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3/06/29 우리 모두
  2. 2013/06/29 본색
  3. 2013/06/27 1+1
  4. 2013/06/26 이야기인즉슨
  5. 2013/06/25 널리널리
  6. 2013/06/21 자전거 타이포그램
  7. 2013/06/20 굼뜸
  8. 2013/06/18 왼쪽의 힘
  9. 2013/06/15 연주
  10. 2013/06/11 요기가 놀이
  11. 2013/06/11 고래 115
  12. 2013/06/08 춤추는 숲, 관객과의 대화
  13. 2013/06/07 일보
  14. 2013/06/07 티셔츠 밖의 체
  15. 2013/06/06 벡의 빽판
  16. 2013/06/05 최와 안
  17. 2013/06/05 In a Silent Way
2013/06/29 21:07
권채림(14세)의 약속의 말에서

"숫자나 남들에 의해 자신의 가치가 정해지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란 듯이 1등을 해야 하고, 남들 위에 서야 합니다.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을 성적을 기준으로 서열화하고 차별합니다. 학생들이 성적을 필두로 힘, 경제력 등의 기준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은 학교를 통해 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약속 합시다. 성적 스트레스로, 학교 폭력으로 해마다 수많은 생명들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립니다.."
2013/06/29 21:07 2013/06/29 21:07
2013/06/29 12:33
어제 '노동과 세계'에 실린 최저임금 기사와
작년 이맘때 기사.



내 자식이 스무살이 되어설까,
'최저임금' 이야기만 나오면 갈수록 더 가슴이 아려온다.
기사에 적혔듯 올해 자본 측의 최종안은 '50원 인상'이다.
50원.. 주 5일 40시간 노동이라 치면 월 8천원.
왼쪽의 힘이 무너지니 이놈들이 마음껏 제 본색을 드러낸다.
우리도 이젠 본색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2013/06/29 12:33 2013/06/29 12:33
2013/06/27 11:12

친구가 “10년 전 나는 계급적 변혁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젠 영적 변혁에 관심을 갖는다라고 적은 걸 봤다. 그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굳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10년 전이든 지금이든 넌 언제나 사회적 존재이면서 영적 존재인데 말이야.”

2013/06/27 11:12 2013/06/27 11:12
2013/06/26 16:17
전에 트위터에선가 언뜻 언급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출판평론가 변정수가 ‘김규항 아포리즘’이라는 가제로 내가 지금까지 쓴 글에서 문장들을 뽑아 원고를 만들었다. 그걸 노순택의 사진과 함께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진가와 책을 내게 되어서 좋긴 한데, 그런데 노순택 이사람, 보면 볼수록 글을 참 잘쓴다. 산문도 잘 쓰지만 ‘얄읏한 공’이니 ‘어부바’(齬蜉波)니 하는 타이틀의 감각은 흐뭇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이야기인즉슨, 이런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는 말이다. ‘내 글엔 노순택의 사진이 필요한데 노순택의 사진에도 내 글이 필요한가?’

2013/06/26 16:17 2013/06/26 16:17
2013/06/25 12:16
좌판을 책으로 낸다. 인터뷰이들에게 원고를 보내 제 대사를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하는데 소통에 가장 애를 먹었던 게 문정현 신부였다. 추락사고 후유증에다 강정의 곤란한 상황이 그를 갈수록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가까스로 원고를 보내시며 “책 나오기 전에 사람들에게 읽혀도 되겠냐”고 하시기에 “얼마든 좋다”고 말씀드렸다. 밥이 되고 약이 되는 말씀들, 세상에 널리널리 퍼지길.


김규항(이하 김)=부모님이 늘 순교자 정신을 가르치셨다고 들었다.

문정현(이하 문)=활동하다가 사제들 중에 구속이 되었을 때 그 부모님들이 동료 사제를 원망하고 감옥간 아들 원망하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부모님이 다르다는 걸 절감했다. 난 도리어 ‘흔들리지 말라고 대건 순교자처럼 의연하라’는 응원을 받곤 했다.

김=어릴 적 일상에서는 어떠한 가르침을 주셨나.

문=‘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셨다. 먹을 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도 더 못한 이웃에 쌀을 갖다주라고 ‘솥뚜껑 열고 넣어놓고 오라’고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키셨다. 돌이켜보면 그런 가르침들이 나라는 사람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부터 신학교 생활을 했지만 내 공부의 절반은 부모님의 가르침이다. 일흔이 넘었지만 그분들이 그립다.

