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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이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일상을 해나가면서
김규항씨의 글을 보는게 도움이 됐습니다.
블로그(사실 저희 식구들은 여길 보면서 블로그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를 보니까
난리가 나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나고 마음도 들지만
생각도 짧고 잘 정리할 능력도 없어서 보고만 있다가
단지 '연대'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써 봅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누구 편에 설것인가. 어디에 서 있을것인가의 물음 말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진보'는
그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혁명'은
하느님 나라를 이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를 통해서 말입니다.
김규항씨의 글에서 제가 발견하고
힘을 얻는 것은
바로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입니다.
며칠전 아웃사이더에 하워드 진 교수가 이야기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품위가 지켜지는 조그만 영역들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글로만 만나기에도 벅차고 멀고 대단해 보이던 노교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우리가 하루하루 해 나가고 싶은 그 꿈이었습니다.
우리가 4월 17일날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공연을 홍보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며칠 그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을 이어갑니다.
이곳에서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나라에 대해 언제나 깨어있고 명확해야 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미'와 있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이 자리라는 것도 생각합니다.
좁고 안전한 이곳 만석동에서 매일 변하는 것 없는 아이들과
여기서 함께있는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아직과 이미'사이에
깨어있는 다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삶을 이어가는
모든 '선한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힘을 내겠습니다.
(지난 15일, 기차길옆작은학교 선생님에게서 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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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대수의 곡은 ‘하루아침’이다. 한대수의 가장 훌륭한 곡이 뭐라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다른 걸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언제나 ‘하루아침’이다. 세상에 대한 애정도 얼마 남지 않은 주제에, 세상을 상대로 글도 쓰고 잡지도 만들면서 휘청휘청 살아가는 나는 ‘하루아침’을 들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실실 웃기까지 한다. 들어보시라. ‘코맹맹이 소리로 주류 질서를 조롱하는 어느 노마드의 기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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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marketing on fb
Tracked from marketing on fb 2014/05/04 11:12 삭제GYUHA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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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좌파는 현재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이라 말할 때 ‘현재 체제’는 자본주의를, ‘위협’은 사회주의적 기획을 말한다. 문제는 사회주의적 기획이 문명, 산업, 개발, 성장 같은 반 생태적 개념들을 충분히 해명하진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위주로 하도록 강제된 사람’(극단적인 예로, 분신을 고려하는 비정규노동자)의 처지에서 경제 문제는 우주와 같다.
사회주의적 기획의 결핍을 인정하는 일과, 현재성을 뛰어넘는 진리는 없다는 믿음은 늘 공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좀더 방점을 둔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보다는 시시한 것 하나라도 위협하는 활동가가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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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덱 2004/03/26 0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린우리당이 이길것이 뻔한 싸움이 되었다고 친구녀석이 좋아합니다. 그들이 집권한다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배고프니까요.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은 모든 것은 보수 이지만, 명확힌히 선택하는 것은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정국에 이런 이야기 하면 양비론에 빠진 '또라이'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인간의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열우당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제마음은 그렇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했었지만, 이념때문에 갈라지는 길이 보입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좋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
비글로 2009/03/10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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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cci handbags 2011/05/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말할 수있는 한 멀리, 르노 절경 대시보드와 함께 문제가 전에 모델 문제의 한 이후 주변왔다

이스라엘은 결국 야신을 죽였다. ‘헬기에서 휠체어에 탄 노인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법’으로. 야신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자존심이었다. 그가 만들고 주도한 하마스는 병원과 학교를 짓고 굶주린 인민들과 식량을 나누면서, 매일같이 팔레스타인 인민을 살해하는 이스라엘과 미제국주의에 저항해왔다. 그 저항을 우리는 ‘테러’라 부른다. 이슬람의 신과 기독교의 신과 유대교의 신은 하나다. 야신은 신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더많은 야신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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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테러리스트'는 말한다
Tracked from 새벽을 밟는 자 2004/03/24 23:37 삭제야신의 죽음 <$IMG$> (사진은 위의 링크를 참조함.) '테러리스트'는 말한다. - 아흐메드 야신(Sheikh Ahmed Yassin), 하마스 최고지도자 (전략)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해온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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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야신의 죽음...!
Tracked from Die Geschichte von der Mann ... 2004/03/25 02:20 삭제사진/ 사원에서 기도하는 아흐마드 야신(오른쪽 위, 정문태)과 하마스 대원들의 시위(오른쪽 아래, 정문태). 미국과 유럽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제사회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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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테러리스트 암살?
Tracked from 일편단심 2004/03/26 10:33 삭제하마스 최고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Sheikh Ahmed Yassin)이 암살되었다. 이스라엘은 결국 야신을 죽였다. ‘헬기에서 휠체어에 탄 노인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법’으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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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Hamas
Tracked from World As Jay knows it 2004/08/11 15:30 삭제그의 죽음 이후를 나름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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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Bing.com
Tracked from Bing.com 2014/10/03 06:33 삭제GYUHA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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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Registrate Gratis Sube Tus Videos
Tracked from Registrate Gratis Sube Tus Videos 2015/05/09 18:02 삭제GYUHANG.NET :: 야신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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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ahab 2004/03/25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점령에 강력히 반대하는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과연 하마스등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에 의한 비전투원(일반 이스라엘 국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양비론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타격 대상은 일반 이스라엘 인민들이 아닌 국가권력기관을 구성하는 핵심 구성원 또는 전투원이 돼어야 그 행위의 정당성을 획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고한(?) 이스라엘 인민의 살상이 과연 저항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 다른 분들은 어떻게들 생각하고 계신지요? -
유마힐 2004/03/25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 '무고한' 이스라엘 인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뜻에 동조하며 일정의 지원금(정착금이라는 명목으로)을 받고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올리브 농사를 수확할 때 군인들과 함께 와서 그것을 짓밟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게 당연한 행위임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전혀 '무고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들이 정말 '무고하려면' 남의 땅에서 '순진한 척'하며 사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gyuhang 2004/03/25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다시피, 이슬람 교리는 매우 평화적입니다. 폭력은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서만 허락됩니다. 하마스엔 이스라엘을 쓸어내야 한다는 과격파도 있지만(어찌 없겠습니까), 야신을 포함한 공식적인 입장은 ‘67년 전쟁 이전으로 복귀’라는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슬람이 아니라 이슬람을 죽여 없애야 할 악마로 보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유대교입니다. 이번 사건은 피와 폭력을 원하는 게 누구인지 잘 보여줍니다. 야신을 죽이면 더 많은 저항을 할 거라는 건 바보가 아니라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트랙백’에 야신의 말과 편지가 링크되어 있습니다.)

방금 사진을 보내준 ㅇ선생이 적었다.
기품이.있고.아름다워.
늘.저렇게.늙어야.한다고..
되새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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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펌] 선암사 원통전 뒷켠 늙은 흰매화
Tracked from 흐르는, 홀린 , 흘린 숨결 2004/03/25 01:35 삭제 <DIV class=date>2004.03.23 화 </DIV> <DIV class=blogbody><A class=con_link target=_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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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2004/03/25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회에서 좌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생선 가게 '좌판'과 같은 모습으로 산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선의 비린내를 온 몸으로 감수하면서 생선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상인의 칼부림(?)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몫/책임을 꼿꼿하게 해 나가는,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추운 사람들의 언 몸을 녹여주는 장작불의 땔깜으로 자신의 몫을 놓치지 않는, 그런 생선 가게 '좌판'.
어쩌면 그렇기에 이 사회에서 '좌파'의 삶을 산다는 것은 폼 나는 일이 아니라 고달프기 그지 없는,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겁 없이 이런 말을 하는 나.
'좌파'의 삶도 '좌판'의 삶도 꿈꾸긴 하겠으나, 아직까진 그리고 이후 적잖은 시간 동안 '희망 사항'으로만 남아 있을 지 모른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이 시나리오에 대한 두려움이
오늘 우파/보수적 삶을 살아가는 나를 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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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주노동자들의 자유를 위한 서명
Tracked from All My Love for You 2004/03/22 14:23 삭제지금의 어지러운 시국에도 자유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생각없는 이주노동자 대책에 분노하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디 이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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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샤말 타파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
Tracked from blue's 2004/03/26 02:03 삭제<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40\" border=\"0\"><tbody><tr><td width=\"580\" colspan=\"2\"><p><font class=\"title\" face=\"돋움\" color=\"#b30804\" size=\"4\"><b>샤말타파, 내전 중인 네팔로 추방될 </b></font><font c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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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2004/03/22 0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더 솔직해 보시죠. 분노가 넘쳐서 광장에 나가지 않는게 아니라,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하지 않다가 엉뚱하게 열린우리당 살리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과 어울려 거리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들의 분노는 당신들의 분노와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로밖에 안들립니다. 왜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주장하지 않고 애매한 선문답만 계속합니까.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존중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 사람들의 변화의 열망을 끌어안고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분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밖에 분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좀더 대중적인 기반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나 당신들의 좌파운동에 머무를 겁니까. -
성삼문 2004/03/22 0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번 박경석씨 인터뷰 관련해서 물었던 성삼문이라고 합니다.
저의 두 줄짜리 물음에 6줄 가까이 되는 답변을 올려두었길래 조금 난처했습니다.
더러 기능적으로 묻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규항님의 답변을 보면서 사람을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법식이 무엇이며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새삼 묻게 됩니다.
저는 부산에서 이 사회에서 '장애 운동'의 의미와 그 속에 담겨야 할 실질적 내용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두고 이런저런 모색과 기도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기에 '진보적 장애 운동'을 말하는 박경석씨가 상정하는 '진보'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장애 운동의 진보성은 무엇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인지를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랬습니다. 몇 번 만나긴 했으나 스치듯이 지나가는 만남이었기에 별 달리 함께 하지 못했지요. 다만 회의에서 만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저의 소심함 때문인지 몰라도 약간의 우려와 불안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저의 생각이 규항님의 인터뷰를 통해 틀렸음이 드러나길, 그런 바람을 지녀봅니다.
몇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신다고 했으니 제법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인터뷰를 하실지 잘 모르겠으나, 박경석씨와의 만남이 규항님에게도 유익함이 있길 기원합니다.
누군가가 그랬다는군요.
'내가 상대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다' 라고.
규항님의 블로그를 보면서 들었던 문구인데,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적어도 제가 쓰기에는,,,
지우려다가 한 발 더 걸어보는 것을 선택해봅니다.
그럼, 건승하십시오. -
콩아줌마 2004/03/22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정환님.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밖에 분노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분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자기가 분노할 만한 사안에 대해 분노하는 것입니다.
반전집회 후 광화문에 들렀던 한 선배가 이런 후기를 남겼더군요.
"
'파병반대' 등의 우리의 구호가 쓰인 피켓을 모두 수거당하고 빈손으로 도착한 광화문 '문화공연' 행사장에는 "탄핵반대","민주수호"의 피켓과 "찌라시" 구호가 넘쳤다. 우리가 참으로 순진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진보정치실현'이라는 [다함께]의 피켓은 내려지기를 강요당했고, '탄핵반대'라고 쓰인 [다함께]의 피켓은 활용되는 희화적인 상황에서 나는 저들은 더 순진하구나 했다.
" -
dorothy 2004/03/22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대로 보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분노하기 위한 노력...
대중에겐 그런 노력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언론이 보여주는대로, 그냥 손닿는 곳에서 얻을수 있는 사실(때론 왜곡된 진실) 만으로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건 우둔한 일이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걸 실천하는건 제게는 쉽지 않더군요.)
항상 하게되는 고민이지만,
대중의 한 사람인 내가
대중을 우둔하다고 판단하는건 참 불쾌하고 우스운 일입니다.
내가 더 관심갖고 싶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티비와 신문과 분노하는 사람들 저 너머에 있는데,
그걸 깨달을 때마다 되새기면서도
또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해봅니다.
(규항님께 드리는 글이니 다른분의 코멘트 정중히 사절합니다) -
달콤숙 2004/03/22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윗/물대포에 맞아 주저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번 탄핵반대시위에도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님이 말씀하신 이부분이야말로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는걸 왜 모르시나요? 님의 글중에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은 사람들이죠. 규항님도 그렇게 쓰셨구요.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로 짓밟히고 그들 모두 노무현 정권에게 당했습니다. 지난 1년간....그래서 그렇다면 그 물대포는 누가쏜거냐고 물었던 것이었구요.....아이를 무등태우고 촛불행진을 하는것과 생업을 포기하고 집회를 하는것은 천지차이라는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탄핵에 반대하지만.....탄핵반대 촛불집회엔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분노가 적어서가 아니라 분노가 넘쳐서 입니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 또한 사양합니다.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않는것이 침묵하는것이라면 저는 그 침묵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이정환 2004/03/22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규항님.
선입견은 따로 없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좀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저는 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게 사회를 바꾸는거라고 사람들을 움직여야 사회가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패에 목이 찍혀 넘어가고 군화에 배를 차여 피를 싸대고 몸이 얼어붙는 날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는" 것만으로 사회를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분노의 방식은 다르지만 이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게 사회를 바꾸는거라면 이 사람들과 함께 해야합니다. 넓게 끌어안아야 합니다. -
gyuhang 2004/03/22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정환님.
제가 선입견이라는 말을 하는 건 님의 의견이 앞뒤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그 때도 나왔다 해도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싸웠을까요? 그런 참혹한 싸움의 방식은 그들이 선택한 게 아니라, 강요당한 것입니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그렇게 몰아간 당사자지요. 그 역시 '방식'에 대해 말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지요. "이젠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들의 방식을 논평하기 전에, 그들이 탄핵을 환영하고 나오지 않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딩 2004/03/22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콩아줌마의 다음 얘기가 특히 인상깊습니다.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밖에 분노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분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자기가 분노할 만한 사안에 대해 분노하는 것입니다."
금요일 탄핵 되던 날, 여의도와 광화문의 술집은 사람으로 넘쳐 흘렀습니다. 그 때 아는 사람이 '탄핵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넌지시 흘려서 고개를 끄덕였더랬습니다.
파병안이 국회 통과하던 날, 노동자가 분신하던 날, 부안 주민들이 방패에 찍히던 날 그들은 어디 있었을까요? -
다윗 2004/03/22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콤숙님.
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글의 의미를 약간 오도하신 듯해 다시 답글을 답니다.
님이 탄핵반대시위에 동참하지 않는 데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저 역시도 처음 탄핵반대시위의 물결을 보았을 때 그 시위군중들에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이나 열린우리당, 그리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파 의원들 모두 사실 별반 다를 게 없는 족속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노무현은 겉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위선자라는 점에서 일관되게 보수적인 수구세력들보다 더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탄핵반대시위의 참여를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분노가 넘치든 어찌되었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침묵일 뿐입니다. 탄핵반대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탄핵된 데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탄핵반대시위의 규모가 성장한다면, 그 반사이익을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이 얻게 될 것이고, 실제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탄핵반대시위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대시위로 인해 자기들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반기지만, 그 이상 운동이 성장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이 시위에 노조가 참여해 시위의 대열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간극을 파고 들어야 합니다. 반대시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열린우리당 또한 한나라당과는 다를 게 없음을 주장해야합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열린 우리당이 시위확대에 대해 우려한 것에 대해 의아해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분노가 넘친다고 해서 방관한다면, 그것은 우익세력들이 노무현을 축출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고, 우리나라 정치지형의 우경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좌익세력들이 정치계에서 벌일 수 있는 활동영역의 폭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오히려 탄핵시위의 성장을 도모하고, 그 운동이 진정 옳은 방향을 가지도록 나서야 합니다. 그 분노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쏟아야 합니다. -
삐딱선 2004/03/22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윗/"탄핵이 철회된다면, 앞으로 보수당들은 쉽게 날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하는 데 더욱 주저하고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글쎄요. 어떤 '보수당'들에게는 이 말이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보수당'들에게는 오히려 이 말의 반대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콩아줌마의 말씀, '분노가 다른 것 같다'는 말은 그래서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김규항님과 저 같은 사람들이 지금의 '광장'을 그리 흔쾌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일 겁니다. -
jay 2004/03/22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우리 모두 여유를 좀 가져보는게 어떨까여...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가 신자이기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저는 어떠한 거대한 흐름이란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 탄핵의 상황이 분명한 시대의 흐름의 안에있는 한 과정이라고 보거든여
저는 작년 대선에서 노후보를 뽑았지요 물론 제 신앙적 또는 양심적 입장은 민노당에 가까웠고 또한 노무현씨와 또 그의 민주당이 절대 한나라당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노무현씨 뽑았슴니다
저는 노무현씨 좋아합니다 물론 그분이 속해있는 정치구조에서 개인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일은 거의 없을꺼란걸 잘 알지만..뭐 개인적으로 맘에 듭니다 (똥고집같은거..) 물론 후보가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고 뽑은건 아니죠..
저는 사실 노무현씨가 이렇게 되길 기대하고 뽑았거든여... 일명 자폭장치 내지는 자살특공대 같이 자기 자신을 산화하며 주변에 것들을 같이 태워 버리길 기대했지요 또한 그의 정치적 행로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저는 기대했었구요
그리고 취임이후에 이어지는 비리의 폭로며 검사들과의 추태며 또 그의 측근들의 비리까지..물론 괴로웠을 당사자에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약간은 흐믓한 맘으로 관전했지요(대통령 잘 뽑았다고 자위하며..)
그러다가 결국은 탄핵까지 되더군여 참.. 나의 기도빨이 이리도 셋던가... -_-;;
저는 지금의 이 모든 상황들이 잘 마무리 되리라 봅니다
노무현씨야 당연히 다시 욕먹으시며, 또 싸우시며 대통령하시겠고 또 여전히 많은 말실수로 뽑아준 사람들을 실망시키실꺼고 또 다분히 보수적인 정치를 지속 하시겠지요
결국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노무현안에서 보고자했던 것들이 노무현이나 우리당에는 없다란걸 알게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그들이 찾아 헤매던 의미들을 아직 간직하고있는 단체들을 알아보게 될것이고 그러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일에 (물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지금도 정치와 무관한 곳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한 시스템도 일부나마 참여할 수 있겠죠
만약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이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코 좌절할 필요는 없슴니다 국민들은 아직은 더 속을 것이고 아직은 더 실수 할것입니다 실망하며 더 나은것을 찾아 해메일겁니다
그러나 해메인다는것은 주져앉아있지는 않다는 말이겠죠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는 말이겠죠
그렇다면 그 자체로 희망입니다 촛불 시위 좋슴니다 노동자 파업 좋구여 기독교인들의 기도집회 음... 그것도 좋습니다 뭐 -_-;; 다아 흐름이니까...
하지만 그 흐름을 관전하고 있자는 말은 아닙니다
탄핵사태 서명하면 노동자 인권도 서명하구 오늘은 탄핵 시위가면 내일은 농민들 시위도 나가보구... 다같이 흐름이 되자는 거지요
너무 뜬 구름잡는 소리인거 같아서... 제 의견을 좀 겻들이자면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체제라는것은 유럽에서 조금이나마 살아본 사람이면 또는 그것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인정하실겁니다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모두에게 보장된다는게 모든 더 나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본바탕이란것도 당연하구요
물론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구조밖의 사회주의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교회들이 성서에 나오는 십일조란것이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래서 그렇게 쓴다면... 진정한 사회주의겠죠...
젠장... 계속 기도해야겠군여 제 기도빨이 이렇게 센줄은 몰랐으니까여... ^..^
아..참... 규항님..글은 잘 읽고 있슴니다
계속 건필하시길....
PS) 찾기는 무지 힘들지만 좋은 교회도 간혹 있슴니다
찾나서 교회 다니세요...
어떤걸 정말 옳다고 믿고 사랑한다면 그것을 공유하고 전하는 기쁨이 어떤것인줄 아실겁니다
교회는 그일을 공유하는 공동체지 믿음의통로는 아니겠죠...
암튼 힘내십시오 응원하고 있습니다 -
정의근 2004/03/22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분노, 겪지는 못 했지만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 폭력은 끝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시위는 한 단계 상승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정작 몰매 맞아야 할 자들은 따로 있는데,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과 치고 박고 싸우고,
서로 군중 심리에 휩싸이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다쳤습니다.
수구 언론들은 이를 왜곡 보도하여 저 같은 아이를 만들었습니다.
전 그 보도들을 보면서 '데모하는 대학은 무조건 안 가.' 이런 생각을 갖고 컸습니다.
참 바보 같았죠. 이제는 그 무엇에도 속지 않으렵니다. -
성삼문 2004/03/23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망한 일'에서 '우스운 일'로 바뀌었군요.
민망함과 우스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차이 앞에서 적잖이 서성거렸을 규항님의 모습을 짐작하며
'굳이' 어려움을 '선택'하는 태도에서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물론 규항님의 '용기'란 것이 저의 해석에서 기반하고 있는지라, 동의 여부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타당할 듯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선생의 인터뷰에 임하는 규항님의 서늘한 모습에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인정주의가 몸에 배여 있는 저로선, 분명 상기해야 할 대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스운 일'에서 '민망한 일'로 바뀌었다면, 하는 바람을 지녀봅니다. 물론 이 일은 바람만으로 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말입니다. -
월급쟁이 2004/03/23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진보누리를 보고있으면.
미국 여류 소설가의 작품 "대지"가 생각 납니다.
그 중에서도 메뚜기떼와 처절하게 싸우던 농민들 모습입니다.
하늘을 가득 덮은 메뚜기떼들이 농민들의 피땀어린 농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루려고 습격하였고, 순수한 농민들은 정신없이 메뚜기떼들과 결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끝내는 메뚜기들에게 화공전으로 응전을 하지만, 메뚜기떼들을 물러나게 한것은 날씨변화이죠.
물론 제가 비유한 메뚜기떼들은 노빠들이고, 농민들은 민노당 지지세력들 입니다. 메뚜기떼들은 농민들인 인간들하고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그냥 기후변화에 따라 본능적으로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자연현상이라는 생각 입니다.
메뚜기떼들에게 무슨 설득을 하겠습니까?
무뇌아틱하게 노무현을 무조건 지지하는 노빠들의 모습에서 저는 히틀러에게 무조건 충성하였던 독일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일본천황에게 무조건 목을 내던지던 일본사람들의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또한 반공사상에 물들어 진보적인 목소리만 내놓으면 무조건 빨갱이로 때려 죽이려 들었던 과거의 무수한 빨간색 포비아 메뚜기떼들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기후가 바뀌듯이 역사적 환경과 사회적 흐름이 바뀌면 저 무뇌아적인 노빠 메뚜기들은 흔적도 없이 살아질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능력도 없고, 비평능력도 없는 것들일진데, 이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 입니다.
다만, 군집성 본능에 따라 쪽수가 많은쪽에 매달려 자신의 생존본능 욕구만을 충족시키려는 불쌍한 떼거지들 일 뿐입니다.
문제는 가공할 메뚜기떼들의 습격에서 끝까지 싸움의 힘을 놓지않고 투쟁했던 소설 "대지"의 농민들 처럼 쓰러지는 그날까지 버티어 내는게 바로 진보 민노당 지지자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옛말에 이런 속담이 있었죠.
"기다리는데 장사 없다."
