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5/05/29 산울림 콘서트
  2. 2005/05/27 평신도 아카데미
  3. 2005/05/25 참관 수업
  4. 2005/05/21 해방의 맛
  5. 2005/05/20 역사 교사의 편지
  6. 2005/05/18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7. 2005/05/16 주기도
  8. 2005/05/11 대단한 꼴값
  9. 2005/05/03 유시민과 그의 친구 역사학자
2005/05/29 15:54
후배의 호의로 산울림 콘서트에 갔다. 29년 된 밴드를 보러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장충체육관을 채웠다. 옆에 앉은 후배들이 “이곡 제목이 뭐냐”고 연신 물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따라 부르는 건 물론 간주까지 외울 수 있는 노래들의 제목이. 잊은 걸까, 원래 제목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악한 연출(난데없는 탭댄스 인트로를 비롯한)과 시골 노래방보다 못한 음향이 몰입을 방해했지만(록 콘서트란 밴드와 관객의 섹스와 같다), 그래도 ‘산울림 콘서트’였다.
2005/05/29 15:54 2005/05/29 15:54
2005/05/27 18:15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에서 해마다 평신도 아카데미를 연다. 신문에서 기사를 볼 때마다 가야지 하면서 번번이 못 갔는데 이번엔 꼭 가게 되었다. 강의를 한다. 맡은 주제는 “자본주의와 기독교! 공존이 가능한가.”

"평신도! 금기에 도전한다!”

제4기 평신도 아카데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평신도란 누구인가요? 평범한 신자, 보통의 신자인가요? 그렇다면 특수한 신자는 누구인가요? 신자유주의 시대에 구조 조정, 비정규직, 여성 등의 어려운 처지에 속한 평신도인지라 그냥 교회에서 위로 받고 가끔 의미있는 일이 있으면 참여하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언제 우리가 원하는 세상(하나님 나라)을 누가 만들어주나요?

우리는 자유합니까? 혹시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는 아닌가요? 우리가 무엇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를 얽어매는 굴레는 무엇인가요? 자본? 정치? 종교? 혹시 우리도 이미 매몰되어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소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리 저리 치이는 평신도가 교회에서도 이런 저런 울타리를 쳐 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낡은 종교와 교리와 교권의 틀을 벗어나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그 틀들은 깨질 것입니다. 진리를 믿는다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시 : 2005년 6월 7일(화)- 7월 5일(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명동향린교회 3층 예배실(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
수강비 : 2만원(각 강좌 5천원)

1강. 자본주의와 기독교! 공존이 가능한가?(6월 7일 / 김규항 님 -칼럼리스트)
2강. 성경! 신화와 해석 사이?(6월 14일 / 정진홍 교수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3강. 친일∙친미 기독교의 죄책 고백은 가능한가?(6월 21일 / 김승태 목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운영위원/연구실장)
4강.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6월 28일 / 한인철 목사 - 연세대 교목)
5강. 생명윤리! 교회는 어떻게 대답하나?(7월 5일 / 박병상 박사 - 환경학자, 인천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궁금하신 사항은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0505-505-3542, www.csjp.or.kr)로 문의하시면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드립니다.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2005/05/27 18:15 2005/05/27 18:15
2005/05/2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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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창으로 들여다보니 네 명씩 둘러 앉아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김단은 남자 아이 셋과 모둠을 이루었는데 연신 웃고 뭐라고 떠드는지 말도 많다. 담임 교사는 교대를 갓 졸업하고 온 여성인데 듣던 대로 좋아 보인다. 교사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따뜻하든가, 합리적이든가. 따뜻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교사는 아이의 정신에 흠집을 낸다. (발표하는 김단의 모둠)
2005/05/25 12:51 2005/05/25 12:51
2005/05/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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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이 <강>을 빌려준다고 해서,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서 싣고 왔다. 가로 210센티미터. 작업실 한쪽 벽이 꽉 찬다. 작업실을 낼 때부터 호철의 작품을 디지털프린트해서 한쪽 벽을 채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오리지널 작품을 걸게 되었다. <강>은 동학농민군들이 강처럼 대열을 이루어 진군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만화 기법으로 묘사된 수많은 인물들(언제 김단, 김건과 함께 몇 명인지 세어 봐야겠다)은 낱낱이 살아있다.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아니 곧 죽음을 맞게 되는 그들의 얼굴은 대부분 한가롭고 익살스럽다. 작가는 해방의 상태란 ‘한가롭고 익살스러운 상태’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해방의 상태를 깨칠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운동을 했고, 운동의 일상에서 작은 해방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역사적 소재라 해도 관에서 만든 작품들, 즉 관료들이 작가에게 돈을 주고 만든 작품들에서 해방은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터무니없이 과장된 근육에 입을 앙다물고 눈에 핏발이 선 인물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개나 소나 “지나간 권위주의 정권 시절” 운운 하는 골때리는 시절이지만 운동을 안 해 본 사람은 '해방의 맛’도 모른다.
2005/05/21 14:32 2005/05/21 14:32
2005/05/20 22:02
반갑습니다.
수업 비는 시간에 김규항씨의 블로그에 놀러왔다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이라는 글을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부산에 사는 사람입니다.
남들 앞에서 직업을 밝히길 꺼려하는 편인데, 뒷 이야기를 계속 하려면 말씀드려야겠군요
직업은 교사입니다. 역사교사이지요.

