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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4 17:49
민희진과 방시혁의 전쟁, 그리고 그에 관한 수많은 논평의 공통점은 ‘아티스트’가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이다. 뉴진스 멤버들은 이제 갓 성인이 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원인은 K팝 산업의 생산 방식과 메커니즘에 있다. K팝 산업은 문화산업이며, 문화산업은 이름 그대로 예술의 한 부문이 아니라 산업(자본의 이윤 축적 활동으로써)의 한 부문이다. K팝 산업이 이룩한 생산 방식의 공산품적 표준화 - 외모와 재능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선발하여 수년간의 가공 및 제조 공정을 거쳐 출시하는 - 는, 문화산업의 전체 역사에서도 최종적인(그 이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면모가 있다. 오늘 한국 시민은 문화산업의 상업적 성과를 예술적 성취로 받아들인다.
2024/04/18 14:58
홍세화 선생과 꽤 오래 인연이 있다. 선생은 고래가그랬어의 주주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그는 온건하고 포용적인 좌파 이미지를 가졌다. 그러나 활동 후반기에 그는 적이 달랐다. 20여 년 전 그가 망명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 그와 나는 얼마간 견해 차이가 있었다. 그는 극우 집단주의(조선일보로 대변되는)와 싸움이 우선이라고 봤고, 나는 그 싸움과 함께 자유주의 세력(민주당 리버럴)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다. 자유주의 세력의 성장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강화와 좌파의 쇠락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언쟁을 벌인 기억은 없다. 그는 대화 끝엔 언제나 ‘극좌인 아들도 아빠는 개량주의자라고 비난한다’며 웃곤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시점부터 바뀌었다. 좌파의 우경화가 가속도가 붙을수록 그는 오히려 더 왼쪽으로 갔다. 드문 일이었고, 그의 연배를 고려한다면 더욱 드물고 희한한 일이었다. 민노당 당원이었고 진보신당 당원이던 그는 통진당이나 정의당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노동당원으로 남았다. 애정을 가졌던 한겨레가 자유주의 세력에 경도되어간다며 괴로워했다. 조국 사태가 일어나자 기득권화한 자유주의 세력에 비판적 견해를 더욱 분명히 했다. 그의 그런 행로가 널리 이해되거나 지지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홍세화를 좋아한다는 말이, 현재의 홍세화가 아니라 옛 홍세화 -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쓰고 톨레랑스를 말하던 - 를 의미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나는 후반기의 홍세화가 진짜 홍세화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홍세화가 ‘변화하는 힘을 잃지 않은 인간’이었음을 말하려 한다. 그는 사회 현실과 인민과 함께, 쉼 없이 학습하고 성찰하며 생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변화해갔다. 사회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 한 그가 고수한 건 이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힘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4/04/17 14:07
2024/04/12 15:57
이번 선거의 의미가 윤석렬 심판만은 아닐 것이다.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진보정치 운동의 한 마감’이기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지 25년,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비례 8석)으로 의회에 진출한 지 21년 만이다. 먼저 사회 성원은 차이를 떠나 존경을 표시해 마땅하다. 이들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이력을 이용하여 일찌감치 민주당으로 투항해 신흥기득권 세력이 된 사람들과 다르게 살았다. 그리고 무대 위의 몇몇 정치인만 생각할 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분투한 수많은 활동가의 25년을 생각해보자.
근래 진보정치 쇠락이 뚜렷해지면서 그 원인으로 ‘노회찬 정신의 상실’을 드는 사람이 많았다. 죽은 이의 미덕을 강조하고 기리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노회찬 역시 활동 후반기엔 노회찬 정신과 거리가 있었다. 진보정치 운동의 역사는 단지 몇몇 인물의 공과나 그 산물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변화라는 더 중요한 배경이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진보정치는 대체로 유럽식 사민주의 정치를 이른다. 사민주의 정치는 ‘계급 타협’으로 성립했다. 사회주의 운동은 변혁을 포기하는 대신 복지를 얻고, 자본과 국가는 복지를 주는 대신 체제 안정을 얻는 대타협이었다. 이런 타협이 가능했던 건, 2차대전 후 30년 간 자본주의 호황이라는 물적 토대였다. 복지를 좀 내주면서도 이윤 축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민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호황기와 짝이며, 호황이 끝나면 사민주의 정치 역시 어려워지는 속성을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반 그 일이 벌어졌다. 자본주의 체제는 장기 불황기에 들어간다. 자본과 국가는 계급 타협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신자유주의로 전환한다. 사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요한 양상은 이렇다. 복지국가가 해체되고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 확산한다. 계급 타협 체제에서 노동 계급 쪽 주체는 정규직 조직노동이다. 직접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건 위험한 일이므로,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확대를 통한 ‘분리 지배’라는 우회 전략이 채택된다. 점점 늘어가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눈에 중산층의 안정을 구가하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은 노동 귀족으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노동자는 빠르게 분열하고 약회되어간다.