기다립시다. 메뚜기떼들도 한철입니다. -
이종철 2004/03/24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쩝..아마 이런 글을 여기 뻬껴 올리면 돌맞지 싶은데 ㅋ..머 맘에 안드시면 삭제하셔도 좋습니다..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합니다..참고로 글쓴이는 현직 한의사이고 제가 본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四像心學(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현대적 관점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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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진중권이 뻘짓을 하는 이유 by 일몽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연일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군요. 하나하나의 사건들만 쫓아가며 글을 쓰고 읽기에도 숨막히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한 번 씩 근본적인 문제를 사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군요. 한 호흡 가다듬는 뜻으로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 요즘 시국을 보며 다시 정리한 것들을 서프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1. 경제학만 가지고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회의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수치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배우자와의 사별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손실과 등가인가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간의 금슬, 함께 살아온 기간, 자녀의 유무, 부부의 경제적 위치, 병사, 사고사, 급사 등의 배우자 사망 원인과 상황 등을 각각 변수로 하여 복잡한 수식 처리를 하면 배우자 손실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계산은 불가능하다. 변수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굳이 수치로 환산해서 경제적으로 다룬다고 할 때 그 노력과 비용이 너무 크다. 세상을 이해하는 일에, 개인이 세상을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이익보다 그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또 그래보았자 평균치를 계산할 수 있을 뿐이지, 각 개인에 있어서는 정확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배우자 사별 시 남은 사람이 받는 심리적 충격의 문제’는 심리학이라는 영역에서 주로 다루지 경제학이 다루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각각이 잘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인문학의 제왕이라고 하는 철학 역시 만능일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학문이든, 어떤 이론 체계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이 잘 적용되는 한계에 대한 인식이다. 나의 논리는 어떠한 기본 가정 하에서 적용되는 논리인지 그 기본 가정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 한계를 뛰어 넘어 무리한 적용을 하면 견강부회니,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론이니 하며 우스갯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2. 이른 바 먹물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흔히 이성적, 논리적 접근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성적, 논리적 접근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기본 가정을 공유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이성이니, 논리니 하는 부분들은 기본이 확실할 때, 어느 행동이 그 기본 원칙에 더 잘 맞는가를 따지는 기능일 뿐이다. 원칙을 세우는 데 필요한 능력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논리로 세상이 돌아가는 경우는 오랜 동안 사회가 안정되게 운영이 되어 사회적 기본 원칙이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큰 불만이 없도록 잘 정비된 경우에 한정된다.
물적 토대, 기본적인 사상적 토대 등이 큰 변화를 맞게 되어 사회적 기본 원칙이 무너졌을 때는 논리는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런 변화의 시기에는 그 변화를 인식하는 정도, 그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인식이 서로 다르면, 무엇을 기본으로 삼을 것인가에 쉽게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 이걸 논리로 따지려면 무척 힘들다. 문제는 느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느낌이란 논리로 공유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큰 갈등은 보통 기본 원칙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진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감성적 표현을 통하여 전달을 한다. 그렇다. 논리가 이성적 판단을 전달하는 도구라면, 감성은 감각을 전달하는 도구인 것이다. 사회의 격변기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감성적 표현은 지극히 옳은 표현이다. 이는 논리적 미숙함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논리 이전의 부분을 전달하기 위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다’는 느낌 자체를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로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성적 표현을 통하여 각각의 개인과 집단은 자신들이 느낀 바를 표현하고 이에 공감하는 세력을 넓히고자 한다. 각자 그렇게 넓힌 공감세력의 힘의 균형에 의해 비로소 새로운 사회적 합의, 원칙이 세워진다. 이제 비로소 논리로 따지고, 이성적 접근이 가능한 토대가 갖춰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먹물들은 할 일이 없다. 원칙이 세워진 뒤에 비로소 먹물의 자리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의 모든 권력 기관을 한 손에 쥐고 통제하는 사회와 각각의 조직에 자율권을 주는 시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원칙이 바뀌는 격변의 세상이다. 외국 사례? 그건 그야말로 참고용일 뿐이다. 역사가 다르고 사회 구조가 다르다. 격변을 겪는 시기의 외교적 위치, 국민 소득 수준 등이 다 다르다. 귀족제 등의 신분 차별적 요소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가도 다르다. 그야말로 각자 느끼는 바에 따라 동물적 본능으로 반응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 느낌들이 서로 투쟁을 거쳐 모이고, 정리되어 새로운 원칙이 탄생해야 하는 그런 시기다.
지금 굳이 먹물들이 할 일이 있다면 정서의 정리이다. 먹물들이 대중에게 방향을 제시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대중의 정서를 읽고, 정리해서 충돌이 원활히 해소되어 새로운 원칙이 빨리 세워질 수 있도록 뒷받침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뒤에 설 자가 앞에 나서면 혼란은 길어진다. 앞에서 잘난 척 해 봤자, 괜히 짱돌만 맞을 뿐이다.
3. 전여옥이나, 진중권이 계속 뻘짓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감성의 움직임을 모른다. 그들은 감성을 철저히 무시한다. 감성은 이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천박한 사람들이나 중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준만씨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지식인으로는 보기 드물 정도로 감성을 중시한다. 감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할 중요 변수로 인정하였기에 사회의 변혁을 예상할 수 있었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른바 대중과의 호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강준만씨와 같은 접근은 상당히 위험하다. 감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한 집단의 감성에 너무 휩쓸려 다른 집단의 감성의 움직임을 놓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감성을 좋아했던 이들은 그 감성이 어긋나면 바로 배신감을 느낀다.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반면에 논리로만 접근하는 방식은 그 논리 자체에 모순이 없으면 우기기가 가능하다. 예측이 틀려도, 결과가 나빠도 ‘이는 대중이 감성에 치우쳐 바른 논리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우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역사에 큰 공헌을 하고, 사회적 변혁을 상당히 맞추었던 강준만씨는 오히려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늘 엉뚱한 이야기로 대중의 속을 뒤집어 놓을 줄만 알았던 전여옥이나 진중권은 아직도 뻔뻔스런 필봉을 놀리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먹물들은 감성을 읽기보다는 논리 속으로만 도망가려 하는 것이다. 가늘고 길게 살기에는 논리라는 우물 속이 훨씬 안전하니까.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틀릴 수 밖에 없다. 원칙을 새로 새우는 격변기에서 과거의 원칙에 따른 논리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원칙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대중은 정확히 찍어서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결론을 보면 어딘가 우리의 감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무언지 허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외면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결론을 보면 틀렸다는 것을 아니까. 전여옥이나, 진중권은 내 논리가 어디가 틀렸느냐? 논리 전개 과정의 모순을 집어내 보라고 항변한다. 물론 대중은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나 결론을 보고 틀렸다는 것은 안다.
먹물 행세를 하되 욕 먹지 않는 먹물이 되려면 자신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한계를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우자 사별의 경제학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함수식을 만들었다고 떠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는다. “그래 잘 해봐라. 신기한 것 이상한 것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잘 우기면 그걸로 네 밥줄은 될 테니 잘 해보거라” 그렇게 웃어줄 뿐이다.
나는 위험한 길을 과감히 걸었던 강준만씨가 좋다. 구민주당에 분당 분위기가 깔리면서부터 그는 나와 다른 견해를 계속 발표했지만, 강준만씨의 주장은 험하게 공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가 일시적 절필을 선언하고 자신의 감성을 정비하러 침묵에 들어가 주어서 너무 고맙다. 자신이 옳다고 부득부득 우기지 않아 주어서 너무 고맙다.
준만 형님 힘 내세요!!!
4. 대중은 옳다. 특히 원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대중의 선택이 옳을 수 밖에 없다. 대중이 옳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선택했기에 그 길이 옳은 길이 되는 것이다. 변혁기에서 옳고 그르다는 것은 논리로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옳은 쪽이 되고,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바가 옳은 것이고, 이를 가르쳐 민심이 천심이라 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이 그른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대중에게 바른 정보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을 경우다. 이것이 그른 경우가 되는 이유는 대중이 자신들의 선택을 바꾸기 때문이다. 만일 부족한 정보로 판단했다 하더라도 대중이 그 길을 고수하면 그 길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잘못 전달된 정보에 의해 판단했을 경우 나중에 바른 정보가 전달이 되면 대중은 판단을 바꾼다. 길을 바꾸고 새로운 옳음을 만들어 내어서, 자신들이 먼저 걸어갔던 길을 스스로 그른 길로 만든다. 먹물들이 그 길을 잘못된 길이라고 판단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할 일은 대중에게 바른 정보가 바르게 전달되고 있는가를 신경 쓰는 일이다. 정보의 왜곡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지식인의 몫이다. 대중이 바른 정보와 잘못된 정보를 뒤섞어서 접하거나 시간 차이들 두고 접하면, 옳은 것, 그른 것이 계속 바뀌고 불안정해지며 세상이 안정되는 시기가 그만큼 늦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바른 정보가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것, 거기까지가 변혁기의 지식인의 몫이다. 바른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의 판단은 지식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몫이다.
물론 지식인도 자신의 판단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지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지식인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할 자격이 있을 뿐이다. 내 판단이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던질 뿐이다. 원래 변혁기의 대중의 판단은 ‘좋다/싫다’이지 ‘옳다/그르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이 아직 없기에 ‘옳다/그르다’의 판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좋다/싫다’가 모여 비로소 ‘옳다/그르다’를 가를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聖賢以弊千白面 ( 성현 흉내내다 폐인 된 자 적지 않으며 )
英雄以折萬靑苗 ( 영웅 흉내내다 꺾인 젊은 싹은 또 얼마인가 )
稱師以入畜生門 ( 함부로 스승이라 칭함은 축생으로 떨어지는 길이니 )
自高以業至難消 ( 스스로를 높여서 짓는 업은 참으로 씻기 어렵도다 )
계몽사조 이후 오랫동안 인류 문명에서 감성이니, 직관이니 하는 것들은 무시당해 왔습니다. 저는 감성이나 직관에게 그 가치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주고 싶습니다. 대중이 특히 변혁기에는 감성이나, 직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지극히 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맹신이, 논리에 대한 숭배가 너무 오래 이어져 왔기에 제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만 해도 저의 주장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얄미운 전여옥이나 진중권을 탓하는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5점을 추천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옳은 겁니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죠. 결론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수 있는 때, 제 배짱에 맞는 길을 지지하는 것이 최선인 때. 그 때를 우리는 변혁기라 부르죠. ^^
ps)어떤 논리든 그것을 자기화하기 이전에는 단지 방편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글의 표현 너머에 있는 글쓴이의 생각..그리고 그 생각의 바탕에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느낌을 좀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_ _)

어제 밤, 자는 줄 알았던 김건이 눈이 동그래져서 달려왔다. “아빠, 휴지통 옆에 개미가 네 마리나 있어!” “그래?” “아빠, 어떡해?” “어떡할래?” “죽일까?” “개미들이 널 해쳤어?” “물지도 모르잖아.” “물었어?” “아니 물지도 모른다고.” “ 김건이 개미집에 갔다고 개미들이 죽이면 좋겠어?” “아니.” “개미처럼 작은 동물이든 인간처럼 크고 잘난 체하는 동물이든 생명은 다 같은 거야.” “맞아.” “아빠는 40년이나 살았지만 인간이 개미보다 낫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 아빠 생각엔 인간이 제일 나쁘고 어리석어.” “그럼 어떡하지?” “그냥 같이 살지 그래.” “개미하고?” “걔들은 휴지통 옆에서 살고, 너는 너대로 살면 되지.” “그럴까?” “너무 많아지거나 물면 아빠가 해결해 줄게.” “어떻게?” “단 것으로 유인해서 밖에 내놓든가 하면 되지.” “알았어.” “개미들 어떻게 사는지 잘 관찰해 봐. 걔들도 사람하고 똑같은지. 엄마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이야기도 하고 사랑도 하는지.” 김건은 한참을 휴지통 옆에 엎드려 들여다보더니 이 그림을 그렸다. 돋보기 반대편에서 김건을 보았을 개미들은 김건의 마음을 알았을까. 어쩌면 그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처럼 대놓고 제 종족을 잡아먹는 동물은, 잡아먹히면서도 저항할 줄 모르는 동물은 어디에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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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2004/03/18 0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약하나마 머릿속에 박제된 이념쪼가리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 사회주의를 소망하는 학생입니다.
간혹 체제에 대한(좁혀 말하면 경제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면 누군가 물어옵니다. "그럼 자본주의가 아니면 당신은 도대체 어떠한 체제를 원하는가? 이제 와서 실패한 현실 사회주의의 경제체제로 돌아가자는 이야기 인가? 확실한 대안은 있으면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건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죠.
경제학적인 적정수준의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그러한 상황이 오면 솔직히 할말이 없어집니다. "그래 사회주의를 소망한다면, 실패한 현실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하는 의문이 저 스스로도 떠나지를 않습니다.
규항님도 또한 현실의 이 강고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기를 소망하시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규항님에게 그러한식의 질문을 한다면 규항님께서는 어떠한 답변을 하실건지요? 궁금합니다. 부디 답변을.. -
gyuhang 2004/03/18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병규님.
저도 그런 ‘질문 아닌 질문’을 받습니다.
중요한 건, 사회주의란 그 자체로 존재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가 사람을 마구 잡아먹으니까 자연히 그에 대한 대응이 생겼는데 바로 그게 사회주의인 것이지요. 그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질문은 ‘사회주의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듯하지만, 실은 ‘자본주의에 대한 무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란 그 자체로 존재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에 생겼”으니, 자본주의에 무지한 사람은 ‘사회주의의 필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회주의의 비전이나 실제’에 대해 설명할 책임을 느낄 이유가 없고, 설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이렇게 답하시기 바랍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당신 생각부터 들려주시겠습니까?”
그 다음 얘기는 다음에 하지요. '그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을 경우'에 말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런 '질문 아닌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
요안 2004/03/18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병규님, 공감합니다. 저도 늘 그런 질문에 난감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궁리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순전히 머리만 굴리는 중이라서. 책도 보고 해야할텐데... 어쨌거나 제가 궁리 끝에 생각해 낸건 그런 질문 자체가 우습다!는 겁니다. 1번 아니면 2번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는 것인데, 사지선다, O/X에 길들여져 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더 나은 세상은 꾸준히, 그리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찾고 만들어 가는 것이지 이미 있는 것 중에서 고르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요즘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들을 보면서도 O/X 문제를 푸는 것처럼 보여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듭니다. 아, 이건 좀 오버인가요? ^^; 어쨌든 계속 더 나은 삶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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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쌔리 2004/03/18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자본주의에 무지하지만 사회주의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초적인 문제부터 헷갈립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말입니까? 보완발전의 개념입니까?
언뜻 둘 중 하나 고르라는 이분법적 강요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말'이라면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를 (어쨌든) 전면부정 하는 것입니다. '보완발전'이라면 자본주의의 장점은 인정하고 단점은 바로잡겠다는 것이겠지요.
규항님께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반대말'로 해석하신다면 더 할말은 없습니다. 질문할 것도 없고 들을 답변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안에서) '차악'의 선택의 반복을 통해 최선의 상태로 나아가는 방식이 옳다는 제 생각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규항님의 신념을 응원하겠지만, 그 이상의 지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 강의 수위가 요즘들어 한뼘 정도 높아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보완발전'의 개념으로 본다면, '이상적 사회주의'와 '이상적 자본주의'는 결국 같은 소실점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제 기능(자본주의의 버그 수정)을 다 하고 나면 의미가 사라져 버리겠지요. 물론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도 생깁니다만... 아무래도 그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습니다. '복권'을 사려는 사람이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자본주의의 복권적(?) 속성은 어쩔 수 없는 매력을 풍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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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말입니까? 보완발전의 개념입니까?
이것도 너무 '질문 아닌 질문'인가요?^^; -
gyuhang 2004/03/18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마쌔리님.
그래서 사회주의에 여러 갈래가 있는 것이지요. 고마쌔리님 표현을 빌면, '보완발전' 개념의 사회주의도 있고 '반대' 개념의 사회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갈래든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필요'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를 공유합니다. 최소한의 동의를 공유하지 않는 상태, 혹은 대상과 '사회주의 논의'를 하는 건 공허한 일입니다. '호기심'이나 '악의'에 성실하게 응대하는 건 사람의 의무도 좌파의 의무도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지금 여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고마쌔리 2004/03/18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ovembian님 /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대'도 아니고 '정반합의 보완발전'도 아니면, 우리가 사회주의를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서의 '사회주의'입니까? 그렇다면 그게 꼭 '사회주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어도 저에겐) 사회주의가 얘기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Novembian님께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신 그 질문 속에 숨어 있습니다. Novembian님께는 저 글이 공허한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오랫동안 품어 왔던 비교적 절실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저 짧은 글을 쓰는데 1시간 30분 동안 점심 걸러가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거구요. 그만큼 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던 겁니다.
김규항님 / '사회주의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는 말씀조차 낯설게 들릴만큼 사회주의에 대해 무식한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반성하며 공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불만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공간이 '호기심 천국'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규항님이 황수관 박사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것에 말트집 잡고, 의견교환이 아닌 감정교환일 뿐인 코멘트에 대해선 피로감도 느끼셨을 겁니다. 특히 최근엔 더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에 대해선 좀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블로그는 다른 곳에서 학습을 '빡세게'한 다음 서로의 논리를 겨루는 '진검승부'의 장은 아닐 겁니다. '사회주의'에 대해 공부한 사람만 '사회주의'에 대해 발언권이 주어지는 꽉막힌 공간은 아닐 겁니다. 제가 여기를 '매일' 들르는 이유는 내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질문과 누군가의 답변이 제 생각에 조금씩 수정을 가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규항님이 쓰신 위와 같은 답변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로이 낼 수 있을까요? '내가 혹시 말실수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질문하면 가서 공부 좀 더하고 와서 질문하라는 답변이 오지 않을까?' 하고 위축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곳이 딱딱한 식빵처럼 굳지 않았으면 합니다.
- 두 분 답변 감사 드립니다.^^ -
요안 2004/03/18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ovembian님,
거부감, 충분히 이해 합니다.(충분히 이해한다는 말도 거북하긴 하군요^^;;용서하십시오) 그러나 결혼, 출산, 육아 등등은 '여성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어 나오는 것이 육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세상은 아이를 닥달해서 학원 더 많이 보내는 것을 육아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 만큼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딸과 함께 6년을 보내면서 점점 사회주의를 소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거부감에 대한 이해는 어른들이 자주 '그만 낳을거야? 아들 하난 있어야지' 하실때마다 드는 강함 거부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코쿤 2004/03/18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분이 저를 보고 '자생적 사회주의자'란 말
씀을 하시더군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가 생각없이 내뱉은 말투가 그럴지는 몰라도,
저는 전혀 그런것과는 관련이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이젠 절망처럼은 아닐지 몰라도 확신하는 처진데 말입니다.
하긴 뭐 이런 이야기에 과거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그러네'라고 받아들이는 정도로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그건 앞세대들이 '그 공과가 어찌되었든'
싸운 결과로 받은 선물임이 분명할텐데 말이죠
아무리 생활이나 돈에 찌들어 있어도
'어딜 가도 일하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는 말이 아직도 가슴을 울리는 걸 보면
아직은 정신이 덜 늙은 모양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육체가 늙는건 숙명이지만, 정신이 늙는건 선택이다"
라고 김규항씨에게 말씀하셨다는데,
육체도 이제 젊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물론 나이드신 분들은 아직이라 말하겠지만)
정신은 선택이고 자시고 할거 없이 자연스럽게 그런 단계에 접어든
모양입니다만,누구처럼
'그람시의 유령이 아직도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라는 식의 말따위는 절대 하고 싶진 않습니다.
뭐......더러운 성격이나 욱하는 성질로 봐선
그럴 소지는 다분한데 말이죠.....하하 -
이종철 2004/03/19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쩝 잠자리에 누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ㅠ.ㅠ...걍 혹시나 도움이 될까 박병규님 하고 고마쎄리님께 제 경험이랄까 좀 말씀슴드릴까 합니다..
저도 20대 시절에 사회주의라는 '이념'땜에 무지 고민했었습니다..머가 그리 어려운지..그리고 또 엄청 무거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구요 ㅋ..지금도 그부분을 '논리'로 바라본다면 그 '어려움'과 '무거움'은 가시지 않았겠지요 ㅎ.ㅎ..근데 요즘은 그런 점은 많이 가셨답니다^^;;
왜 가셨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이념'에 대해서 무얼 더 많이 잘 알게 되서가 아니고.. 그 '이념'의 바탕에 대한 공감이 실제 생활에서(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내 맘에 많이 들어오게 된거죠..또 하나 굳이 들자면 내 자신속에 잠재 되어있던 그 '이념'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이딴 불순물들을 더 잘 응시하게 됐다는 점도 있고요..
아마 님도 그 논리에 대한 알음알이 보단.. 어차피 자본주의에서 태어난 이상.. 어쩔수 없이 가지게 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마음의 눈으로 인간과 사회를 응시하는 노력을 계속 경주하신다면 그 문제에 대한 '무거움'과 '어려움'도 먼가 아주 단순해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진리란 건 때로는 붉은 열정도 필요하지만 아주 平心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ps)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께 1가지 제안할까 합니다..누구의 글에 대해 댓글 달때 아무개/ 이런식으로 /달고 이야기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걍 누구님 이렇게 서두에 호칭을 달고 하면 되지 싶은데 ㅎ.ㅎ 제가 예민한 건가요? -
이종철 2004/03/19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ovembian님.
싱거운 의견이지만, '알아서 할 일'입니다..ㅎㅎ.
라는 맞긴 하지만 먼가 불성실하다고 느껴지는 -ㅅ- 규향님 의견에 제 멋대로 사족을 붙인다면(_ _)..
아이를 적어도 "부모보단 이 세상에..혹은 이 세상이.. 좀 나은 인간으로 키우기"라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그럼에도 세상과 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희망과 먼가 제대로 해보고 싶은 '착한' 욕망이 마음속에 상충하면서 끓고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 가는데로 알아서 하십시오..ㅎ.ㅎ 그건 결국 알아서 해야 할 '선택'과 그에 충실할 '각오'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ps) 근데 대략 어째 맞추어 지더라구요..ㅎ.ㅎ 특히 아이는 하나를 주면 열을 되돌려 주는 확실한 동지입니다 ㅋ -
똥개 2004/03/19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기심'에 관한 대화를 잘 들었습니다.
늘 저를 난감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과장을 좀 섞자면, 간혹 '한 한기 세미나'를 할 내용을 '질문'하는 분들을 볼 때 답답해지곤 합니다. (어떨 때는 '한 학기 세미나' 정도가 아니라 평생 고민해야 할 과제로 잡아놓고 있는 부분을 겁없이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질문들에 '불친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고민들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대답은 그 사람의 삶 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다른 누군가의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결국 자신의 삶(지식의 습득까지를 포함한)이 스스로 가르쳐 주겠지요.. 차라리 겸손하게(?) 이런 고민들을 할때는 어떤 책을 읽는(영화든 그림이든) 것이 도움이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는 범위내에서 참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저처럼 공부하고는 담 쌓은 사람들은 그런 질문에조차도 적절한 대답을 드리기가 곤란할 경우가 많습니다. 책에서 배워 알게 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더 아이러니칼한 것은.. 그런 요령부득의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붙들고 막상 그럼 제대로 당신의 고민에 천착하는 세미나를 한번 맘먹고 시작해 볼까..라고 제안을 하면(저는 그런 돈 안되는 일도 곧잘 합니다. 그게 제 나름의 실천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거나 또는 처음엔 '호기심' 때문에라도 반색을 하다가도 이내 시들해져서는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꽤 보았습니다. 그럴 때는 '호기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제 자신이 참 한심스러워보이기도 합니다. 삶의 진정성이 다 걸리지 않은, 그것의 해명을 위해 다른 일에 쓸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은, 그저 문득 생각났을 때 누군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으면 좋겠을 뿐인.. 그것을 '(지적 자극의 원천으로서의) '호기심'이라고 말해야 할지조차 때로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그건 그냥 '호사취미'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주절주절 수다가 길어졌습니다.
