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2/05/26 질문
  2. 2022/05/19 승인
  3. 2022/05/09 작가 소개
  4. 2022/05/06 머리
  5. 2022/05/05 221번째 고그토론
2022/05/26 09:11
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대형 개신교 교회들이 교회 타락을 대변하게 되면서, 작은 교회를 통해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성장을 우선하지 않으며, 신도 수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교회를 분리하는 등의 방식이다. 작은 교회 운동의 요체는 교회 규모가 아니다. 자나 깨나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작은 교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교회들은 그저 가장 추레한 형태의 대형교회다. 작은 교회 운동은 요체는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마몬이 점거한 교회에 예수 정신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가정해보자. 자나 깨나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작은 교회들이 어느 날 경쟁 과정에서 대형 교회의 반칙과 특권을 지적하며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것을 일종의 교회개혁 운동이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정은 동시에, 교회가 인간의 영혼에 관한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인정, 이윤 축적을 소명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인정이기도 하다. 그 운동이 성공해서 반칙과 특권이 사라질 때, 남는 건 교회 형상을 한 수많은 기업이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사회 정의 논란은 교육 문제가 중요한 불씨가 되었다. 사람들은 지배계급이 진영(보수/진보 혹은 좌파/우파라 일컬어지는, 이념적으로 같은 두 이해 결사체)을 막론하고, 제 아이 교육에서 특권과 반칙을 사용해왔다고 분노한다. 사람들은 공정성과 정의 회복을 외친다. 외침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은 '아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전제다.

사람들은 일부 부모가 반칙과 특권을 사용함으로써, 내 아이가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하락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항의한다. 항의의 대상인 사람들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은가?' 항변한다. 내 아이가 더 높은 가격을 받게 하려고,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건 같다는 이야기다. 항의하는 쪽이든 항변하는 쪽이든,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은 단지 아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인가?' 질문은 없다.

결국 이 사회 정의 논란은 항의로든 항변으로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한국 교육이 자본의 아가리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는 사회적 선언인 셈이다. 모든 아이는 자본의 축적 운동 수단이며, 중요한 건 내 아이가 받을 가격 그리고 가격 공정성이다. 교회는 모든 교회가 대형 교회가 됨으로써 망하지 않는다. 어느 교회도 ‘교회는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히 망한다. 교육은 어떤가.
2022/05/26 09:11 2022/05/26 09:11
2022/05/19 09:04
공직자 인사, 특히 검찰 인사 때마다 언론에서 '좌천'이니 ‘영전’이니 따위 표현들이 나온다. 검사가 시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시민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나 근무처에서 수행하는가에 따라 역할에 차이는 있지만, 우열은 없다. 물론 인간의 조직이란 어디든 되어 먹지 않은 일부는 있는 법이다. 권력 놀음과 사익추구에 빠진 검사들끼리 ‘좌천'이니 ‘영전’이니 해가며 수군거릴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그런 말들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면, 시민은 그런 말들을 수용할 뿐 아니라 편을 갈라 응원하기까지 한다면 다른 차원이다. 문제는 어떤 검사가 좌천했는가 어떤 검사가 영전했는가가 아니다. 검사의 역할에 우열이 실재하고, 사회와 시민이 그걸 승인한다는 사실 자체다.
2022/05/19 09:04 2022/05/19 09:04
2022/05/09 09:43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그 표지 작가 소개는 작가가 직접 쓴다. 간결하고 충분한 소개.

짐작하시겠지만, 아이들은 일반적인 작가 소개의 내용들(어른들이 작가에게 궁금해하는 이력들)에 별 관심이 없다.
2022/05/09 09:43 2022/05/09 09:43
2022/05/06 20:02
특히 조국 이후, 머리는 좋은데 윤리의식이 결핍되어 있다는 식의 비판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대체 인간의 머리를 뭘로 여기게 된 걸까. 머리는 생각을 하라고 몸통 위에 붙어 있고, 머리가 좋다는 건 더 깊이 생각하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에게 머리는 좋은데 윤리의식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판을 듣는 사람은, 그저 머리가 별스럽게 나쁜 사람이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 축적을 인생의 우선 순위로 두지 않는다. 머리가 좋은 그는 인생에서 경제보다 더 소중한 것, 정열을 쏟을 다른 것들을 알기 때문이다. 경제는 그것들을 하기 곤란하게 만들 정도만 아니면 족하다. 또한 그는 그런 태도가 아이 교육에도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상류층 만들기 따위로 채우지 않는다. 머리가 좋은 그는 아이가 상류층의 안정을 누리는 대가로, 삶의 협소함과 영적 빈곤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조금 뒤처지거나 때론 불안정한 상황을 맞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뭘 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고 살아가길 바란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동무이며 아이의 동무다.
2022/05/06 20:02 2022/05/06 20:02
2022/05/05 09:55
221번째 고그토론. 네 명의 여성 어린이가 '아프면 쉴 권리'에 관해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어린이는 대개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며, 노동자가 살기 좋은 사회와 어린이가 살기 좋은 사회는 다르지 않습니다. 100번째 어린이날.  


2022/05/05 09:55 2022/05/05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