‘좌파정치의 혁신’이니 ‘제3의 길’이니 하는 화려한 수사는 대부분 사민주의 몰락의 여러 풍경과 표현들이었다. 유럽 역시 몇몇 인물들이 몰락의 책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진보정치를 신자유주의에 갖다 바쳤다는 비난이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같은 자가 몹쓸 인간인 건 맞지만, 이런 관점엔 중요한 오류가 들어 있다. 신자유주의를 어떤 ‘선택’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케인스주의를 지속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레이건과 대처를 비롯한 악한들이 신자유주의로 몰고 간 게 아니다. 자본주의가 더는 케인스주의를 지속할 능력이 사라지면서, 신자유주의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2차대전을 통해 과잉생산과 과잉자본을 일소하고 얻은 활력이 30년을 갔고, 활력이 다하자 일어난 상황이다. 실물 부문에서 극도로 낮아진 이윤율을 초과 착취와 투기적 금융으로 벌충하며 연명하는 자본주의는 케인스주의나 복지국가 같은 타협 체제는 꿈도 꿀 수 없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이 모든 상황이 조금 늦게, 압축적으로 진행했다. 87년 민주화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대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적 조직 노동을 만들어낸다. 자본과 국가는 분단 이후 가장 큰 체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흐름은 2000년 민노당 창당과 2004년 원내 진출로 이어진다. 민주노동당은 한국식 사민주의 정당이고, 그 성공은 한국식 계급 타협 체제의 성립이었다.
그러나 민노당이 성공적으로 출발한 시기는, 동시에 97년 구제금융 사태와 함께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한창인 시기였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시작과 동시에 계급 타협이라는 그 체제적 기반을 잃고 쇠락의 도정에 선 것이다.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진당, 노동당, 녹색 정의당 등의 역사는,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크게 보아 도리없는 쇠락의 역사다.
세계 역사에서 진보정치 운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주류였던 변혁적 사회주의 정치와, 20세기 중반 이후 주류인 계급 타협적 사민주의 정치다. 이제 둘 다 불가능해 보이거나 불가능하다. 사민주의의 고향인 유럽은 물론 세계 어디에도 아직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느 사회든 기존 정치가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고 그 틈새로 별의별 미치광이들이 준동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진보정치의 한 역사를 마감하며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급진성의 재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전망이나 아이디어를 내놓기 전에, 먼저 꼭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들이 높이 쌓여 있다. 이를테면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신자유주의와 함께 융성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적 비판, 노동과 계급 의제를 대체한(왜 확장이 아니라 대체였을까) 정체성 정치와 피시주의에 대한 토론 등등.
2024/04/12 10:32
2024/04/01 14:02
한국의 출생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주요한 원인이 경제 문제라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교육이 단지 입시의 다른 말인 사회에서, 사교육비만 생각해도 아이를 갖는 일은 엄두가 안 날만 하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남는다. 훨씬 더 가난했던 시절엔 왜 다들 아이를 많이 가졌을까? 오늘 한국은 부자 나라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에서 돈의 비중이 절대적인 물신 사회가 되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갖는 일이 그 자체로 기쁘고 행복한 일이려면, 부자여야 한다. 부유층에서 출생률은 별 변화가 없기도 하다. 부자 부모는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고생스러운 국내 대학 입시를 건너뛰는 선택지들도 있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대응에 50조 원을 쓰고 있다. 큰돈이지만 효과는 없다. 그걸로 모두가 부자가 될 순 없으므로. 부자는 상대적 개념이다. 설사 한국이 더 부자 나라가 된다 해도, 부자는 언제나 소수다. 그러므로 부자가 아닌 개인들에게 필요한 건 부자 나라가 아니라 ‘다른 사회’다. 부자가 아니어도 아이를 갖는 일이 기쁘고 행복한 일일 수 있는 사회, 돈 말고도 인생의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사회. 부자들의 선거를 앞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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