아직 제 머릿속에서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생각의 실마리들일 뿐이어서 그럴겝니다.. -
고마쌔리 2004/03/19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는 글 안남기려고 했는데 똥개님 덕에 또 한 번 흔적을 남기게 되네요.
저 같으면 누군가 '한학기 세미나 할만한 내용'의 질문을 했다고 해서 '겁없이 질문한다'는 식의 표현은 쓰지 않을 겁니다. 정말 뭘 모르고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겁없는 질문자'를 좋아합니다. 예의에만 어긋나지 않았다면 설령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물어보면 '2'라고 답해줄 것입니다.
요컨대 질문의 내용이 자신이 대답해야할 수준보다 낮거나, 자신의 판단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면, 그건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거기까지 입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진정성이 들어있는가, 호기심 차원인가, (님의 표현처럼) '호사취미'인가 등의 가치판단은 답변자의 몫이 아닙니다.
똥개님은 자신의 황당했던 경험을 표현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님의 글은 여기 서른 개가 넘는 코멘트의 맥락으로 들어왔을 때, 읽는 사람에 따라선 꼭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인가' 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지금 그런 얘길 들어야 하는가 의아해 하고 있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그것은 마치 형한테 '숙제' 물으러 갔다가, 숙제는 안 가르쳐 주고 '인생설교'만 듣고 나온 기분입니다. 난 그저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물으러 갔는데, 그게 궁금해서 갔는데,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수의 개념에 대해 한바탕 듣고 나온 기분입니다. 뭐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기억 안 나세요? 저는 항상 이렇게 투덜거렸답니다.
'우씨, 내가 다시는 형한테 숙제 물어보나 봐라!' -
요안 2004/03/19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고마쌔리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
저의 경우엔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묻는 아우에게 수의 개념에 대해 한바탕 설명을 늘어놓는 형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2라는 '명쾌한' 답을 듣고 난 후에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1 더하기 1이 뭐냐고 질문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똥개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삶, 경험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게 아닐가 생각해 봅니다. 평생을 흙과 지내오신 농부 어르신은 '주말농장이나 가꿔볼라는데 농사 어떻게 짓는거에요?'라고 질문하는 세련된 도시 중산층 젊은이에게 뭐라 답하실까 궁금해지는군요.
그나저나 개미 앞에서 계속 '외람'된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는군요. ^^;; -
이종철 2004/03/20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야..술 먹고 더 퍼지기 전에 ㅎ.ㅎ
먼저 요기서.. 괜시리 고생하는 건이랑 개미 제군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담에 립 다시는 분들도 당근 그분들에 대해서 먼가 예의를 차리시길 -ㅅ-
낮에 똥개님 립을 보고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제 경험을 먼저 말씀드리자면..15년 정도 down族이다가 눈팅族5년 그 뒤에 이렇게 어딘가에 글쓴 경험은 겨우 1년 정도입니다..그거도 요기 계신분들이 아시면" 머 그런데?" 할 정도로 아주 정치적 의식하곤 전혀 관계없는 데였습니다..그런건 기대하지도 않았죠..
대략 봐서 인터넷 시각 정보에 대해서는 눈팅하는 사람 10명 중 1사람이 자기 의사를 표명합니다..더군다나 규항님처럼 사람을 쑤시는 글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중에서 더군다나 의사를 표시한다? 그거 무지 힘든 일입니다 ㅎ.ㅎ ..전 똥개님이 부박하다 여기셨던 그분들이랑 박병규님하고 고마쎄리님은 전혀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우리가 차가운 모니터 뒤에서 만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좀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그분들에게 드린 말씀은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었을런정 하다 못해 조금이나 덜 쓸쓸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있어서 입니다..넷은 차지만 사람이 그럴 이유는 없지 안나요? 넷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서 조금만 여유를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쩝..쩝..누가 오뎅탕 제대로 끓이는 거 갈치주면 조켔다 ㅠ.ㅠ -
이종철 2004/03/20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고래는 한마디로 '위력적'입니당 ㅋ 제 아들넘이 10살인데 고래를 제일 좋아합니다..며칠전엔 이렇게 묻더라구요 "아빠 전태일 이야기가 실화야?" 속으론 좀 놀랬지만 암치도 않은 듯 "응 그거 실화 맞어" 하고 슥 지나쳣죠 ㅎ.ㅎ..가끔 물어보면 전태일 이야기가 젤 재미있다..거북바위가 젤 잼있다..이런 식으로 자꾸 바뀌는 걸 보니 전부 다 재미 있나 봅니다^^;;또 글로 본거 "인권이야기'등의 이야기도 스스로 하는 걸 보고 대략.. 아니 무척 놀라곤 합니다..
정기구독도 안하고 그 책 나오면 "호야.. 새책 나왔다"라고 은근슬쩍 이야기하면 무지 조릅니다..그러면 좀 개기다가 서점에 가서 사와서 모르는 척 던져주는 거로 아빠 점수좀 올리죠 ㅎ.ㅎ 그 잔머리땜에 계속 수동으로 책을 구해줄라고 합니다..아이 맘에 책이 자리잡으면 그땐 당근 자동모드로 -ㅅ-
요즘은 고래를 만드시는 분들이 다 제 아이놈의 스승이라는 생각도 합니다..학부모로써 고맙다고 소주라도 한잔씩 대접하는 기 예의인뎅 이거 나원참 멀어서 ㅋ..언제 서울 가는 길에 출판사에 들러서 필자님들에게 음료수 한박스라도 대접하곤이가빠진 처음 3권도 수동모드로 구해줄라 합니다 ㅎ.ㅎ
정영수님 따님이 한글을 깨우치는가는 고래를 읽을 수 있는가라는 거하고 그렇게 깊이 관련지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제가 아이를 키워 본 경험으론 아이들은 꼭 문자로만 사물을 접수하진 안터라구요..그냥 던져 주십시오..첨엔 그림부터 보면서 아마 자기 나름대로 접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래의 메뉴는 매우 다양합니다..고래를 어른들 관점으로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는 건 '고래'를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 -
똥개 2004/03/21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냠.. 정말 세상은 다양해서 좋네요...
제가 노상 활동하는 어느 출판 관련 사이트를 둘러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1 더하기 1을 묻는 질문에는 2라고 대답해 드리는 편입니다. 최대한 친절하게..
오히려 제가 난감한 건.. '수가 뭐죠?'라는 질문이죠. 1더하기 1을 물었는데 수의 개념을 장황하게 강의하는 게 아니라(전 그럴 능력 없습니다) 애당초 수가 뭐냐고 물으면 정말 말문이 막힐 수밖에요. 애당초 문제가 되었던 얘기는 '사회주의'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것이 선의의 호기심이라면, 아마 방대한 독서와 또 많은 사람들과의 토론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그걸 1더하기1은 2라는 식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며, 그런 식으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를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때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만일 그조차도 아닌 '호사취미'에 지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사회주의의 의미와 역사적 전개 및 전망'에 대한 잘된 요약이 필요한 거겠지요? 그런 요약을 만들어서 공개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고마운 사람이지만, 요약이란 어차피 스스로 만들 때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된다는 거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들 잘 아시지 않나요? 인터넷을 통해 이러저러한 주제들에 대해 퍽 괜찮은 요약들이 돌아다니게 되면서 많은 분들이 그런 게 아무때나 자기가 보기에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질문하면 그냥 거저 생기는 것인 것처럼 오해하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자기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다른 사람의 노력의 결과를 구할 때조차도 그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지요. 그건 불친절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전에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끔 이런저런 토론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초등학교 때 배웠어야 했을 것을 배우지 못해서 엉뚱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죄소한 겸손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지요. 그럴 때 저는 아주 불친절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인데 국가가 제대로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그거 하라고 국가가 나한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물론 자원봉사하는 심정으로 할 수도 있지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시민사회에서 그 부분을 어쩔 수 없이 감당할 때도 있고 그 많은 부분들을 무급의 자원봉사로 해결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제게 마땅히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례를 참아내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겠지요. 그래서 그 부분이 오해되지 않도록 세미나 하자는 사람 있으면 돈 안 되는 일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기도 한다는 좀 민망한 자랑처럼 보일 얘기까지 덧붙였는데도 여전히 오해가 심하시네요. 불친절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을 두고 자신의 노력을 들여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두고, 누군가가 요약해 놓은 것만을 손쉽게 구하려 드는 태도가 바람직한 건 아니지 않나요?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뿐입니다. -
고마쌔리 2004/03/21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똥개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구구절절 읊으실 필요는 없었던 것 같네요. 결국 저 위에서 했던 말씀의 동어반복이니까. 똥개님이 하신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똥개님만의 느낌도 아니고, 누구나 그런 경우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요안님의 비유처럼, '주말농장이나 가꿔볼라는데 농사 어떻게 짓는거에요?'라는 질문은 농사꾼을 황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요. 근데, 제가 똥개님께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제 글에 답해야 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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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님은 자신의 황당했던 경험을 표현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님의 글은 여기 서른 개가 넘는 코멘트의 맥락으로 들어왔을 때, 읽는 사람에 따라선 꼭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인가' 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지금 그런 얘길 들어야 하는가 의아해 하고 있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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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똥개님의 글이 맥락속에서, 꼭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똥개님은 '그래, 사실 너(희) 들으라고 했던 소리다'라던지, 그게 아니라 '글의 맥락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경험담이다'라고만 대답하셨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도 똥개님의 리플에 따라 감사의 글이든 사과의 글이든 남겼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기분이 안 드는군요. 그리고 어제는 화가 나진 않았는데 지금은 똥개님의 태도에 좀 화가나는군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똥개님의 글이 제겐 대단히 오만하게 들립니다.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신 똥개님의 '말투'가 대단히 거슬립니다. 그들이 아무리 한심해 보여도 '자원봉사' 운운 하시는 건, 제 얼굴 깎아먹는 말씀 밖에 안됩니다.
아울러 똥개님께 지금 필요한 건 세미나를 할만큼의 지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훈련이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자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기 얘기만 일장 늘어놓으면, 아무리 주옥같은 말씀이라도 듣는 사람은 그저 황당할 뿐입니다. 설마 지금 이 글의 요지도 파악 안되세요? 제가 왜 씩씩거리는 지 정말 이해 안 되세요? 핵심부분에 밑줄이라도 그어 드릴까요?
다소 무례하게 들렸다면 똥개님께 사과 드립니다. 그리고 '개미의 생활'과 관계없는 코멘트를 본의아니게 많이 달아서 방문자 분들께 죄송하구요. 이번이 마지막 글입니다. 역시 저는 듣는 게 체질인 모양입니다. 앞으로는 경청 하는 학생으로만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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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김규항님께 건의사항 있습니다. 저도 방문자의 한사람으로서 본 글이랑 관계없는 리플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싫습니다. 다른 분들도 동감하실 겁니다. 이 번엔 제가 본의 아니게 총대(?)를 맨 처지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걸로 충분히 예상됩니다? "자유게시판" 같은 건 따로 하나 만들어 붙일 수는 없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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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상주의에 대한 존경과 현재의 고민
Tracked from 새벽을 밟는 자 2004/03/16 00:12 삭제김규항님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에 읽는 글들을 처음에는 이거 또 양비론이네?하면서 읽었더랬다. 계속 읽어가고 있는 현재 내게 드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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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Louis Vuitton Scarf Sale Black Friday 2014
Tracked from Louis Vuitton Scarf Sale Black Friday 2014 2014/10/23 19:55 삭제GYUHA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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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2004/03/16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략 동감합니다^^;; 아이고 이젠 그만 글쓰고 생업에 충실해야겠네요 ㅋ 제가 딴 게시판에 썻던 부분에도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개혁의 허망함을 알고 있지만 그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 건 저 썩어빠진 무리들이 아니고 저 같은 시민일 따름입니다..
글치만 고민이 되는 건 이런 겁니다..지금 제가 있는 경상도 같은 곳에선 민중들의 삶의 핍박함이 김대중씨에 대한 터무니 없는 지역감정등으로 왜곡되어 나타났던 게 현실입니다..그 자신의 삶의 신산함에 대한 염증이 가장 저열한 형태로 마녀를 생산함으로써 분풀이 하곤 하던 악순환이 나타나곤 했다는 거죠..이런 민도에서는 어떤 형태의 진보적 논의도 뿌리를 내리기 무지 힘든 거고..제가 대중적 집회로 분출되는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은 민중의 인식이 획기적이고 급격한 형태로 자신 내부에 있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쓰레기들을 스스로 정화할 거라는 생각때문입니다..저의 짧은 소견으론 그동안의 비틀거리는 민주주의 혁명과정에서도 민중들은 자신들의 내부에 있는 가장 더러운 형태의 지배 이데올로기부터 차근 차근 벗어던져 왔다고 생각합니다..이 국면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동안 수공업적으로..산발적으로..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진행되었던 지배 이데올로기 벗기가 대규모로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될만하다고 저는 봅니다..오로지 욕망에만 충실한 수구는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 내부에도 있던 적입니다..지금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써 광장에 모인 민중들이 스스로 가장 추악한 지배 이데올로기부터 확실히 벗어 던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소풍길 2004/03/16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된 글을 읽었습니다.
박기범님의 말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노무현의 한계도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 노무현의 여러가지 실책으로 인해..
수구세력이 아닌, 노동자 민중의 손에 노무현이 탄핵된다면,그러면, 대안은 무엇이죠..?
지금 현실에서 노무현이 탄핵되면, 노동자 민중을 말하는 민노당, 혹은 사회당이 집권하게 되나요..? 저는, 그렇게 된다면 탄핵에 절대 동의 하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노무현이 탄핵된다면 그 비슷한 누군가가 되는 현상유지 이거나 (예를 들어, 정동영같은..) 아니면 한나라의 수구세력이 집권하는 후퇴가 될거라고 봅니다. (한나라나 열우당이나 아무 차별이 없기에 후퇴가 아니라고 하시면 할 말 없습니다.) 그렇다면, 탄핵을 하나마나 아닙니까..? 차라리, 노무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수구세력보다는 그나마 나은 노무현을 상대로 싸우는것이 더 낳지 않을까요..?
김규항님께 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노동자 민중이 노무현을 탄핵한다면 그 뒤의 대안은 무엇이죠..? -
최종규 2004/03/1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주 수호'님이야말로 황당하군요. 나이와 생각과 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저와 김규항 씨가 따로 이야기를 해서 풀 일입니다.
'민주 수호'님 같은 분에게 읽히려고 써둔 글이 있어, 이곳에 올려둡니다. 도움 삼으시고프면 도움 삼고, 싫으면 시집 가시길. ㅎㅎㅎ
--
(263) 안타까운 좌파
좌파냐 우파냐가 아닌 옳은 길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
나는 우파가 독재하는 것도 싫으나 좌파가 독재하는 것도 싫다. 좌파와 우파가 골고루 섞여서 서로 견제를 하며 함께살아가는 틀을 좋아한다. 다만 서로 옳은 길로 함께살아가야 좋다. 라는 책을 읽으니,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관광산업으로 국민들 눈과 귀를 멀게 하면서, 쓸데없는 예산을 관광산업에 투자하고, 실질 민생사업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일은 관광만이 아니리라. 다른 일에서도 좌파정권이든 우파정권이든 서로서로 자기 잇속을 챙기며 권력을 이어가는 틀을 다지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노무현은 우파정권 대통령이다. 그이에게 좌파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어가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다만 좌파 정책 가운데 몇 가지가 실제로 힘을 내고 법안으로 자리를 잡도록 애쓰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이런 것은 바로 시민운동이 하는 터.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도 본질로는 좌파 시민단체가 아닌 우파 시민단체인 까닭에 실질로 좌파 정책이 골고루 정책에 들어가도록 힘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성에 따라 이런 시민단체에 몸을 담은 좌파 활동가가 많은 까닭으로, 적잖은 좌파 정책이 우파 시민단체 목소리에 함께 들어가고, 우파 정권을 밀은 이런 우파 시민단체 목소리가 정책으로도 이어지기 마련이다.
구태여 파를 나누어 말한다면 이렇다. 우리는 이런 정권과 시민단체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운동을 정권이나 다른 시민단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이 오는지를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일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 탄핵사건을 놓고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이나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속성이 어떠한가? 이 사람들이 파를 나누어서 말을 하는가? 반대하는 목소리가 지닌 뿌리는 무엇인가? 이들에게 파가 어떤 쓸모가 있는가?
대통령 탄핵사건이 옳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에 온갖 사람이 뛰쳐나온다. 좌파든 우파든 비주류든 중도든 거시기든. 민노당 사람이 깃발 들고 집회 오는 걸 반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있고, 깃발 들고 온다고 빨갱이라며 욕하는 사람도 있다. 열린우리당 종로구 후보 예정자 김홍신이 왔을 때도 손뼉치고 아우성인 사람이 있으나, 신경 끄는 사람도 있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탄핵반대'를 외친다.
뒷짐 지고 책상 앞에서 셈틀 켜놓고 앉아서 이런저런 신문기사와 글나부랭이 뒤적이면서 자기 사상을 그러모으거나 이런저런 책상물림 글만 쏟아내는 좌파를 경계한다. 마찬가지 우파도 경계한다. 길거리에 뛰쳐나온 사람들은 어느 정당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어느 정당 사람이 와도 찬눈길을 보낼 뿐이다. 이네들이 참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생각하면서 길거리로 뛰쳐나오는지를 차근차근 헤아리기를 바랄 뿐이다. 책상 앞에서는 그 무슨 생각도 할 수 있다. 자유다. 하지만 책상 앞 용두질로 파를 나누는 자살골 넣기는 안 하기를 바란다. 책상 앞에서 하는 찬웃음과 비웃음과 쓴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좌파니 우파니를 넘어 참으로 옳은 길을 가도록 이끌고, 옳은 길로 이끄는 말을 하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썩은 무리(좌파와 우파 모두)를 몰아내는 일은 책상 앞에서는 할 수 없다.
말만 앞세우지 말자. 백 마디 말보다 한 사람 몸뚱아리가 더 소중하다. 백만 명이 모여서 한나라당사와 민주당사와 국회의사당 건물을 다 밀어서 쓰러뜨리면 된다. 기분 내키면 열린우리당사도 밀어서 넘어뜨려라. 그리고 민주노동당사도 넘어뜨리고 자민련 당사도 넘어뜨리면 된다. 다만 집에 틀어박히고 셈틀 앞에서 모니터만 들여다보면서 치는 용두질은 그만두어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지키고 싶어서 길거리로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 지키기에는 아무런 눈길도 안 두며 우리에게 있는 주권과 권리를 지키려고 나오는 사람이 훨씬 많음을 알아두기를. 우리에게 있는 주권과 권리를 지키려고 나오는 사람이 올바른 목소리와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면 길거리에 나와야지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지, 길거리에 나오지 않고서 말할 때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헛방귀도 안 된다. 그저 헛발질이나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리영희 교수 글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새는 왼날개와 오른날개로 난다". 이 말을 잘 생각하자. 세상에는 좌파도 있어야 하지만 우파도 있어야 한다. 꼭 노무현이어야 할 까닭은 없으나, 노무현 같은 우파도 있어야 한다. 꼭 권영길이나 단병호일 까닭도 마찬가지로 없으며 좌파도 있어야 한다. 다만 김기춘이나 정형근 같은 수구꼴통이라든지 은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좌파를 지키고 좌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 틀을 마련해야 하지만, 좌파만 목소리를 낼 때에도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음을 잊지 말자. (2004.3.15)
(264) 깨끗한 물도 썩는다
그 어떤 깨끗한 물도 바가지에 담아 놓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아니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썩는다. 물은 흘러야 깨끗함을 이어간다. 고인 물과 바가지에 담은 물은 겉보기에는, 그리고 처음 보기에는 깨끗해 보이겠지. 하지만 물을 고이게 하거나 바가지에 담는다면 그것으로 그 물은 이제 똥물만도 못한 썩은 물이 되어 파리와 모기가 들끓기 마련이다. 물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퍼내서 버려야 한다. 퍼내서 우리 어머니 품 같은 땅으로 보내야 한다. 그리하여 어머니 품 같은 너른 땅이 그 썩은 물을 걸러내고 솎아내어 다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냥 물을 고인 채로 두다가는, 그 물을 마시는 모든 목숨붙이는 병들거나 죽고 만다. (2004.3.16) -
딩 2004/03/16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종규 님 글을 즐겨 읽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먼저 최종규 님의 견해는 맥락 없는, 즉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권력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인 많은 시민들의 마음이 최종규 님의 바람처럼 저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이미 어떤 현실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맙니다. 저는 바로 그것을 박기범 님이 잘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최종규 님이 남긴 다음 글에 담긴 인상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런 박기범 씨 글을 보았다면, 어른이 칭찬하던 그 말을 철회했을 겁니다. 안쓰러워서." 이렇게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덜 떨어진 사람'으로 비아냥대는 것이야말로 최종규 님이 아래 글에서 언급하신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항상 맑은 글만 쓰는 분이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서 잠시 마음 아파했었답니다. -
민주 수호 2004/03/16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 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최종규님은 역시 어른 시늉에 재미붙인 사람이 틀림없군요. 민주 님이 이의를 제기한게 뭡니까?
최종규님이 함부로 이오덕선생님의 생각을 예단한것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김규항님은 이오덕선생님이 박기범님에 대해서 했던 말씀을 '인용'했을 뿐입니다만 최종규님은 '예단'했지 않습니까?
저는 최종규님이 그런 예단을 할 수있는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자격이
있더 해도 돌아가신 선생님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예단하는건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규항님과 따로 풀 일을 구태여 말한것도 그 일과 이번 일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서입니다.
말이 안 통하니 그냥 간단하게 말합시다.
제발 "겸손"을 배우시오! -
최종규 2004/03/16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정경기로 올리는 글은 그만 쓰렵니다. 역시, 원정경기에서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좁기 마련인 듯하군요. 최종규란 사람에게 딴죽을 걸고프다면 최종규네 안방으로 찾아오시길 바라옵나이다.
..
