의 행복과 달라질 때, 그래서 이 돈귀신의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부질없는 삶의 규율들에 더 이상 순종하지 않을 때, 내 스스로 작은 이명박임을 성찰하고 다르게 살기 시작할 때, 이 사악한 자본의 체제는 거짓말처럼 무력하게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한겨레시민포럼)
무리하게 상향지원만 하지 않으면 대부분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나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부모들의 믿음에 부응하여 지방엔 미달인 학과도 있을 만큼 대학 정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독일 고등학생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40% 남짓인데 한국은 90%에 가깝다. 그러나 ‘대학을 나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믿음에 부응하는, 즉 대학졸업장이 이후 삶의 경제적 안정성으로 분명히 연결되는 비율은 고작 2.5% 남짓이다.(필자의 지난 칼럼 ‘현실의 회복’ 참조)
그리고 2.5%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강남, 혹은 상층계급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교육 산업이 비정상적이리만치 고도로 발달하고 서열화하면서(‘386 운동권 출신들’의 맹활약!) 부모의 부가 아이 성적을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서민 동네의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강남의 학원에 다니는, 혹은 강남 학원가에서 잘나가는 강사를 붙인 상층계급 아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과연 이걸 경쟁이라 할 수 있을까? 경쟁이라는 건 얼마간의 조건 차이는 있더라도 누구에게든 이길 기회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이건 경쟁이 아니라 ‘경쟁을 가장한 신분화 쇼’일 뿐이다. 상층계급 아이들이 2.5%를 독식하고 나머지 97.5% 아이들은 함께 경쟁하는 시늉을 하는 쇼. 적긴 하지만 일류대 신입생 중에 서민가정 출신 아이들도 있다고? 물론 그렇지만, 그런 ‘특별한’ 사례는 경쟁의 근거라기보다는 이 쇼를 은폐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미국에서 음악이나 스포츠로 상층계급에 오른 극소수 흑인들이 미국이라는 신분사회를 은폐하는 근거로 사용되듯.
쇼는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상층계급 아이들은 이젠 일류대학이 아니라 특목고에서, 국제중에서부터 일찌감치 동아리를 이루어간다. 서민 부모들은 울분에 찬다. ‘출발점의 차이’니 뭐니 하며 분을 내보지만 쇼는 오히려 더 화려해져만 간다.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다짐해보지만 늦은 밤 지친 얼굴로 돌아온 아이를 보면 가슴이 메어진다. ‘아, 무능한 나 때문에 내 새끼의 인생이 막히는 구나.’
나 역시 개털 아비인데 그 심정을 왜 모르랴. 그런데 잠시 울분을 삭이고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그 아이들은 정말 앞선 걸까? 부자 부모 덕에 우리 아이들을 따를 수 없이 앞서가는 그 아이들은 정말 ‘인생에서도’ 앞선 걸까?
<고래가그랬어>엔 ‘고래토론’ 꼭지가 있다. 아이들이 한 주제를 가지고 저희들끼리 마음껏 떠들어대는 꼭지다. <고래가그랬어>가 74호까지 나왔는데 고래토론에 실패한 게 딱 두 번이다. 둘 다 부자 동네의 초등학교에서였다. 그 한 주제는 ‘공부만 하느라 놀 시간이 없어요.’였다. 그런데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아이들이 입을 모아 그러는 것이다. “경쟁 당연히 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경쟁에서 이겨 힘을 얻어야 사회에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다음날 급히 섭외한 미아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다시 토론을 마친 다음 편집장과 둘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 아이들이 정말 앞선 걸까요?” “그 아이들이 일류대를 독차지하고 일류직업을 독차지하고 또 저희들끼리 교우하고 결혼하고 귀족처럼 살아가겠지.” “그렇죠. 그래서 다들 부러워하고 억울해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전 섬뜩하더라구요. 겉모습은 아이인데 완전히 중늙은이더라구요.” “그래. 알고보면 참 불쌍한 아이들이지.”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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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의 <용산 부활도>
불꽃으로 핀 맨드라미 속에서 다섯 분이 환하게 웃으며 부활한다.
그나저나 부활도가 부감 앵글이라..
다섯 분은 땅으로부터 힘차게 부활하고..
우린 구름 위에 앉은 듯 안이하게 살아가고..
추모이자 유쾌한 풍자..
7 그리고 그는 선포했다. "나보다 더 강한 분이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꾸부려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9 그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마가복음」이 집필된 초기 기독교 당시엔 요한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세력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섬기는 세력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두 세력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기독교인들로선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게 명예로울 리 없었다. 만일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 적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는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은 부인하지 않는 대신, 요한을 시종일관 '예수의 예비자'로 묘사함으로써 예수에 대한 요한의 역할과 영향력을 축소하려 애쓴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예수는 요한에게서 단지 세례만 받은 게 아니라 순수하고 열정적인 갈릴래아의 다른 많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요한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사상을 세우고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의 그룹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수는 요한의 제자였던 것이다.
