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건 알지만 현실이..” 라는 말이 지식인들의 절대 철학으로 군림하는 한국에서 완전히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몇몇 근본주의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들 내 새끼한테 광우병 소고기 못 먹인다 아우성칠 때 “인간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광우병은 차라리 인간종에게는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담담히 말한 현병호 형(민들레 발행인)이나, 모든 사람이 독도가 한국 것이네 일본 것이네 할 때,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이라고 일갈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 변홍철 형(녹색평론 편집장)이 그들이다.
며칠 전, 변홍철 형에게 고래 5주년도 되었으니 내내 미루어졌던 생태 꼭지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전화를 해선 수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보내놓은, 번복의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몹시 아쉬웠지만, 그의 생각을 열렬히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럿이 읽고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글이라, 허락을 받아 올린다.
다음호 잡지 편집이 한창이라 좀 분주하긴 합니다만, 아까 김 선생님과 통화한 뒤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왠지 자꾸 '불편한'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냥 부담스럽다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곰곰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두서없지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여러 모로 낭비를 줄이는 길일 것 같아 서둘러 편지를 올립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올해로 11년째 종사해온 <녹색평론>의 일을 그만두고 내년부터 경북 의성 직가골이라는'오지'에서 땅에 엎드려 일하는 법을 촌로들께 배워보자고 작정한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녹색평론>을 통해서 이야기해온 가치들, 특히 '땅에 뿌리박은 삶'을 내가 몸으로 부딪쳐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쩐지 더 이상 살아있는 '내 말', '내 생각' 같지 않다는 나름대로 '절박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점점 커질수록, 글 쓰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잡지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도, 또 가끔은 독자들을 만나 '편집자'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꾸 불편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래>의 일을 맡아(이것도 역시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는 일인데) 더구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제 문제의식(이랄 것도 없고, 사실은 제 기분)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아무래도 지금 이 일을 맡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염치없지만, 제 아이들과 함께 조금 더 그냥 <고래>의 행복하고 게으른 '독자'로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고된 농사일의 몇 해 사이클이라도 근근이 견뎌낼 수 있다면, 그리고 경북 의성 직가골의 땅과 마을이 저를 그럭저럭 받아주기로 너그러움을 베푸신다면, 그때 제 나름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조금씩 들려줄 준비라도 시작해보겠습니다. 그 전에는 괜히 저도 불편하고, 아이들에게도 행복하지 못한 '공해'밖에 유발시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드시 생태 이야기는 농사를 제대로 짓는 사람이라야만 할 수 있다는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은 김 선생님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말은 절대로 아니고, 다만 지금은 저의 마음이 흘러가면서 외치는 거기에 제 자신이 좀 더 겸손하게 복종하고 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사족을 붙이면, 제가 생각할 때에는<고래>의 그 기획은 어떤 개념이나 정보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일련의 풍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에콜로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지요) 우선 그런 일에 저는 그다지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이런 염치없는 말씀을 서둘러 드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김 선생님과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 저도 참 뻔뻔스러운 놈이지요. <고래>와 선생님의 건강을 빕니다.
변홍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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