ㅎㅎ 엄연히 있는 현실 권력 관계를 생각한다면, 님 말이 아닌 제 말이 옳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셔야 할 텐데요? 민주수호 님이든 딩 님이든 당신들 자신 생각이 옳다고 보면서, 상대방은 옳지 않다고 보는 생각에는 대꾸를 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다 다르기 마련이고, 다 다른 가운데에서 저마다 가장 옳다고 믿는 길을 가기 마련인데, 그런 걸 헤아리지 않으면서, 남이 하는 말을 당신들 뜻대로만 풀이하는 용두질은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리다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예우를 갖춰야 할까요? 물론 저는 김규항 씨에게 예우를 갖추고 싶습니다. 다만 전두환이나 정형근 앞에서 예우를 갖추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더불어 제가 우러르는 분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다면, 제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려고 애쓸 뿐, 그 이상으로 그분에게 예우를 갖출 생각도 없습니다. 나이를 들먹이는 사람 가운데 아름다운 사람이 없다는 옛말이 민주수호 님에게 잘 어울릴 듯 싶군요 ^^
이오덕 선생님 책을 1권밖에 안 읽으셨다면, 이미 나와 있는 이오덕 선생님 책이 100권 가까이 되고, 아직 발표하지 않은 원고도 500권쯤 됩니다. 이 가운데 1/10이라도 제대로 살펴 읽으시길 바랍니다. 많은 공부와 도움이 될 겁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박기범 작가를 무턱대고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작품과 글에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와 잘못을 온갖 쓴소리와 비판을 하면서도, 그렇게 자기 길을 가는 젊은이라는 데에서 희망을 느끼고 칭찬을 했습니다. 박기범 씨는 이오덕 선생님이 그런 비판을 할 때 달게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나아지려고 애썼고,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더욱 아꼈지만, 현실 사태를 이번에 쓴 글만큼밖에 쓰지 못한다면, 무척 실망하고 안타깝게 여겼을 것은 뻔한 일이라는 거지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어린이책 이야기,소년한길"를 읽어 보시길.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펴낸 회보에 실린 이오덕 선생님 글을 찾아서 읽어 보시길.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ㅎㅎㅎ 제가 두 손 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박기범 작가가 "권정생 선생을 이을 만한 훌륭한 작가"라는 판단과 "좋은 동화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판단을 가만가만 헤아려 본다면, 물론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도 자기 주관으로만 본 것이기 때문에 동의를 할 수 없고, 틀린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음을 생각하기를. 더구나 국문학을 하신다니, 이런저런 앞뒤 흐름과 논리도 잘 헤아려야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여기에 글도 안 남기고, 올라오는 글도 안 읽을 터이니, 제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제 안방으로 찾아오십시오. 안방경기에서는 기꺼이 맞서드리겠습니다 ^__^ -
오창엽 2004/03/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께살기 최종규님 통신상에서 구면이죠.
좌파독재와 우파독재 다 싫다고 하시는데, 그럼 님은 민주를 가장한 나치독재파입니까? 정치사상과 입장이 어떠하든 된 사람은 언행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책 좀 많이 읽었다고 떠벌이기 전에, 광기가 판을 치는 시기에 적어도 책을 읽는 사람은 부화뇌동을 경계해야 합니다.
원정경기니 안방이니 하며 종규님은 그렇게 인터넷에서 싸움하는 게 취미인가요? 색안경을 끼고 정치적 소수자들을 몰아부치는 건 어디서 배운 버릇입니까? 내가 남들 싸우는 데 개입하여 누굴 편들거나 누굴 나무라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종규님의 이런 시비걸기가 함께살기 정신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님과 같이 악취 풍기는 집안의 안방 같은데 안 갈테니, 님과 싸울 일도 없겠군요. 박기범님이나 김규항님의 주장에 동의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 분들의 글과 사고에 담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세요. -
지나가다 2004/03/17 0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종규씨, 인터넷 상에서 가끔 글로만 대하지만 그렇게 안봤는데 좀 희한한 분이로군요.
자기가 마음에 안들면 그냥 내가 마음에 안든다고 할일이지, 이오덕 선생님을 끌어들여 이오덕 선생님이 봤다면 어쩌고 하는 건 도대체 뭡니까? 이오덕 선생님이 진짜 그리 생각할지도 불확실하거니와 (최종규씨가 이오덕 선생님 분신이라도 돼요? 남의 마음을 그리 잘 알게?), 설사 그리 생각한다 치더라도 이오덕 선생님이 직접 발언하신 게 아닌 이상 최종규씨가 그런 식으로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거에요. 그게 선생님에 대한 예의인 줄 몰라요?
도사들도 아닌데, 의견 교환이 늘 점잖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할 선은 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의 주장과 같다”는 식의 말은 의견이 아니라 야비하고 저급한 폭력이다. 우리는 군사 파시즘 시절에 ‘소수 의견’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북의 주장과 같다.”, 혹은 “너 빨갱이지?”하는 말로 당했다는 걸 기억한다.(오늘 거리를 물결치는 사람들이 지키려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시절의 ‘소수의견’ 아니던가?) 자신의 의견에 자부심을 갖는다면 자신의 의견을 폭력이나 배설로 만들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몇 년 전 의사들과 전쟁을 치루면서 “너 빨갱이지?” 라는 말을 들을 때도 전여옥이라는 이와 함께 취급되었었다. 같은 말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에게서 듣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라서 굳이 밝혀둔다. 나는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지 않는 몇 안 되는 출판사의 대표이며, 전여옥이라는 이를 정상적인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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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나는 왜 김규항의 냉소를 비판하는가.
Tracked from 이정환닷컴! 2004/03/16 10:10 삭제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김규항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그가 내세운 다음 같은 말도 안되는 논리 때문이다. 1. 탄핵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다. 2. 노무현은 탄핵안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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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흐르는 숨결 2004/03/18 04:34 삭제http://gyuhang.net/mt/mt-tb.cgi/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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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fifa ultimate team coins gwaqfj mdb qgfd 2014/08/08 23:56 삭제Dior know Lee terra not understand him. [ ] Can still <a href="http://www.modelexpo-online.com/michaelkorsoutlet.asp" target="_blank">michael kors outlet online</a> ask one. Be a goo <a href="http://www.modelexpo-online.com/michaelkorsoutlet.asp" ta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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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 2004/03/15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 탄핵기획론 이야기는 우파들이 워낙 많이 쓰던 논리라서 그렇게 코멘트를 날렸습니다.
가장 모욕적으로 들리셨을 말이었을 텐데.. 그간의 존중을 생각해서라도 참았어야 옳을 말입니다. 김규항씨는 그정도의 모욕을 받을만한 분은 아니지요.. 그부분에서 님을 자극한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탄핵기획, 천재 노무현의 뒤집기 전략으로 해석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롱의 눈을 거두지 않습니다. 아마 진짜로 노무현의 머리에서 이것이 기획되어서 나온 것이라면, 저는 노무현을 전세계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 겸 전략가 겸 용장 겸 맹장으로 추켜세우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노빠의 어느 한 대열에 김규항씨도 함께 하시는 게 되는군요. 이것도 모욕적이신가요?
여태까지 가만 있었던 개혁지지자가 이제와서 설친다고 하면야 할말 없고, 그래서 입다물라고 하면 또 할말 없지만.. 대신 제가 보내는 이 싸늘한 조롱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언제고 도사2를 한번 써보시죠? 꽤 재미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노란군대라고 놀리는 것은 제게는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만, 다른 분들에게 함부로는 하지 마십셔. (규항씨 말고..) 저야 비공식 열혈 진성 노무현 지지자다 보니 괜찮습니다만, 함부로 그말 쓰면 정말로 모욕을 느끼실 분들 많습니다. 아마, 규항씨가 이렇게 글을 쓰신 것에는 그 철딱서니없는 분들을 위한 충고도 함께 담겨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충분히 조롱을 퍼부었으니... 쩝..
트랙백을 애용하겠다는 말을 하루만에 뒤집게 되는 이 비루한 방문객을 양해해 주세요. 물론 본명을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저는 이 아이디를 8년쨰 써오고 있고, 메일주소도 대표메일이니, 저에게 조롱을 퍼부으실 분들은 환영합니다. 적어도 제가 때린 만큼은 맞아야지요.. -
이종철 2004/03/16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리미님 정치적 견해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해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생각은 다를 수 있고..또 틀릴 수도 있습니다..전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지만 항상 주목하는 것은 그 생각에 합당할 만한 진정성이 그의 삶에 보였었나 하는 점입니다..이런 점에서 전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에게 거의 무한대의 신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언변이 모잘라서 ㅠ.ㅠ 항상 남의 글만 인용하게 되네요 ㅋ오늘 본 글을 2개를 인용해서 님에게 드립니다..조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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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평중
무릇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논리에 대한 자부심은 생명과도 같은 것, 그토록 첨예한 논변의 편지 속에서도 두 분 어르신께서는 단 한번도 서로간의 존경과 예의를 잃지 않으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당장 거친 말들이 쏟아지는 오늘날의 인터넷 게시판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벼슬의 높고 낮음도, 스물 여섯 살의 나이 차이도, 사단칠정론에 관한 견해의 차이도 두 분 서로간의 존경과 우정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토론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당대의 명성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한참 손위이신 퇴계선생께서 후학에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고봉선생께 ‘시대를 위하여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책의 볼륨에 비해 많은 부분이 상대에 대한 걱정과 안부로 메워지고는 있지만 뜨문뜨문 발견되는 퇴계와 고봉의 사상 논쟁은 가슴을 압박하더군요. 몇주 혹은 몇달의 시간 간격을 두면서 상대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따뜻함이 항상 깔려있는 논의가, 분단위로 가속화되고 격렬화되는 현대의 internet을 통한 싸구려 논쟁을 비교하게 하더이다.
책 본문에서
지난 겨울 자중子中이 제게 왔을 때, 그대가 제 편지에 답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을 이미 말했습니다. 말재주만으로 경쟁하다시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익하고, 진실한 공부는 매번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다가 말다가 하는 잘못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기질과 습관의 치우침, 물욕의 가림, 세상사의 구속, 이 세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산중이라서 물욕의 가림과 세상사의 구속은 적지만, 치우친 기질과 습관은 바로잡기 어려워, 뜰 앞을 서성이면서 매번 강직한 친구의 도움 받기를 생각하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마치 큰 보물을 얻은 것 같아, 펴서 읽어 보고는 깊이 감복한 나머지, 늙고 혼미하다는 이유로 감히 스스로를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경서가 돌아가는 길에 이 글을 부칩니다. 이만 줄이오니 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삼가 절하며 답합니다.
계해 2월 24일, 황이 머리 숙입니다 -
철이 2004/03/16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밥오/ 전여옥의 '진보' 운운은 '커밍아웃'이 아니라 그냥 노무현을 반대하기 위한 하나의 사기성 수사에 불과한 것 같군요.
씨 왈, 노 씨 집권 1년 간이 지긋지긋해서 보수로 돌아섰다는데... 아시다시피 노 정권의 성격이 진보와는 거리가 있거니와, 전 씨가 '진보'였다 주장하는 1년 전엔 재벌 정몽준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그가 지껄이는 '진보'의 본질이라면 이건 최악의 개그입니다. 논리, 알리바이, 어느 쪽도 성립되지 않는.
[일본은 없다]라는 스테레오타입으로만 채워진 쓰레기를 용감하게 책으로 엮어낼 때부터 죽 봐온 바, 그녀는 아무 때 아무 장소에서 아무 소리나 거리낌없이 지껄일 수 있는 후안무치하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생각됩니다.
한나라당의 대변인으로선 제격이죠. 代辯人이 아닌 大便人.^^ -
이종철 2004/03/17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이쪽에 댓글을 다는 게 비교적 합리적이지 싶습니다..제가 며칠간 죽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 정치적 논쟁을 보면서 드는 단상이랄까 머 그런겁니다 ^^;;
저는 사실 이런 정치적 논쟁을 안해 본지가 꽤 되었고 또 천성이 게을러서 공부를 많이 안해서 그런지 솔직히 여기 제출되어 있는 그런 측면의 논리는 좀 어렵고 중심잡기가 힘듭니다 .ㅠ.ㅠ
근데 비단 이런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과 어떤 논리를 이야기하던.. 또 관계를 맺던.. 제가 제1의 기준으로 삼는게 진정성입니다..좀 나와 다르다고 느껴도.. 그가 진지하게.. 또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까지 私心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견해를 제출하는가 하는 문제를 주의깊게 보는 거죠..특히 언어가 그 주인의 저열한 욕망(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에 사로잡힌 건 아닌가 제 스스로도 무지 경계할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세운 이 나름대로의 기준에 드는 이야기는 전 무조건 '같다'와 '다르다'의 범주에 집어 넣고 우짜던동 서로 차이를 좁혀 나갈라는 노력을 합니다..안돼면 하다 못해 和而不同이라는 고전적 행위규범이라도 지킬라고 그러죠..
이 기준에 들지 않는 이야기는 대개 '옳다'와 '그르다'라는 판단으로 당연히 나가게 됩니다..더 심해지면 '좋다'와 '싫다'라는 범주까지 가게 되는 거죠..전여옥씨 같은 경우는 그의 저열한 욕망때문에 당연히 저에겐 '옳다'와'그르다'라는 범주에 드는 화상이 되는 거고 계속해서 그른 뻘소리를 해대니깐 당연히 싫어지고 미운 거죠 ㅎ.ㅎ
그동안 이 블로그에 제출된 여러가지 견해는 제 기준으론 대개 '같다'와 '다르다'는 범주에 해당되는 거로 느껴집니다..아.. 물론 다른 논리는 당연히 다른 정치적 행동을 낳겠지만..그 제각각의 논리를 전 아직 '옳다'와 '그르다'라는 범주로 분류해낼 정치적 식견이 없습니다..몇가지 댓글들은 제 기준으론 너무 쉽게 '좋다'와 '싫다'라는 범주까지 마구 나가버린 느낌이 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소박한 바램은 이 블로그를 조그만 사랑방으로 생각하신다면 요즘 유행하는 속말로 방법은 좀 쿨하게..그러나 내용은 뜨겁게..그리고 위에 말씀드린 3가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안 뒤섞였으면 하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보면 좀 엉뚱하달 수도 있는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말하기의 어려움과 위태로움과 허망함을 알지 못하던 젊은 날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과 '민주'라는 '방법'이 가진 소통의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또 젊으신 분들의 왕성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제 나름의 소견이라고 보셔도 괜찬치 싶습니다..
장문의 스크롤압박에 죄송합니다 ㅠ.ㅠ 조은 아침 되십시오^^;;
ps)이 블로그에 장문으로 논리를 개진하신분들(저까지 포함 ㅠ.ㅠ)은 소위 鬱滯에 조심하세요 ㅎ.ㅎ 생각도 너무 많이 하면 체한답니다^^;;생각의 鬱에는 운동이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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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 2004/03/15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나 볼수 있지만, 조금 듣기 싫은 소리하면, 바로 노란군대로 몰아 붙이는 것도 아주 익숙한 풍경이군요.
아, 저는 노빠 맞습니다. 그러나, C씨에게 보내는 이 짧은 메시지는 노빠로 보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최소한의 상식으로 말하는 것이고, 규항씨의 최근의 코멘트는 그 최소한의 상식을 항상 져버리는 조선일보와 아주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조소하는 것입니다.
C씨에게.. 스스로 노무현 지지자라고 밝힌 사람이 아니면, 왠만하면 함부로 노란군대로 몰아붙이지 마세요. 아주 위험합니다. 그럼 당신은 붉은 군대요?? -
ju2ju2 2004/03/15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창시절,,,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집도 못살아서 뭐하나 번듯하지 못했던 친구가,,,
어느 날 어떠한 잘못으로 아님 어떠한 오해로든,,,,선생님에게 딥따 얻어 맞을 땐,,,,,
뭔가 잘못을 했나보다,,,모 그런가부다,,,내심 그로인해 수업시간에 좋은 구경꺼리 보듯 하기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공부잘하고 반듯한 친구가 왠일로 선생님께 딥따 얻어맞을 땐,,
왠지 모를 연민과,, 그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친하지도 안았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싶어,,쉬는 시간에 우르르 가서 위로하던 기억이 난다.
매번 맞는 친군, 불쌍해 보이지도 않고 주의를 끌지도 못한다. 그저 억울하게 계속 맞을 뿐이다. 어쩔 땐 맞을 만도 하다는 조소까지 받는다. 하지만, 맞을 것 같지 않았던 그 똑똑한 친구는 맞음으로 인해 평소 얻지 못했던 친구들의 인기까지 한 몸에 받곤 했다.
우리사회에는 항상 맞고 있는,,,항상 의견이 묵살당하고,,눈에 보이지 않게 힘 있는 누군가에 의해 국회밖으로 질질 끌려나오기도 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다. 매번 그러는게 익숙하기도 하고,,,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인지도 있는 국회의원들이 따귀를 맞고 양복이 다 뜯겨 질질 끌려나오고 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면 저리 통곡을 할까 싶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마지막 수단으로 분신을 하고, 투신을 하고 또한 생활고로 자살을 하고, 부당함으로 인해 차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죽어나가는 판국에 난 어떤 일에 내가 더 분노해야 하는지,,헤깔리기 시작한다. -
도노반 2004/03/15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규항님의 '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에 대한 다리미님의 트랙백을 봤습니다.
일단 다른건 제껴두더라도
김규항님의 "8. 탄핵 사태와 민중의 삶은 별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에 대한 님의 반박이 '조선일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국가신용도와 증시폭락으로 인한 민생피폐는 평소 '조선일보'가 노동운동과 각종 민주화 시위를 향해 써먹는 반박 아닌가요?
요즘 김규항님의 글을 제외한 이전 글들에 대체적으로 공감하시는 님께서 그런 수사법의 허구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실것 같은데요 -
밥오 2004/03/15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르/ 노무현이 집권하나, 최병렬 혹은 조순형이 집권한 세상이나, 근본적으로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동의합니다. 팍팍하길 마찬가질텐데요. 그렇더라도, 최악과 차악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는 노무현이 집권한 것에도 사는게 팍팍한데, 최병렬 혹은 조순형이 집권한 세상은 얼마나 x같을까요? 노무현을 지지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왜 자꾸 이런 점을 놓치는지. 그런 관념 때문에, 연대의 폭이 훨씬 좁아지는건 아닌지. 이념적 정조, 순결주의는 아닌지.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할듯 합니다.
얼마전 TV 토론회서 떠들던 '한때 진보였다고' 칭하며 네거티브한 양비론을 설파하며 정치혐오를 조장하고 다니던 전여옥 아줌마가 한나랑 대변인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어이가 없어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정도입니다.
너무 앞서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misoni 2004/03/15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리미 / 제가 해석한 '민중들의 삶과 별 관련없다'는 말은 이래요. 탄핵이 되기 전이나, 되고 나서나 민중들에게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는 가죠.
탄핵되기 이전에 민중들의 삶은 행복했을까요. 김규항씨가 10번에서 지적한 것처럼, 탄핵 이전에도 배달호, 김주익, 박일수씨 등 탄핵 이전에도 여러 명이 자신의 처참한 노동현장을 고발하면서 분신, 자살했지만, 노무현씨가 언제 귀 한번 기울였던가요? 되려 '분신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망자 앞에서 악담을 퍼부었을 따름이죠. 그 분들 분신했을 때, 열우당이나 노사모 사람들이 이렇게 흥분하긴 했었나요?
이라크 파병만 해도 그래요. 탄핵 이전부터 이후까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고 있죠. 이라크에 누가 가나요? 귀족들이 가나요? 돈 많고 빽 있는 부모 두지 못해 군대 끌려간 '민중'의 자식들이 아닌가요?
이 사람들의 삶이 탄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탄핵이 통과되었다고 특별히 나빠질 것도 없고, 탄핵이 저지되었다고 특별히 좋아질 것도 없어요. 그 뜻인 것 같아요. -
늦바람 2004/03/17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이런 저런 논의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걸리는게 있습니다. 바로 그 "민중의 삶"이라는 것인데... 어떤 정치적 사안이 민중의 삶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또 그렇다고 생각해왔는데...
민중의 삶이라는 것을 경제적 물질적인 것 만으로 너무 협소하게 설정하는 것은 아닌지... 민중의 삶 이라는 것이 그저 동많이 벌고 잘먹으면 된다는 것인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월드컵 ... 민중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지요?
연주회, 미술관 ... 민중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지요?
개그콘서트...민중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지요?
좀... 억지를 부려 봤는데...
탄핵은 민중의 삶과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
albatros 2004/03/17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김규항님의 글에 대한 판단을 일단 유보한채로, "탄핵 사태와 민중의 삶은 별 관련이 없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1) 노무현은 탄핵받았다.(헌재 판결 제외) 그런데 민중을 핍박한다는 이유로 민중이나 민중의 대변자에 의해 탄핵받은 것이 아니다.
(2) 노무현이 탄핵받은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다. 그런데 노무현이 민중을 위하는 지도자라는 이유로 탄핵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의 탄핵이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탄핵, 그리고 그 탄핵에 반대하는 여러 행동이 민중의 삶을 고려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albatros는 날고싶다... 호성... -
똥개 2004/03/17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사회'적인, 또는 '의식'(문화)적인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날라리 좌파'로서 한말씀 드리자면...(제대로 된 '좌파'라면 언제나 적어도 '최종심급'에서는 '경제'적인 문제에 고민이 맞닿아야 함에도.. 흐으~)
탄핵이 민중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탄핵 반대'의 저 함성은 '민중의 삶'과 아주 큰 상관이 있습니다. 물론 역방향에서 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마치 '탄핵 반대'의 함성 말고 다른 삶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의 극히 일부분이 과장된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 그 자체가 아닌 그저) 현실에 대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민중의 삶'을 비가시화하고 억압하고 위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은 '민중의 삶'과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탄핵'에 대해 '민중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을 굳이 덧붙여야 하는 이유겠지요.
어느 정치적 이슈 치고 실은 삶과 상관이 없는 이슈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제기하는 의제인가 아니면 단지 자기 자신의 삶과 아무 연관도 없는 이미지의 세계 속에 구축된 (가장 대표적으로는 '대의'니 '명분'이니 하는 따위) 영역 안에서, 이해의 문제가 아닌 호오의 문제로 판단하고 있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오의 이미지 문제가 될 때 그것은 당연히 '민중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됩니다.
2. 탄핵 사유와 노무현 씨의 개혁성은 별 관련이 없다.
3. 탄핵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
4. 노무현 씨는 탄핵이 가결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 즉, 노무현 씨는 탄핵을 선택했다.
6. 탄핵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건 노무현 씨와 열우당이다.
7. 노무현 씨와 열우당은 탄핵이 가져올 이익을 알 수 있었다.
8. 탄핵 사태와 민중의 삶은 별 관련이 없다.
9. 탄핵 사태와 6월항쟁은 별 관련이 없다.
10. 오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도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좀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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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
Tracked from Can I Write Something? 2004/03/14 23:27 삭제<DIV class=title>1. 노무현 씨는 바보가 아니다.<BR>2. 탄핵 사유는 노무현 씨의 개혁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BR>3. 탄핵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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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건 아니다.....
Tracked from 다리미의 법과 정치 2004/03/15 01:31 삭제<DIV class=title>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DIV> <DIV id=underline> 1.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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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규항의 억지와 헛소리.
Tracked from 이정환닷컴! 2004/03/15 03:12 삭제노동자와 소외계층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수구정치권의 난장판에서 그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옳다. 나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게 이번 총선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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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규항 - 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
Tracked from Desperado 2004/03/15 06:28 삭제명료하면서도 간결합니다. ^^ 탄핵,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 1. 노무현 씨는 바보가 아니다. 2. 탄핵 사유는 노무현 씨의 개혁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 3. 탄핵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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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탄핵에서 나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것 10
Tracked from Monolog 2004/03/15 11:12 삭제김규항씨가 쓴 탄랙,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 10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1. 노무현 씨는 바보가 아니다.2. 탄핵 사유와 노무현 씨의 개혁성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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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규항이 말하는 탄핵,탄핵,탄핵
Tracked from 곰짝의 겨울잠 2004/03/15 18:03 삭제<FONT color=#d41a01>무사 노무현<BR></FONT><BR><BR>언젠가, 노무현 씨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이가 내게 말했다.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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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개혁과 진보
Tracked from [탄핵반대]다리미의 법과 정치 2004/03/17 03:27 삭제<DIV id=num_not_content style="DISPLAY: block"><BR>격문이 필요한 시기에 이런 기운빠지는 사변적인 글이나 쓰려고 마음먹다니.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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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머거본 펌 - 탄핵유도론의 허와실
Tracked from [탄핵반대]다리미의 법과 정치 2004/03/17 04:33 삭제‘자칭(自稱)’ 좌파 지식인들이 조중동이나 유포해야 마땅한 탄핵 유도론에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은 ‘적극적인 사과 표명’ 등 충분히 파국을 면할 방도가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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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 2004/03/14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분이 제가 대통령을 '씨'라 부르는 걸 지적하셨기에 몇자 적습니다.
