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998,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2008/08'에 해당되는 글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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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계급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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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웃음의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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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계급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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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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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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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4
바람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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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5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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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계급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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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계급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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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계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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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위기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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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때 묻지 않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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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작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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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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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정연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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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우리, 야유를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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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곰치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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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100곳 완료
2008/08/27 08:33
계급을 인정하든 부인하든 계급이라는 말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누구나 계급에 속해 있다.
gyuhang
2008/08/27 08:33
2008/08/2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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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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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ound a great...
2008/08/26 17:30
서산 라이딩. 현정의 고향집(홍여사의 처가)에 도착하니 어르신들과 하루 일찍 내려온 현정과 린이 올림픽 마라톤 완주자라도 맞듯 박수를 친다. 간단하게 씻고 고대하던 간재미회(갱개미회)와 대하를 배불리 먹었다. 현정 아버님이 아주 맛있는 삼겹살도 구해 놓으셨다는데 어찌나 배가 부른지 그건 아예 시작도 못했다. 10분 거리에 작은 포구와 외지 사람들이 찾을 정도의 좋은 산이 있는, 많이 후미지지 않았으면서도 조용하고 밤하늘 가득 별이 반짝이는 동네였다. 현정의 해맑은 웃음의 연원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gyuhang
2008/08/26 17:30
2008/08/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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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3:29
대중들이 계급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니 계급이라는 말을 폐기하자는 주장은, 사랑이 메마른 세상이니 사랑이라는 말을 폐기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gyuhang
2008/08/26 13:29
2008/08/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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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yelid lift
2014/07/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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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3:24
어떤 사회 문제에 A라는 가치와 B라는 가치가 있는데 대개의 사람들이 A라는 가치만을 부각하여 말하고 있다면 (나에게) 그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B라는 가치를 가진 문제가 된다.
gyuhang
2008/08/26 13:24
2008/08/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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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부자
Tracked from 행.복.한.자.유.인
2008/09/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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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연일 쏟아내고 있는 발표에 많은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며 한 목소리로 비판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부자"가 되기 위해, "부자"의 범주에 속하기 ?
2008/08/25 14:12
선생님, 호남입니다. 혹시 얼마 전에 국방부에서 선정한 23권의 '불온서적' 목록 보셨는지요? 그 목록에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들어 있더군요. 불온서적 선정의 기준은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 인데, 왜 권정생 선생의 이 책이 포함됐을까,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러다 예수전 원고에 선생님이 쓰신 문장, "정치적 혁명성은 '주장'되는 게 아니라 지배체제에 의해 '증명'된다. 겉보기엔 제 아무리 혁명적이라 해도 지배체제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더 이상 혁명적인 게 아니다. 학술적, 문화적 차원에 머무는 혁명이론 따위가 그렇다. 반대로 겉보기엔 그다지 혁명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데 지배체제가 어떤 과격하고 급진적인 혁명운동보다 더 위협을 느끼고 적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것이다." 라는 문장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저는 권정생 선생의 이 책이 왜 불온한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정치적 혁명과 영적 혁명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씀 또한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와 '묵상'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 대해 지배체제가 위협을 느낀다는 것, 진정한 '영성'은 지배체제를 위협한다는 것, 지배체제를 위협하지 않으면 '진정한' 영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권정생 선생의 이 책을 몇 년 전에 읽다가 시시하다고 생각해서 던져버렸는데,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봐야 겠습니다. ㅎ (질긴 학연을 깡그리 정리하고 중국으로 떠난 호남이 보낸 편지)
gyuhang
2008/08/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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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불온
Tracked from 서울비
2008/08/2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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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성세대에 편입되어가면서 십대들의 마냥 좋기만 한 어떤 것들을 자의든 타의든 조금씩 혐오하게 된다. 세상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굉장히 진지한 어떤 것이어서 강철로 된 새 잎 돋아나?