김=신부님의 부모님은 더 특별한 경우지만, 그래도 전에는 여느 부모들도 아이에게 인간의 기본 꼴을 만드는 교육은 했던 것 같다. 공부 잘하라고 하면서도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가르치고 지나치게 욕심 부리면 죄받는다고 동무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젠 좌파 부모도 그렇게 가르치길 두려워한다.

문=사람을 키우는 건지 서커스단의 동물로 훈련을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서 인간성이 형성될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정말이지 너무나 걱정이다. 앞이 캄캄하다.

김=신자유주의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가장 큰 재앙은 교육의 목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서 ‘얼마짜리가 되는가’로 바뀌어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가면 ‘공멸’인데 너나없이 돈에 대한 탐욕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혀있는 시절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고 말했는데.

문=그런 변화는 우리 사제들에게까지도 스며들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들이 가난하게 지냈다. 민주화운동 한다고 전주에서 서울 오갈 때 여비가 없어서 애를 먹곤 했다. 80년대 지나면서부터 윤택해지더라. 그리고 많은 게 변했다. 모두가 더 잘살기를 바라는 한 미래가 없다. ‘더불어 가난한 사회’가 살길이다. 식구들(군산 ‘평화바람’ 식구들)과 내 벌이로 함께 살며 공부하고 있다.

김=명동성당에서 농성할 때 형편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문=용산에서 나와 4대강 단식농성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 약자의 피신처라는 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걸 절감했다. 교구청 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이 ‘영업방해’라는 언사를 사용하질 않나. 명동성당이 아니라 명동주식회사구나 싶더라. 추기경이나 본당신부나 후배들인데(추기경이나 본당신부나 선후배들인데 #추기경은 서품 5년 선배 명동 본당신부는 5년 후배)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천막도 없이 노숙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한테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성 후에 군산에 돌아왔다가 다시 명동성당에 들어갔다. 그 즈음 서각을 시작했다. 오전에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새겼다가 오후에 그걸 팠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분노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더라. ‘내가 저 사람들 원망할 수 있는가, 나는 저 사람들 욕할 만큼 제대로 사는가, 저 사람들 욕하기 앞서서 나부터 제대로 살아보이자.’ 그 뒤론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김=그런 성찰과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영성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여느 활동가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강정으로 왔는데.

문=강정이 자꾸 떠올랐다. 용산에 있을 때부터 요청이 있기도 했고 명동에서 나오게 되니 자연스럽게 오게 되더라. 처음엔 혼자 왔는데 얼굴을 못 들겠더라.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돌아가서 괴로워하다가 평화바람 식구 중 둘이 ‘같이 갑시다. 뭘 할 수 있을지 가서 봅시다’. 따라 나서서 와서 살게 되었다. 와서 보니 돈이 너무 없어서 ‘평화상단’을 만들어서 재정 사업을 시작했다. 강동균 마을회장 얼굴을 보며 살았다. 저 얼굴이 마을 사람의 얼굴이라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을 사람으로 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대선 이후 마을사람들을 마주하기 너무 마음 아프다. 그럴수록 ‘아니오’ ‘예’를 분명히 말하고 싶다.

김=강정 싸움은 특별한 데가 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대추리처럼 집도 뺏기고 땅도 뺏기고 하는 게 아닌데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요즘 같은 시류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문=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싸우는 걸까. 나는 구럼비에 와보고 금세 알 수 있었다. 구럼비와 그 앞바다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있다. 사람을 한없이 품는다. 말로 설명하긴 힘든 그러나 누구나 그곳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이건 해쳐선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김=나 역시 처음 구럼비에 갔을 때 그걸 느꼈다. 문제는 그런 가치가 설득력을 갖기 힘든 세상이라는 건데.

문=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가치를 접고라도 강정 해군기지의 진행과정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탈법과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걸 하나라도 제대로 따지면 공사는 즉각 중단되는 게 옳다. 9월6일엔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 유물까지 주르룩 나왔다. 문화재청에서 녹색 표시를 했는데 녹색은 그 어떤 공사나 개발도 못하는 곳이다. 헌법보다 위라고 한다. 그걸 무시하고 구럼비를 파괴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김=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문=이기고 지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김=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십자가의 승리’라고 말하는 건 그 실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랑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사회적 싸움에서 이겼다 졌다 하는 건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무망한 일인 경우도 많다. 이겼지만 결국 진 싸움도 있고 졌지만 이긴 싸움도 있는데.