요즘 아이들과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합니다.
처음 교사가 되고 계기 교육을 시작했을 땐 광주학살의 참혹함을 아이들에게 강조했습니다.
죽어간 시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요.
잔혹한 만큼 아이들이 분노하면서 5.18을 기억하길 바랬기 때문이었지요.
실은 교사인 제가 분노에서 헤쳐 나올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지요.

올해로 4번째 광주 5.18수업을 합니다. 매번 할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과연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진정 바라던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나는 5.18의 어떤 면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인가?

언젠가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총을 잡았는가?
그 말도 안 되는 끝없는 폭력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을 짓밟아버린 자들에 대한 저항
그 때문이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광주를 바라보는 민주, 인권, 평화 그런 거대(?) 담론들을 위해 죽어간 것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80년 5월 18일 광주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그런 거리낌도 있었습니다. 총을 반납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던 자들이 지금 광주에서 혹은 한국사회 내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피값으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표현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적절하고 옳은 표현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광주의 모습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는 김규항씨의 글을 보면서 제가 가진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제 머리 속의 '민주주의'란 김규항씨 말처럼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그래서 그 알맹이가 빠져버린 그런 것이었습니다.

광주와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를 짝지어 생각하길 거부했던 나의 편견 때문에
저는 역사적 맥락에서 광주가 가지는 민주주의의 정신
해방 광주의 자율적 공동체에서 보이는, 진정한 '민주'를 실현했던 광주의 정신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외치는 '민주주의'라는 말속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교사인 저도 광주 정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아이들에게 3가지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속에 '5.18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물론 수행평가 성적에 반영하겠다는 식의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말이죠

1. <5.18 민중항쟁> 글에서 이야기하는 '자기긍정성'이란 무슨 의미인지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2. 자신이 생각하는 '5.18정신'이란 무엇인지 쓰세요
3. 1980년 일어난 '5.18 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2005년 구덕고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 여러분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을 서술해 보시오.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그럼에도
과연 고1인 아이들이 이 어려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서 이런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겠지요.
인터넷이나 책에서 베껴 쓴 - 남의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뿐입니다.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면 정리한 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의 오류를 깨닫게 해주신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2005년 5월 20일 강화정



(강화정 님의 허락을 얻어 올립니다.)
2005/05/20 22:02 2005/05/20 22:02
2005/05/18 00:00
2005년 5월 18일
연세대 강연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식하다’고 합니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그런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하여튼 광주는 25년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건 광주항쟁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광주항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학술적인 책을 사볼 것까진 없고 여러분들 아마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갈 테니 시간을 조금만 헐어서 광주항쟁 관련한 사이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5.18기념재단도 있고 여럿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통해 이른바 ‘민주주의’의 뜻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광주 전의 민주화 운동은 반독재 운동, 즉 선거나 개인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었지요. 그러나 광주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좀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운동으로 바뀝니다.

