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매체는 각각 다른 컨텍스트의 제한을 가진다. 내 경험을 예로 들면, 한겨레나 경향에 글을 쓸 때 계급이나 반자본주의 같은 이야기들은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방송에선, 특히 TV에선 사고에 가깝다. 이 제한은 일방적인, 혹은 권력의 규제 같은 게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신문에선 별문제 없이 읽던 사람들도 방송에서 나오면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매체를 소비하면서 그 컨텍스트의 제한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어진다.
건물 외벽에 LED로 이미지나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는 이 제한의 오른쪽 끝에 있다. 서울시를 예로 들면 현재 설치된 미디어파사드는 60개 정도인데, 이념적 제한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들이 조금만 불쾌감을 표시해도(‘귀신 나올 것 같다’ 같은 반응을 포함하여) 문제가 된다. 결국 미디어 파사드는 지나가던 시민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클리셰로 귀결하고, 미디어 작가를 자임하는 미디어파사드 ‘업자’들이 판치는 경향을 보인다.
진지한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이 미디어 파사드를 얼마나 점하는가가 숙제인 셈이다. <눈 홉뜨기: 디지털 파사드를 위한 제안들>은 바로 이에 대한 전면적 질문이다. 실내(지하)에 설치한 미디어파사드의 예술적 예시라고 할 수 있다. 8인(팀)의 작품을 모두 보는 데 한시간 쯤 걸린다. 광화문이나 강남 한복판의 빌딩 벽을 가정하여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미지는 장영혜중공업의 <야, 쪼다, 너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내 생각에는)>. 성폭력과 남녀 커플 간의 뒤틀린 권력 관계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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