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0/03/31 고래동무를 위한 <작은연못> 시사회
  2. 2010/03/28 합창
  3. 2010/03/26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4. 2010/03/25 12년, 그리고 소박한 주석
  5. 2010/03/25 인터뷰집
  6. 2010/03/24 좌우분별조차 없는
  7. 2010/03/23 26일 궁금한 것들
  8. 2010/03/21 교회 하나
  9. 2010/03/21 기억
  10. 2010/03/20 열강
  11. 2010/03/18 인터뷰집
  12. 2010/03/18 3월 26일 밤
  13. 2010/03/17 예수전 1장 21~22절
  14. 2010/03/17 트위터
  15. 2010/03/16 2박3일
  16. 2010/03/13 시네마톡
  17. 2010/03/13 사진 꼭지
  18. 2010/03/13 약한 모습
  19. 2010/03/12 삼성을 타도하는 방법
  20. 2010/03/12 인터뷰 특강
2010/03/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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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시사회에
고래이모, 삼촌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10년 4월 5일(월) 20:00
장소 : CGV왕십리 7관
대상 : 고래이모, 삼촌(신청자외 3인까지 동반 가능합니다.)
인원 : 200명
신청 : dongmoo@goraeya.co.kr
(이름과 연락처 동반 인원수를 알려주세요.)

이 많은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2010/03/31 14:54 2010/03/31 14:54
2010/03/2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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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하는 고래 식구들.
왼쪽부터 창국, 현선, 광현, 나, 조중사. (사진 고왕림)

2010/03/28 22:39 2010/03/28 22:39
2010/03/2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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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락 선생이 작년에 낸 연주음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을 며칠 전에야 들었다. 전곡이 다 좋은데.. 리샤르 갈리아노와 같이 연주한 리베르탱고에선 어느 순간 두 최고수의 아코디언 날이 부딪혀 일으키는 섬광에 눈물마저 핑 돌더라. 중학생 때던가, 아버지가 즐겨 듣던 몇 개의 테이프 가운데 <심성락 전자올겐 연주>라는 게 있었는데.. 선생은 이제 일흔다섯이란다. 노악사의 연주음반이니 테크닉은 좋을지 몰라도 좀 구리겠지 싶은 분은 날 믿고 일단 들어보시길. ㅎ


2010/03/26 00:46 2010/03/26 00:46
2010/03/25 22:58

(인터뷰집 머리글)

글을 쓰고 그걸 기반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해온 지 12년이 되었다. 우연히 그리고 조금은 늦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작하자마자 내 인생이 되어버렸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1998년은 공교롭게도 구제금융 사태 직후,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히 빠져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내 글쓰기와 활동도 그런 변화에 조응하며 변화해왔다. 이 책은 그 12년에 대한 소박한 주석서인 셈이다.

나는 이미 진영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는 그런 진영의 이면 혹은 사이에 가려진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진정한 진영을 만들어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았고 오독도 많았다. 이 책이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인터뷰란 인터뷰어의 질문에 한정하여 답하는 것이니 온전한 설명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때로는 ‘독설가’라 불리기도 했고, 때로는 ‘굳은 얼굴의 지사’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아마도 ‘사회적 글쓰기란 내가 지지하는 계급의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행동이자 싸움’이라는 내 믿음에서 생겨난 이미지일 것이다. 지난 12년에 대한 소박한 주석을 붙였으니 이제 그 믿음은 지속하되 내 본색이 드러나는 좀 더 문화적인, 좀 더 재미있는, 좀 더 충만한 활동을 하고 싶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가운데는 조금은 심각한 부분도 있고, 인터뷰를 한 시점이 경과한 때문에 괜스레 격앙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네 삶이 본디 구불구불한 것이려니 여겨주면 좋겠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을 소망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내놓는 일이 이렇게 면구스러울 줄 알았다면 이 책을 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시길.


2010/03/25 22:58 2010/03/25 22:58
2010/03/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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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집. 고래 식구들 한권씩 나누어드리고..
예쁘게 이름 적어 내일 고래이모 삼촌들 드리고..

