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에 해당되는 글 39건

  1. 2004/04/30 총선 소회
  2. 2004/04/30 수배 (2)
  3. 2004/04/29 낭만 2
  4. 2004/04/28 낭만
  5. 2004/04/27 노빠 (58)
  6. 2004/04/26 문성근 (205)
  7. 2004/04/24 더더밴드 (5)
  8. 2004/04/24 글과 음악 (9)
  9. 2004/04/23 히틀러 표시 물권총 (14)
  10. 2004/04/22 한 여중생의 죽음 앞에서 (2)
  11. 2004/04/22 활동가 (5)
  12. 2004/04/22 멕시코 소철 물주기 (9)
  13. 2004/04/21 무식한 김규항 (11)
  14. 2004/04/21 구합니다 - 고래 편집자 2
  15. 2004/04/20 살람의 편지 2 (2)
  16. 2004/04/20 이후 (18)
  17. 2004/04/19 웹에서는 (5)
  18. 2004/04/16 화분 (7)
  19. 2004/04/16 벚꽃 (4)
  20. 2004/04/16 꿈 2
2004/04/30 09:56
‘25년 경력’의 좌파활동가 이종회 선배가 적은 총선 소회.

"몸가짐을 바로해서 총선평가와 전망을 얘기하는 기회는 이래저래 있어야겠지만, 내게 17대 총선은 유난히 '아는 사람들'이 많이 당선되어 감상적 소회가 깊다. '그 나이되도록 남들 다하는 국회의원 한번 못하면서 무어 그리 바쁜지' 하는 질책과 원망섞인 부모, 친척의 눈초리를 애써 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지라도..."

이 글을 보는 나에게도 작은 소회가 있다. 두어달 전 총선에 대한 좌파 나름의 대응을 논의하는 어느 자리에서 이종회 선배에게 ‘유시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권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경상도 출신에 나이와 학번이 갔고 학생운동을 했고 참 비슷한 데가 많다. 깡마른 체구와 눈웃음까지..ㅎㅎ

그러나 그런 외양보다 비슷한 건 그들이 개혁과 좌파 진영에서 일정한 대표성(혹은 전형성)을 갖는 인물이라는 점이다.(나는 유시민을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개혁 진형의 활동가’라 본다.) 나는 두 인생을 비교하는 일이 세상에 대한 두 생각, 말하자면 우파와 좌파의 생각을 비교하는 가장 자연스런 글이 될 수 있다 생각했다.

그 구상은 탄핵사태로 일단 철회되었다. 구우파와 신우파의 전쟁이 우파와 좌파를 비교해 보일만한 여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 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2004/04/30 09:56 2004/04/30 09:56
2004/04/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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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가 이 만화 작가를 강력 추천했는데
이름이나 출처를 모른다고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시는 분께
고래가그랬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래 내용 추가)

고구마 뒷다리라는 작가군요..ㅎㅎ
알려주신 이태경님께 감사드립니다.
2004/04/30 08:34 2004/04/30 08:34
2004/04/29 21:04
(그 난장판의 주인이 그 난장판을 적은 글. 같은 일을 이렇게 정감있게 적을 수 있다.)


어제는 손님들이 오기로 해서 방물간에는 가지 안았다.
이른 봄,
열무짐치 개지구 산에 드가 한 키가 넘는 진달래 숲에서 막갈리 상춘곡을 하자던 약속이엇는데
참꼿은 다 떨어지고 간밤에 쏘다진 비로 날이 추워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열이 동그마케 둘러안자 노랏다.
누구를 뺄 것도 엄씨 모두모두 내가 조와하는 칭구들이다.
더구나 삐끕자파를 만나게 되어 참 조왓다.
불편한 글쓰기를 작심한 그네는 전혀 불편한 사람이 아니엇다.
따듯하고 점잔고 고든 선비엿다.
유에포에 가서 그네의 책을 꺼내와 사인을 부탁햇고
내가 그린 책 두곤에 두 아이 이름을 적어 주엇다.
닥도 한마리 그려주엇다.

늦게 잠에서 깨어 청소를 해따.
칭구덜은 다 빠져나가고
간밤 전쟁갓든 밤 여기저기 자빠져잇는 것들을 보니
딱 내 꼴 가타서 한넘한넘 옮기는 내 손이 저렷따, 비틀..
소주뼝이 일곱 막갈리뼝이 열세개 맥쭈뼝이 세개,
아직도 차렷하구 서잇는 소주가 다섯 막걸리가 일곱 팻트뼝맥주가 둘, 전니품이다.
2004/04/29 21:04 2004/04/29 21:04
2004/04/2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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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나비를 잡는 아버지


김환영 선생의 가평 작업실에 모여 화전을 부쳐 먹는데 끼겠냐는 제의를 박기범 님에게서 받은 게 2주전이다. 어제 거길 갔다. 서울을 거치지 않고 가보려고 의정부-포천을 거쳐 갔다. 비갠 뒤라 광릉 숲이 더 아름다웠다.