저는 사람 이름 뒤에 직업이나 직책을 붙여 부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교수님, 변호사님, 기자님 따위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게 직업이나 직책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신분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아무개 노동자님, 아무개 미화원님이라고는 부르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에서는 누구에게나 씨 혹은 선생을 붙이고,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노무현이라는 이에게 씨를 붙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만일 제가 그를 개인적으로 만난다면 '노무현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
코쿤 2004/03/1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김규항씨를 형이라 부르고 싶은데
아직 친분관계가 없으니 그럴 수가 없군요.....
'식인체체'란 글에 달린 댓글들 보니
저한테라면 몰라도 김규항씨에겐 어울리는
비난은 아니군요.
생각은 아주 본능적으로(!) 김규항씨와 같은 결론
을 냈지만 하는 짓은 가만히 있다든가 아니면
'식인체제'의 '그들'과 같은데가 있으니까요
비난들도 보고 김규항씨의 글도 보면서
그 빌어먹을 놈의 '원칙'이란거........
참 지키기가 왜이리도 힘든건지....그런생각이 드네요...
이놈의 담배는 참 끊기도 힘드네....하하 -
이종철 2004/03/15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거참..저 말고도 아직 안주무시는 분들이 만으신가 보죠 ㅎ.ㅎ..더 드릴 말씀도 좀 있지만 그냥 제가 딴 게시판에 올렸던 멍한 글을 뻬껴서 올리곤 ㅋ 술이 취해서 잘라 합니다..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쓸 수 있다면 여기가 아니고 더 개별적인 편지로써만 할 수 있지 싶습니다..멍청하지 않다면 규항님의 서두로써 출발할까 합니다..
좌파가 ‘관념적 냉소로 가득찬 인간’ 취급을 받는 세상이긴 하지만,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들을 냉소하겠는가. 그들은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에 사느라 좀더 나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그래서 욕심도 적을 뿐이다. 그들은 고작 축구팀이 세계 4강에 드는 일로 조국에 대한 첫 자부심을 느끼고, 개혁이라는 식인체제의 새로운 대변자가 처한 곤경을 한없이 슬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결코 그들을 냉소할 수 없다.
[단상...]다시 13년만에 거리에서...
아이를 데리고 갈라고 어제는 몬가고..오늘 저녁에 부산 집회에 부자가 오붓이 다녀 왔습니다..시위 용품(이라 해밨자 깔고 앉을 신문지 2장하고 양초 2개..그리고 쓰레기 담을 비닐 봉지 --a..이런 데서나마 세상 좋아진 거 느낍니다 ㅎ.ㅎ)을 같이 챙겨서 아이 조그만 가방에 넣어 일부러 지보고 들라 하고 전 노트북 들고 ㅋ
시내가 붐빌 것 같아서 주차가 가능한 제일 가까운 지하철 동래역에 차를 나두고 지하철로 이동해서 부산 부도심 서면에 도착하니 벌써 마지막 집회가 시작할라 하는 참이었습니다..하도 오랜만이라 위치선정도 몬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아들놈이 호기심이 가득 찬 눈길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제 손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 ㅠ.ㅠ..어느새 앞 세번째에 자리를 떡하니 잡게 되어 있더라구요..먼 사진 찍는 사람이 그리 만은지 ..사진 찍히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옌날 일이 다시 떠오르더구먼요 ㅎ.ㅎ
아직도 여전히 단체소속인 사람들은 벌써 목이 쉬어 있고..유인물은 지천으로 넘치고..양초 나눠 주는 늙수그레 하게 보이는 시민들도 보이고..우리 부자 옆에는 좀 젊게 보이는 미시(?)아점마가 아들인지 델고 와서 저를 초보라 본지 이것 저것 나눠 주고 -ㅅ- ..같이 어깨걸고 노래 부를 때는 저는 슬며시 뒤로 빠지고 울 아들넘 어깨를 잡게 했습니다 ㅋ
시민들 이야기도 좀 듣고..노래는 좀 듣기만 하고 -0-.. "님을 위한 행진곡"은 여전히 거리에서 살아 있더구먼요..아이는 딴 노래 풍자곡 가사에 지롤염병이라는 대목을 보곤 눈이 동그래져가지고 "아빠 이거 욕이지?"카더라구요.. 걍 웃어 주었죠.. 몇번 따라 하더니 그 대목에선 신이 나가지고 -ㅅ-
어깨 걸고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을 들으면서 조용히 따라 부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흐린 눈망울에 91년도 강경대 열사 시위때 서울 연세대 앞 철교위에서 어느 학생이 제 몸을 불살라 시커먼 연기와 함께 떨어지던 광경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그 찬란하던 햇살과 시위대를 휘감고 강물처럼 흐르던 분노와 슬픔으로 "그날이 오면"'을 목놓아 부르며 눈물을 훔쳐내던 더운 기억도 어제인듯 생생했습니다..
녀석을 꼬셔서 가까운 돼지국밥집에 가서 저녁겸 소주 딱 1잔만 할라 했더니 -ㅅ-..귀신같은 녀석 "아빠 술먹지 마!!!" 할수 없이 밥만 묵고 다시 집회장 오니깐 좀 있다 정리하더라구요..ㅎ.ㅎ 사회자가 주위 상인들과 경찰 '선생님'들에게 집단으로 인사시키더라구요..딴분들은 주위를 주섬주섬 청소하던데..우리 부자는 우리 시위 용품만 다시 챙기고 조용히 빠져 나왔습니다 -0-
집에 오면서 아들 왈 "잼있다.. 담에 또 오자 아빠..응?" "아이다..니는 한번이면 됐다" "왜?" "얌마 이건 어른일이다..적어도 유권자가 되고 나서..어쩌구 저쩌구..궁시렁 궁시렁" 별로 납득하는 눈치는 아니었슴당 -ㅅ-
군데 나는 왜 13년만에 아이를 델고 다시 거리에 나갔을까? 공화국의 시민인 아비의 의무와 그 뒤를 이어 그 시민으로 커갈 아이의 세상 구경이라는 점 말고 딴 거는 없었을까? 내가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건 멀까요..한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바닥에서 본 우리 혁명의 아름다운 가치를 찾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 힘과 능력이 된다면 정말로 함 써볼까 합니다..아니 꼭 정리를 해 놓아야 비로소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 역사로서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시판에 쓸데 엄는 이야기라 눈살 찌푸릴 분들도 있지 싶습니다 (_ _) 역시 마찬가지로 이 글도 즉시 삭제하셔도 전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 모두 조은 주말 맞이 하시길.... -
D급좌파 2004/03/15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펀글) 정세관망
결국 분위기를 탔습니다.
12월 19일 직전까지 광화문에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울려퍼졌듯이
이번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주제가가 될 듯하네요.
아마 권한정지된 대통령은 휴가를 받은 셈이 될 것이고
본인의 짧은 소견이지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그때와 같이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시체를 넘고넘어
열린우리당의 총선승리로 전진할 듯합니다.
노무현 지지자들 특유의 감성코드가 발동한 지금
분위기만 잘 잡으면 이거 대박 나겠군요.
근조 대한민국 국회
근조 의회 민주주의
그러나 무엇보다도
또 희생될 진보정치의 새싹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예측을 해보자면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연고주의에 맞서
백중세를 유지할 것이고, 민주당의 전라도 표도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탈당파 의원들이 조만간 나올 것 같습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경남 창원에서 권영길 후보만큼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압승을 할 것이지만 비례대표 의석에서는
열린우리당으로 기운 정서적 진보성향의 유권자들 때문에
많은 표를 획득 못할 것 깉습니다.
비례대표 1번 심상정 후보와
2번 단병호 후보까지는 갈 것 같으나
그 이상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네요.
준비 안 된 대통령 노무현과
도저히 말이 안되는 견원지간의 동침인 한민공조의 충돌이라니..
솔직히 별 감흥도 없습니다.
역시 노무현은 천재적인 승부사라는 것만 다시 확인시켜주네요.
여튼, 4월 15일에는 투표하러 갑시다.
백날 거리 집회하는 것보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씹새끼들 낙선시키는게 직방이니깐.
출처 : [이현석님 미니홈피]반달공화국(The Rep. of VanDal)
작성자 : 이현석
작성일 : 2004.03.12 -
나무와길 2004/03/15 0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번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더 많이 생기길, 그래서 한국이 조금씩이라도 진짜 성숙한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김규항 님은 탄핵 사태를 아주 냉정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가결을 이미 예상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만, 그렇다면 헌재에서는 어떻게 판결을 내랄지도 내다볼 수 있었을까요? 대통령이 대통령이 남을 것이라는 것까지 확신을 해서 이런 일이 꾸며지도록 내버려둘 만큼 '간'이 큰 노무현이었을까요? 김규항님은 헌재의 판결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도 노무현과 열우당 좋아하지 않습니다. 김규항님이 쓰신 10번 문항에 가슴아파하는 만큼, 자기네들 이익에만 '치열한' 그 놈들이 그 놈들인 정치판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한나라와 민주당의 행위가 그네들의 목적대로 딱딱 들어맞는다면, 그래서 정말 다시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그네들이 써 놓은 시나리오대로 지네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지네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해도, 그렇게 되는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나 별 다를 바 없는 게 되는 건가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낙관론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아니면 더 많은 민생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만으로, 그 놈이 그 놈인 정치는 어째되는 상관없다는 말씀이신지요.
이번 사태에 저를 비롯한 또 한무리의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는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것에 있습니다. 탄핵을 가결시킨 국회의원들이나, 쉬는 동안 영화나 보러다니라고 충고했다는 노무현측이나, 누구누구의 편에 선 분노가 아닌, 국민의 한 표를 무시한 모든 정치인들의 작태에 대한 분노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은 마땅하다고 봅니다. 너무 냉정한 시선을 거두어 주시고 함께 동참해 주실 수는 없는가요?
솔직히 두려운 맘도 듭니다. 탄핵을 밀어부친 저들이 또 무슨 일을 못할까.
저는 지난 2년간 대통령 선거도, 이번 총선도 참여하지 못하고 나라 밖에서 바라만 봐야하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기만 해서, 앞뒤도 잘 모르고 몇 글자 씁니다. -
finching 2004/03/15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노무현 씨는 바보가 아니다.
--> 동의합니다. 그러나 천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탄핵 사유와 노무현 씨의 개혁성은 별 관련이 없다.
--> 선거법 위반은 개혁성과는 상관없으나, 야당이 노무현씨를 끌어내린 이유는 그가 (적어도) 표방한 개혁성과 관련 있습니다.
3. 탄핵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
--> 유신헌법도 국민투표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4. 노무현 씨는 탄핵이 가결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알 수도 있었지만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가결 정족수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바보는 아닌 게 확실하지만 점쟁이는 아닙니다.
5. 즉, 노무현 씨는 탄핵을 선택했다.
--> 탄핵되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6. 탄핵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건 노무현 씨와 열우당이다.
--> 동의합니다
7. 노무현 씨와 열우당은 탄핵이 가져올 이익을 알 수 있었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런 계산을 해보았을 수는 있었겠지만, 이 모든 상황을 다 예측했다고 보는 것은 그들에 대한 과대평가입니다.
8. 탄핵 사태와 민중의 삶은 별 관련이 없다.
--> 관련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들고 바빠 죽겠는데, 꼴통들때문에 화까지 내야하고, 내가 화 내는 것이 정당들의 정략에 이용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요.
9. 탄핵 사태와 6월항쟁은 별 관련이 없다.
--> 길게 봐서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오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도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좀더 아름다웠다.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 세상이 오도록 노력해야지요.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약진을 기원합니다. -
정의근 2004/03/15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사모 아님, 특정당 지지자 아님, 유시민 의원을 조금 지지하는 편)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이 가결될 것을 알았다는 생각은 너무 섣부른 것 같습니다.
누가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점쳐 봤겠지요.
실제 탄핵이 가결될 경우와 아닐 경우 자신의 행보에 대해 고민은 해봤을 것입니다.
탄핵을 선택했다는 말은 좀 그렇네요...
그리고 이익을 알았다는 것에 대해 따지는 것도 역시 별로입니다.
아마 우리당 지지율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확실히 따져봤겠지요.
이익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고 얘기하게 되면
국회의장석을 몸으로 막아섰던 우리당 의원들은...
이익을 더욱 내기 위한 쇼를 했다는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됩니다.
아직은 우리당의 젊고 패기있는 의원들을 믿고 싶습니다. -
pigdie 2004/03/15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의 도량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8번과 9번의 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탄핵' 그 자체가 아니라 탄핵 가결을 만든 의회권력의 몰상식은, 그리하여 이를 그대로 넘겨버림으로써 반민주 꼴통 정당들이 저대로 저 자리 있게 하는 것은 민중들의 삶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당장 그들이 최근의 족적들, 이를테면 누더기가 된 친일진상규명법이나 집시법 개악들은 독립운동가들의 후손과 민가협등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권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규항님께서는 이번 사태가 진보 진영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 시킴으로써, 결국에는 대다수 민중들의 삶에 결과적으로 소외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건지요??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한총련, 민노총, 다함께 등등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 이 사태를 그들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때문에 이 사태가 종결되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이 '빚'을 다 어찌 갚을 것인가가 주목되기도 합니다...)
9번에 대해서도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속에서 6월 항쟁을 느꼈더라면 그것이 6월 항쟁과 아주 관련 없다 할 수는 없지는 않을련지요? 6월 항쟁의 성공의 기반은 분명히 노동자와 학생들이기는 하나 그것이 성공(...이라 하기에는 저 역시 의구심이 들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니..)했던 것은 대체로 부동성이 강한 계층들(흔히 중산층 혹은 넥타이 부대 등등)의 참여에 큰 몫이 있었는데, 그 계층들이 다시 한번 6월을 기억하며 참여한다는 것은 이것이 6월과 별 관련 없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이것은 아마도 저와 규항님의 6월 항쟁에 대한 입장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또한 이 10가지 논리의 외양상의 유사함으로 조선일보나 전여옥 같다고 하시는 분들은 그것 참 실수하신 겁니다...유사해 보이는 형식이라도 서 있는 곳이 정반대인 사람을 동류로 보는 실수 말입니다..이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욕'에 가깝습니다..... -
이종철 2004/03/15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규향님은 아마 이 블로그를 좀더 개별적인 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지 싶습니다..제가 딴 게시판에서와는 달리 굳이 실명으로 글을 쓰는 것은 저도 소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진정으로 소통을 원한다면 어둠속에서 익명으로 글을 쓸 게 아니라 자신을 환하게 드러내고 서로의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또 제 실명은 나름대로 존경하던 규항님에 대한 예의이자 7-8년정도 죽 님의 글을 따라 오면서 언젠가는 좀 다른 시각에서 내 생각을 밝혀 보고자 하는 긴 기다림의 표식이기도 합니다..이번 사태로 인
해 제가 예상하던 때보다 그게 좀 빨리 온 느낌이 있습니다..하지만 언제 때가 사람을 기다려 주던가요 ㅎ.ㅎ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의 위태로움과 말하기의 허망함..그리고 방안에 앉아서 온 세상을 재단하는 그 치기와 용렬함을 이리 늦게야 안 지금 입을 닫고 있었지만 그 측면을 넘어서 서로의 다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지금 사랑하는 벗에게 조근조근 이야기하듯이 몇마디 할까 합니다..제 어리석었던 젊은 날에 대한 성찰은 아래 예전에 활동하던 곳에서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는 벗들에게 보낸 연하장을 인용함으로서 대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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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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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는 말이 많았다..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구별하지 못했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의 위태로움과...말하기의 허망함을 알지 못했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의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인 줄 알았다...허나 어쩔 수 없었다..
말하기의 조건들을 일러주는 스승이나 선배도 없었고..가르쳐 주었다 할지라도..나는..알아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말은 질펀하게 넘쳐 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 근대화의 이름으로 왕정이 시행되던 시절이었다..
초로의 가을에, 저 젊은 날의 크고 속빈 말들..현실과 유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현실의 윗 자리를 고집하던..그 몽매한 열정의 언어들을 돌이켜 생각하면 식은 땀이 흐른다..
밑창이 허하고.. 받칠 힘이 없어서.. 뒤뚱거리던 그 말들은 땅위에 내려 앉지 못하는 눈보라처럼.. 바람에 불려가서 흩어졌다..그것은 언어라기 보다는 한바탕의 격렬한 무질서와 아우성이었으며.. 한시대와 나 자신의.. 황폐의 징후였다..
나이를 겨우 먹어 가니깐, 혼자서 중얼 거리는 말이라면 몰라도 ..세상을 향하여 내 놓을 수 있는 말이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쉽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쓸쓸했지만,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세계는 무수한 측면을 갖는다. 그 측면마다 하나의 독립된 시각이 존재한다..그러므로 우리가 힘들여서 겨우 어떤 말을 할 때..그 말과 반대되는 또 다른 말이 성립되고 있는 건 아닐까..그런 회의가 ..나이 든 사람을 말더듬이로 만든다..
---이하 생략----
사랑하는 벗들..제가 뱉었던 뿌리없는 말과 글들이 혹시나 삶에 무거움이 되었다면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치기와 용렬함이었으되 그 속에 담았던 열정과 선의에 대해선 이해하실꺼라 믿습니다..새해에는 벗들의 삶이 가볍고 경쾌하게.. 그러나 그 자취는 그윽하게 오래 남는 마음 뿌듯한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앙망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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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항님 블로그가 열렸을 때 제 막역한 후배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며칠 뒤에 저처럼 댓글도 달고 그래라 했더니 좀 꺼려하더라구요..이유을 물어 본즉 무섭다고 하데요..조금만 틀리면 무지 비판 받을 거 같기도 하고..무엇보다 그렇게 살지 몬하고 있다는 자괴심도 든다고 그랬습니다.
지리산에서 된장을 담그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습니다..한때 규항님께서 운영하시던 영화언어사에서 같이 일한적이 있는 이효인씨가 제 지리산 친구와 저의 80년대 초 한때의 선배입니다..지금도 그 형을 그리워 하지만 그 시절 같이 생활하던 몇개월을 제외하곤 다시 만난적이 없습니다..
효인이 형이 영화언어사에서 냈던 "영화여 침을 뱉어라"란 책에서 "김유영 감독을 껴 안으며"라는 글을 무지 좋아해서 형이 기억날때마다 맛을 보곤 합니다 ^^;; 규항님의 글중에서도 전 개인적으로 자기 성찰이 강한 측면이 있는 글들을 사랑합니다..
