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 씨에게 편지를 규항넷에 올려도 되겠느냐 물었을 때 흔쾌히 좋다는 대답을 듣고 사실 뜻밖이었다. 편지에 담긴 견해는 제정신이 박힌 좌파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것이지만 개인과 단체의 실명이 언급되어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흔쾌히 수락한 건 무작정한 연대와 연합이 강요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경욱 씨가 다시 연락을 해왔고 따져묻지 않고 편지를 내렸다. 한나절 동안 올려놓은 편지를 읽을 분들은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조금씩 불편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이 못된 뒷말이나 주고받는 걸로 해소되지 않고, 이명박'만' 욕하면 진보이고 이명박 정권'만' 교체하면 진보집권이라 주장되는 경박한 현실인식을 넘어서는 데 쓰이길 빈다.
'2011/01'에 해당되는 글 20건
- 2011/01/31 경박한 현실인식
- 2011/01/31 진실은 불편하다
- 2011/01/29 지나가듯
- 2011/01/28 광기에 맞서는 또 다른 광기
- 2011/01/27 방향성이 잘못된 에너지
- 2011/01/27 하우스
- 2011/01/27 26X103
- 2011/01/26 제안문 초안 2차 버전
- 2011/01/25 경제, 경제학
- 2011/01/24 기괴하고 슬픈 쇼 - 신정환 2
- 2011/01/24 도박 중의 도박 - 신정환 1
- 2011/01/22 두 가지 공지
- 2011/01/22 각성과 꾸짖음
- 2011/01/22 박완서 선생 (2)
- 2011/01/20 글이 뜸한 이유 (1)
- 2011/01/13 속 시원하다 (2)
- 2011/01/13 마음의 독재 (1)
- 2011/01/11 내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2)
- 2011/01/06 좌파시민행동(가칭) 제안문 초안 (1)
- 2011/01/03 예수전 신청 마감 (4)
이명박 반대 말고는 아무런 내용도 비전도 없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자신들이 정권교체의 유일한 대안이라 으름장을 놓고 진보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그에 줄을 서는 걸 ‘진보연대’ ‘진보집권’라 말하는 참으로 충충한 시절. 그 풍경을 바라보다 불현듯 저들에게 대의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각성된 시민들이 직접 행동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겨울이 가기 전에 사회에 내놓는 걸 목표로 제안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름이 ‘좌파시민행동’이다.
가칭임에도 ‘좌파’라는 말이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빼자는 의견이 많다. 알다시피 그 거부감은 극우 독재 시절 빨갱이 사냥의 공포에서 온다. 극우독재가 물러간 지 30여년, 말하자면 그 공포는 우리 마음에 남은 독재다. 마음의 독재는 우리뿐 아니라 우리를 빨갱이로 몰아대던 사람들에게도 함께 남아 작동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좌파’라는 말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극우세력의 상용어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례는 더 있다. 한국에선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이라는 말을 상용하는데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다들 ‘인민’(영어로 ‘피플’)을 상용한다. 국민이란 ‘국가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그 상용만으로 국가주의적인 정서가 내면화한다. 국가 안에서의 이해관계는 상충되는 경우가 많음에도(이를테면 정몽구의 이익과 현대자동차 비정규노동자의 이익은 전혀 상충된다) ‘국익’이니 ‘국가경제’니 따위 말도 안 되는 선동이 통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이미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얼마든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의 독재가 우리를 막아설 뿐이다. ‘괜찮을까?’
그리고 ‘동무’. 지금 우리는 친구라는 말을 상용하지만 옛날엔 대개 동무였다. 동무는 친구보다 훨씬 정겨운 말이고 어깨동무라는 말이 있듯 아이들에겐 동무가 친구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다. <고래가그랬어>는 2003년 창간 때 이 문제를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결국 <고래가그랬어>의 주인은 아이들이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당하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독자들은 예상보다 쉽게 익숙해졌다. 이따금 새로운 독자부모들이 조심스레 문의해오면 ‘괜찮습니다’하며 같이 웃는 게 전부다.
‘좌파’ ‘인민’ ‘동무’는 제정신을 가진 모든 나라에서 상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들을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반세기의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치렀다. 그렇게 되찾은 소중한 우리의 말을 우리는 여전히 남의 말인 양 꺼려하고 우리에게서 그 말을 빼앗아갔던 저들은 도리어 본디 저희 말인 양 마음껏 상용하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좌파’ ‘인민’ ‘동무’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벽이나 책상 위의 달력에 5월 1일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라. 떡 하니 ‘근로자의 날’이라 적혀 있다. 근로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지어낸 말이다.
마음의 독재를 몰아내자. 우리의 말을 우리의 말로 만들자. 저들이 좌파라고 몰아대면 ‘나 좌파인데 좌파가 어때서?’ ‘난 좌파는 아니지만 좌파가 어때서?’라고 받아치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부자와 권력자가 아니라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인민입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짓눌리지 않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만듭시다’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색한가? 우리의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게? 그러니 상용하고 또 상용하자. 진보적인 사람들부터 진보적 언론부터 앞장서야 하는 거야 두말할 것 없는 이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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