2008/08/24 17:16
홍여사, 외계소녀와 함께 한 서산 라이딩. 투어 모드로 천천히 달리니 종일 달렸는데도 힘든 줄 몰랐다. “짧은 거리도 빡세게 달리면 힘든 법이다. 오래 달리는 요령은 제 속도보다 여유 있게 천천히 달리는 것.”이라고 주변의 자전거 초심자들에게 늘 말해왔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그렇게 달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이참에 라이딩 스타일을 좀 바꾸어야겠다. 바람과 풍경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구글어스에 얹은 라이딩 궤적)
gyuhang
2008/08/24 17:16
2008/08/2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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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5 19:40
신학자들은 예수가 젤롯당의 무장항쟁이나 바리새인들의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적 해방에 관심이 적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가 젤롯당의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바리새인들과 마치 원수처럼 불화하는 모습을 보였던 건 예수의 관심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민들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대로마 항쟁에서 이겨 해방된다 해도 인민들의 처지에선 억압과 착취의 주체가 로마인에서 같은 유대인으로 바뀌는 건 외엔 달라질 게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율법 준수를 기준으로 하는 그들의 운동 방식은 율법을 일일이 지키다간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민들에겐 또 하나의 끔찍한 억압일 뿐이었다. 예수는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의 율법’을 부서트려 진정한 이스라엘 민족과 진정한 하느님의 율법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예수의 선택은 오늘 우리에게 몇가지 매우 직설적인 가르침을 준다. 그 중 하나는, 인민의 입장에서 조선은 아직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주체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 이다. 오늘 광복절은 것을 바로 그걸 기념하는 날이다.
gyuhang
2008/08/1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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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fcolor's me2DAY
2008/08/1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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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선택은 오늘 우리에게 몇가지 매우 직설적인 가르침을 준다. 그 중 하나는, 인민의 입장에서 조선은 아직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주체가 일본인에서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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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anctus
2008/08/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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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들은 예수가 젤롯당의 무장항쟁이나 바리새인들의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적 해방에 관심이 적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가 젤롯당의 운동에 적극적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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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태초 그 이전
2008/08/1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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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올해의 인본주의자 선정때 미국 인본주의 협회 (American Humanist Association)에서 수상자가 한 질문이다. 인류는 에이즈나 광우병같은 것들로 종말을 고한다고 종종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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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Kornmeier
2013/04/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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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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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Lutz Schröder
2013/04/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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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광복절
2008/08/14 11:34
'계급의식'은 노인이 신문을 보기 위해 돋보기를 준비하듯,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
gyuhang
2008/08/14 11:34
2008/08/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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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태초 그 이전
2008/08/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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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은 한나라당 153석을 비롯하여 사실상 한나라당 2중대인 친박연대와 무소속 그리고 구 한나라당 세력과 자민련의 짬뽕인 자선당등 200석에 유박하는 결과를 내며 자칭 보수가 압승을 거
2008/08/14 11:29
세상은 공식적으로는 '국가(나 민족)'로, 실제론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gyuhang
2008/08/14 11:29
2008/08/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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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20:11
우스운 건, 다들 ‘양극화가 문제’라고 말하면서 '계급'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말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양극화라는 말은 계급적 격차가 커진다는 뜻이다.
gyuhang
2008/08/13 20:11
2008/08/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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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etavital's me2DAY
2008/08/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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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건, 다들 '양극화가 문제'라고 말하면서 '계급'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말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양극화라는 말은 계급적 격차가 커진다는 뜻이다." -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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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echtsanwalt Daniel Sebastian
2013/04/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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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계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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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aniel Sebastian DigiRights Administration GmbH
2013/04/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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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계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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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usikrecht
2013/04/2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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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계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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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bmahnung Waldorf Frommer
2013/04/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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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계급 01
2008/08/13 19:52
우리가 늘 잊곤 하는 사실은,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은 보수반동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라도 어딘데’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5년 전 유행하던 말로 하면 “현실적 진보로서의 개혁”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태도는 싸움이 아닌 것을 싸움으로, 변화가 아닌 것을 변화로 느끼게 한다. 물론 장기적인 이상에만 빠져서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변화를 소홀히 하는 건 잘못이다. 80년대에 좌파들은 그런 편향에 깊이 빠졌었고 그 덕에 참으로 지독하게 비난받고 또 상처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는 80년대와는 정반대로,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변화에 집착하느라 누구도 장기적인 이상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기적인 이상을 말했다 하면 무작정 ‘80년대 스타일’로 매도당하며(최근의 예로는 진보신당 안에서의 소란), 얼마나 대중적 호응을 얻는가가 활동의 유일한 척도처럼 여겨지는 풍토 속에서 진정성을 가진 좌파들은 ‘텔레비전 안에서의 좌파 활약’이나 구경하며 지레 무기력해한다. 좌파 운동에도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은 중요하다. 세상에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이 중요하지 않은 운동이 있던가? 조갑제의 운동에도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에도 스타일과 대중적 호응은 중요하다. 그러나 좌파운동에서 스타일은 스타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좌파적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중요한 것이며, 대중적 호응은 좌파운동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중요하다. 그걸 넘어서는 순간 좌파운동은 ‘연예 활동’으로 전락한다. 어쨌거나, 그런저런 우울한 풍경 속에서 좌파적 주제들은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적 주제로 대체되고 있다. 위기의 순간이다. 지배체제로선 ‘좌파의 의학적 사망’을 기대하는 매우 낭만적인 순간이겠지만..
