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9 11:29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동시에 좌파에게도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적절한 사고와 행태 덕에 KBS 사장이 되었는데, 오늘 그가 방송 공공성의 수호자처럼 일컬어지는 건 좀 민망한 일이다. 이명박이 KBS 사장을 제 사람으로 갈아치우려는 건 참 더러운 일이지만(그러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그랬듯) 착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고작 정연주 같은 자를 지켜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개인 정연주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정연주?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겐 KBS가 공영방송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인민의 처지에서 KBS는 공영방송인 적이 없다. 이를테면, KBS가 FTA나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반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돕는 방송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연주와 이명박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로 역할을 분담한, 결국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왜 이명박과 같은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가?

(알려진 대로, KBS 사장은 원래 강준만 선생에게 제의되었고 강선생은 거절했다. 강선생은 아이들과 지역신문 선샤인뉴스를 만들었다. 강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달라 이따금 티격태격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2008/08/09 11:29 2008/08/09 11:29
Posted by gyuhang at 2008/08/09 11:29 | 트랙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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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여울바람의 생각

    Tracked from rifflewind's me2DAY 2008/08/09 19:29  삭제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김규항 _ 최근 YTN과 KBS의 사태를 보자니, 딱 이런 기분이었다.

  2. Subject: 정연주라는 트로이 목마

    Tracked from ego + ing 2008/08/10 01:14  삭제

    올림픽은 아무리 정치적이지 않으려해도, 정치인들로 인해 정치적이다.이명박 대통령은 또 다시 나라를 비웠다. 그리고, 그가 없는 사이 또 다시 아랫것들은 속전속결로 정사장을 해임했다고 ?

  3. Subject: KBS 사장을 지키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지요.

    Tracked from phlip의 홈페이지 2008/08/11 00:54  삭제

    김규항의 글물론 이 문제를 정치적인 세력싸움, 혹은 우파간의 경제 대 정치간의 싸움이라고 내려다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거의 항상 내려다 보시네요)그게 아니라 상식의 선으로 ?

  4. Subject: 정연주 지키기?

    Tracked from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 2008/08/11 17:42  삭제

    김규항님의 블로그를 간만에 들르다. 사실, 김규항님도 규칙적으로 연재하시는 분은 아니라서 규칙적으로 가게 되면 읽을 게 없다는...;;; 제법 글이 올라와서 읽게 되었는데, 현재 가장 위에 올

  5. Subject: 돈오(頓悟)

    Tracked from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 2008/08/11 17:59  삭제

    갑자기 깨닫다. 김규항님은 현재 왼쪽에 계신다. 스스로를 B급이라고 칭하지만. 정연주를 지키자는 사람들은 왼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보도 좌파도 아닌 보수주의자들인 거다. ?

  6. Subject: 머리를 탁 치는 글들

    Tracked from Aromatic, Delicious Scalpel 2008/08/12 00:18  삭제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맹렬히 공격하곤 했지만

  7. Subject: [규항넷] 정연주

    Tracked from 여행하는 나무 2008/08/16 11:31  삭제

    2008/08/09 11:29 정연주 ‘존중할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시절은 슬프다. 정연주 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겨레 시절 조선일보를

  8. Subject: conanoc의 생각

    Tracked from conanoc's me2DAY 2008/08/18 15:28  삭제

    정연주 구하기에 대한 김규항의 비판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겠는데, 아거 이분은 본인 말대로 정말 맛이 간것 같다.

  9. Subject: 공영방송의 상식, 김규항과 양승동의 경우

    Tracked from True&Monster 2008/09/07 19:42  삭제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