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씨의 글이나 말을 좋아하는 걸 존중한다. 그의 글이나 말에서 특별한 유익이나 영감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가 '시대의 지성'이었다는 식의 표현은 사회적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는 재기 있는 사람이고 그걸 부지런히 활용하여 세속적인 영예를 누렸지만, 지성인의 면모를 보인 적은 없다.
이어령 씨가 정치적 격변에서 양지만 좇은 건 흉한 일이되, 부차적이다. 그는 사회를 말할 때 언제나 민족이나 문명 단위로 퉁쳐서 말하는 방법으로, 민족과 문명 안에서 계급/계층 간 모순이나 적대를 회피했다. 그런 방법은 그의 세속적 영예 추구에 유효했고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그를 소비하는 일에서 불편을 씻어주었지만, 지성과는 동떨어졌다.
20여 년 전, 그의 이대 석좌 교수 퇴임 때 중앙일보에서 '문지방 대담'이라는 걸 했었다. 내가 5분도 안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는 몹시 당황하며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어디서나 제 말만 늘어놓는 걸 대화라 알고 살아왔고, 그걸 사양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대담은 그가 묻고 내가 답하는 형국으로 바뀌어버렸는데, 지면에선 비슷하게 말을 주고받은 걸로 정리되었다.
말년의 그가 종교에 귀의하고 지난 시간을 성찰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를 위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이미 지나치게 많이 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은 그답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진지하고 심각하기만 한 사회는 끔찍하다. 그러나 이 사회가 적어도 이어령이 '시대의 지성'이라 여겨지고 김용옥이 '시대의 석학'이라 여겨지는 상태는 넘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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