gyuhang
2008/08/13 19:52
2008/08/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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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www.kiwibox.com
2014/08/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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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위기의 순간
2008/08/12 21:45
“아이들이 너무 예뻤어요. 우리 아이들이 부러워해야 할 때 묻지 않은 아이들.” (임의진이 보내준 인도 아이들 사진)
gyuhang
2008/08/12 21:45
2008/08/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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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13:16
(답변)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하신 적이 없어. 하느님께서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고 말하고 또 스스로 행동하셨을 뿐이야. 예수님이 죽자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겼는데 그게 종교로 발전해나간 거지. 그런데 그 발전 과정은 예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들을 누르는 과정이기도 했어. 이를테면, 예수님에겐 여자 제자들이 참 소중했는데 남자 제자들에 의해 그 흔적이 다 사라져버렸지. 급기야 4세기에 들어선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어.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구세주이던 예수님은 정반대로 세계를 지배하는 황제의 구세주가 되어버렸지. 그 전통은 아직 바뀐 적이 없어. 힘세고 돈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대우받지. 지금 대통령 아저씨처럼 말이야. 그걸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떨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런 건 아니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더 당당한 힘세고 돈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쑥스럽고 불편해하는 그런 작은 천국 같은 교회도 있지. 예수님이 환한 얼굴로 함께 하는 교회 말이야. 천천히, 함께, 더 많이 생각해보자.( 고래가그랬어 57호)
gyuhang
2008/08/12 13:16
2008/08/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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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13:05
초등학교에 다니는 몇몇 동무들과 우연히 ‘왕따’ 이야기를 나누었어. 신기한 건 ‘왕따를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동무’가 주변에 다들 한 명 쯤은 있더라는 거야. 왕따를 당할 만한 이유를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가진 동무 말이야. 삼촌이 물었어. “그 동무와 그 동무를 왕따 하는 동무들이 각각 얼마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대답이 다 달랐어. ‘100:0’이라는 대답부터 ‘70:30’이라는 대답까지. 삼촌이 다시 물었어. 그렇다면 스스로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냐고. 그랬더니 모든 동무들이 심하게는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거였어. 그때 마음이 어땠냐고 물었지. 억울하고 슬프고 외롭고 얼마나 힘든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럼 그때 마음을 생각하면서, 지금 왕따를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동무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각각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말해보자고 했어. 결과가 많이 달랐어. ‘100:0’이라 했던 동무는 ‘50:50’이라고 했고 ‘70:30’이라고 했던 동무는 ‘30:70’이라고 했어. 고작 5분도 안 지났는데 말이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그렇게 대단한 거야. 삼촌 생각엔 아무리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가졌어도 자신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아는 사람처럼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은 없어.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엔 그런 어른들이 너무 많아졌어. 그래서 세상이 더 나빠지고 우리 동무들까지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말하다보니 삼촌도 조금 부끄러워지려고 하네. 동무들은 어때? ( 고래가그랬어 57호)
gyuhang
2008/08/12 13:05
2008/08/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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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True&Monster
2008/08/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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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생각엔 아무리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가졌어도 자신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아는 사람처럼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은 없어. - 김규항,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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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Fareds Rechtsanwaltsgesellschaft mbH
2013/04/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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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불쌍하고 초라한 사람
2008/08/09 11:29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동시에 좌파에게도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적절한 사고와 행태 덕에 KBS 사장이 되었는데, 오늘 그가 방송 공공성의 수호자처럼 일컬어지는 건 좀 민망한 일이다. 이명박이 KBS 사장을 제 사람으로 갈아치우려는 건 참 더러운 일이지만(그러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그랬듯) 착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고작 정연주 같은 자를 지켜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개인 정연주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정연주?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겐 KBS가 공영방송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인민의 처지에서 KBS는 공영방송인 적이 없다. 이를테면, KBS가 FTA나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반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돕는 방송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연주와 이명박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로 역할을 분담한, 결국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왜 이명박과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가?
