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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0 15:41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
2015/07/16 18:54
탄원서에 참여하는 일은 대개 작성된 글에 서명만 보태는 방식이라 어려울 게 없는데, 실은 어렵다. 앞머리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말 때문이다. 존경은 개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놈의 존경인가. 사람의 죄를 가리는 일을 하니 존중할 순 있으되 존경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이미 탄원서의 관행이라 빼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어째야 할까. 사상이나 신념에 의한 행동과 관련한 재판의 탄원서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면 어떨까.
2015/07/16 11:45
둘째(열아홉 살 먹은 남자)는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1주년 즈음 거의 매일 광화문에 나가선 다음날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곤 했다. 평소에도 주요한 집회나 시위에는 나가는 편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연유가 은근히 궁금했다. 얼마 후 둘이 만나 밥을 먹는데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좀 신기한 게 있어요.”
“뭐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이 딱 지나니까 다 사라진 거예요. 외치고 싸우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유가족분들도 그대로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탈학교다 보니까 친구들도 탈학교나 대안교육 이런 쪽이 많은데 그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대부분 진보적인 분들이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이야기를 안 해도 누구 아들이다, 그런 이야기가 결국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게 되게 싫었어요.”
“아빠 아들인 게 창피하다?”
“아뇨. 사람을 누구 아들이다, 그런 식으로 보는 게 우선 별로고요. 누구 아들이니 어떻게 자랐을 것이다, 그런 편견 같은 건 더 기분 나쁘고요.”
“나도 그런 오해를 받곤 해. 저 사람은 유별난 좌파니까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사회의식을 주입시켰을 것이다. 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잖아요. 아빠가 저나 누나한테 사회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한 기억조차 없거든요. 우리가 물어보면 그때나 대답해주는 정도?”
“그랬지.”
“아빠 따라 집회나 시위에 간 기억도 없어요. 아 딱 한 번 있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그땐 정말 몇 달을 그러고 있으니까 한 번은 데리고 가야겠다 싶더라.”
“그런데 심지어 그런 아빠 밑에서 자라서 얼마나 좋으냐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그의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람들의 짐작과 달랐다면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열아홉이 되어 바로 그 일에 대해 ‘이젠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너희 만나기 전에 진보 쪽 운동권 쪽 선배들의 아이들 몇을 봤는데 감탄을 했어. 사회문제에 관한 의식이 어지간한 운동권 대학생 수준을 넘는 거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좀 달라졌지.”
“알 것 같아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야. 똑똑한 아이라 일컬어지며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자기밖에 모른다거나, 어른들이 감당하는 세계가 아닌 자신의 진짜 세계 안에선 오히려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야.”
“아빠는 누나나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행동 같은 건 좀 빡빡하게 야단도 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사회의식이라는 게 재료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거지. 순수한 분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 자신이 본 걸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정열 같은 거 말이야. 그건 지식이나 이념 이전의 것이고, 자기가 감당하는 실제 삶에서 길러지는 거거든. 그런 재료가 성장하지 않는데 만날 집회나 시위에 데리고 다니고 사회 이야기를 들려주면 오히려 불균형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지.”
“이번에 느낀 게 바로 그런 건데요. 진보적인 사람들이나 그 아이들이나 어떤 패턴 같은 게 있더라고요.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행동하고 몰려다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외치고 싸우고 하더니 딱 그 시기가 지나니깐 미리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함께 사라져버리는 그런 거요. 그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에도 혼자 들러보고 그래요. 며칠 전에 갔을 땐 지난번에 인사를 나누었던 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내 손을 잡더니 와줘서 고맙다며 우셨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시점에 어떤 장소에 나가는 걸로 너무 쉽게 ‘문화시민’의 자격을 얻는 것 같아요. 말이 좀 이상한데 하여튼요.”
나는 문화시민이라는 표현이 매우 날카롭다고 느꼈다. 세 해 전 그의 누나(그보다 세 살 위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그녀는 또래 셋과 몇 주 동안 전국여행을 했다. 한층 건강해진 얼굴로 돌아와 여행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던 그녀가 말했다.
“이번 여행을 꾸린 선생님 덕에 지역에선 나름대로 진보적인 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분들 집에서 자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뭔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비슷한 느낌?”
“그분들은 자신을 빨강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데요. 나는 노랑으로 느껴졌어요.”
그녀의 말에 내가 어떻게 대꾸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진보는 대개 진보 코스프레하는 자유주의자들이야’ 식으로 삭막하게 말하진 않았다. 두 사람이 3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나이일 때 들려준 이야기들은 실은 연결되어 있다. 쉽게 문화시민의 자격을 얻는 거대한 빨강 패턴이 존재한다. 빨강으로 보이는 그 패턴은 실은 노랑이다. 패턴은 전 사회적 차원에서 빨강의 가능성과 내용을 노랑 수준으로 억지한다.
거대한 빨강 패턴. 그것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장벽인지도, 대다수 인민들이 진보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가게 된 이유 역시 삶의 직관으로 그 장벽을 직시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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