김환영 선생은 노문연 시절 선배지만 활동기간이 달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는 그 후 유력한(돈을 많이 번 것 같진 않지만) 아동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에겐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이라는 수사가 따라다니곤 한다.

‘꽃의 일정’과 안 맞아 화전은 사진을 감상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전 속에 진달래가 꽃 색 그대로 들어있다. 연신 감탄을 하다가 “먹는 방법도 다른가요?” 물었다. 아무렴 꽃을 먹는 건 삼겹살을 먹는 것과는 다르겠지.

처음에 다섯이었고 나중엔 아홉까지 되어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와 포도 증류주를 밤새 먹었다. 운주사 미륵불 이야기 이후엔 줄곧 난장판이었다. 그들은 난장판을 보존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낭만이란 본디 난장판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길을 나섰다. 북한강 물안개가 당연히 고왔다. 찍을까 말까 몇 번 망설이다 그냥 지나쳐 왔다. 낭만이 과잉할까 두려웠을까.
2004/04/28 23:55 2004/04/28 23:55
2004/04/27 11:13
'노빠'는 '노무현 지지자'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노무현 지지는 정당한 정치적 의견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에 가장 합치하는 정치인으로 노무현을 선택하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벗어날 경우 그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을 포함할 때 말이다.

노빠란 정반대의 경우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기반으로 노무현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게 아니라 노무현의 ‘인격’에 지배당하며, 노무현의 정치적 행태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 되는 사람을 우리는 노빠라 부른다.

노빠는 합리적 분별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정한 한 인격에 지배당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광신상태와 비슷하다. 일단 노빠 상태가 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2004/04/27 11:13 2004/04/27 11:13
2004/04/26 04:09
“문성근이 제 아버지를 모욕하고 다닌다”는 말을 의외로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 실은 간단한 질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문익환 목사님이 오늘 살아계시다면 노빠였을까?”

문성근 씨가 개혁운동을 하든 노빠 노릇을 하든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가 아버지처럼 진보운동을 한다면 그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없겠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운동을 계승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문성근 씨가 제 운동이 아버지의 운동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가 탄핵 사태 때 군중들 앞에서 열사의 이름을 호명하던 제 아버지를 흉내 내는 광경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문성근 씨는 제 아버지가 군사독재와 싸운 일과 자신이 수구우파와 싸우는 일,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혁 대통령’을 지키는 일이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싸움은 전혀 다른 것이다. 문익환 목사의 싸움은 당대에 가장 급진적인 것이었지만, 문성근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문익환 목사가 그토록 옹호했던 노동자 민중의 삶을 궁지로 몰아가는 대통령을 지키는 싸움은 말이다.
문성근 씨는 “막내로 자라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 잘 몰랐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이제라도 아버지에 대해 공부하길 권유한다. 보수적인 책상물림이 중년에 접어들어 진보주의자가 되고 갈수록 급진화한 이유가 뭐였는지, 아버지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진지하게 공부하길 권한다. 그러고도 하던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 운동이 아버지의 운동을 계승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04/04/26 04:09 2004/04/26 04:09
2004/04/24 20:37
더더밴드는 박혜경이 보컬이던 시절엔 밴드라는 느낌이 없었는데(오래 전, delight를 처음 들었을 때 멜로디 선이 하도 예뻐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냥 여가수의 노래려니 했다) 한희정 이후론 한결 밴드 느낌이 난다.
한희정의 보컬은 쉬우면서도 품위가 있다. 건조하게 표현하면, 밴드의 정체성과 주류음악계에서 살아남는 문제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더더로선 최선인 것 같다. 김영준의 감각은 상당한 것이다. 오랜 하드록 취향에다 주류 대중음악까진 안 들어도 무방하다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설득력이 있다.

웹진 가슴에서 보니 더더밴드가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 그 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심사진에 김창남, 박준흠, 신현준 들의 이름이 들어있는 걸 보니 '엠비시가요대상' 따위와는 다른 진지한 상인 모양이다. 한국 주류음악에 더더 같은 뮤지션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상이 존재한다는 것, 둘다 좋은 일이다.
2004/04/24 20:37 2004/04/24 20:37
2004/04/24 19:22
글과 음악에 대한 내 모든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면 이렇다.