2010/03/25 17:07 2010/03/25 17:07
2010/03/24 21:17

안상수 씨가 ‘좌파정권 10년으로 흉악범죄와 아동 성폭력 범죄가 늘었다’고 말했단다. 좌파 정체성과 그런 범죄들을 관련짓는 것부터가 얼토당토않은 일이지만, 이른바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이가 좌파가 뭔지 우파가 뭔지도 모르니 딱한 일이다. 그런데 그건 안 씨뿐 아니라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한국 극우세력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치인입네 언론인입네 사회지도층 인사를 자처하는 아저씨들이 좌우분별조차 못하는 건 어린이교양지 발행인으로서 너무나 민망한 일이라, 조용히 설명부터 해드릴까 한다.

쉽게 말해서 우파란 현 사회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이고 좌파는 현 사회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사람이다. 현 사회체제가 뭔가? 그 아저씨들은 단박에 “대한민국!” 할 테지만 그건 나라 이름이고, 현 사회체제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다. 그러니까 우파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고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우파라고 해서 다 같은 우파는 아니다. 우리가 존중의 의미를 담아 말하는 우파란 적어도 자본주의 본연의 정신, 즉 수백년 전 부르주아들이 봉건사회를 무너트릴 때 내걸었던 자유정신과 시민사회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우파다.

그런 최소한의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극단적인, 상종 못할 우파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체로 극우파의 역사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반공주의를 내세운 반세기 동안의 극우정권들이다.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같은 우파들이 그들과 갈등해왔다. 그리고 극우파들은 우파들에 좌파 딱지를 붙였다. 우파에 좌파 딱지를 붙임으로써 그들을 궁지로 몰고, 또 자신들은 멀쩡한 우파인양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세월이 수십년 지속되면서 극우파들 스스로 그런 왜곡을 스스로 사실이라 믿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 극우파의 눈에는 상식과 양식을 가진 모든 사람은 좌파다. 그들이 종교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한 명진 스님을 ‘좌파 주지’라 말하거나, 급진적인 사회운동가들에게서 체제내적 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박원순 씨를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인 것이다.

극우파의 그런 무지스런 행태가 지속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우파들의 요상한 태도다. 언젠가부터 우파들은, 이를테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세력은 극우파의 좌파 딱지에 대해 “우리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실적인 진보”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은근히 좌파 행세를 하려 들기까지 한다. 그건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코미디인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전에 좌파였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신념을 포기하고 전향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내가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고 나는 달라진 세상에서 여전히 좌파적 실천을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극우파와 우파가 우파와 좌파 역할을 갈라 맡는 바람에 녹아나는 건 좌파들이다. 극우파가 지배하던 반세기 동안은 아예 입도 뻥긋하기 전에 간첩으로 몰려 박멸되어야 했고, 민주화가 된 다음엔 우파들이 좌파 노릇을 대신하는 바람에 투명인간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좌파가 녹아나니 좌파가 대변해야 할 서민대중의 삶이 녹아나고... 서민대중의 삶이 녹아나니 나라의 미래가 안 보이고... 좌우분별조차 없는 이 나라를 대체 어찌할까나. (한겨레)

2010/03/24 21:17 2010/03/24 21:17
2010/03/23 17:03

(26일 행사와 관련하여 받은 문의사항들과 고래의 답변을 활력부에서 정리한 것.)

이번에도 유명인사들이 많이 오시나요?
공연자와 이야기손님 외에 따로 초대하는 인사는 없습니다. 누구든 고래이모 삼촌으로서만 참여하게 됩니다.

작은 공연 형태라고 하던데요?
지난 번 정태춘 박은옥 선생의 공연이 무척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후원주점의 여흥 형태였지요. 이번엔 무대에서 순서가 진행될 때는 테이블은 촛불만 켜는 등의 방법으로 좀 더 공연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늘 사회를 보던 권해효 님도 이번엔 고래삼촌으로서 테이블에 앉고 김규항 발행인이 이야기도 해가며 진행합니다.