문=물론 당장으로야 지는 것보다 이기면 좋겠지만 이렇게 압살당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나. 나에겐 이기고 지고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나중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지금은 주민들을 도와 열심히 싸우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한다.

김=모든 게 경제적 계산으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시절의 반영이겠지만 요즘은 사회운동도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70년대부터 활동해온 사회운동의 산 증인이자 현역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문=오래 전 목숨 걸고 함께 하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 남았다고 해도 제대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더 그렇게 되어버렸다.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게 늘 덫이다.

김=현실은 오로지 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만 바뀌는 법이라는 점에서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변화의 걸림돌인 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문=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들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선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IMF 때 김대중씨가 국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고 갑시다, 우리 힘으로 일어서봅시다 하길 기대했는데 그렇게 안하더라. 있는 놈들한테 문 활짝 열어줘 버리고 무릎을 꿇더라. 그게 신자유주의 세상의 시작이고 결국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노무현은 허망해서 말할 게 없다. 이명박은 그 시절을 토대로 집권하고 살고 있다.

김=두 분에게 투표했었나.

문=하지 않았다. ‘비판적 지지’는 김영삼 때부터 나온 이야기다.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들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뒷걸음질인지 깨달았다. 비판적 지지는 한번으로 족했다.

김=지금도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 바람이 거세다. 20여년째인데.

문=대중들이 당장 눈앞의 상황에 휩쓸리고 그걸 좀더 현실적인 선택이라 여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나 자신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는 그런 바람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득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두 정권 때 이런저런 유혹도 많았다.

김=기득권이 단지 돈이나 이권만이 아니라 문화권력 차원까지 포함한다고 할 때 두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일들도 관변이 되고 체제 내의 일이 되었다. 신부님이 그런 데 관여했다면 하고많은 민주인사들처럼 되었을까.

문=그걸로 나는 끝났을 것이다. 내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 때문이다. 예수가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고 내가 동의했는데 민주화 운동이든 반이명박이든 무슨 이름을 달았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거스른다면 나를 구분지을 수밖에 없다.

김=결국 ‘길 위의 신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웃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 누가 지었는가.

문=2002년에 MBC에서 나를 한달간 따라다니며 프로그램을 찍었다. 그걸 제목을 붙이는데 작가도 아니고 도와주는 젊은 친구가 편집 화면을 보다가 ‘길 위의 신부구만’ 했단다. 그 이름이 딱 마음에 박히더라. 그 후 내가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돈 받은 걸로 프로그램 제작진들 몽땅 밥을 샀다.(웃음)

김=물론 농담이지만, 신부님의 삶이나 행동은 성격이나 기질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문=혈액형도 O형이고 체질도 태양이니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어디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만있질 못한다. 현장에 안가면 못살겠다. 같이 참여해야 하고 같이 얻어터져야 하고. 그러나 그 기반은 역시 신앙이다. 10·26 때 잡혀 들어가서 언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판에 그런 기도가 나오더라. ‘지금 죽어도 좋으나 비굴하지 않게 죽게 해주십시오.’ 예수의 삶의 흔적,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김=개인적으로 예수의 삶에서 가장 큰 공부가 된 것 중에 하나는 바리새인들과의 갈등과 반목이었다. 지금의 수구 보수세력에 해당하는 사두개나 지배세력과의 갈등이야 당시 의식있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바리새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개혁세력이나 시민운동 세력에 해당하는 사람들 아닌가.

문=바리새인? 우리 주변에 쌓이고 쌓였다. 우리를 아예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황청에서조차 깊은 우려와 관심을 동시에 갖는 정의구현사제단에도 그런 경향들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 편이기도 하지만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고 우리의 싸움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다. 선명해야 한다. 선명성이라는 건 복잡할 게 하나도 없다. 고통받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것. 누가 내 이웃인가를 분명히 하면 된다.