(알려진 대로, KBS 사장은 원래 강준만 선생에게 제의되었고 강선생은 거절했다. 강선생은 아이들과 지역신문 선샤인뉴스를 만들었다. 강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달라 이따금 티격태격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gyuhang
2008/08/09 11:29
2008/08/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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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ifflewind's me2DAY
2008/08/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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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김규항 _ 최근 YTN과 KBS의 사태를 보자니, 딱 이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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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go + ing
2008/08/1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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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아무리 정치적이지 않으려해도, 정치인들로 인해 정치적이다.이명박 대통령은 또 다시 나라를 비웠다. 그리고, 그가 없는 사이 또 다시 아랫것들은 속전속결로 정사장을 해임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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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hlip의 홈페이지
2008/08/1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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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글물론 이 문제를 정치적인 세력싸움, 혹은 우파간의 경제 대 정치간의 싸움이라고 내려다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거의 항상 내려다 보시네요)그게 아니라 상식의 선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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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
2008/08/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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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님의 블로그를 간만에 들르다. 사실, 김규항님도 규칙적으로 연재하시는 분은 아니라서 규칙적으로 가게 되면 읽을 게 없다는...;;; 제법 글이 올라와서 읽게 되었는데, 현재 가장 위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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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
2008/08/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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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깨닫다. 김규항님은 현재 왼쪽에 계신다. 스스로를 B급이라고 칭하지만. 정연주를 지키자는 사람들은 왼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보도 좌파도 아닌 보수주의자들인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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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romatic, Delicious Scalpel
2008/08/1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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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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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여행하는 나무
2008/08/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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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1:29
정연주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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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onanoc's me2DAY
2008/08/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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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구하기에 대한 김규항의 비판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겠는데, 아거 이분은 본인 말대로 정말 맛이 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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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True&Monster
2008/09/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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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2008/08/09 09:55
내가 발행인 노릇을 하고 있는 어린이잡지 <고래가그랬어>에 최규석이 ‘코딱지만 한 이야기’라는 꼭지를 연재했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화 같은 것이었는데 분량은 짧아도 함축과 은유가 많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연재를 쉬기 얼마 전에 실린 ‘불행한 소년’이라는 작품이 말썽이 나서 몇몇 독자가 항의하고 정기구독을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 참고 또 참으며 평생을 죽도록 노동했으나 결국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게 된 사내가 제 정당한 분노를 늘 삭이게 했던, 그리고 이제 죽어가는 그에게 “비참해하지 말아요. 당신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어요.”라고 말하는 천사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천사는 그저 천사의 탈을 쓴 악마에 불과했지만 기독교(개신교)가 비공식적 국교이다시피 한 국가인 한국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에서 천사를 죽이는 장면을 실었다는 것은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실은 그 작품이 편집부에 들어왔을 때 편집장이 걱정이 된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문제가 되겠지만 문제없는 작품”이니 싣자고 했다. 싣지 않았으면 말썽도 없었을 테니 작가에겐 책임이 없었지만 <고래가그랬어>의 지지자인 최규석은 독자수를 늘이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줄였다는 데 대해 몹시 미안해했다. 그때 최규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게 그렇게 충격적인가요? 저는 늘 소 잡고 돼지잡고 하는 것 보고자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미안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엔 얼마간의 야유가 들어 있었다. 제 새끼들을 볼 것 안 볼 것 들을 것 안 들을 것 알뜰하게 다 가려가며 키울 수 있는 안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야유. 최규석은 그런 야유를 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늘 소잡고 돼지잡고 하는 것 보고자란 사람, 볼 것 안 볼 것 들을 것 안 들을 것 다 가리며 키울 수 없는 조건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바로 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았다. 