그 동기는 미국입니다. 광주가 계엄군이 일시 퇴각하고 해방된 상태이던 80년 5월 24일 미국 항공모함 코럴씨 호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신군부의 쿠데타나 계엄군의 작전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죠.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데 이건 미국이라는 일개 나라에 대한 자각을 넘어 미국식 민주주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발전합니다. 80년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의 해방 광주의 모습은 바로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를 진압한 군사 파시즘은 더 강력한 공포정치에 들어갔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되살아났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한국의 사회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좇는 부분이 남아있었지만 그 성원의 대부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좇는 변혁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87년 6월 29일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속 정착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년대에 변혁운동을 했던 운동세력의 상당수가 변신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민주주의니 변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80년대 말 무너지자 그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많은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운동 안 했던 사람에 비하면 백배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활동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사용해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불거지는 경우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입니다. 학생 시절의 신념은 슬그머니 뒤로 버리고 그 운동을 통해 얻은 제 명망을 사용해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다 개소리고 그들은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10년 쯤 지나면 이 자리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종목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시민운동입니다. 활동가라면 한눈에도 체제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등포나 구로동에 구질구질한 사무실에서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시내 한 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에 넥타이를 맨 활동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의 주제는 근본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체제 안의 문제들을 위주로 했고 시위나 싸움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정치개혁운동들과 결합하고 확산되면서 결국 정권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개혁운동들이 갖는 의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의 초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제가 만들었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는 일종의 좌우 합작이었지만 공동의 적은 조선일보라고 밝히고 있지요. 저는 개혁운동의 진보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기존의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잡아냈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그 운동이 갖는 반동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여전히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진보운동을 철지난 운동,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행태로 몰아붙이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개혁운동이 ‘오늘의 진보운동’을 자처하는 한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이 진보를 자처하면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극우보수 대 개혁보수의 구도가 되고 진보는 아예 무대에서 밀려나버리는 것입니다.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합리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나쁜 신문이 곤경에 처하고 비리 정치인이 잡혀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도 언론이나 정치란 바로 세상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비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바로 그 언론이나 정치의 뿌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문제이고 계급적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건 이젠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절반은 비정규노동자고 그 비율은 늘어가는 중입니다. 농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지요. 그런 문제들은 개혁운동에서 배제되고 촛불시위에서도 배제됩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면 초인적으로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 학교 안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래 맑스주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말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도 모르게 개혁운동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파시즘 상태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시즘, 군사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이지요. 군사파시즘은 억압과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본의 욕망을 심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본의 매우 충성스런 백성들입니다. 얼마 전 고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와 관련한 반응들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고대나 고대학생들의 태도가 “밥그릇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그 발언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적혀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말은 속으론 인정하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정한다는 뜻인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건희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원수라 저런 놈 밑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워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그런 파렴치한 인간을 왕처럼 떠받들며 노조조차 없는 회사에서 ‘삼성맨’의 자부심에 젖어 삽니다. 참으로 무지한 그러나 돈은 많은 주인 아래서 배불리 먹여준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머슴들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런 삼성맨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못되어서 안달이 나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이건희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 모든 사람이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아도 정신만은 해방되어 있던 시절보다 스스로 정신을 내어준 시절은 더욱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억압하는 걸 넘어 우리 스스로 자본의 욕망에 젖어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오늘 부모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동무를 누르고 이길 것만을 가르치고 사랑이나 존경조차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엘리트가 된다 한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박사학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박사학위는 내가 아니라 돈에게 수여된 것입니다.