좋은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2004/04/24 19:22 2004/04/24 19:22
2004/04/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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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1975년 5월호에 실린
'히틀러 표시 물권총'과 '6각만화그림공기' 광고.

"물총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본품은 많은 특허권을 갖고 있으니
가짜 공기를 신고하여주신 분께는
사례를 하겠습니다."
2004/04/23 14:59 2004/04/23 14:59
2004/04/22 12:01
나는 우습게도 소녀가장이었고,
아버지도 안 계시는 불쌍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의 둘째였다.
이런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사회적 빈곤'에 대한 강동진의 글.
2004/04/22 12:01 2004/04/22 12:01
2004/04/22 01:37
활동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다.
시리즈 인터뷰를 해볼 생각이다.
인간을 예로 인간을 말하는 건,
인간을 말하는 여전히 좋은 방법이다.

이종회
박래군
박경석...
2004/04/22 01:37 2004/04/22 01:37
2004/04/22 00:50
멕시코 소철, 며칠마다 물을 주는 건지 아시는 분 있는지요?
이틀에 한번 주고는 있는데
그게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썩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군요.
2004/04/22 00:50 2004/04/22 00:50
2004/04/21 21:50
몸으로 하는 일에 좀 과격한 편이다. 무슨 뚜껑 같은 걸 열다가 너무 힘을 주어 통째로 깨트린다든가, 동네 술집에서 깽판을 치는 이를 제지하려다 내동댕이친다든가, 홧김에 주먹으로 책상을 쳤는데 구멍이 난다든가 하는 사고는 내 일상의 일부다. 동네 친구들은 처음엔 당황했으나, 이젠 “무식한 김규항”이라 놀려대면서 재미있어 한다. 다른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건 좋은 일이다. 때로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는 것만 뺀다면.

일년 쯤 전 어느 날, 조중사가 인라인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한참 전부터 인라인을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는 거였다. “진작 말하지.” 나도 인라인을 시작해볼까 하던 참이었다. 다음날 인라인을 하나 구해서 조중사와 월드컵공원에 나갔다.
조중사의 간략한 강의를 듣고 천천히 인라인을 지치기 시작했다. 5분 쯤 되었을까. 저 쪽에서 어떤 이가 엉성한 자세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친구가 왜 나한테 오는 거지?’ 조중사와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는데 그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이런, 저 오늘 처음 타는 건데요.” “그럴 리가요. 저는 일주일이나 탔는데...” “거 참... 조중사, 자네가 좀 가르쳐 드리지.”
겸연쩍어 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재능이 있는 거야.’ 나는 주말 쯤 아이들 앞에 ‘인라인께나 타는 아빠’로 등장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선 나는 일산 호수공원에 갔다. 호수공원을 이리저리 돌았다. ‘역시 재능이 있어.’라고 되내이며 말이다. 나는 나를 인라인 중급자로 임명했다.
가다보니 꽤 경사가 진 내리막을 만났다. 나는 그대로 다운힐했다. 중급자답게 말이다. 가속이 충분히 붙고서야 나는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정지 방법을 배우지 않은 것이다. 1, 2초면 충돌할 상황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넘어졌다.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왼쪽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몸은 180도 돌아갔는데 왼쪽 인라인 바퀴가 바닥의 홈에 끼어서 왼쪽 발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침을 놓고 부항을 뜨던 한의사가 나를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며 그랬다. “무릎은 중요한 신체 부위입니다.”
2004/04/21 21:50 2004/04/21 21:50
2004/04/21 00:42
어느 분이 방금 알았다며 이틀만 시간을 달라는 편지를 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그러마고 답장하면서
형평성을 위해 마감 기한을 '22일까지'로 이틀 늦춥니다.
2004/04/21 00:42 2004/04/21 00:42
2004/04/20 09:46
(동화작가 박기범 님이 노동과세계에 쓴 글입니다.)


살람 아저씨가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다행히 살람 아저씨와 그 식구는 무사하대요. 하지만 살람 아저씨의 친척 가운데 셋이 팔루자에서 미군의 폭격에 죽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한다면서 그저 신에게 평온을 바라며 기도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살람 아저씨는 편지를 마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국의 모든 친구들에게 꼭 전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짧은 편지였지만 아저씨의 절박함이 그대로 내 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금세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고, 불안한 심장이 크게 뛰는 걸 느꼈습니다.

