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환경운동단체 활동가 강의에서 질문과 내 답변. 어떤 질문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선생님의 지난 글들을 보면, 사유의 한 축이 마르크스라면 다른 축은 기독교와 예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체계(혁명과 영성)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혁명과 영성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혁명 없는 영성도 영성 없는 혁명도 없습니다. 영성은 침묵이나 고독과 깊은 관련이 있고 비가시적이며 초월적이거나 신비적인 면을 가지죠. 그래서 개인 내면에 관한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영성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전체성에 있습니다. 영성은 인간을 온전하게 합니다. 이 온전함은 개인의 내면은 물론, 다른 인간들(인류)과 관계에서 온전함, 그리고 다른 생명들(자연)과 관계에서 온전함이기도 합니다. 영성과 혁명이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는 건, 영성을 수행이든 독도이든 혹은 요즘 유행하는 동기부여와 생산성 향상의 기술이든, 개인의 내면에 관한 것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내적 온전함(자신과 관계에서 온전함)이 다른 인간들(인류)과 관계에서 온전함과 다른 생명들(자연)과 관계에서 온전함과 하나이려면, 그 관계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혁명을 수반할 수밖에 없죠. 혁명의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은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물리침으로써 새로운 세상과 인간해방을 이루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여기엔 중요한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피지배 상태의 인간은 온전한가요. 온전한데 단지 불의한 지배 체제에 억눌려 있을 뿐이니 지배 체제만 무너트리면 온전한 세상이 인간 해방이 열리는 건가요. 혁명가나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이 질문을 생략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나 미화합니다. ‘민중의 건강성’, ‘위대한 노동자계급’ 등등. 인텔리의 판타지이며 신화일 뿐이죠. 지배와 착취의 체제는, 지배하고 착취하는 사람과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동시에 병들고 뒤틀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 내면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노력은 혁명의 중요한 뼈대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혁명은 인간 해방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교체, 혹은 새로운 지배 체제의 성립으로 귀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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