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지면 부족으로 빠진 부분을 올렸고, ‘주제가 커서 속편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적었지만, 지면 성격상 그럴 가능성은 사실 매우 적다. 읽는 데 참고가 될 이야기를 조금 메모해 본다.
1. 수치심
그 지식인들이 정말 수치심을 느꼈는지 느꼈다면 얼마나 느꼈는지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고, 물론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이 글에서 수치심은 그들 개인의 심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공통으로 처한 심리적 상황(그들의 심리가 공통으로 처한 사회적 상황)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열정적인 신념은 그것과 관련한 현실이나 사회 구조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20세기 초 서유럽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에게 공산당, 그 중앙 지도부로서 소련 공산당, 그리고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그렇다. 그런데 그 현실이나 구조를 신뢰하고 존경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번엔 열정적인 신념이 손상을 입게 된다.
사실 이런 일은 얼마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을 때 대응 방법도 그리 복잡할 게 없다. 우리는 그걸 ‘비판적 성찰’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중반 서유럽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그걸 못하고, 회피와 도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프랑스 지식인들의 행태가 불거졌는데, 그로부터 희한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들은 단지 폼나게 추락하면서 ‘난다’고 말하는 <토이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였다. 그런데 그들이 ‘’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로운 나는 방법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고 CIA의 응원까지 받으며 미국에서 상품으로 재가공되어 전세계에 퍼져나간다. ‘포스트모더니즘 소동’이다. 그 소동이 신자유주의에 길을 열어준 건, 본문에 언급했듯 한국에서 특히 심각했지만 세계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2. 알튀세르
본문에 적었듯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복권하기 위해 갖은 노력(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를 도입하며)을 다 한다. 알다시피, 그에게 현실적으로 긴급한 숙제는 마르크스(성숙기의, 과학적인)를 회피하기 위해 청년 마르크스(헤겔에 물든, 낭만적 휴머니스트인)를 다시 불러내는 신좌파와의 대결이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 사상이 초기와 성숙기로 ‘인식론적 단절’을 보인다고 전제하고(물론 이건 <공산당선언>과 <자본>의 차이만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이다.) 성숙기만 읽자, 즉 <자본>을 읽자고 제안한다. 단, 역시 헤겔에 물든 <자본>의 첫머리 부분은 빼고.
흔히 <자본>의 핵심으로 잉여가치론, 즉 자본주의가 계급 착취 사회임을 규명한 것을 든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자본>의 근본적 성취는 첫째로 상품의 ‘가치’(현대 경제학은 가치는 제쳐두고 ‘가격’만 말한다)와 노동의 관계를 분석하여, 생산에 관한 공동체 질서라는 게 없는 자본주의 사회가 재생산을 유지하는 원리(현대 경제학은 그것을 단지 ‘시장원리’라고만 말한다. 사회과학인가 종교인가?)를 해명한 것. 둘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사물과 사물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는 이유가 ‘상품생산’ 사회라는 구조 자체에 기인한다(대개 ‘자본주의의 비인간성’ ‘자본주의의 소외 현상’ 등 정서적으로만 표현된다. 그리고 보다시피 자본주의적 삶을 실제로는 열심히 수용하되, 조금은 고뇌하는 얼굴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중산층 리버럴에게 주로 애용된다.)는 걸 해명한 물신숭배론이다.
그 둘이 <자본>의 전체 논의를 이끌고 간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둘을 헤겔의 악한 흔적이라며, 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튀세르라는 명민한 인물에게서 이런 어이없는 오류는 왜 일어났을까? 우리는 그 오류가 앞서 말한 수치심의 상황에서 분투한 알튀세르의 ‘오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알튀세르 ‘이후’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의 끝없는 지적 혼란도 물론 그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포스트 구조주의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 소동’으로 변해가는 과정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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