며칠전에 이 지리산 친구가 서울로 일보러 간김에 서울 집회에 참가했던가 봅니다..전화가 와서 " 니 머하노?" 하길래 좀 생뚱맞게 대했더니 잘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습니다..한때 가졌던 신념이 겨우 대선때 고민끝에 노무현 찍었다는 거나 집회에 한번 나갔다는 정도로 밖에 왜소해진 친구가 안쓰러우면서도 그가 왜 그렇게밖에 안돼었는지 못 깨닫고 있는 있는 게 좀 솔직히 짜증이 났습니다..최근에 이 친구는 지리산 된장 삶터를 결국 '공장'으로만 하고 진주에 집을 한채 더 마련해서 삶터와 일터를 분리시키는 일을 감행했습니다..친구가 도시생활을 접고 지리산 들어갈때 전 마음속으로 정말로 땅에 뿌리를 박고 왜소해진 자신의 삶에서나마 어떤 경우에든 지킬 몇가지 원칙을 고수하면서 살기를 기원했지만 소위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식의 전직 운동권 출신이라는 자기 모순적 삶을 깨닫고 있지 몬하더구먼요 ..전 그 친구가 규항님이 썼던 '풍요'라는 글처럼 살길 바랬지만 결국 결정적으로 자신을 '혁명'하지 몬한 외형적 논리라는 건 그 순수한 욕망에 언제든 함몰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웃기는 경우도 있습니다..안기부에 근무하는 저보다 2살 많은 친척이 있습니다..농반 진반으로 간첩잡으러 다닌다 하면서 막상 그 집에 가보면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이 수두룩합니다..항상 회사 때려 치우고 농사짓고 살거다라 하면서 아이 둘을 소위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자신의 밥과 삶이 부당하게 교접하고 있다는 모순을 못 느끼기고 삽니다. 주위 친척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으면서요 ㅋ
16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소위 80년대의 자식들이 많이 진출한 국회입니다..그럼에도 결국 시스템에 함몰되고 그 자신들의 욕망에 함몰됨으로서 스스로 자멸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어떤 변화든 종국적으로 한 인간 개인 개인의 진정한 변화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비틀거릴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비틀거리나마 전진해야 하는 것 또한 역사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개별의 內革이 혁명이 도달해야 할 최후의 고지이자 관건적 조건입니다..남명 조식 선생은 항상 칼을 차고 다녔는데 그 칼엔 반드시 방울을 매달았다고 합니다..명백하고 현존하는 악을 쳐 내는 칼과 그 와중에서도 딸랑 딸랑하면서 자신을 일깨우는 방울..그런 외혁과 내혁이 같이 눈을 부릅뜨고 걸어 가는 것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고 예수라는 이름으로..그리고 깨달음이라는 언어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우주를 안는 거와 같은 거라 요즘 느낍니다 ^^;;;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사람들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만큼만 움직인다는 진부한 논리입니다..모든 정치적 격변은 언제나 민초들에게 개개인의 內革에까지 단기간에 대규모로 각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제 친구나 친척처럼 머리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조차 빨아들여서 지지부진한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그 개별 자신의 책임을 묻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부산에선 대규모 군중 집회가 김영삼씨가 집권한 이후 사라졌었습니다..경상도라는 지역감정의 괴물에서 개인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삶이 강박되어 있던 제가 이 집회에서 갖는 느낌은 각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전 드디어 부산에서 지역주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그리고 그 소중한 불씨하나하나가 개개인의 마음에 옮겨 붙어서 농민과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는 아낌없이 세상을 불태워버리는 거대한 불덩이가 되길 기대합니다. 지금 집회에 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죽어 가던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이런식으로 밖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다른 대안을 갖지 못했던 민중들이라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이번 탄핵사태에 대한 수다한 정치적 입장 중에 제가 젤 맘에 드는 주장을 한가지 인용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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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당파성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이 좋다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70%의 국민들
어떠한 결단이 필요한가? 그것은 정파적 견해와 편협한 당파성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직시하고 시민사회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시대정신에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브레이크 뉴스와 스탠딩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논객 황진이의 표현을 빌자면 공공의 당파성에
충실한 것입니다. 작금에 공공의 당파성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한총련을 위시한 비운동권의 총학생회에 의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70프로의 국민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의도에 광화문에 모이는 10만의 인파가 모두 그러한 공공의 당파성에 충실한 것은 아니며, 국민의 힘과 노사모 서프라이즈의 사람들도 아닙니다. 500여개의 공동체적 시민사회단체라면 오히려 공공의 당파성에 입각하고 있다고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극명한 바로미터는 한총련 학생들입니다. 이들은 문민정부를 거쳐 정권교체 이후에도 참여정부에서도 반합법적 존재의 낙인이 찍혔고 누구보다도 현 노무현 정부의 일련의 정책에 강력한 비판자 였습니다. 대북특검과 신자유주의의 노선 그리고 이라크 전투병 파병, 송두율 교수 구속등에 이
르기 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이중잣대에 의해 적아를 구별 않고 난무하는 칼부림 같은 소소한 정파적 견해에 치우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탄핵소추가 한-민-자에 의해 발의되자 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이것이 작금에 대한민국이 나아갈 분명한 공동체적 시민상이며 불변해야할 가치인 공공의 당파성입니다. 이것에는 노빠들도 그 대척선에 있는 모든 세력들도 따라 배워야 할 진정한 모범입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당도 민노당도 시민사회단체도 인터넷 논객들도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할 죽어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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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항님이 정파적 견해와 편협한 당파성에 매몰된 치졸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오히려 정신차리고 헛된 곳으로 민중의 진정한 이익이 매몰되는 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충정으로 이해합니다..그것이 규항님의 일관된 주장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습니다..전 단지 저와의 다름이 머랄까 요즘 보고
있는 책에서 표현하듯 기질의 차이라고 봅니다..규항님은 아무래도 저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쳐내는 쪽에 강하신 거 같고 전 긍정적인 면을 확대하는 쪽에 쉽게 끌리는 마음 씀씀이를 갖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
휴..달리 드리고 싶은 말이 무지 만은데 ㅠ.ㅠ 꼭 이런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규항님과는 진짜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싶었습니다..최소한의 공정성이라는 기준에다가 제 나름대로 몇가지 소중하게 살피는 것(밥의 소중함,젓가락질의 가치,조고각하라고 자신의 신발을 정리하는 이야기 등등^^;;)을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ㅎ.ㅎ 마리아의 추억까지도요 -0-
이번달에 서울 갈 일이 있으면 불쑥 무대뽀로 출판사에 들리겠습니다..갑장이니깐 걍 같이 소주 한잔 허심탄회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정국에 바쁘신 거 압니다..너무 심기를 많이 소모하지 마시고 운동 챙기는 거 잊지 마세요 ^^;; -
이소영 2004/03/15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아니하며, 16대 국회의원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썩었을지는 몰라도 그런 이유만으로 탄핵의 권한이 없다는 감상적인 태도도 지양하고자 합니다. 또한, 현재의 친노 대 반노의 구도는 한민당과 노무현대통령 양자 모두가 바라던 탄핵 결의의 결과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탄핵 사태에 대해서 엄중히 대처하여야 하는 이유는 이번 탄핵 사태가 최소한의 민의도 반영되지 아니한 의회 권력의 남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며,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을 때의 대가를 알려주지 아니한다면, 향후 우리 사회에서의 의회민주주의는 퇴보할 수 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규항님께서는 이번 탄핵이 합법적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셨지만, 법은 법전과 해석을 통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논리를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김규항님께서는 제가 위에 쓴 의회민주주의라는 대의가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서는 때깔좋은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지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용만큼이나 그 내용을 담아낼 형식도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이번 탄핵 사태에 분노하면서도 쉽사리 현재의 흐름(친노 대 반노 구도로 굳혀지고 있는)에 동참하지 못하는 갈 곳 잃은자가 김규항님에게서 기대했던 것은 정세의 분석이 아닌 방법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김규항님의 포스트에 공감하면서도 지지하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pigdie 2004/03/15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삐닥선/ 집시법 개악이 민노총등의 '과격시위'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집시법이 민노총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단체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보는데요.. 이달 1일 적용 이후 당장 지금의 촛불집회까지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물론 작년 한 해 동안 계속되었던 노동자 투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규제의 과함은 결국 민노총 뿐만이 아니라 여러 단체와 민중들의 요구에 대한 의회의 보수성이 적용된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집시법에 의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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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선 2004/03/15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igdie/문제는 적어도 '집시법 개악'에 관해서라면, 그 '의회의 보수성'에선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과격 시위'를 할 정도로 민주노총을 '열받게' 한 정부가, 노무현-열린우리당 정부였다는 거구요. 그러니, 적어도 '집시법 개악'에 관련된 상황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민당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 부분을 예로 들어서 '탄핵은 민중의 삶과 별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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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드럼 2004/03/16 0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긴데.... 노무현 탄핵에 대해 몇자 적어 봅니다.
노무현이라는 우파대통령을 짤라 버린다는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한다. 모든 신문은(물론 한겨레를 포함) 노무현의 탄핵에 대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어떤 미친 또라이 같은 신문은 '제2의 6월항쟁' 이니 어쩌니 하니 어처구니 없는 표현까지 서슴없이 쓰고 있었다.
물론 지네들은 지들의(우파진영) 짱을 가리는 대통령 자리에 누굴 앉힐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고 그들의 기관지인 우파신문들은 (물론 한겨레도 포함) 호들갑 떠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웃긴 것은 우리내 좌파쪽에서 이름 날린다는 논객들은 잠잠하다. 왜 일까? 더러운 늑대가 대통령이 되든 역겨운 개새끼가 대통령이 되든 좌파진영과 또한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 이라는 오묘한 나라에서는 모두... 아니 전국민이 호들갑인것 같다. 전철을 타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는 밑줄을 좍좍 그어가며 신문을 걸레로 만들고 있고 '이효리 벗었다' 라는 기사만을 톱으로 내거는 스포츠 황색지의 1면에도 민망하게 '노무현 탄핵안 가결' 이라고 쓰여있다.
도대체 노무현이 짱이 되든 웬 씹어 먹을 호로색끼가 짱이 되든 그 역겨운 새끼들의 힘 자랑에 왜 다 같이 호들갑 떠는 걸까?
아직도 이 대한민국이라는 오묘한 땅덩어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좌파, 우파의 개념이 없는것 같다. 한 10년이 지나면 뭐가 똥이 고 오줌인지 분간할수 있으려나?
이땅에는 아직도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난 것에 한탄해 하며 자기자식을 부르주아 계급에 끼워 넣기 위해 쌩쑈를 하는 부모들이 사라지려면, 우파들이 99%인 국회에서 지들끼리 싸우는 것에 전국민과 전 언론매체가 호들갑 떠는 일이 안생기려면........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이 노동자 계급 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워 할때가 오려면....... 10년....... 10년은 택도 없을것 같다.
한가지 더 덧붙이 자면 이번에 광화문에 30만이 모였다는 것을 보자니 마음이 허탈해진다. 마치 들쥐때를 보는 것 같다. 언제고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인은 '들쥐때와 같다. 한마리가 앞서서 뛰면 너도나도 따라 뛴다' 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한국인의 고질적인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다.
제발 정신좀 차려라. 도대체 노무현이라는 놈이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노동자 농민 그리고 하루 살기 힘든 서민들에게 혜택이 올줄 아는가? 젠장할 30만..... 작년 노동자들이 분신하며 죽어 나가고 농민들이 할복할때 30만이 모여줬어봐라. 이 좃 같은 자본주의는 정신차렸을 것이다. 젠장.... 젠장.... 한심한 골빈 인텔리들아!! 역겨운 자본주의야!! -
소풍길 2004/03/16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타는 드럼/
"한가지 더 덧붙이 자면 이번에 광화문에 30만이 모였다는 것을 보자니 마음이 허탈해진다. 마치 들쥐때를 보는 것 같다."
-> 들쥐! 압권입니다! 님이 혹시 좌파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보기엔 님은 좌파라기 보다는, 사회 불만 분자인듯 보입니다만..죄송..-_-) 들쥐라는 표현은 좌파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 들쥐들 가운데는, 좌파가 항상 말하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도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들쥐때라고 이빨까구 있을 때, 그 들쥐들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다고 전 봅니다. -
이종철 2004/03/16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럼님..가끔 불로그 립에서 보곤 했는데 이번 립에 대해선 제가 좀 말씀을 드릴 부분이 있지 싶습니다..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제출하시는 님의 '방법'은 그 견해가 맞나 안맞냐를 떠나서 일종의 '기본'이 부족한 것로 보입니다..견해의 차이는 해소될 수 있으나 방법의 차이는 그 사람의 내면에 뿌리 박은 거라서 쉽게 고쳐지기 힘든 것이고 이런 미성숙함이 지지부진한 민주혁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게 저의 짧은 소견입니다..'민주'의 핵심적 내용은 소위 방법의 문제와 깊이 관련이 있고 더 나가 견해가 맘에 안 들어도 그 견해를 제출한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해서 한번쯤 더 생각하는 배려가 기본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활동하던 곳에서 기본적으로 공유되던 네티즌 10계명을 소개합니다 ^^;;
>~~
인간임을 기억하라
=-=-=-=-=-=-=-=-=-=-=-=-=-=
가상공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실제 인간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적으로 대화할 때 단지 눈앞에 보여지는 컴퓨터 스크린만을 통해 상대방이 인간임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매체의 특성과 익명성은 때론 사람들로 하여금 음란하고 무례한 행동을 유발하기도 하고, 실생활에서는 행해질 수 없
는 부분까지도 허용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통신상에서 글을 게재하거나 메일을 띄울 때, "나는 지금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다시말해 본 원칙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가상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실제 사람들
이 존재함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생활에서 적용된 것처럼 똑같은 기준과 행동을 고수하라.
=-=-=-=-=-=-=-=-=-=-=-=-=-==-=-=-=-=-=-
실생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처분이나 적발되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대로 법을 준수하게 되지만, 가상공간상에서는 윤리기준이나 인간적인 행동규범의 적용을 덜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로 인한 혼란은 이해가 가지만, 이러한 생각을 지닌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사이버공간 상에서의 행동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실생활보다 적은 규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이버 공간에서의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질 경우 실생활에서 지켜지는 규범을 참고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자신이 어떤곳에 접속해 있는지 알고,그곳 문화에 어울리게 행동하라.
=-=-=-=-=-=-=-=-=-=-=-=-=-==-=-=-=-=-=-=-=-=-=
네티켓은 해당영역마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는 이상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타영역에서는 몹시 무례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는 네티켓 또한 다르기 때문에 당신이 어느 곳에 접속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가상공간에 새롭게 참여하고자 할 때에는 그 환경을 잘 파악하여야 한다. 채팅하는 것을 들어보거나 게재된 글을 읽어보는 등의 준비를 통해 그곳에 소속된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나서, 직접 참여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라
=-=-=-=-=-=-=-=-=-=-=-=-=-==-=-=-=-=
메일을 보내거나 토론그룹에 글을 띄울 때, 다른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필요하다. 즉, 글을 읽게 되는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글을 올리는 사람 각자의 책임이다.
특히 시간과 대역폭 (사이버 공간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통신회선과 채널을 통해 정보를 가져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이나 저장용량)을 잘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글을 올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지 따져봐야 하며, 만일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라면, 그들의 시간을 빼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온라인상의 당신 자신을 근사하게 만들어라.
=-=-=-=-=-=-=-=-=-=-=-=-=-==-=-=-=-=-=-=-=-=-=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자신의 외양이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이 쓴 글의 수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글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당신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락별로 철자나 문법의 오류없이 완벽하게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쓴 글을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공격적인 언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기분좋고 정중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라.
=-=-=-=-=-=-=-=-=-=-=-=-=-==-=-=-=
가상공간의 힘은 바로 그 수에 있다. 온라인상에서 질문을 하면 수많은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이 그 질문을 읽게 되고, 그들중 일부만이 재치있는 답변을 하게 되더라도 세계의 지식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효과를 가져온다.
내가 아는 무언가를 공유하고자 할 때, 뭔가 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내가 질문한 것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는 것은 특히 예의 바른 것이다. 당신이 지닌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는 네트웍상의 오랜 전통이며, 세상을 좀더 좋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논쟁은 절제된 감정 아래 행하라.
=-=-=-=-=-=-=-=-=-=-=-=-=-==-=-=-=-=-=-=
"논쟁"은 어떠한 격렬한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강하게 표현할 때 생겨난다. 논쟁은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관행이며, 많은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요소로 네티켓에서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논쟁을 지속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다.
논쟁의 시작단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수 있으나, 격렬한 논쟁이 지속될 경우 이에 끼여 들고 싶지 않는 사람들은 곧 싫증을 내게 된다. 따라서 지속적인 논쟁은 토론그룹의 분위기를 지배하거나 그룹원간 우애를 깨뜨릴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라.
=-=-=-=-=-=-=-=-=-=-=-=-=-==-=-=-=-=-=-=
아무리 가상공간상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단지 나쁜 네티켓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당신의 일에도 피해를 주게 되므로 전자우편을 비롯한 상대방의 정보를 훔쳐보거나 허가없이 복사하여 배포하는 등,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된다.
당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말라.
=-=-=-=-=-=-=-=-=-=-=-=-=-==-=-=-=-=-=
사이버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다. 일상사무에 능하거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다중 사용자영역에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잘 안다거나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많은
권한을 지닌다고 해서 그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남용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서하라.
=-=-=-=-=-=-=-=-=-=-=-=-=-==-=-=-=-=-=
누구나 처음엔 네트웍 초보자였다. 따라서 누군가 실수를 할 때에는 그것에 관해 친절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아주 사소한 실수라면 그냥 넘기도록 하고, 비록 그것이 크다고 느껴질지라도 정중하게 그것을 지적하도록 한다.
타인의 실수를 지적함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하고, 공개적이 아닌 개인적인 메일을 보내도록 한다. 또한 의심이 가는 부분들에 대해 그들이 단지 더좋은 무언가를 알지 못했다고 가정하고 좋게 해석해 주도록 한다
ps)허거참 가끔 이 네티켓을 인용할 때마다 정작 내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나 하는 씁쓸함이 있었는데 저도 여전히 비틀거리는 중이란 걸 오늘도 느낍니다^^;;; -
pigdie 2004/03/16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삐딱선/제가 님의 글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민노총의 '과격시위'라는 말에 말씀하신 '그들'에 민노총을 염두에 두시고 한 말 인 줄 알았습니다...(제가 텍스트 해석 능력이 부족해서;;;) 의회 보수성에 대해서는 열우당 역시 예외가 아니겠고, 그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볼 수 없다는 의견에도 동감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했을 거의 모든 일을 했으니까요(그래서 처음 글에도 밝혔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태가 끝나고 이 빚을 어찌 갚을 것인지 궁금하다고 그랬지요)...그럼에도 집시법을 예로 들었던 것은 저는 그 법안 통과시 열우당이 위헌 가능성을 이유로 제출한 수정안이 부결되고 한나라당의 원안이었던 현재의 법안이 가결된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조그만 차이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유의미할 수 있는 차이라고도 봅니다...
노파심에서...혹 제가 노빠나 열우당 진성으로 보는 듯한 시선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여하튼 김규항님이나 삐딱선님의 글을 보면서 여전히 차이를 느끼지만, 제 나름의 비분강개(;;)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불타는 드럼 2004/03/16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종철님의 코멘트에 대한 답변
웬 유치원 애들한테 설교하는 듯한 코멘트에 답변해 드리지요.
일단 님이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 이전에
당신의 정치적견해와 저의 정치적 견해가 다르지 않나를 먼저 생각 하시지요?
제가 올린 글이 좌파들만 오는 싸이트에는 '짜식 한마디 했군' 이라고 받아들여 지지만
여러 부류의 사람들 (정치적 스팩트럼이 넓은 사람들) 이 오는 싸이트에 올리면 온갖 욕설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 시는 지요?
전 도대체 님이 올리신 10가지 인지 뭔지 하는 내용이 제가 쓴 글에 단 한가지도 걸리지 않는다고 자부 한답니다.
한 마디로 '논점이나 파악하고 글 올리시지'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 하나 씩 따지진 않코 얼토당토 않은 사항에만 답글을 달아드리죠.
'실제생활과' 이 사항은 전 실제생활 하듯이 제 생활 속에서 쓴 글이랍니다.
그리고 '그곳 문화에 어울리게 행동하라' 이 사항은 전 충분히 고려해서 올린 것입니다. 이 사항은 싸이트 쥔장인 규항님께서 판단할 문제 겠죠.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라' 이 사항은 당신이나 좀 지키시죠 ㅋㅋ
'온라인상의 당신 자신을 근사하게 만들어라.' 이 사항이 젤 웃기더군요. 전 온라인상이나 오프라인 상이나 날 근사하게 만들 생각없습니다. 걍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지요.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라.' 두 번째로 웃긴 사항. 자기가 배웠다고 자랑하는 거요? 뭔 얼어죽을 전문적 지식이요? 자기 생각만 논리에 맞게 올리면 되는 거지 ㅋ
'논쟁은 절제된 감정 아래 행하라.' 이 사항은 세 번째로 웃긴 사항 님은 이글이 논쟁할려고 올린 글 같나요? 그냥 제 생각을 표현한 글입니다. 일기 쓰듯이 ㅎㅎ
나머지 항목은 말할 필요가 없어서 안씁니다.
암튼 뭐 제 생각은 그러합니다. 뭐 더 할말은 없을듯 합니다.
아~ 저 위에서 '소풍길' 님이 하신 말씀이야 뭐 전 할말 없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님 말대로 들쥐들 속에는 제가 말한 노동자 농민들이 포함 되있으니까요. 전 들쥐들을 욕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들쥐들이 될수 밖에 없는 이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의 상황을 욕하자는 것입니다. 충분히 욕을 먹고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라고 인정합니다.
암튼 소풍길님 건필하세요~ -
이종철 2004/03/16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야..드럼님 몹시 노여우신가 보네요..쩝..이런게 말하기의 어려움인뎅 ㅋ..머 설교조로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원래 놀던 곳이 이런 정치적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할 수도 있는 곳이 아니어서 제가 별로 익숙하지 않은 가 봅니다..단지 이 사실만은 알려 드릴까 합니다..소위 네티즌 10계명인가 하는 건 제가 자의로 만든 게 아니고 어디 자유소프트웨어 진영인가 하는 데서 나온 좀 오래된 것인데(저도 자세한 출전은 잘 모릅니다^^;;)한국에 번역되면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압니다..그 중에 어떤게 해당되는지 저도 심각하게는 생각한 건 아니고 좀 참조하셨으면 하는 뜻에서 '인용'한 것 일 따름입니다..널리 해량하시길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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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우 2004/03/17 0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탄핵소추안 상정 절차는 불법이었다.
1. 국회법 제72조에 따르면 '본회의는 오후 2시(토요일은 오전 10시)에 개의한다. 다만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그 개의시를 변경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①3월 12일 오전 11시 22분에 개의했으므로 국회법 위반이다.
②열린우리당의 저지로 봐서는 개의 시간 변경에 대해서 협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 국회법 제93조는 '본회의는 안건을 심의함에 있어서 그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보고를 듣고 질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 다만,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한 안건에 대하여는 제안자가 그 취지를 설명하여야 하고, 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안건에 대하여는 의결로 질의와 토론 또는 그중의 하나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①국회의장은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가 발의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서면으로 대체하였다. 또한 질의와 토론 생략에 대한 의결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국회법 제93조 위반이다.
②탄핵안은 일반 안건이 아니라 인사에 관한 특별안건이기 때문에 해당 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관례상 질의·토론 없이 표결을 진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탄핵소추안건 역시 국회에 상정되어 처리되는 안건의 하나이므로 안건처리절차를 규정하는 국회법 규정들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③국회법 143조는 ‘국회의장은 회기 중 국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 안에서 경호권을 행한다’는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회는 경호를 위해 62명의 경위를 두고 있다.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하여 열린우리당원들을 의장석에서 끌어내렸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제안설명과 질의·토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해 국회의장과 야3당은 국회법을 위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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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들바람 2004/03/18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늦게 글을 봐서 제 코멘트를 누가 하나 볼까도 생각이 듭니다.
사실 김규향씨를 좋아하긴 하나 이 글은 별로 맘에 안와닿네요. 아니 좋은 글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1~5번은 개인적 추측이고요, 6번은 사실이긴 하나 7번으로 이어지기에는 그 연결고리가 나무 취약합니다. 8,9번은 상당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너무 쉽게 단정해버린 글 같습니다. 10번은 정말 와닿는 말이지만 1~9와의 논리적 연관성은 별로 없습니다.
제 눈에 이 글은 정말 비꼬기로 밖에 안보입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블로그내에 다른 글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읽어야 제대로 읽은 것이겠기에 제 비판 역시 쉽게 내려진 단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답답합니다. 이 상황하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가요. 결국은 촛불시위에 갔지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요. 일종의 자위행위일런지도 모르죠.
"보수세력간의 정쟁에 불과한 것이다.", "민중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가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정말 궁금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들의 싸움으로 보고 싸움이 끝날때 까지 기다리는게 맞나요? -
초록물고기 2004/04/28 0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시법개악의 직접적인 원인은 민주노총의 집회, 시위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었지요. 그 이유는 외국대사관 관련 부분에 대한 위헌성 때문이었구요.. 어짜피 한번 손을 봐야 하는 법이어서 상정된 것입니다.
개정안이 미흡하여 제시된 열린우리당의 수정안이 부결된 것은 마지막에 경찰청의 집중적인 로비때문이라는 의견이 많구요, 그 로비에 짝짜꿍한 것은 한나라당이겠지요.
정부부처는 일산분란한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가 아니며, 의사결정 역시 부처별 독자적인 논리를 가지는 관료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인적구성은 상부만 바뀌었을 뿐, 하부는 그대로 있는 셈이고, 자 부서의 인적구성은 복지부동한 공무원사회의 특성상 부처이기주의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적대적 의회환경과 안일주의의 경찰청등, 여러 요인이 가미된 것이 집시법 개악안이고, 너무 손쉽게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집시법개정을 준비하겠다고 하니(물론 당내에서 약간의 권력투쟁이 예상되나, 개혁세력이 점한다면 더욱 빠른 시일내에) 기다려 봅시다.
언젠가 이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우파 과잉의(좌파 결핍의) 사회임을 두고 한 말이다. 우파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거나 옹호하는 세력이며, 좌파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단지 혁명적인 방법만 말하는 게 아니라) 세력을 말한다. 초기 자본주의가 보여주듯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는, 혹은 좌파의 견제가 없을 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체제’일 뿐이다. 흔히 자본주의를 “인간의 본능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라고 말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능 가운데 탐욕만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식인 체제’였다. 분단과 6.25전쟁 체험을 빌미로 하는 강력한 반공 파시즘은 대한민국에서 좌파의 씨를 말렸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노동자와 농민과 민중을 내키는대로 마음껏 잡아먹었다. 물론 그런 식인 체제에 민중들이 당하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무릅쓴 끈질기고 빛나는 저항 운동이 있었다. 그 운동은 단지 ‘제도 민주주의’를 얻는 것을 넘어 반공 파시즘이라는 ‘식인 체제’를 부수는 데 목표를 두었다.(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운동의 성원 가운데 대부분은 변혁을 좆았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반공 파시즘이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제도 민주주의’가 마련되자 그 운동의 지도부를 자처하는 성원들 가운데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운동의 종결’을 선언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그 선언은 거짓말이었다. 반공 파시즘이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는 별 문제없이 작동되었다. 그러나 그 선언은 그 운동의 보다 평범한 성원들이 갖는 자괴감(현실 사회주의 몰락의 충격에서 비롯한, 제 지난 운동의 관념적 급진성에 대한 자괴감. 처음에 순수했으나 점차 비뚤어진 좌파 혐오로 발전한다.)과 주류 사회에서 행세하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대세가 되었다.