입장을 고래동무 후원자로 한정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렇게 하면 수익도 줄 텐데요.
고래이모 삼촌들에게 뭐 한번 드린 게 없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작게라도 고래동무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멤버십 행사를 많이 꾸려보려고 합니다. (4월 5일엔 고래동무를 위한 <작은 연못> 시사회도 있고요.) 물론 당일 수익을 생각한다면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고래이모 삼촌의 즐거움이 더 중요합니다.^^

동반 손님은 한 사람만 가능한가요?
여러분과 같이 오셔도 됩니다. 되도록이면 고래동무를 권하고 싶은 분, 고래동무 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분들과 함께 오시면 좋겠지요.

비흡연자에게 담배 냄새는 너무 괴로워요!
이번엔 행사장 안에서는 금연하려고요. 그래야 비흡연자도 아이들도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경품 추첨 같은 건 없나요?
있습니다. 공연과 이야기 중간 중간에 추첨해서 나눠드립니다. 모든 입장권 한 귀퉁이에는 경품 추첨을 위한 번호가 적혀있으니 들어오실 때 경품 추첨함에 넣어주세요.

2010/03/23 17:03 2010/03/23 17:03
2010/03/21 23:49
망원동 새민족교회에 강의하러 갔다. 별다른 준비 없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교회가 예수를 왜곡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다”라는 말로 시작된 강의는 질의응답에 사인회(예수전을 단체로 구입하여 읽었단다)까지 시종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졌다. “혹시 모르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여러분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비현실적인 순혈주의자 같으니’ ‘혼자 도덕군자인 체 하는군’ 하며 입을 삐죽거려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어찌된 사람들인가, 눈빛 가득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고 화답하며 미소 짓는 그들은. 오랜 만에 교회 하나 발견했다.

2010/03/21 23:49 2010/03/21 23:49
2010/03/21 23:17

송두율 선생 일에 대해 이런 글을 썼었다는 걸 왜 기억 못했을까.
결국 '남의 일'이었던 게지..
 
더러운 공화국

2010/03/21 23:17 2010/03/21 23:17
2010/03/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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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인문학교 첫번째 시간. 다들 돌아가고 궁금한 게 남은 한 아이에게 열강하는 홍기빈 삼촌. 인문학교 강의는 고래에 기사로 싣고 나중에 모아서 책을 만들 계획인데, 이 강의 하나만으로도 책 한권을 만들 수 있다 싶을만큼 좋은 강의였다. 아이는 보령에서 왔단다. 속초에서 온 아이도 셋이나 있고..

2010/03/20 23:23 2010/03/20 23:23
2010/03/18 17:42
인터뷰집 오케이 교정을 보고 왔다. 내기로 해놓고는 막상 작업이 무르익을 무렵 내고 싶지 않아져서 인터뷰어와 출판사 식구들을 꽤나 애를 먹였는데, 하여튼 이젠 제작에 넘어갔다. 26일밤에 드릴(추첨으로) 이런저런 선물들 가운데 ‘김규항 저서세트’도 있는데  한권 더 추가해 드릴 수 있게 된 건 잘 된 일. ㅎ

2010/03/18 17:42 2010/03/18 17:42
2010/03/1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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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02:32 2010/03/18 02:32
2010/03/17 19:01

21 그리고 그들은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서] 가르치셨다. 22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매우 놀랐다. 그분은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회당은 원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 바깥의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예배당이자 마을회관 같은 곳인데 예수 당시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많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회당에 모여 율사들에게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했다. 율사는 율법을 전업으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랍비'라는 경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바리사이인들이었다.
사람들은 예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란다. 여기에서 '권위 있다'는 말은 민주적이지 않은 어떤 억압적인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분명한 존중이나 신뢰를 말한다. 그럴 만도 했다. 하느님이 달랐던 것이다. 율사들은 하느님을 율법에 담아 가르쳤다. 율법은 '토라'라고도 하는데 구약성서에서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맨 앞 다섯 권의 책,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를 일컫는다. 율법에 의하면 하느님은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존재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켜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매우 꼼꼼하게 명령했는데, 그 명령을 잘 따르면 기뻐하고 상을 주었지만 어기면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선 매우 차갑고 잔혹했다. 온 인류의 보편적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인 민족 신으로서 하느님이었던 셈이다.
예수는 그런 하느님상을 뒤집는다. 앞으로 거듭 언급하겠지만, 예수에게 하느님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와 같은 존재다. 예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누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와 대화하려 하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은 행여 진노할까 두려워 엎드려 눈치를 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주보며 대화하고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은 비로소 율법의 굴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인민들과 만났다. 하느님이 그런 분이셨다니! 인민들은 경탄하며 예수의 가르침에 기꺼이 '권위'를 부여한다.


