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도 하는데, 본디 선거권은 일정한 재산을 가진 부르주아 남성에게만 있었다. 보통선거권은 노동자의, 그리고 여성의 오랜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보통선거권이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순진한 것이었음은 바로 드러났다. 자유민주주의 하의 선거는 그 형식이 무엇이든 인격화한 자본, 즉 부르주아 남성의 이해를 대변한다. 자유민주주의 하의 선거는 시민으로 하여금 두 가지 생각을 일제히 멈추게 한다. 현재의 정치 체제를 넘어서는 정치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신이 정치의 주인이라는 생각. 자유민주주의 하의 선거는 부르주아의 마법이다.
그 구체적 사례를 우리는 또 한 번 생생히 보고 있다. 시민은 유력 후보들의 매일 반복되는 동정과 일거수일투족 따위에 집중한다. 그 덕에 평소 할 줄 아는 게 그런 것뿐이라 비난받는 미디어와 그에 기생하여 조악한 정치공학을 나불대는 논객, 평론가들만 대목을 누린다. 마법 안에서 마법을 벗어날 순 없다. 마법을 벗어나려면 마법의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너머를 생각하는 시민이 길을 연다. 민주적 사회주의, 새로운 사회주의, 혹은 생태 사회주의 뭐든 좋다.
이번 선거는 매우 특이한 면이 있다. 선거는 어찌 됐든 희망과 꿈이 유포되는 장이다. 다들 한껏 기대에 부푼다. 머지않아 실망하고, 다음 선거가 다시 희망과 꿈을 유포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체제 너머의 상상력과 에너지가 씻겨 사라진다. 그래서 부르주아에게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이번 선거는 기이할 만큼 희망과 꿈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다. 널리 유포되는 건 '사상 최악의 후보들’이라는 탄식이다. 아마도 이건 역사의 사인일 것이다. 이 선거는 이 체제를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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