김=누가 내 이웃인가만 분명히 하면 복잡할 게 하나도 없다는 말씀 전적으로 공감한다. 신부님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70년대 초반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게 정의였지만 이젠 자본독재의 세상이 되었다. 그걸 잊으면 정의를 버리고 이웃을 외면하게 되는 셈이다. 신부님은 평화를 위해 싸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평화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의식이 많다. 뭔가 조용하고 온화하기만 한 어떤 것으로 말이다. 평화란 흐트러지고 깨진 세상의 본디 조화를 회복하는 노력이니 때론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문=이라크 파병에 즈음해서 전국 유랑을 두 번 하면서 평화가 뭔지를 몸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2004년 5월에 평택 평화대축제 연설에서 그걸 말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를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다.’

김=강정에서 평화는 무엇인가.

문=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평화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 평화는 없다.

(2011년 10월)
2013/06/25 12:16 2013/06/25 12:16
2013/06/21 22:27
Bicycle Typogram 자전거의 구조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즐겁게 타면 되지 그걸 꼭 알아야 하는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근사한 발명품’의 구조와 이름을 아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글자로 재미있게 그린 게 있어 가져왔다. 참고로, 이 그림은 구형 로드사이클을 기준으로 한 거라 변속기(Shifter)가 다운튜브에 있는데 요즘 자전거는 대개 핸들바에 브레이크와 함께 달려있다. 출처는 aarline.info.
2013/06/21 22:27 2013/06/21 22:27
2013/06/20 14:16
두어달 넘게 '가능한 한 일을 안 하고'(라기보다는 하려 해도 못하고)
지냈더니 영 일이 굼뜬데 그게 답답해야 할 상황인데도 답답함은커녕 묘한 즐거움이 있다.
나라는 인간은 나라는 시스템에서조차 반역적인가, 자문하며 웃는다.

2013/06/20 14:16 2013/06/20 14:16
2013/06/18 03:14
오랜 만에 쇼스타코비치 5번을 꺼내 듣다 현실 사회주의 생각을 했다. ‘인민의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다가 인민에 의해 무너진 사회.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채만수처럼 ‘스탈린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련이 미국보다 못한 사회였는가’라며 결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한때 현실 사회주의의 전도사였고 여전히 만날 맑스주의를 말하면서도 현실적 결론은 ‘안철수처럼 어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인 이아무개까진 아니더라도 나같은 80년대 운동권들은 대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굴절된 비굴함이 있다. 그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껏 경도되었던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낡고 비현실적인 좌파로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비굴함.

386의 추레한 감상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오늘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본연의 이상과 거리가 있는 사회였다는 생각은 일반적인 것에 가깝다. 2008년 미국발 공황 이후 맑스를 다시 읽는 일련의 사회주의 붐에서도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반영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그런 부정 일변도의 관점이 빠트린, 혹은 놓치는 것들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는가 아닌가, 아니면 얼마나 아니었는가를 떠나 현실 사회주의라는 존재가 자본주의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에 대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 자체론 결코 좋은 게 아니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엔 매우 좋은 것이었다.

케인즈주의니 유럽식 복지시스템이니 하는 수정된 자본주의는 현실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구현되기 어려웠다. 유럽식 복지시스템이 그걸 주창한 사람들과 사회의 원만한 합의(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하는)에 의해 구현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의 껍질일 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강력하게 존재했고 그 힘, 즉 강력한 왼쪽의 힘이 자본주의 사회를 ‘아직 사회주의로 넘어가지 않은 사회’로 재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수정을 견인해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은 노동자 인민들이 온통 빨간물이 들어 자칫 사회주의로 넘어가느니 ‘계급 타협’을 해서라도 체제 유지를 선택했다.

현실 사회주의라는 왼쪽의 힘이 사라지자 수정된 자본주의들이 퇴조하고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오른 쪽의 힘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지구라는 행성은 유례없는 야만의 상태로 돌입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옥이다. 북유럽을 비롯 여전히 심각한 야만의 상태는 아니라는 사회들은 모두 스스로의 왼쪽의 힘을 가진 사회들, 다시 말해서 강력한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가진 사회들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 전분야에서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사회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없다. 박근혜 보수 정권이나 지리멸렬하는 민주당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왼쪽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몇해 동안 ‘반이명박 연대’라 불린 선거전술을 통해 그나마 있던 주요한 왼쪽의 힘인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은 거의 괴멸 상태에 이르렀다.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힘을 모으면서 장기적으로 내 살림을 챙긴다는 반이명박 연대의 대의는 급한 불도 못 끄고 제 집만 몽땅 태워버린 것이다.