그런 거대한 기만을 비판하는 좌파는 갈수록 대중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운동의 종결’을 선언한 사람들은 좌파를 공공연하게 ‘철 지난 이야기나 하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무렵, ‘운동의 종결’을 선언한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의 후반작업’이자 ‘수구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을 내세우는 ‘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과 강준만 씨를 비롯한 안티조선운동,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이런저런 네티즌 운동들이 그것이다.
좌파가 대중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개혁운동은 ‘패러다임이 변화한 시대의 좌파운동’으로 포장되어, ‘수구기득권 세력’의 악취에 넌더리가 난 대중들과 젊은 세대에게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협잡과 공갈로 행세해 온 정치인들은 처음으로 위기를 맞게 되고, 위세가 영원할 것 같던 파시스트 신문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하게 되었다. 개혁운동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여 ‘개혁 정권’을 만들어냈다.
개혁이 만들어낸 사회적 변화들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그런 변화가 한국 사회의 실제 성원들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실제 성원들’이란 한국 사회를 실제로 유지하는 대대수의 사람들, 노동자 민중들이다. 그들의 삶이야말로 개혁이 가져다주었다는 변화가 지니는 의미를 판단하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준이다. 그렇게 볼 때 개혁이 가져다 준 변화는 그 휘황한 겉모습에 비해 믿을 수없이 초라한 것이다. 그 변화가 의미 있는 것이라면 왜 한국사회의 실제 성원들은 왜 전보다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는가. 왜 갈수록 고단해지고 강퍅해지기만 하는가.
그게 다 개혁의 지도부가 늘 말하듯 ‘수구 기득권 세력’ 때문인가. 그렇다면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인 농민과 노동자들이 30년 전 어느 청년 노동자가 남긴 것과 똑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배를 가르고 제 몸을 불사르는 것도 ‘수구 기득권 세력’ 때문인가. 더러운 제국주의 전쟁에 순진한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도 역시 ‘수구 기득권 세력’ 때문인가. 우리는 그런 현실들이 전적으로 ‘개혁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개혁이 한국 사회의 실제 성원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은 이유는 개혁의 지도부가 미숙해서거나 수구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개혁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은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좌파 운동’이 아니다. 개혁은 그 식인 체제가 내뿜는 악취를 제거하는 ‘우파 운동’일 뿐이다. 개혁으로 위기를 맞은 건 ‘식인 체제’가 아니라 '식인 체제의 대중적 대변자들’(제도 정당과 언론, NGO 따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는 이미 효용성을 다한, 극심한 악취로 더 이상 대중들과 젊은 세대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기존의 '대중적 대변자들’을 서둘러 교체하는 중이다. 그들은 ‘개혁적 외양을 가진 대변자’가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개혁의 실체이자 진실이다. 오늘 많은 선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분노하는 ‘탄핵 사태’ 역시 그런 교체의 와중에서 나온 사건이다. 교체 위기에 빠진 기존의 대중적 대변자들은 어차피 죽을 거면 싸우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그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식인체제의 '대중적 대변자’ 노릇을 할 수 없음을 좀더 분명하게 했다. 그들은 노무현 씨를 탄핵함으로써, 수구기득권 세력과 싸운다는 강력한 명분을 가지면서도 졸렬한 실무 능력으로 지리멸렬하던 노무현 씨와 열우당을 단숨에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열우당 의원들이 ‘앞으론 울지만 뒤론 웃고 있다’는, 아니 기뻐서 날뛰고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순교자’는 머지않아 강력한 대중적 호응을 업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말이다.
하여튼 개혁 우파는 좀더 빨리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의 '대중적 대변자’로서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대변자는 교체된 대변자의 잔재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고, 적어도 중간 계급 이상의 한국인들은 좀더 ‘상식적인 시민 사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많은 한국인들, 한국사회의 실제성원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며 갈수록 고단해지고 강퍅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인 농민과 노동자들이 30년 전 어느 청년 노동자가 남긴 것과 똑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배를 가르고 몸을 불사르는 일도 계속될 것이며, 순진한 청년들이 더러운 제국주의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서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수구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설명은 ‘한국적 현실’이라는 좀더 전통적인 설명으로 대체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는 오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속속 여의도로 모여드는 선한 사람들을 보며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가장 기만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식인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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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김규항
Tracked from Sleepiness in Chapel Hill 2004/03/14 16:28 삭제<FONT color=#ff7635>실은 어제 오늘 김규항의 글을 기다리던 참이다. 서울에서라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 잔 기울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련만, 여기서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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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사회] 저들의 의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Tracked from iskra's RedEye 2004/03/14 17:37 삭제사진 출처 - 인터넷 한겨레 울산에 갔다가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9시 뉴스를 봤습니다. 경찰 집계로만 광화문에 5만이 모였다고 합니다. 분명히 훨씬 더 모였겠지요. 전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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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규항을 읽고. 두가지 단상
Tracked from 다리미의 법과 정치 2004/03/15 01:19 삭제오늘은 결국 피곤에 절어서.. 밀릴대로 밀려버린 진도 때문에 집구석을 지켰다. 그럴것이라면 일상에라도 충실해야 하겠건만, 그래도 그 관심때문에 인터넷을 우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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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확장.
Tracked from 切 or 絶 望 2004/03/15 04:11 삭제10. 오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도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좀더 아름다웠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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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규항 유감
Tracked from why? 2004/03/15 04:57 삭제김규항씨 글을 읽으면서 난감함을 느낀다. 나 말고. 일련의 글쟁이들. 특히 노무현의 어디가 개혁이고 진보인가라고 물어왔던 사람들. 노무현을 가짜 진보이며 진보의 탈을 쓴 다른 수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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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이번 일에 대한 글 모음
Tracked from 버리자니 아까운 것들 2004/03/16 19:08 삭제박기범 탄핵에 대한 두 가지 마음 김규항 대한민국이란 식인 체제 이정환 나는 왜 윗글의 냉소를 비판하는가 진중권 탄핵반대의 국민저항에 나서야 미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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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쌔리 2004/03/14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규항님을 지지하는 건, 규항님의 글이 가진 메시지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글들이 '소비되는 방식'까지 고민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중매체를 떠나 협소한 매체로, 방만한 주제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시는 것에 소리없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규항님께서는 '도량'이라는 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고. 그래서 저는 규항님께서 최근에 쓰셨던 일련의 글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낍니다. '도량 = 도사연'이 아니란 건 저도 압니다. '국민발라드'를 불러달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규항님의 말씀은 모두 맞습니다.
그러나 규항님의 글 속에 '좌파로서의 도량'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좌파'는 도량에서 예외입니까? 규항님은 '그들'을 좌파로 끌어당기려는 노력만 하고있지 '그들'을 향해 다가가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블로그만 만들면 그게 다가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착각입니다.
진보와 개혁, 개혁적 우파와 좌파의 의미를 구분 지어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분명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하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그들을 좌파로 개종(?)시키려는 노력 못지않게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계신지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규항님의 '글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최근의 글들 - 이를테면 '청년들의 근황'시리즈 - 은 오히려 씨네21같은 곳에 적합하지, 노동자의 힘같은 곳엔 적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귀엔 그게 규항님께서 말씀하셨던 '한겨레에서 조선일보 씹는소리'나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힘'같은 곳에 연재하시는 글이라면 그 반대의 글, 즉 '그들'에 대한 도량을 보여야 되지 않나요? 그건 얼토당토않은 말인가요? '좌파'는 아직 도량을 얘기하기엔 미미한 존재인가요? 그래서 그 적개심을, 그 울분을 추진력으로 아직은 더 커야하나요? 하지만 그렇게 힘을 키우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규항님께선 지난 월드컵 때 시민들의 집결을 그저 '축제'일 뿐이니 색깔을 입히지 말라하셨습니다. 이 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모인 군중들 중에 '노무현 지지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울면서 애국가 부르는 모습을 보며 뒤로는 웃고 있을 거란 생각은 규항님만의 특별한 생각이 아닙니다. 정치가 '쇼'라는 분별력은, '그 눈물' 역시 코미디의 일부임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주 잘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번 분노가 노무현 지지는 아님을 제 주위의 사람들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게 대부분의 민심입니다. 월드컵 때 모인 군중처럼 이 번에 모인 군중도 (일종의) 축제로서의 시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좌파의 눈엔 그 집회가 '노빠'로 보이고, '악어의 눈물'에 속아 꼭두각시 놀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는 모르겠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거죠. 요컨대 이 번 탄핵과 관련한 국민들의 움직임을 어떻게든 좌파적 입장에서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사소한 점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왜 규항님은 쓰시는 글에서 항상 '노무현 씨'라고 하나요? 그런 식의 표현은 한나라당의 대통령을 향한 비아냥거림과 뭐가 다른가요?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인만큼, 아무리 인정하기 싫은 대통령이라도, 호칭 정도는 제대로 불러야 되지 않을까요? 전 제가 지지하는 분이 그 정도의 '도량'은 가지신 분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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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별로 생각이 깊지 못해서, 하고 싶었던 말과 쓴 글이 조금은 엇나간 것 같습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규항님의 글이 가진 진정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규빠'로서 그저 자그마한 불만을 칭얼거려 보았습니다.^^ -
다리미 2004/03/14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하게도 오늘 글은 평소의 규항님의 글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저의 느낌이 달라서인가요? 언제나 분명한 입장을 느낄 수 있었던 그 간결한 글관느 다릅니다.
오늘 처음으로 당신에게 실망감을 표시합니다. 이 식인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근본주의자에게 처음으로 실망감을 표시합니다. 근본주의자는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글에서는 그 존중을 표시드리기 힘드네요.
결국 지금 당장의 문제는 거리에 있을 것이냐? 아닐 것이냐? 의 문제로만 귀결됩니다. 민주냐 파쇼냐의 질문만이 주어지고, 그안에서 무어라 대답할 것이냐의 질문만이 주어지는 판국입니다. 그 안에서 양비론은 양편의 총알을 맞을 것이고, 저는 한편에서 총을 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 간단한 질문만이 주어진 잔인한 판국에, 저들의 잔치에 힘을 보태지 않겠다고 하시는 말씀에 저또한 냉소합니다. 거리안에 있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관념적 냉소가 아니라고 스스로 치부하시는 것은 좋습니다만, 당장 님의 자리는 거리가 아니라는 그 대답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저는 거리를 지키겠습니다. 님은 제가 거리를 지키고 난 다음, 눈꼽만큼은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다음부터 진보를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그 무임승차를 환영합니다. 이 무거운 질문앞에서 회피하는 그 비겁함에 대해서 조롱은 하지만, 그렇다고 무임승차까지 거부하는 쫀쫀함은 보이지 않겠습니다.
결국 저 뒤에 숨어서 웃고 있는자들 꼴보기 싫어서 거리에 나오지 않겠다는 그 말씀 길게도 하셨습니다. 아니라구요? 웃기지 마십시오!! -
꿈을먹고 2004/03/14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동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요. 자신은 혼동하고 있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동을 겉껍데기만 하나로 보이도록 둘러싸는데에 대해서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까?
지난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은 자신들은 이미 노무현이 보수주의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한 것도, 실망한 것도 없다고 말을 해댑니다. 그러나 그들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때 그런 언급한 번한적 없습니다.
그리고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남았습니다.
반민주세력에 대한 분노의 열풍이 또다시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
다리미 2004/03/1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런 입장에 대해서 이제는 열내지 않으렵니다. 홍사덕과 똑같이 일주일이면 식을 분노라고 말한느 진중권을 보고 잠시 열을 내었습니다.
맨날 반민주세력에게 당하고만 있었으니.. 그 아픈 기억이 있으니.. 이번에 또 당할지도 모르니.. 그냥 집에서 쉬세요. 편한 휴일 저녁 아닙니까? 안나오셔도 됩니다. 또 배신당할거 무서워서 지레 겁먹고 계신 분들 다 쉬시고 계세요.
노빠인 제가 지난 일주일동안 여의도를 지키고 있을때.. 종로와 광화문과 시청은 텅텅 비었더랬습니다. 저 더러운 개자랄이 국회안에서 벌어질때, 노빠들이 여의도로 몰려갔을때, 그떄 서울의 중심부는 텅텅비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깃발 꽂지 못하고 있던 그 무능하고 비겁한 진보들에게 저도 이제는 냉소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민들이 중앙을 휘몰아쳐 갈때, 아픈기억이 있어서, 혼동하지 않아서, 뒷자리에서 심심풀이 땅콩을 까먹고 게신 여러분들을 여전히 기억할 것입니다.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니, 더러운 손을 집어치우라고 하더군요. 진보의 깨끗한 손에 어찌감히 노빠따위가 손을 내미냐고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어차피 제가 짊어진 일이니, 노빠들이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저는 식인체계를 지키는 노빠새끼들이니 이번 싸움에서 졸라 혼동하여서 거리를 지키겠습니다.
식인체계를 뒤집으시겠다는 근본주의자 여러분들의 그 평화로운 휴식을 결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무임승차 하십시오!! -
다리미 2004/03/14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유.. 갑자기 신파로 나가기로 하셨습니까? 갑자기 피눈물이 강으로 바뀌고요?
그럼 저 광화문의 인파들은 전쟁과 상관없는 무리였던가요? 죄송합니다, 말꼬리잡고 늘어져서.
"당신들은 저 열린우리당의 전략에 속고 있다~~~ 보수정치판의 놀음에 넘어가지마라~~~"라고 하는 그 하나마나한 소리는 이제 웃고 넘겨야 겠지요.
지금 한국의 정치는 거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는 게시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씨알도 안 먹히겠지요.
당신들은 지금 저 거리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이 두번쨰 질문입니다. 아, 그것은 거리로 나온다는 전제하에서의 질문입니다. 속지 않기 위하여, 쓰잘데기없는 싸움이라서, 등등의 빛나는 이유로 나오시지 않겠다면야 무의미한 질문이지요.
이게 마지막 코멘트 등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상의 전투를 해야만 하니 말입니다. -
neppp 2004/03/14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리미님, 일단 진정 좀 하세요.
지금 당장의 문제는 거리에 있을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절대로 싫지만) 정녕 상황이 그렇다는걸 인정하지요. 허나,
최소한 왜 양비론인가 하는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보셔야지요.
그리고 그렇게 귀담아 들을 만하지도 않은 감정적인 언사만 내뱉으신 뒤에, 그 마무리를 "무임승차"로 장식하셨는데,
근본주의자건 누구건 한다리 껴서 그런 공짜밥을 먹을만한 성취가 그동안에 있었답니까 ?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차라리 다리미같은 분들이 만들어 낸거지. 대통령의 업적은 아닐겁니다.
미친척하고 한마디 하지요. 그동안 대통령의 언사나 국회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노빠들은 언제 한번 그러면 안된다고 말리기라도 했나요 ?
저마저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다리미님이 그렇게 혐오하지는 양비론자 중에 한명이라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마음으로 급조해서 댓글 써봅니다.
그리고, 민주세력 대 파쇼라. 그런 너무 뻔하고, 너무 인위적인 구도를 그대로 따르시려 한다니요?
당장 선거가 목전에 있는 상황에서 얘기하건대, 그런 구도는 파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 주류 정치 상황을 정당한 명분과 합법적인 절차로 이어갈 뿐입니다. 너무 와전 된걸까요 ? -
다리미 2004/03/14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분한 말들이 오고가는 블로그에 괜한 흥분으로 잠시 심려를 끼친것 대단히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대통령의 언사나 국회와의 의사소통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만 말씀드릴께요. 저는 지금의 대통령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말하는 대통령을 원하거든요. 어느때이건, 노무현보다 더 강단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거든요.
민주대 파쇼라는 인위적인 구도라 하셨지만.... 그 구도는 저의 작위적인 설정만은 아닙니다. 저 거리에 뛰쳐나온 이들이 설마 노사모 내지는 노빠 내지는 열린우리당 지지자로 생각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들은 의회권력에 대해서 나가디져라!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의회권력을 파쇼라고 지칭하고, 그들은 대통령 뿐 아니라 이나라의 민중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모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에서도 그렇게 느꼈구요. 이것도 혼동이라 하신다면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언제나 진보에 무임승차해온 보수주의자 나부랭이가 이자리에서 무임승차 운운한 것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흥분이 지나쳤고, 사과로 될까는 역시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말로나마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역시나, 저로서는 연대를 원했었고, 거리에 함께 있기를 바랬었는데... 그것이 아닌가 해서 저런 험한 언설을 퍼부었던 것 같습니다. 그간 수도없이 연대를 거부당해온 님들의 경험이 있는데, 저따위가 겨우 이정도로 실망해서는 안되겠지요.
아까 진중권에게 너무 흥분한 탓이 있었나 봅니다....... -
이종철 2004/03/14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거참..아까 규항님이 댓글 달지 못하게 한 것 같았는데 다시 열렸네요 ^^;;아마 여러가지 고민이 있지 싶습니다...저도 규항님 글보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속이 좀 복잡해서 술 한잔 하고 있습니다..아마 술 다먹고 먼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다시 여기로 들르겠죠 ㅎ.ㅎ
이 블로그를 사랑하시는 분들도 아마 저 같지 않을까요? 그악스러운 논객들이 설치는 그런 장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참된진정성으로서 세상을 보는 규항님의 글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인 사랑방과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던 거 같은데..솔직히 립중에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드는 것도 좀 있습니다..노빠니.. 무시기 짱이니 이런 사납고.. 거칠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도맷금으로 쉽게 넘기는 불성실한 표현을 무지 싫어해서 이 공간에 정을 붙일라 카는데 ㅠ.ㅠ
서로 조근 조근 견해의 차이를 드러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맙시다..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그리고 때로 어리석을 수 있지만.. -
리디 2004/03/14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선생님.
위에 '고마쌔리'님이 '축제'에 대해 언급을 하셔서 말입니다.
그 부분(월드컵 열광이라는)을 어떻게 해석(소화)할 길이 없어 헤매다가 김 선생님의 '축제'라는 표현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가 된 상태입니다. 덧붙임 글로서,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을 냉소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자리에 모인 행동을 너무나 신랄하게 분석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냉소한 셈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측은한 시민과 한심한 시민을 정교하게 분리해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
gyuhang 2004/03/14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사한 분들이군요..ㅎㅎ.
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감정적인 상태에 있는 일에 대해, 소수 의견을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소통보다는 감정만을 교환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인 의견을 쓰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쓸모없는 짓입니까.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에게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조차 제 의견은 그 사람의 뇌리 속에 남아 어떤 견제 역할을 하게 되더군요. 어쨌거나 저는 이미 다수인 의견은 굳이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언제든 저에게 실망할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ㅎㅎ. -
싸리 2004/03/14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본문보다 댓글이 더 재밌기 했지만..아래에 실명으로 올린 댓글 삭제를 안해주셔서 삐질려다 참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관심 안가질테니..ㅋㅋ
저로서는 아직 하나씩 배워가는 게 마냥 좋습니다. 웃긴게..오늘 우연히 KBS홈페이지에 있는 '유권자 자가 진단'이란 걸 하게 됐는데 저는 거의 80%가까이 민노당 지지자로 결과가 나오더군요. 각당의 간략한 입장도 나와 있는데 열린우리당이 내가 갖고 있던 (어설픈) 상식과 별로 안맞더군요. 전 몰랐거든요.
별 내용은 아닌데 길게 댓글 남깁니다. 왠지 남겨야 할 거 같아서..제가 김규항님에게 적절한 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김규항님의 글은 가장 필요한 글입니다. -
고마쌔리 2004/03/15 0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무현 '씨'의 의미 잘 알겠습니다. 동감합니다. 저는 단지 '노무현 씨와 열우당'이란 표현의 맥락에서 '씨'라는 의미를 김씨, 이씨 할 때처럼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낮춰부르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열린우리당을 열우당이라 깎아 부르신 차원에서요.
그리고 규항님의 글이 가진 핵심가치가 바로 그 "다수 의견에 의해 무시되거나 왜곡된 소수 의견의 대변"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욕을 해대는 와중에도 그들의 뇌리 한구석에 남아 "견제"의 기능을 한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부분이, 제가 규항님의 글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앞으로도 계속 그와 같은 자세 유지해주시면, 저는 언제까지나 '규빠'입니다. 제가 아무리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하시더라도 '규빠'입니다. 규항님의 도발(?)이 전여옥류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규항님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지지를 보냅니다. -
비상구 2004/03/15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 말했지요... '순수한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구요..
1905년 혁명의 신호탄이었던 페테스부르크의 운동의 지도부는 경찰의 첩자였던 가퐁과 주바토프(이들을 경찰사회주의자라 불렀던가요?)였었지요. 그 운동의 내부에는 멘키, 볼키, SR당, 무정부주의자 등등 이루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파들이 참여하였지요.. 멀리갈것도 없이 87년 민주항쟁, 91년 강경대 타살정국, 97년의 노동법 날치기 철회투쟁, 2002년 12월의 반미투쟁, 최근의 반전운동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순수한 의미의 좌파운동은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비합법좌파조직, 학생운동조직, 각종 시민사회단체, 심지어는 보수야당까지...대중투쟁은 원래 그런것이 아닌가요? 중요한것은 "그것은 좌파운동이 아니야"라고 투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운동의 성과물을 님의 표현대로 "식인체제의 새로운 대변자들"이 전취하지 않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헤게모니 장악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에겐 그것을 담보할 볼키와 같은 혁명정당도, 이렇다할 조직도 없지만 말입니다...
촛불시위 ...그 성과물은 아마도 열우당과 노무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시위에 "진보의 가치"(전 이 표현 무지싫어하지만)를 심는것이 좌파의 자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
gyuhang 2004/03/1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두에 적었듯이 저는 분노한 사람들을 냉소하는 것도 아니고(리디님 표현처럼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더욱 아니고), 그 분노의 상당 부분이 반세기의 식인 체제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도 존중합니다. 다만 그 분노의 열매를 새로운 식인 체제가 모조리 차지할 것(시나리오는 확실히 그렇습니다)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저 역시 앉아서 딴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상구님 말씀대로 '진보의 가치'를 심기 위해서 말입니다. 누군가 '광화문에 모이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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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투살 2004/03/15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건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는 사람이냐 아니야에 달려있다는 규항님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규항님의 글에서 명쾌한 답이나 구원을 바라고 저는 여기에 오지 않습니다. 항상 문제는 저 자신입니다. 실망스럽다니 이런 말은 모두 자기자신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은 항상 내부에(나 자신이든 운동세력이든)있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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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노반 2004/03/15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무임승차자 입니다.
수많은 전태일, 수많은 배달호를 연료로 불사르며 국민소득 2만달러종점으로 달리는
대한민국운수 2004호 버스의 승객아닌 무임승차자 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본의아닌 무임승차자로 버스에 몸을 실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달리며 엔진음에 섞인 노동자들의 비명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살타는 매연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무임승차자인 저는 귀막고 코막은채 군말없이 종점에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비가 높건 낮건 버스는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버스안에 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몇몇 승객들이 현 버스기사 노씨의 운전방식과 서비스가 엉망이라며 기사를 바꾸자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난폭운전으로 유명한 전 운전기사 한씨로 바꾸잡니다.
