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2/11/29 파업
  2. 2022/11/25 위로와 교감
  3. 2022/11/24 음반
  4. 2022/11/24 아트 캘린더
  5. 2022/11/21 발행인 삼촌 단상 01 '사라진 아이들'
  6. 2022/11/15 내가 소망하는 세계
  7. 2022/11/04 야경국가
2022/11/29 22:23
전국경제인연합은 화물연대의 이번 파업 이전까지, 올해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조 406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6월 화물연대 파업 8일간 1조 6000억원,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51일간 8000억원 등을 합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전경연은 화물연대 노동자가 하루 2천억,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가 하루 156억의 가치를 생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웃지 못할 상황은 파업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도움을 준다. 파업은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생산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갈수록  부정하는 자본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파업은 이른바 자발적이고 대등한 계약관계에 은폐된 시스템의 실체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파업은, 경제적 요구만을 내건 파업조차도 정치적이며, 지배 계급이 파업에 대해 그토록 민감한 이유 또한 그렇다.
2022/11/29 22:23 2022/11/29 22:23
2022/11/25 12:14
위로와 교감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게 있을까. 다만 위로와 교감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그 상품들이 넘쳐나는 상황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이때 위로와 교감은 사유와 연대를 대체하는 노예적 신파로 흐른다. 세계는 단지 작은 일상들의 합이 아니다.
2022/11/25 12:14 2022/11/25 12:14
2022/11/24 19:34
음악을 스트리밍(주로 타이달)으로만 듣게 된 지 꽤 되었다. 아주 가끔은 음반을 산다. 수집이나 소장 취미와는 거리가 멀고, 대개 좋아하는 뮤지션이 낸 신보가 디자인이 특별한 경우다. 음반을 꺼내 놓고 살펴보며 부클릿을 읽지만, 역시 스트리밍으로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그 생산자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는 느낌 같은 게 있다.
2022/11/24 19:34 2022/11/24 19:34
2022/11/24 14:49
고래가그랬어 아트 캘린더. 어제 오픈했는데, 여러 개 사는 분이 많고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감사드리며 조금 설명을 덧붙인다.

부분을 최대화해서 깔끔한 아트 포스터에 가깝다. 달력 같은 것을 걸어두기 꺼리거나, 좀처럼 마음에 드는 달력을 찾기 어려운 분도 받아들일 만하다. 포스터형과 엽서형 세트로 구성된다.

기념일 표시에 고민을 많이 했다. 기념일은 여러 세계관이 긴장하며 갈등하는 장이며,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생태, 노동, 소수자, 어린이 연대 관점에서 꼼꼼히 보태고 정리했다.

작가 인세와 제작비를 뺀 판매 수익금은 모두 고래동무에 후원된다. 가령 캘린더 5개를 사면 5권의 고래가그랬어를 어린이 공간에 보낸다고 보시면 된다.

2022/11/24 14:49 2022/11/24 14:49
2022/11/21 10:17
('발행인 삼촌’은 고래가그랬어 독자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교육에 관해 쓰고 말하길 멈춘 지 꽤 되었습니다. 생각들을 짤막하게 적어가며 재개하려 합니다. 뭐든 편히 의견 주세요. 고맙습니다.)

교육은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관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가 덧붙는다.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상품이며, 부와 구매력이 곧 생활 수준인 사회에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양육자)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 사이에서 번민하게 된다.

자본주의라고 언제나 같진 않아서, 그런 번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독한 상황도 있다.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만을 두고, 모든 아이가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무한 경쟁하는 상황이다. 모든 부모가 제 아이 경쟁에 온 힘을 다하므로,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경쟁의 출발선과 조건을 결정한다. 실제적으로는 소수 상위 계급 아이들의 경쟁이며 다수 아이는 들러리다. 교육은 계급과 계층을 대물림하는 신분 재생산 장치로 전락한다.

근래 한국이 그런 상황에 있다고들 말한다. 다수 시민의 근심이 깊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교육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 개인들의 굴절된 교육관과 이기심의 결과인가. 훨씬 거대한 사회 변화가 부모들을 그렇게 몰아갔다고 하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1997년 한국은 IMF 구제금융의 대가로 글로벌 자본주의 세력의 요구에 맞추어 경제 구조를 개혁한다. 그 속도와 강도가 유례없었고,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은 매우 빠르게 물신 사회로 재구성된다.

시민들은 거대한 변화에 휩쓸려가면서도 그 실체를 뚜렷하게 인식하기 어려웠다. 오랜 투쟁과 희생으로 얻은 정치적 민주화의 연장선에서, 사회가 지속해서 나아질 거라는 여전한 기대를 했다. 민주화운동의 전설적 존재인 김대중 씨가 막 대통령이 된 때이기도 했다. 지식인들이 유의미한 안내자 노릇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사회 현실과 맥락도 닿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에나 몰두하고 있었다.

그즈음 한국의 모든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진다. 아이들은 달라진 얼굴로 학원에서 발견된다. 판타지 영화 같은 풍경은 교육이 이미 아이가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만을 두고 벌이는 무한경쟁의 전장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변화는 너무 강고해서 '어쩔 수 없는 현실'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아무런 책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살게 된 아이들은 어쩔 것인가. 이 질문이 고래가그랬어 창간의 직접적 동기가 된다.
2022/11/21 10:17 2022/11/21 10:17
2022/11/15 18:29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 문제를 벗어나 저마다의 쓸모없는 짓들에 골몰하는 세계를 소망한다.‘

언젠가 저자 프로필에 적었다. 변함없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다. 정치나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며 싸우기까지 하다 보면,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이 소망하는 세계를 잊지 마시길.
2022/11/15 18:29 2022/11/15 18:29
2022/11/04 20:24
30년 전 아버지가 읽힌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가 인생 책이며, 어디서든 연설만 하면 수없이 ‘자유’만 강조하는 윤석열 씨에게 가장 부합하는 국가 상은 ‘야경국가’일 것이다. 1862년 라살이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국가를 ‘고작 야간 경비원 노릇만 한다’고 비판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야경국가에서 시민은 자유시장에서 각자도생하고, 국가는 자유시장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역할(대내외적 안전과 사유재산 보호 등)만 담당한다. 이 국가 상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국가의 시장 개입(특히 공황 시기 위기에 빠진 독점자본을 시민의 세금을 쏟아부어 구제하는)이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요건이 됨으로써, 자유주의자라 해도 진지하게 주장하면 또라이로 의심받게 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서울의 한 골목에서 156명의 동료 시민이 압사하는 참사를 통해, ‘야경조차 못하는’ 어느 국가를 발견한다. 참사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참사 후 대통령부터 장관, 경찰청장 등이 보인 비현실적 일치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깊은 애도와 분노 속에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선진국이자 최고의 문화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실제의 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고 가장 적게 아이를 낳은 지 오래일 만큼  독점과 불공정 경쟁으로 조직된 시장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는 일상에서 신체적 안전도 지켜주지 못한다. 야경국가의 다른 말은 ‘최소주의 국가’다. 이 국가의 이름은 무엇인가.(계속)
2022/11/04 20:24 2022/11/04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