잡지에 연재될 때 몇 번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보니 본 게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만화가 후배의 소개로 대학 졸업작품집에 실린 최규석의 작품을 본 이후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등 그의 주요한 작품들을 모두 보아왔지만 이번처럼 강한 인상을 주는 적은 없었다. 두어 시간 그렇게 빠져서 책을 다 보고나서야 난 그 두어 시간 동안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참, 이게 다 지 이야기지.’ 그 이야기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아이의 체험임을 되새기며 난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이삼십년 전이었다면, 말하자면 한국의 인텔리들(이를테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민중이 각별한 의미를 갖던 시절이었다면 이 책은 지금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 책은 ‘민중의 자식이 그린 가슴 아픈 성장기’라 수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90년대 이후 한국의 인텔리들은 더 이상 민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시민이라는 말을 즐겨 쓰게 되었다.(그렇게 된 사연과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분명한 사실은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민중이라는 것. 그리고 민중은 인텔리들이 자신들을 위해 ‘투신’하던 시절이나 자신들을 ‘배신’하고 시민을 말하는 지금이나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인텔리들의 민중과의 관계는 실재했던 게 아니라 단지 인텔리들끼리의 가상극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늘 한국의 인텔리들에게 민중은 그들이 오래 전 외치던 대로 ‘역사의 주인공, 생산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부인할 순 없지만 애써 외면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 변화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원주민>은, 이른바 진보적인 성향의 인텔리들이 즐겨 읽는 잡지에 연재되고 역시 진보적인 인텔리들을 주요한 독자로 하는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사실 이런 질문은 매우 싱거운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이미 그에 대한 답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한 민중의 자식의 가슴 아픈 성장기’를 이젠 제 세계관이나 사회적 실천에 결코 연결시키지 않은 채 잠시 구경하려는 인텔리들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그 야유가 작가 자신에게까지 뻗어있다는 점이다. 최규석은 이젠 모든 면에서 ‘원주민이 되어버린 민중’에서 떨어져 나와, 단 한 번도 입신양명을 꿈꾼 바 없으나 어느 새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만화가가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야유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야유는 사회적 지위와 문화자본이 갈수록 늘어가는 제 삶의 추이와 속도에 정직하게 맞추어져 있다. 부모와 누이들과 형에 관한 이야기들을 가까스로 마친 작가는 책의 끝 무렵 제 옆얼굴을 그린 페이지 왼편에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나와는 꽤 다른 환경에서 자랄 내 아이’에 대해 적는다.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근래 보기 드문 민중 출신 작가’가 제공한 ‘모처럼의 민중 구경’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책은 작가 자신에 대한 야유, 심지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야유를 포함하면서 ‘그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인텔리들)’에 관한 책이 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의 잃어버린 야유를 복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민중에 대해 ‘우리끼리’ 해치운 개연성 없는 투신과 배신에 대해 정당한 야유를 받은 바 없이 살아왔으며, 우리의 삶이 이렇게 욕지기가 날 만큼 졸렬해진 것 역시 우리가 세상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야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서부터였음을 복원하게 한다. 모든 ‘우리’에게 이 책을 권한다. 모처럼의 구경은 어느새 모처럼의 정화가 될 터이니. (창작과비평)
gyuhang
2008/08/09 09:55
2008/08/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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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romatic, Delicious Scalpel
2008/08/1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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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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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ROUND
2008/08/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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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최규석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나의 점수 : ★★★★★책을 다 읽고 난 일요일 오후 내내, 퍽퍽한 가슴과 멍해진 머리로 서성거렸다.평소에는 기억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
2008/08/06 11:20
소설가 김곰치. ‘저명한’ 소설가는 아니지만, 녹색평론을 구독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풀냄새(혹은 골목 냄새) 나는 글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가 예수에 관한 소설을 냈단다. 똥 먹는 예수라나. 똥을 먹든 된장을 먹든, 예수가 무엇을 바라고 좇았기에 그리 신들려 살다 갔는지,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는 건, 예수를 살리는 일이다. 설사 그게 실제 예수와는 영 동떨어진 해석이라 해도, 제 이해관계를 위해 억지로 꿰어 맞춘 것만 아니라면, 예수는 밝게 웃으며 말할 것이다. ‘거, 재밌네!’ 생각해보라. 자그마치 2천년 동안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박제가 된 채 걸려있는 자의 심정을..
곰치의 예수 블로그
gyuhang
2008/08/0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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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서울에 비가 내린다
2008/09/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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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지은이 김곰치 상세보기 곰치처럼, 디트리히 본회퍼 또한 <값 싼 은혜>를 교회가 판매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오늘날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무시하고 개인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며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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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ekoracje welurowe na ściany
2015/01/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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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
2008/08/05 23:12
100곳 완료. 생각보다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100이 얼마나 큰가. ^^
gyuhang
2008/08/0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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