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매우 주요한 경로임이 분명하다. 다만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한국 시민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주요한 정치적 변화들, 이를테면 4/19 혁명, 5/18 민중항쟁, 1987 정치 민주화, 그리고 2017 박근혜 탄핵 중에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 건 없다. 모두 선거 밖에서, 시민의 직접 행동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시민은 제도 정치와 선거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보여왔다.
애석한 건, 한국 시민이 그런 성취를 시쳇말로 죽 쒀 개주듯 넘겨주는 관습 또한 가진다는 사실이다. 관습은 선거에서, 특히 대선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시민은 일제히 두 우파 정치세력의 범주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진보적 시민은 퇴행을 막기 위해 퇴행한다. 대통령을 탄핵해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도 그런 과정을 통해, 이른바 촛불 정부(애초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지도 않았던 인물로 구성된)에 떠넘겨졌고, 결국 파산했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희망의 씨앗이, 보이든 안 보이든 당선권 밖에 있다는 것, 당선에만 몰두한다면 희망의 씨앗을 포기하는 일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은 더 담대해도 좋지 않을까. 제도 정치와 선거를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준 시민은, 제도정치와 선거 자체를 바꿀 능력을 갖춘 시민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번 선거, 그리고 다음 선거에 걸쳐 당선권 밖의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율을 뚜렷하게 바꿔냄으로써, 전체 정치 지형에 균열을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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