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에 해당되는 글 14건
2017/03/27 20:38
진작에 그 졸렬함이 공인된 사람들이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평소 사회적 식견이나 인품이 어지간해 보이던 사람이 대선 후보의 캠프나 후원회에 들어가서 보이는 졸렬함은 매우 아쉽고 또 측은하다. 왜들 그리 눈알이 돌아서 난리일까. 민주당 경선이 무슨 혁명운동이라도 되는가?
2017/03/27 19:24
대선은 물론 중요하다. 이후 5년 동안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깊기 때문이다. 다만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대선은 사람들이 5년 동안 여러 사회적 사건과 경험들을 통해 어렵사리 진전시킨 의식과 상상력을 '내 후보의 당선'이라는 협소한 틀에 우겨넣어 휘발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선의 중요함을 인정하는 일과 대선이 체제의 강력한 안전판임을 기억하는 일은 병행되는 게 좋다.
2017/03/21 21:27
계몽이라는 말을 지도하려 드는 것, 쯤으로 오해하고 반감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계몽은 오히려 지도 받는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 제 눈을 뜨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그런 오해(의 만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인민의 의식이 자신들의 헤게모니 확대에 장애가 되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걸 차단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계몽이 극우 세력 비판 정도일 때는 한껏 부추기지만, 자본주의/신자유주의 비판으로 넘어갈라 치면 정색을 하고 '좌파가 당신을 지도하려 든다!' 호들갑 떠는 것이다. 비열한 자유주의자들.
2017/03/19 18:46
모를 일이지만, 홍석현 씨가 이번 대선에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진 않을 것이다. 검토는 치밀하게 꽤 오래 전부터 해왔으니, 할 거면 좀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후보로 나서든 안 나서든 홍석현의 정치 활동 본격화는 보수의 혁신이 본격화했음을 알려준다. 한국 보수의 기본 틀은 반공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조선일보의 힘은 꽤 지속되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힘이지 생성되는 힘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펼쳐낸 풍경은 보수의 현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수의 혁신 작업이 만들어내는 과거의 불꽃 같은 것이다. 강준만 선생이 ‘손석희 현상’이라는 새 책에 내 글 '매트릭스'를 언급하며 ‘김규항의 손석희 걱정’이라는 글을 썼다는데, 아직 읽진 못했지만 현재 상황에선 지나치게 소박한 비평이 아닌가 짐작된다. 내가 오늘 현실을 '매트릭스'라고 표현한 건 보수가 어지간한 민주시민의 진보와 정의는 품어버리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상식, 정의, 공정 보도, 친일 독재 척결 같은 구호들이 무력해진 후를 고민해야 한다. 구 보수의 야만과 저급함을 진열하고 개탄하는 일만으로, 자본주의 문제와 대면하지 않고도 진보 시민의 지위를 확보하는 게으름은 끝낼 때가 되었다.
손석희 뉴스의 위기나 변질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홍석현이 자신의 최대 정치 자산을 섣불리 망가트릴 이유가 없고, 손석희 씨도 그런 상황을 수용할 만큼 머리가 나쁜(혹은 양식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2017/03/19 10:28
먼저 내가 바라는 사회의 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현실에서 구현해나가는 데 부합하는 혹은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후보를 선택한다.(모든 후보가 지나치게 어긋난다면 선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게 선거에 임하는 민주 시민의 기본이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가 선택한 후보에 모든 걸 맞추고 조정한다. 시민이길 포기하고 정치종교의 신도가 된 사람들, 그들의 신앙심이 민주주의를 망가트린다.
2017/03/18 15:47
어쩌면 지금을 '부끄러움을 잊은 시절'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파는 완전한 부끄러움을 추구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고 좌파는 나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을 게시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는다.
2017/03/14 15:01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심각하고 시급한 사회적 사건과 현안들의 홍수 속을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워낙 일들이 거듭 터지고 또 그에 반응하다보면 불과 몇달만 지나도 몇달 전 일인지 몇년 전 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문제는 그런 일상을 살다 보면 현실을 좀더 장기적인 관점, 즉 진행 중인 역사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사유하는 능력이 갈수록 퇴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현실의 반복'이다. 늘 치열하게 싸우고 낱개로 보면 분명히 해결도 되는 것 같은데 좀더 장기적인 맥락에서 보면 현실이 계속 반복된다. 박근혜 탄핵을 이루어낸 우리에겐 그 싸움을 치르느라 퇴화한 것을 회복하는 숙제가 있다.
2017/03/11 14:57
한국 사회의 숙제는 통합이라는 헛소리. 한국 현대사는 오히려 통합할 수 없는 것, 통합해선 안되는 것들을 통합하려는 폭력의 역사였다. 사회는 통합할 수 없다. 통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를 없앤 사회, 파시즘이다. 한국 사회의 숙제는 통합이 아니라 제대로 된 분열, 즉 민주주의다.
2017/03/10 14:32
맞는 말이다. 탄핵은 그 자체로 어떤 도달이나 완결은 아니다. 탄핵은 그저 우리가 가까스로 출발점에 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빌어먹을,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우린 얼마나 애쓰고 근심했던가. 적어도 오늘 하루는 탄핵 이후의 막막한 현실이나 정치공학일랑 접고 동무와 함께 폭음하거나 모처럼의 타락을 도모할 일이다.
2017/03/07 09:31
양향자를 비판하면서 삼성 출신은 어쩔 수 없다거나 민주당이 왜 저런 사람을 영입했는가 말하는, 즉 양향자를 민주당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건 상황의 본질을 흐린다. 주목할 건 민주당 최고위원 양향자가 고 황유미 씨 10주기에 기자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한 말로 충분히 드러나는 민주당 지도부의 노동관이다. 삼성전자 임원이라는 이력으로 영입된 그가 지금까지 민주당 지도부와 대화에서 반도체 산재 문제나 반올림에 관한 대화를 한번도 안했을까? 해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제 생각이 일반 정서에 가까움을 거듭 확인했기 때문에 기자들 앞에서까지 하는 '실수'가 나왔다고 보는 게 좀더 합리적일 것이다.
2017/03/06 09:07
부정되어야 할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테면 이건 교회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끝내 타락한 교회다라고 하는 이유는, 이건 교육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굳이 나쁜 교육이다라고 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 체제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비판적이고 양심적인, 체제에서 내 역할과 '지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정되어야 할 체제에서 비판과 양심보다 심각한 악은 없다. 그것은 여전히 희망이나 개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체제를 미화함으로써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2017/03/05 19:19
한국 보수 개신교회가 세계기독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박정희식 유토피아 건설의 중추였기 때문이다. 그 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전위이자 홍위병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결박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박정희식 유토피아의 교조인 "하면 된다"에 "믿으면 받는다"로 조응하며 근면하고 순응적인 대중을 재생산해냈다. 사교(邪敎)적 면모는 사실 그 교회의 본성일 뿐이다. 우리는 그 교회에서 예수가 아니라 박정희의 귀신을 본다.
2017/03/05 08:55
똑같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두 세력이 적대하는 희한한 풍경. 한 세력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란 단지 반공주의를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과 다른 모든 것을 공산주의라 여긴다. 또 한 세력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란 시장주의를 의미한다. 그들은 반공주의와 싸워 얻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회를 고스란히 시장에 헌납했다. 두 세력은 서로를 척결 혹은 청산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는 반공주의와 시장주의의 극복을 통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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