예수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다. 이 사실에는 단지 지역적인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 왼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요르단 강을 따라 세로로 길게 뻗은 팔레스타인 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맨 아래가 유다, 가운데가 사마리아, 그 위가 갈릴래아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은 역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다 지역이다. 사마리아는 유다와 갈릴래아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이방 지역 취급을 받았다. BC 721년 팔레스타인에 쳐들어온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순혈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3만여 명의 아시리아인들을 이주시켰고 그 결과 사마리아에는 혼혈이 많았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유다 지방을 가거나 유다 사람들이 갈릴래아 지역을 갈 때는 '더러운 사마리아인을 피해' 요르단 강 건너로 멀리 돌아가곤 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반발심에 자신들의 성전을 따로 세우고 그들과 완전히 절연했다.
갈릴래아는 팔레스타인을 통틀어 가장 비옥한 땅이고 '바다'라 불릴 만큼 큰 갈릴래아 호수에선 물고기가 많이 잡혀 어업이 성했다. 그러나 갈릴래아 사람들은 매우 가난했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은 대부분 예루살렘에 사는 지주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지배계급과 로마의 이중적 착취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는데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게다가 갈릴래아 또한 외세의 침략으로 적지 않은 혼혈이 생겼던 지역이었다. 사마리아처럼 이방 지역으로까지 취급되지 않았지만 유다 사람들에 의해 심한 차별과 천대를 받았다.
가난과 차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갈릴래아 사람들의 저항의식은 늘어만 갔다. 끊임없이 소요와 봉기가 일어났고 대개의 갈릴래아 청년들은 과격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고 또 죽어 갔다. 예수는 바로 그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성장했다. 예수는 마치 오늘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에 압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소년처럼, 동네 형들과 삼촌들이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다 줄줄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예수가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메시아관에 걸맞지 않다. 메시아는 당연히 유다 지역에서 와야 했다. 특히 그들에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미가 5:1)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짐짓 억지스럽게 예수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적는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로데가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자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갈릴래아로 돌아온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부모 마리아와 요셉은 갈릴래아에서 살지만 인구조사를 받기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예수를 낳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고향은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에 머문 곳이 아니라, 부모가 살았고 자기 자신도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한 사람의 사회문화적 원형을 만든 곳이라는 점에서 예수는 분명히 유다 사람이 아니라 갈릴래아 사람이다.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 그는 메시아이되 영광의 왕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인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함께하는 메시아로서 예고된 것이다.
알다시피 오늘 대개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온 메시아도 유다에서 온 메시아도 아닌 '교리 속에서 온 메시아'다. 그 연원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25년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 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당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자유로운 편이었는데 대체로 예수가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견보다는 예수가 사람보다는 높지만 하느님보다는 낮은 존재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처음엔 그런 신학 논쟁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그런 정치적 의도로 내려진 결정은 더 이상 다른 견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다. 그 후 오늘까지 거의 모든 지식과 신앙에서 예수는 교리 속의 주인공으로 출발한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정말 예수는 단지 교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고단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시인의 노래 4 <길>.
여행 떠날 때 갖고가면 좋을 음반이다.
여행 갈 수 없는 사람은 여행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고..
류연복 형의 소개 말.
음유시인 어깨춤 임의진의 감성으로 빚어낸 짧은 시와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잘 고르는가 싶어지는 노래들을 듣고 앉았노라면
늘푸른 나무에 기댄 것 같이 머릿골이 한층 맑아짐을 느낀다.
나는 가끔 <산>과 <강>을 꺼내 들으며 작업을 하고는 하는데,
이제는 <길>을 들으면서 싱그럽게 일할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벅차다.
비판적 지지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게 ‘현실적’이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것’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사실 나처럼 “저 너머 세상을 꿈꾸자” 이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막연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가.ㅎ 그런데 ‘현실적이라 느끼는 것’과 실제 현실은 언제나 일치하는가? 그렇진 않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현실적인 선택’의 가장 극단이었다. 서민대중의 편일 줄 알았던 노무현 정권이 ‘삼성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서민대중의 삶을 외면하는 정치로 일관하면서 낙심한 사람들은 ‘개혁이고 민주주의고 다 필요없고 먹고사는 문제나 잘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자’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개혁과 민주주의가 후퇴한 건 물론이고 먹고사는 문제는 더 어려워졌다.
노무현에 실망하여 이명박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며, ‘좀더 나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런 ‘현실적’인 선택이 실제로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이명박을 몰아낼 ‘현실적’인 선택으로 다시 노무현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이명박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연 다를까? 노무현에 실망해서 이명박을 선택하는 일과 이명박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무현으로 돌아가는 일은 말이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좀더 나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노무현의 서민대중의 삶을 외면하는 정치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의 변심이나 무능력 혹은 수구세력의 저항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노무현에 대한 그들 자신의 ‘비합리적 기대’(자유주의 정권에 좌파정치를 기대한)에서 기인한 것임을 정직하게 성찰하고, 서민대중의 편에 서는 진짜 진보정치를 해보자는 ‘비현실적’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현실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실적이라 느끼는 것’과 실제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건 실은 당연한 이치다. 현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아직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치를 들여다보지 못할 때 우리는 언제나 현실의 미궁 속을 헤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정 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가운데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말은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댓글 ::
김규항 선생님 글 잘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