문재인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복지나 노동의 면에서 그리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세력이 더 이상 그들을 강제하고 견인하는 왼쪽의 힘이 없는데 왜 제 이념을 넘어서는 정책을 구현한단 말인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재인의 패배에 낙심하는 진보는 차고넘쳤지만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의 괴멸에 낙심하는 진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짓는 데 어떻게든 인생의 한 구석을 할애한 사람들이 말이다. 이쯤되면 오늘 한국의 진보는 뭔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게 아닐까. 물론 현실에 대한 견해는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진보세력 대부분이 어떤 거대한 홀림에 의해 변하는 줄도 모른 채 변해가는 건 파국의 징후다.

왼쪽의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무작정 미화할 건 없다. 한국의 조직 노동, 즉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던 참이고 진보정당은 평범한 인민보다는 인텔리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왼쪽의 힘이 없는 한국 사회는 자본의 왕국, 재벌 천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왼쪽의 힘이 없는 한 박근혜 대통령인가 문재인 혹은 안철수 대통령인가는 엠비시와 케이비에스의 사장이 누가 되는가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 어렵다. 왼쪽의 힘이 없는 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자본의 왕국’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왼쪽의 힘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막한 이야기지만 희망을 찾는 길엔 피할 수 없는 선택도 있는 법이다.(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3/06/18 03:14 2013/06/18 03:14
2013/06/15 13:58
IMG_7537

오랜 만에 사토 유키에와 연주.
무슨 곡을 할지 정하지 않는 게 둘의 공연 규칙처럼 되어서
이젠 미리 곡을 정하면 필시 어색할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2013/06/15 13:58 2013/06/15 13:58
2013/06/11 16:54
sun
2013/06/11 16:54 2013/06/11 16:54
2013/06/11 16:50
115_표1_800
역사만화 '채널 H1'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준비해온 개편 작업들이
하나둘씩 실현되면서
짜임새가 한결 나아지고 있다.
2013/06/11 16:50 2013/06/11 16:50
2013/06/08 13:06
3시 인디스페이스.
춤추는 숲 상영 후 강석필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2013/06/08 13:06 2013/06/08 13:06
2013/06/07 16:19
편집장 현선은 대개 다섯시 반 쯤에
일보(일일 업무보고)를 보내오는데
오늘은 세시에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일보 맨 끝에 적혀 있길.

"오늘 시청 앞에서 열리는 쌍차 행사 참여로,
안현선/강서림/김선영 일찍 퇴근합니다. "

2013/06/07 16:19 2013/06/07 16:19
2013/06/07 14:31
한형식 씨가 번역한 공부하는 혁명가 북토크 기사.
진행자로 참여했기 때문에 내 말은 않고 주로 질문을 했는데
언급된 "이념의 에누리' 현상은 따로 한번 써볼 생각이다.

이념의 에누리가 어느 정도인가는
한 사회의 진보 인텔리들의 지적 수준과
상태를 잘 보여주는 지표라 생각한다.

2013/06/07 14:31 2013/06/07 14:31
2013/06/06 18:11
앨범마다 장르가 바뀌는 재주많은 뮤지션, 벡의 앨범 가운데 'Sea Change'를 좋아한다. 벡은 정식앨범 외에  '레코드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음악 놀이를 진행한 바 있다. 음악 친구들과 모여 사전 협의 없이 하루 동안 한 뮤지션의 앨범을 커버한  것. 벨벳 언더그라운드, 레오나드 코헨, 스킵 스펜스, INXS, 야니가 벡의 홈피에 올려져 있다. 벡의 빽판이랄까.

2013/06/06 18:11 2013/06/06 18:11
2013/06/05 18:36
최장집과 안철수의 결합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최장집의 현실 진단(('노동 없는 제도정치'가 문제라는)과 해결 방안('제도정치가 희망'이라는)의 괴리를 생각한다면 사실 그다지 이상할 건 없다. 인상적인 건 최장집은 늘 "노동자"라고 하는데 안철수는 그예 "근로자"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 차이가 결국 두 사람의 차이인 셈이다. 그 차이는 과연 차이일 수 있을까.
2013/06/05 18:36 2013/06/05 18:36
2013/06/05 18:25
In a Silent Way.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 가운데 가장 자주 듣는
단 두곡이 만들어내는 담백한 풍류의 무한 향연.
제목부터 죽여주는.


2013/06/05 18:25 2013/06/05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