팔루자의 끔찍한 학살

살람 아저씨의 편지 뿐 아니라 현지에서 보내져오는 소식들은 하나 같이 다급한 숨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겪고 있는 일,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합니다. 미군은 팔루자 지역 저항군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주민들에게 여덟 시간 안에 팔루자를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팔루자를 포위한 상태였고, 팔루자를 떠난 주민들은 사막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미군은 여기에 폭격을 해대고 있습니다. 갇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힘없는 여자와 아이, 노인들. 바깥에 있는 이라크인들은 목숨을 걸고 이들을 도우려 다시 팔루자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고, 미군은 무차별로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700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1500명 가까운 이들이 다쳤습니다. 여기에서 미군은 병원에도 폭탄을 떨어뜨리고, 구급차에까지 조준사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소식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내가 요사이 이라크 소식을 볼 때마다 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느끼는 건, 그 상황이 끔찍하고 슬퍼서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지난 2월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로 더는 어떻게 해 볼 생각을 못한 채 포기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이라크에서는 날마다, 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교전이나 테러로 죽어 가는 사람들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리라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낸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전쟁 때보다 더한 참극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합니다. 우리 군이 가게 되면 지금 미군이 하고 있는 짓과 똑같이 그곳 아낙네에게 총을 들이댈 것이고, 아이들이 뛰노는 마을에 대포를 쏠 것입니다. 아직도 재건부대가 가면 괜찮을 거라고 믿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군인이면 군인입니다. 비전투병이든 평화유지군이든 재건부대든 어떤 군대라도 이라크에 들어간 군대는 이라크 사람들을 '잠재된 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대 둘레에서 무슨 폭발물이라도 하나가 터진다고 해 보세요. 그 때부터는 아무리 비전투병이네 평화유지군이네 해도 누구일지 모르는 테러용의자에 대한 공포로 민간인들에게 총구를 들이댈 것입니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곧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자라면 그게 누구든지 쏘아 죽이게 만들 것입니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은 그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지만, 전쟁상황에서는 그러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테러용의자 하나를 잡기 위해 마을 전체에 폭격을 가하고, 이상한 예감이 든다는 까닭만으로도 한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일 따위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지금 팔루자에 대한 미군의 공격도 그렇고, 애초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 자체가 그렇듯 말입니다.

파병,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달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참 많은 이들이 훌쩍이며 울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나 끔찍하고 무서운 전쟁영화를 천만 명이나 본 나라에서 파병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더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도 영화에 나오는 진태와 진석이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형제가 있고, 이 땅에 사는 우리처럼 고단한 노동 속에서 소박한 꿈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온 살람 아저씨 또한 그렇습니다.

17대 국회가 시작하면 바로 파병철회 동의안이 올라갈 것입니다. 앞으로는 국회 안팎에서 파병반대, 파병철회 목소리에 더욱 큰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막을 수 있습니다. 그 끔찍함을 안다면 꼭 막아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팔루자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폭격, 얼마나 끔찍한 살육이 있을지 모릅니다.
2004/04/20 09:46 2004/04/20 09:46
2004/04/20 00:12
후배가 제 아내와 투표하러 가는 길에 어느 당을 찍을 거냐고 물으니 “한나라당!” 하더란다. 제 아내가 적어도 민노당은 찍을 거라 생각했던 후배가 놀라서 "당신 왜 그래?" 물으니 그러더란다. “이놈의 나라 확 망해버리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탄핵사태 이후 소진되어버린 느낌이다. 단 한편의 글도 쓰지 못 했다. 이놈의 나라에 질려버린 걸까. 훨씬 더 참혹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갈수록, 개운하게 적대할 수 없는 적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적들은 분노마저 갉아먹는다.
2004/04/20 00:12 2004/04/20 00:12
2004/04/19 03:53
웹에서는 다들 함부로 말하는 편이다
라는 말은
웹에서는 다들 함부로 듣는 편이다
라는 말이기도 하다.
2004/04/19 03:53 2004/04/19 03:53
2004/04/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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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화분을 한 개 샀다.
멕시코 소철.
책상 뒤에 놓고 자꾸만 돌아본다.
화분을 산 건 처음이다.
2004/04/16 22:00 2004/04/16 22:00
2004/04/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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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아파트 담벼락의 벚나무에서
꽃잎들이 사아 하고 떨어지자 눈이 감겼다.
나도 사람이 되어가나, 했다.
2004/04/16 21:00 2004/04/16 21:00
2004/04/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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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6 00:45 2004/04/16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