이건희가 돈이 없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까요? 모든 사람이 그의 돈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건희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울타리 밖에선 다 보고 있는데 혼자 스키를 타는 사람이 과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완전히 파탄 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건희라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추켜올렸으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5.18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른 이유도 오늘이 5.18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묵념도 했지만 5월에 죽어간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광주는 처음엔 엘리트 지식인들,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납니다. 계엄군과 협상을 해서 더 이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헛되게 죽지 말고 힘을 기르자,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주장하던 수습파들은 떠나고 무릎 꿇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항쟁파만 남습니다. 그 순간부터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광주 인민의 군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항쟁파의 대부분은 평소에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인간으로서 품위가 목숨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 취급 못 받고 사는 세상,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처럼 살자. 결국 그들만이 인간의 품위를 간직했습니다.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난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매일 밤 인터넷에서 활동하지요? 지금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먹고 나서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다들 사회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사회평론가인 시절이지요. 그러나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이지만 그 대부분은 개혁이라는 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체제는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고 부추기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들”로서 활동합니다. 오로지 체제가 제공하는 이슈에 매일 밤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2005/05/18 00:00 2005/05/18 00:00
2005/05/16 17:19
KNCC 주기도 새 번역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KNCC에서 새로 번역해 내놓은 주기도문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듣고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성차별적이다’가 아니라 ‘제한한다’.. 쾌감이 느껴질 만큼 예리한 논리다. 주기도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면 된다” 일러 준 기도문(마태복음 6장)이다. 당시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예수의 일행 가운데는 늘 여자들이 있었고(동서고금을 통틀어 현인의 일행에 여자가 포함되는 일은 전무하다. 최근에나 가능한 이야기) 예수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한 것도 여자들이었고 예수가 부활했다는 걸 처음 알린 것도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는 ‘아버지’라는 말을 썼을까? 예수는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곤 했다. ‘압바’는 우리말로 ‘아빠’다. 자, 가만히 눈을 감고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떠올리며 ‘아빠..’ 하고 불러보자. 어린 아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무한히 기댈 수 있는 어떤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이 드는가?(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감성이 파탄 난 것이니 삶을 되돌아보길..ㅎㅎ) ‘아빠’는 어린아이의 말이다. 어린 아이는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말은 남자 여자를 분별하는 의식이 생긴(주입된) 다음에 사용하기 시작하는 말이다. 어린 아이에게 ‘아빠’란 ‘남성’이 아니며 권위적인 존재도 아니다. 어린아이에게 ‘아빠’란 ‘무한히 기댈 수 있는 품’이다. 예수에게 하느님은 그런 존재였다. 주기도문은 그런 뜻을 잘 드러내야 한다. '아버지'가 남상적이고 권위적인 뜻이 담긴, 혹은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뜻이 담겨있다는 게 파악된 시절에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 물론 당장 하느님을 아빠라 부른다면 정서적 충격이 있을테니, ‘아버지’는 그냥 ‘하느님’, 반복될 경우엔 ‘당신’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 나름의 주기도문을 정리해보았다. 주기도문 맨 끝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부분은 나중에 첨가된 것인데 일단 빼보았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조금씩 더 다듬어 볼 생각이다. 누구나 나름의 주기도문을 정리해보고 또 조금씩 다듬어 본다면 좋을 것이다.


