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교회 타락을 대변하게 되면서, 작은 교회를 통해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성장을 우선하지 않으며, 신도 수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교회를 분리하는 등의 방식이다. 작은 교회 운동의 요체는 교회 규모가 아니다. 자나 깨나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작은 교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교회들은 그저 가장 추레한 형태의 대형교회다. 작은 교회 운동은 요체는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마몬이 점거한 교회에 예수 정신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가정해보자. 자나 깨나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작은 교회들이 어느 날 경쟁 과정에서 대형 교회의 반칙과 특권을 지적하며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것을 일종의 교회개혁 운동이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정은 동시에, 교회가 인간의 영혼에 관한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인정, 이윤 축적을 소명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인정이기도 하다. 그 운동이 성공해서 반칙과 특권이 사라질 때, 남는 건 교회 형상을 한 수많은 기업이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사회 정의 논란은 교육 문제가 중요한 불씨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배계급이 진영(보수/진보 혹은 좌파/우파라 일컬어지는, 이념적으로 같은 두 이해 결사체)을 막론하고, 제 아이 교육에서 특권과 반칙을 사용해왔다고 분노한다. 사람들은 공정성과 정의 회복을 외친다. 외침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은 '아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전제다.
사람들은 일부 부모가 반칙과 특권을 사용함으로써, 내 아이가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하락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항의한다. 항의의 대상인 사람들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은가?' 항변한다. 내 아이가 더 높은 가격을 받게 하려고,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건 같다는 이야기다. 항의하는 쪽이든 항변하는 쪽이든,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은 단지 아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인가?' 질문은 없다.
결국 이 사회 정의 논란은 항의로든 항변으로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한국 교육이 자본의 아가리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는 사회적 선언인 셈이다. 모든 아이는 자본의 축적 운동 수단이며, 중요한 건 내 아이가 받을 가격 그리고 가격 공정성이다. 교회는 모든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됨으로써 망하지 않는다. 어느 교회도 ‘교회는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히 망한다. 교육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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