신호위반 시원시원하게 하며 빨리 운전하니 국민소득 2만불 종점에 더 빨리 도착할거라며 운전기사 한씨로 바꾸잡니다.
그러자 이번엔 난폭운전기사 한씨의 운전에 질려버린 승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빨리 도착하는것도 좋지만 승객의 안전이 우선 아니겠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도 정식승객은 아니지만 내몸의 안전을 위해서는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는 한씨보다는 노씨가 더 낫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바꾸자는 승객들에게 항의하기 위해 몸을 세우려 하니 웬걸..천정이 머리에 닿는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 객실에 타고 있는게 아니라 연료탱크에 타고 있던겁니다.
진짜 객실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몇 안되고 자신을 승객이라 믿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같이 연료탱크에서 버스의 엔진을 돌리기 위해 연소되기를 기다리는 연료였던겁니다.
전 그제서야 연료탱크에서 꺼내달라 벽을 두드리고 고함을 쳐봤지만 객실의 승객들은 제가 그랬던것 처럼 손이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습니다.
연료탱크안의 몇몇 인간연료들은 자신이 연료탱크 안의 연료인걸 끝까지 깨닿지 못하고 시뻘건 불길속에 연소되고 있습니다.
그 불길이 이제 점점 저를 삼키려 다가옵니다.
버스가 이대로 국민소득2만불 종점에 도착하더라도 저는 못내리겠지요..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연소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제 자신이 연료인줄 모르고 승객으로 착각했던게 후회됩니다. 승객이 아닌 연료주제에 난폭운전을 걱정하며 안전벨트를 고쳐매던 일이 후회됩니다.
진작에 알았다면 옆에있는 인간 연료들을 밀치고 객실로 올라갔던가 노동자를 태워 굴러가는 버스 자체를 바꿔보려 했을텐데요.. -
소풍길 2004/03/15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늦게 찾아와 몇자 보탭니다. 저는 규항님의 글에서 보여지는 현실인식에 대한 명료함도 좋아하지만,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더 좋아합니다. 님의 '스탠드'를 알기에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님의 심정도 이해합니다. 님의 "오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도 나왔다면 대한민국은 좀더 아름다웠다." 말에는 정말 동감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울고 뒤론 웃는 놈들을 냉소하기에도 벅차다'는 말씀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 집니다.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시려는 의미겠지요.. 예.. 그들이 뒤에서 웃었을 거라는 짐작은 저도 하지만, 최소한 그 순간의 눈물에 담긴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진보'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계산 된 쑈이겠지만, '개혁'의 눈으로 보면 그 몸부림이 그렇게 냉소당할 만한 행동은 아닌 것이고, 탄핵정국 역시, '진보'의 가치로는 우스운 그들만의 난장이지만, '개혁'의 가치로는 중대한 민주-반민주의 구도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스탠드'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님의 치열함을 좋아하지만, 가끔씩 보여지는 지나친 결벽증, 거기에서 나오는 냉소는 조금 걱정됩니다. 스스로를 향한 엄격함은 항상 유지하되, 때론 남을 향한 (그것이 설령, 보수적 가치일지라도) 여유를 가지시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버릇없는 충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진보는 옳습니다. 하지만, 진보'만' 옳지는 않습니다. -
theisland 2004/03/15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좌파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가는 삶에 비추어 부끄러워서, 조그맣게 말합니다. 저는 좌파입니다.
지금까지 규항님의 많은 글은 제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엔 좀 다릅니다. 얼마나 다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탄핵 뒤에 광화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좌파로서 억울합니다.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은 것이 억울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싸워서 얻은 열매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에게 돌아갈 것이 억울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싸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노무현이 꾸민 '탄핵쇼'였다고 해도 우리는 광화문의 그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싸워야합니다. 좌파는 그 싸움의 터 안에서 좌파의 얘기를 해야합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진정한 해방을 위한 다른 길을 찾자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시민'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좌파가 이번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채 좌파의 얘기만 한다면 그 목소리가 누구에게 통할까요? 지금 이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 아닐까요?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게 좌파 아닙니까? 광화문의 저 수 많은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요? 단지 그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 뿐일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싸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보수와 조금은 개혁적인 보수 사이의 이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광화문에 모인 수만의 사람들만 보고 이 싸움의 결과를 쉽게 예측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보수 세력들은 단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진보세력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탄핵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가 보인 '친북, 이적 반자유주의적 언행'이라고 그들의 싱크탱크인 조갑제가 얘기하더군요. 노무현이 언제 반자유주의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싸움에서 우리는 수구세력을 물리치고 대중의 급진화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규항님도 열심히 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뛰고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딱히 무엇을 할지 모르겠고 사람들과 같이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기도 해서 거리로 나갔습니다. 규항님이 생각하시기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시다면 저도 좀 알고 싶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이번 주 토요일 3.20 반전평화공동행동이 있습니다. 이라크 침략 1년을 맞아 전세계적으로 이라크에서 미군철수를 외치고 우리나라에선 더불어 파병반대를 외치는 세계적인 큰 규모의 집회입니다. 대학로에서 세시입니다. 그리고 집회 끝나고 광화문까지 행진합니다. 반전집회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듯 탄핵반대집회도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좌파 여러분. 거리로 나갑시다. 나가서 우리들의 얘기를 합시다. 우리는 탄핵을 반대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노무현이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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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2004/03/12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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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픈 선생님이 한분 계셔서 알려드립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고랬어그랬어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상당한? 일조를
할꺼라 생각합니다.
편집자와 미래에 필자가 서로 승낙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필자로 당선?^^이 돼어서 부탁한다면 그 부탁이
아이들을 위한 부탁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실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다른 마을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서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 일했다.
그러고 나서 3년 동안 그는 방랑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결코 책을 쓴 적이 없다. 또 사무실도 열은 적이 없었다.
결코 가족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다.
그가 난 곳에서 300킬로미터 이상 밖으로 여행한 적도 없었다.
거대함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성취한 적이 없었다.
자신 이외에 어떤 신용장이나 자격증도 없었다.
여론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는 겨우 서른세 살이었다.
그의 친구들도 그를 버렸다.
그는 적들의 손에 넘겨졌고, 그들은 재판에서 그를 조롱했다.
그는 두 도둑들 가운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께 왜 자기를 버렸느냐고 물으면서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그를 고문한 자들은 유일한 소유물인 그의 옷을 놓고 제비를 뽑고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한 친구가 묘를 빌려서 그곳에 그를 매장했다.
20세기가 지나갔지만, 오늘날 그는 우리세계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변화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다.
행진해갔던 어떤 군대도,
항해했던 어떤 해군도,
회의를 했던 어떤 국회도,
지배했던 어떤 왕도
이 모든 권력을 다 합쳐도 그이 이 고독한 삶만큼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꾼 것은 없었다.

왼쪽. 2003년 맨체스터대학 연구팀이 만들어낸 예수의 얼굴. 2천년 전 유대인 농부의 두개골을 재료로 법의학 기술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이 예수의 얼굴을 섬약한 백인의 얼굴로 기억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 실증적인 얼굴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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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그는..
Tracked from say sweet things 2004/03/17 16:06 삭제<DIV class=title>그</DIV> <DIV id=underline> 그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농촌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BR>그는 또 다른 마을에서 자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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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f
Tracked from 달팽이네 집 2004/03/17 20:35 삭제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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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예수
Tracked from nihil 2004/03/17 20:42 삭제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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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예수
Tracked from nihil 2004/03/17 20:46 삭제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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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그
Tracked from J로 살기, 혁명가 2004/05/10 11:43 삭제<DIV class=blogbody> <H3 class=title>그</H3> <DIV id=underline> 그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농촌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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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그 - 김규항
Tracked from 공감+공명=공간 2004/10/01 18:25 삭제<H3 class=title><FONT size=1></FONT> </H3> <DIV id=underline> 블로그를 오픈한 후, 트랙백이라는 기능이 매우 헷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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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그
Tracked from Here comes the sun 2004/10/15 00:00 삭제* 하나님은 '깡패'가 아니시다.........는 것..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하나님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함부로 짐작하지 말 것. 내가 짐작하는 하나님의 모습은...거의 대부분이..바로 '깡패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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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그]를 만나러 간다
Tracked from 올빼미가 보는 세상 2005/07/24 11:12 삭제그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농촌 여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또 다른 마을에서 자랐는데 그곳에서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 일했다. 그러고 나서 3년 동안 그는 방랑하는 설교자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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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More suggestions
Tracked from More suggestions 2013/05/01 23:43 삭제GYUHANG.NET ::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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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 2004/03/11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북미에서 개봉된 이란 영화 때문에 뉴욕타임즈에서 예수의 얼굴에 대한 글이 나왔더군요. 제가 읽어보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우선 참고하시라 보내 드립니다.
<a href="http://www.nytimes.com/2004/02/21/arts/21JESU.html?ex=1079154000&en=80c700c56baa836b&ei=5070" rel="nofollow">http://www.nytimes.com/2004/02/21/arts/21JESU.html?ex=1079154000&en=80c700c56baa836b&ei=5070</a> -
Neppp 2004/03/11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종교에서 언급되는 "믿음"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저 역시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믿음에 대한 갈망이 아직 어줍지 않다는데에서 기인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믿음의 행위라는 것이 왜 그런 "압도적인 다수의" 사교클럽인 교회에 나가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외되고 핍박받는 소수자들의 합인 "다수의 마이너" 를 돕기는 커녕 믿음을 팔고 그 이문으로 교회 건물을 왜 또 다시 때려박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한 믿음에 대한 생각이 깊으면 사실 이러한 현실같은건 중요하지 않겠죠. 교회에 안가면 그만(?) 인거니까요.
이 글을 보시는 크리스천분들께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저 어리석은 편견이었으면... 그런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지 못한 무언가도 있겠죠.
글을 써놓고 보니 참 횡설수설이군요 ^^; 실증적인 얼굴, 이라는 말을 보고 불현듯 스친 생각을 얘기보았습니다.
교회도 싫고, 성경도 인내심을 가지고 보지 못하는 제가 무슨 믿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아직은 무언가 절실한게 없어서 그런듯 하군요. -
gyuhang 2004/03/12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에 나가는 것과 믿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특히 교회가 단지 '교회라 주장하는 건물'일 뿐인 한국에서는 말입니다. 물론 그런 한국에도 아주 드물게 교회다운 교회가 있지만, 정작 그런 교회는 교회에 나오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데 어떤 교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힘들어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나와 예수가 만나는 데 언놈이 지랄이냐' 이런 마음으로 예수를 만나세요. 예수는 넥타이 매고 금박 성경을 옆구리에 낀 목사들처럼 깝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적어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자'라 욕을 먹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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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 2004/03/12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eppp님,
전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의 진보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규항님이 늘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는 파격적이다 못해 급진적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머리 속에만 갇혀있는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전혀 다르고 새로운 삶의 실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요. 삶이라는 것은 하나하나 개인이기 보다는 더불어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삶이 '진보'이려면 '혼자'가 아니라 '모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여서 진보하는 삶을 실천해야 할테니까요. 이거, 말이 되는 소린지, 앞뒤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한국교회가 실망스럽다고 해서 예수까지 지레 외면하시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그저 함 웃으시라구 2004/03/13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s고 기독교 수업시간에 있던 실제상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s고는 기독교재단 사립이라 수업중에 기독교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교다. 기독교 수업시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목사 : `에.. 이반에 교회에 다니는 학생 손들어 보게.... `
이에 열두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이정도면 정말 많은 숫자가 아닌가?
목사 : (흠칫 --+) `아니.. 이 반에는 사탄의 자식이 왜 이리 많은가? 심판의 날이 멀지 않은데 교회에들 안나가고 다들 뭐하는건가?`
목사님은 수업시간마다 교회에 나가야만 되는 당위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고, 아이들은 점차 넌더리를 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에 들어가기전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목사님은 앞에 앉아있는 45명 남짓의 아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중 이었는데, 평소 말이 없는 편인 K모 군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슨 종이쪽지를 꺼내더니 이마에 턱.. 하고 붙였다.
이쯤에서 뭔가 감을 잡은 분이 있을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부적` 이었다.
노란 종이에 빨간 닭피로 써진, 귀신을 쫓는 종이쪽.
부적을 붙인 K군은 낮은 소리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이에 놀란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K군을 돌아봤다.
깜짝 놀란 목사님. K군 앞에 달려가서 이게 무슨 사탄의 짓이냐고 열변을 토하는데,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K군.
목사님 : 이.... 이보게. .. 이제... 그만... 하게나... -_-;;;
목사님이 순간 쫄았다고 한다.
부적을 이마에 붙인X이 알수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서면 쫄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K군. 주문외기를 뚝 그치면서 부적을 이마에서 떼어냈다.
그리고...그 부적을 목사님 이마에 철썩.. 붙였다고 한다.
K군 : "예수귀신 물러가라... 예수귀신 물러가라.."
목사님은 비명을 지르고, 어느틈에 목사님 뒤에 두X이 따라 붙어서 주문을 외워댔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뒤집어져서 못일어나는 애들이 4명, 쓰러진애가 8명, 웃다가 실신한 애가 2명이 나왔다고 한다.
K모군과 주문을 외운 2명의 학생은 교무실로 불려가 죽도록 얻어맞았다고 하며, 다행히도 정학등의 제재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S고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이었습니다.[N]
현 기독교계의 우스꽝스런 현실입죠.
모든 이가 다 그런건아니지만 독선과 아집...의 한 예일 따름.
그저 함 낄낄 웃고 치우세요. -
기독교라는 희비극 2004/03/13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3년도로 기억하는데....
아는 선배가 결혼했다.압구정동 k모 교회에서
그 선배 신랑될사람 가족이 기독집안이라 거기서 했는데
문제는 선배집안은 전원 불교집안이다
식장 선택부터 이러쿵 저러쿵 얘기가 많았는데
다행히 신랑될 사람은 그다지 환자가 아니라
서로간에 어느정도 타협을 했나 보다
교회에서 하는 대신 최대한 교회양식을 배제하고,
왜냐하면 신부측 하객 90%이상이 불교신자라...
비록 주례는 거기 목사가 하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지랄이다
그 신랑 부모는 둘다 장로니 권사니 무지 환자라 그런지
주례 첫마디가 `모두 일어나 찬송합시다`였다
신부측 하객 전부 얼굴색 변하는데....
다행히 하객중 스님이 먼저 일어나셔서 다행히 수습
그X의 찬송 댓번은 더하더니, 말끝마다 하나님이 어쩌구...
신부는 울려 그러지, 신랑은 민망해 죽지(걘 양심은 있어서)
하이라이트는 끝날 때 쯤....
목사X, 번쩍 스님한테 삿대질 하더니....
`이제 성전에 들어왔으니 마귀에서 벗어나 성령의 감화를 받고 회개하고 어쩌구...`
거기다 신랑 부모란 X들 박수치고 난리지.
솔직히 식장 개판되는줄 알았는데...
스님은 조용히 합장만 하시더라, 웃으시며
그 선배 잘산다는 얘기까진 들었는데
신랑이 부모랑 거의 인연 끊다시피 했다더라 -
양세 2004/03/18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C4년경 이스라엘 변방 나자렛 출생.
목수출신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의 학자들을압도하는 지식과 지혜의 소유자였음.
인간을 옭아매는 율법사회의 폐단에 저항하며
평등한 식탁의 실행과 병자들의 치유를 내용으로 하는
하나님나라운동을 주도하다가
유대사회의 붕괴를 우려한 당대 지배계급의 음모로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받아 처형됨.
그가 죽음앞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의 이상이란
평화와 평등, 인간의 해방이 실현된 세상이
내세가 아닌 바로 이땅에 임하는 것이었음.
죽음이후 2000년동안 수많은 이들이
예수적 삶을 증거하며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음.
일만년 인류역사 최초의 해방자였으며 영혼의 구원자였음 -
황게으름동이 2004/03/24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확실한 냉담자 중의 한 사람인데...
예수에 대해 생각하자면 정말 놀라운 바가 있습니다.
이천년 전 이스라엘 땅 한 구석에서 어떤 하층계급의 사내가 불쑥 튀어나와서는 학문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특별히 전례가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토록 확고한 믿음과 아름다운 비유로 설파했다니...
로마 제국의 지배와 더불어 민족, 인종, 종교적 갈등 등 오늘날 이상으로 복잡했던 당대의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구태의연하고 천진난만한 메시지를 들고 세상을 구원하겠노라고 나왔다는 사실이...
그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할지 좀 혼란스럽습니다
'490'은 안상수의 블로그에서 본 딴 것이다. 안 선생은 내 블로그를 보고 블로그 시작을 결심, 일단 내 블로그의 템플릿을 그대로 본 땄다. 내가 최호찬의 블로그를 본 땄듯이. 최호찬 형은 내 블로그가 생긴 후 자신의 것을 조금 바꾸어 '둘이 다르게' 만들었다. 머지않아 안 선생의 블로그가 '예술적 개비'를 하면 '셋이 다르게' 될 것이다. 본 따고 배려하고. '꽤 생산적인'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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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d 2004/03/10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트 북 화면 위 '대문짝만하게' 놓인 김단의 얼굴에
제 얼굴이 바로 비춰집니다.
그렇게 오버랩된 두 얼굴을 바라보며 며칠 동안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김단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지금 좀 다른 고민의 지점에 와 있지 않았을까, 혹은 김단의 얼굴을 통해 본 나의 유사함이 왜 지금까지 지탱되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내가 지켜내지 못하고 허물어트린 것들,
그리고 이제사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늦은 것들.
그런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아름다운 김단에게 '덕분에' 고맙다는 말을 꼭 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단의 얼굴, 제 홈피에 퍼갑니다.
단에게 양해를 구해야 될 것 같은데....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경석입니다.
정말 무겁고 민망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 글을 씁니다.
박인용 동지의 추천 글을 통해 수많은 동지들의 추천을 받고 감당할 수 없는 지지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무게는 88년부터 지금까지 장애운동을 하면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럽고 획기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동지들의 지지에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 결정이 동지들에게 상처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번을 기회로 동지들과 함께 더욱 현장투쟁을 확장하고 강화시키며 진보적 장애운동의 조직건설에 진정으로 연대하고 싶습니다.
장애아이를 둔 어머니의 추천 글에서 저의 출마가 고통 받는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희망이라 말씀해주시는 것에 더욱 마음이 쓰리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하나의 소중한 희망이듯,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현장을 강화하고 진보적 장애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갈 조직건설의 활동가로 남는 것 또한 동등한 무게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활동가로 남는 그 희망이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는 희망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보적 장애운동은 여전히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 땅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애민중들은 한낱 부르주아 보수 정치인들의 정치적 치장물로 전락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떡고물에 관변적이고 보수적인 장애인단체는 생물학적인 장애인 당사자를 팔아 정치적으로 야합하였고, 몇 명의 잘난 장애인들은 그 조직을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장애민중이 투쟁으로 조직을 건설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장애운동에 있어 열악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의 문제는 더욱 왜곡되어 왔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정말 저에게는 소중한 김도현 동지를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 동지는 에바다 투쟁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습니다. 집행유예기간에 또다시 중증장애인을 철로에 내려주는 투쟁을 감행하였고 그래서 구속이 되어 1심에서 징역8월의 실형을 받았고, 집행유예기간이라 에바다 투쟁으로 받은 1년 6개월을 더하여 살아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동지가 구속되어서 면회 갔을 때 저에게 그가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장애운동의 열악함'이라 했습니다. 그는 비장애인입니다. 온전히 저로 인해 구속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지가 저 대신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동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동지는 저에게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로 나가는 것이 정말로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진보적 장애운동을 건설할 현장에서 형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의회로 진출하는 것이 현장과 분리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동지의 말이 틀리고 맞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더 열악하고 낮은 현장에서 장애대중을 조직하고 투쟁해야 할 절실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저를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은 그곳이라 생각합니다.
'내 모습 지옥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 받아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위선 속에 동정 받는 병신 인줄 아나!'
제가 좋아하는 '젠'동지들의 공간이동이라는 노래의 랩 부분입니다. 그렇게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차별의 한가운데 살아왔습니다.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의 질서에서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계층으로 살아왔지만, 우리의 투쟁은 사랑의 리퀘스트 류의 자선공연이거나 오히려 하나의 퍼포먼스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적어도 이 사회에서 장애라는 문제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의 문제는 하나의 이벤트일지는 몰라도 주류의 담론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장애인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은 하나의 퍼포먼스요 시혜와 동정으로 다가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저와 그리고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자본의 사회를 변혁시킬 저항이었습니다. 이제 그 저항운동을 선도적이고 힘차게 일상적으로 현장에서 펼쳐낼 진보적 장애운동의 조직체 건설이 제가 느끼는 운동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향해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외치며, 이젠 우리의 힘으로 강제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 활동을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년 내내 논밭을 갈아서 가을의 수확을 마친 후 그 모든 결실들을 지주에게 다 바치고 텅 빈 가을 들녘을 낮 술에 취해 바라보는 한 농부의 눈동자에서 녹아오는 허전함을 매년 느낍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나오는 저희 장애학생들은 20년 30년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다가 학령기를 다 놓친 후 늦은 나이에 야학을 찾아와 공부를 배웁니다. 저는 장애운동을 하면서 그곳을 소중한 현장으로 느낍니다. 왜냐하면 장애운동을 하려면 그래도 소위 '쪽수'가 되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집구석에 처박혀 지내서 눈뜨고 찾아 볼 수 없어 어떻게 장애인을 꼬셔서 운동을 해볼까 하는 고민에서 야학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조직해서 야학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가르치지만 차별에 대한 저항정신을 가르칩니다. 쉽게 말하면 학생들과 교사들을 데모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조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허전함을 매년 느끼는 것은 장애민중들의 현실적인 열악함에서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역량강화를 위한 현장조직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반증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끊임없는 허전함과 미래가 없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1년, 2년 길게는 3년 4년 그렇게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굴러온 것이 야학의 활동이었고 그것이 지금 진보적 장애운동 조직을 건설하고자 희망을 가지게 된 물리적인 힘의 원천입니다.
이제 다시 돌이켜 봅니다. 저에게 보내주는 동지들의 지지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선택이 동지들의 생각에 잘못일지는 몰라도 장애운동의 열악함으로 보아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열악함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장애인이 받아왔던 차별의 무게만큼 더 질기게 혁명적으로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자본과 비장애인의 중심으로 계획되고 운영되는 세상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거리투쟁의 현장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조직을 건설할 것입니다. 그대 동지들이 투쟁하며 만들어 왔던 민주노동당의 희망을 제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민주노동당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진보정당에 대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
단순히 장애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장애인을 돕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해방은 자본의 체제에 대한 저항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여러분!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같다면, 그렇다면 함께 투쟁합시다!
다시 한번 동지들의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거리투쟁의 현장에서 동지들의 지지를 가슴에 안고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2004. 3. 1.
박경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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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ブルガリ 指輪
Tracked from ブルガリ 指輪 2013/08/08 19:50 삭제So i am finding a cutting edge computer nevertheless won't like to shed a Firefox book marks. Possibly there is a to avoid wasting an increasing with all the self-proclaimed Web addresses during my Social bookmarking and easily distribute these ph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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