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윤리는 다르다. 우리는 흔히 보수주의자보다는 자유주의자에 자유주의자보다는 좌파에 좀 더 엄격한 윤리 잣대를 적용한다. 그러나 윤리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좌파 등 이념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한 인간의 이념이 그의 윤리에 영향을 미칠 순 있되, ‘결정’하진 않는다. 보수주의자 중에서도 윤리적 인간은 있고 좌파 중에도 비윤리적 인간은 얼마든 있다.
조국 사태는 현재 한국 자유주의자들(대개 ‘진보’라 불리는)의 윤리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들 상당수가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를 넘어 좌파 코스프레를 하면서, 생활 세계에서는 보수주의자 이상으로 기득권을 좇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더 편하게 말하면, 한국 자유주의자들 중엔 양심을 팔아먹은 나쁜 놈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중대한 사회적 기만이 폭로되고 많은 사람이 사실 그대로 현실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사태가 또 다른 중대한 오류나 편향을 만들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윤리가 이념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자유주의자들과 그들 이념이 갖는 사회적 역할이나 가치는 그들의 윤리와 무관하다. 그들 윤리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든 없든, 그들이 국가와 결합한 거대독점자본(재벌)을 기반으로 하는 형태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보수주의자들과 ‘경쟁적 공생 관계’를 이루며 지배계급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조국 사태를 경과하며 우리가 얻은 뜻밖의 소득이 있다. 평소 잘 드러나지 않았던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자유주의자들을 재발견한 일이다. 나 역시 그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는다. 386/민주화운동 세력의 윤리 파탄은 적어도 20여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윤리는 어디까지나 ‘그들 이념 안에서’ 윤리이다. 그들의 윤리에 대한 존경과 그들 이념에 대한 평가나 태도는 별개의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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