주기도

하느님,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고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우리가 잘못한 이을 용서했듯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십시오.
아멘.
2005/05/16 17:19 2005/05/16 17:19
2005/05/11 20:32
김경이 제 칼럼 스타일 앤 더 시티를 마치면서 “대단한 꼴값이었다”라는 내 소감을 인용했다. 한겨레21을 챙겨보는 편이 아니라(내가 챙겨보는 잡지는 고래뿐이다) 많이 보지 못했지만 개성 있는(유행하는 말로 ‘쉬크’한) 칼럼이었다. 그러나 “대단한 꼴값”이라는 말은 그의 칼럼에 대한 소감이기 전에 늘 내 ‘글쓰기 활동’에 늘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소감보다 관능을 깨우는 나의 자전거라는 칼럼에 대해 반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모든 운동엔 그 운동에 맞는 복장이 있는 거야. 자전거인으로서 말하는데, 스판덱스 바지는 엉덩이 선을 드러내려는 게 아니라 자전거의 복장이란 말야. 스판덱스 바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나 알아?” “뭐가 들었는데요?” “패드가 들었지. 엠티비든 사이클이든 패드를 대지 않고 장거리를 타면 엉덩이가 다 나간단 말야.” 김경은 킬킬 웃으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내게 물었다. “선배도 그럼 자전거 탈 때 그런 바지 입어요?” “당연히, 안 입지.” 스판덱스 반바지가 두 개나 있지만 그걸 입고 나간 적은 없다. 탈 때야 문제가 없지만 타러나갈 때, 이를테면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아주머니를 만나는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심란하다. 그래서 그냥 나풀대지 않는, 스프라켓에 바지가 끼어들지 않을 정도의 복장만으로 버텨서 엉덩이 자체에 패드가 생기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그런 ‘생체 패드’는 반나절 라이딩 정도가 한계다. 언젠가 결행할 속초행 라이딩(자전거인들의 성스러운 제례. 서울 동쪽에서 새벽에 떠나 해가 저물 무렵 민신창이가 된 몸으로 속초에 닿는다.)에선 나도 스판덱스 바지를 입을 것이다. 동해(!)를 향해 달리는데 그깟 엘리베이터 안의 심란함이 대수일까.
2005/05/11 20:32 2005/05/11 20:32
2005/05/03 21:02
유시민 씨가 “중도정당인 열우당은 한나라보다 민노당과의 거리가 훨씬 멀다”고 했단다.(원문은 이렇다. “열린우리당은 중도정당이라서 민노당과 정책 연합하기위해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한나라당과 연합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폭보다 훨씬 크다.”) 아마도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한 말 가운데 가장 정확한 말인 듯하다. 열우당의 노선과 정책으로 볼 때, 한나라보다 민노당이 훨씬 멀다는(민노당보다 한나라당이 훨씬 가깝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시민 씨의 말은 그의 정치 전략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유시민 씨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수구기득권 세력’이라 놓고 열우당을 그와 대치하는 일종의 ‘운동 조직’이라 자임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말하자면 유시민 씨는 열우당을은 지난 30여년 동안의 민주화운동과 진보운동의 현실적 결정체로 상정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은 이제 열우당의 ‘운동’이 더 나아갈 데가 없어짐으로써(그 운동이 가장 중요하게 천착해 온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은 공중파 방송사 두 개를 접수하고, 정치인들이 사과상자를 싣고 다니기 어렵게 됨으로써 운동적 활기는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 ‘치고 나가길 좋아하는’ 유시민 씨는 이제 ‘운동’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새로운 간판은 그 이름도 무난한 ‘중도’다. 물론 열우당이 ‘중도’정당이라는 건 그의 말에 근거해서 보더라도 순수한 뻥이다. 그도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니 동의하겠지만 한나라당은 극우 성향의 우파정당이고 민노당이 중도 성향의 좌파정당이다. 그런데 어떻게 ‘민노당보다 한라당에 훨씬 가까운’ 열우당이 ‘중도’인가. 자신의 이상주의자로서 이미지를 야금야금 파먹어가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가는 그를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편, 유시민의 ‘친구’이자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인 한홍구 씨는 얼마 전 어느 시시주간지에 유시민이 25년 전에 얼마나 순정한 청년이었는지, 현재 유시민이 치르는 고난(!)이 노무현 씨의 대통령 당선 전과 얼마나 닮았는지 썼다. 불과 몇십 년 전의 현실에 대해선 그토록 급진적인(한홍구 씨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써도 꼭 ‘김산’ 정도는 쓴다. 그래서 그는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다.) 그가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해 보이는 치졸하고 감상적인 태도는 정말이지 딱하다.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인 한홍구 씨에게 물어보자. 옛 김산을 찬미하는 당신은 왜 ‘지금 여기의 김산들’에 대해선 왜 아무런 관심이 없는가? 옛 김산의 숨통을 조이던 우파 정치인들을 경멸해마지 않는 당신은 왜 지금 여기의 김산의 숨통을 조이는 엘리트 우파 정치인은 그토록 싸고 도는가? 당신의 진보적 역사의식은 그저 지금 여기의 진보적 상상력을 생략하기 위한 장식물인가?
2005/05/03 21:02 2005/05/03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