2010/03/17 19:01 2010/03/17 19:01
2010/03/17 18:50
트위터를 며칠 해봤는데 자신을 드러내고 하는 소통이라선지 나름의 격조도 있고, 또 다정한 리플 덕에 미소짓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좀 허한 느낌이 든다. 도란도란은 좋아하지만 재잘재잘은 역시 안 맞는 걸까? 팔로한 분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쉬기로.

2010/03/17 18:50 2010/03/17 18:50
2010/03/1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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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동안 지리산과 남도를 돌고 이제 막 고래 도착,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다락방에 앉았다. 내일까지 써내야 할 원고만 네 개이니 그다지 낭만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오니 좋긴 좋구나. (화개 어느 마을을 돌아드는 나. 사진 정태춘)

2010/03/16 19:07 2010/03/16 19:07
2010/03/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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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미리 받아 질문과 이야기거리를 열심히 메모했는데 영화 시작 전에 만난 감독은 “되도록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했다.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의 배경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걸 충분히 아는 걸 전제로 대화하면 아무래도 지루해지더라는 것. “그래. 알았어.” 준비한 질문은 전혀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이야기 손님이 아니라 진행자 노릇을 하느라 영 어색했다. 그래도 자리가 거의 찼고 주최 측 말로는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고 하니 다행. 내가 이야기손님이라고 부러 오신 분들에게 늦은 인사드린다. (한 관객에게서 선물 받은 자전거메신저 1회 이용권.)

2010/03/13 20:35 2010/03/13 20:35
2010/03/13 10:09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이 고래 사진강좌 꼭지를 맡기로 했다. 만화가 윤태호와 함께 작업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반듯하고 살가운 꼭지가 될 듯 하다. 사람이 그러하니. ㅎ

2010/03/13 10:09 2010/03/13 10:09
2010/03/13 09:46
후배 몇과 밥을 먹는데 또 정치좌표 이야기가 나왔다. ‘000는 만날 지가 좌파라더니 그냥 자유주의 우파더만.’ ‘역시 공병호는 자유기업이야.’ ‘000는 진짜 딱 중앙이던데? 그러니까 000 놈들 앞에서 징징 울지.’ 비평과 인신공격의 제한선을 넘나들어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겠구나 싶은데 그중 하나가 나에게 묻는다. “규항넷엔 마땅치 않다는 듯이 적었지만 솔직히 흐뭇한 마음도 있죠?” 물었다. “흐뭇하다기보다는.. 다행스러웠지.” “왜요?” “생각해봐. 내가 평소에 이야기하는 걸로 볼 때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왼쪽이라는 건 분명하잖아. 그런데 이런 설문 조사라는 게 오차도 있고 기술적인 문제도 있는 법인데 좌표 값이 내가 비판하던 사람들보다 더 오른쪽으로 나왔다고 해봐 꼴이 얼마나 우스워. 안수찬 씨한테 설문지 보내고 나서 좀 걱정되더라구.” 다들 와 하며 웃는다. 후배들, 아니 내 주변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나에게서 약한 모습을 발견할 때 그리들 즐거워하는 걸까? ㅎ

2010/03/13 09:46 2010/03/13 09:46
2010/03/12 00:47

기독교사상에서 삼성 특집기사를 한다며 글을 써달라고 했는데 오늘은 김상봉 선생이 프레시안 릴레이 기사에 참여해달라고 했다. 김용철 씨 책을 계기로 삼성 타도를 위해 대거 나서는 형국인데.. 글을 쓰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삼성을 타도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진심으로 삼성을 경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삼성직원인 동창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동생이나 조카나 자식이 삼성 직원인 걸 은근히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2010/03/12 00:47 2010/03/12 00:47
2010/03/1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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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부모, 1등 대학생이라..


2010/03/12 00:37 2010/03/12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