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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1/11/08 밴드
  2. 2001/11/05 얼치기 도사들
2001/11/08 23:26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장이모의 <인생>이다. 역사의 오류를 그린 영화지만, 나는 그 역사의 오류 앞에서끝내 선의를 잃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늘 감동한다. 장이모의 영화답게 <인생>의 배우들은 귀신처럼 연기한다. 브레히트가 이 영화를 봤다면, 공리의 연기에 몰입되어 '소격 이론'의 관념성을 자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장난스런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좀더 사적인 차원에서라면, 알란 파커의 <커미트먼츠>를 좋아한다. (한번 쯤 밴드를 꿈꾸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만) 밴드를 꿈꾸었기에, 나는 밴드가 충분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심란스런 땅 북아일랜드의 젊은이들(실업연금을 타 먹는 건달, 집에서 애보는 처녀, 정육공장 노동자, 허풍선이 난봉꾼...)이 모여 소울 밴드를 만든다. 밴드의 첫 연습 날, 당구장 이층 창고에 '머스탱 샐리'가 울려퍼지는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하다. 흑인도 아니면서 왜 소울을 하느냐는 질문에 밴드의 발의자가 대답한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아프리카고,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아프리카며, 더블린은 북아일랜드의 아프리카다. 우리는 검고, 검은 건 아름답다."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내게 좀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세상만사, 불놀이야, 컴백, 아이러브락앤롤... <커미트먼츠>의 음악들은 단지 좋은 소울 음악들이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음악들은 내가 밴드를 꿈꾸던 시절의 구체적인 레퍼토리들이다. 밴드의 출발에, 신중현을 신으로 옹립한 인탤리들에게서 철저히 무시 당한 송골매(는 가장 한국적인 록을 구사한 밴드였다)의 '세상만사'가 세심하게 배치된다. 일류밴드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음에도, 영화의 모든 연주들은 (심지어 연포 해변의 임시 디스코장의 연주마저도) 그 시절 밴드의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거기에 기타 피킹 하나, 드럼 필인 하나 오차 없는 정교한 동작 연출이 보태진다.

"지금까지 저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사랑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몰락 중임을 알리는 대사로 등장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영화 내내 몰락한다. 음악에의 열정 따윈 고등학교 밴드 시절의 플래시백에서나 되새겨질 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섹스폰 주자, 기타 둘(혹은 기타 하나 키보드하나) 베이스 드럼이라는 밴드의 전통 편제가 신디사이저에 해체 된 후 마약을 찾는 드러머, 술에 찌들어 연주하다 쓰러지는 노악사, 난잡한 가라오케 파티에서 옷을 벗기운 채 연주하는 밴드의 리더... 밴드의 몰락을 지시하는 풍경들은 끝없이 나열된다.

그 풍경들은 한국인들의 팍팍한 삶을 지시한다. 한국인들의 삶에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문화란 대학생 시절(은 출신 성분을 막론하고 다종다양한 문화를 소구하는 유한함이 허락되는 시기다. 이 글이 실리는 잡지를 포함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문화상품의 구매자들 역시 대개 그들이다.) 혹은 청년 시절 언저리에 잠시 존재하는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한국인들의 삶에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 가운데 문화를 소구하는 데 사용되던 부분은 군대 취업 결혼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진작에 박살이 났다. 그들이 언젠가 가졌던 이런저런 문화적 취향들은 갖은 차이를 막론하고 끈적끈적하고 처연한 트롯으로 대거 통합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심수봉의 트롯 '사랑밖에 난 몰라'를 연주하며 다시 출발한다. 그 곡은 밴드가 수안보에 흘러들어와 "야간업소의 비틀즈"라 소개받으며 연주한 함중아 밴드의 트롯 '내게도 사랑이'보다 한층 본격적인 트롯이다. 조명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보컬은 고등학교 밴드 시절 '아이 러브 록앤롤'을 당차게 부르던 소녀다. 그 시절 분명 트롯을 경멸했을 그는 이제 무대 위에 서서 트롯을 부른다. 다시 출발하는 세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이제 그들의 음악과 삶은 트롯으로 통합되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자막이 오르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모든 평범한 한국인들의 가련한 삶 앞에 정중하게 헌정된다.(씨네21 2001/11/28)
2001/11/08 23:26 2001/11/08 23:26
2001/11/05 23:02
자신의 오류를 역사의 오류로 자신의 실패를 역사의 실패로 돌리는 데 능한, 유약하고 비굴한 인탤리들은 역사적 격변 앞에서 종종 파행한다. 한국에서 80년대의 열망과 90년대의 좌절이라는 역사적 격변 역시 인탤리들의 이런저런 파행을 낳았다. 인탤리들의 그런 파행은 단지 제 삶에서 현실의 무게를 덜어보려는 얕은 수작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고유한 기술(제 생각을 글이나 말로 남다르게 표현해내는)과 결합하여 자못 그럴싸해진다. 그런 파행의 가장 멋진 예는 바로 '도사'다. 김지하에서 박노해까지, 역사적 격변 앞에서 인탤리들은 '모든 것을 깨우친 도사'가 되어 현실을 '초월'한다.

ꡒ똥을 누면서 나는 내가/아래 위로 구멍 뚫린/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아하! 내가 통이다/내가 걸어다니는 통이다ꡓ 10월 27일자 <한겨레>를 보며 나는 서글프게도 내 청년시절의 소중한 선생이던 이현주 목사가 도사의 대열에 합류했음을 알았다. 도사가 된 그는 말한다.ꡒ부시와 라덴은 같은 편이다. 그들은 싸우는 척하지만 서로를 돕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세력의 대표들이 바로 그들이다.ꡓ 얼핏 공평무사하기 짝이 없는 그 말은 (경솔하게도 라덴이 미국 사건의 범인이라는 미국의 주장을 전제로 하는 데다) 그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관계들을 마치 진공상태처럼 차갑게 뭉게버린다.

미국사건은 어느 호사스런 서양학자의 말처럼 '문명의 충돌'이 아니고, 부시의 말처럼 '자유에 대한 침범'은 더더욱 아니며, 단지 '오랜 일방적 가해자가 당한 뒤늦은 최초의 보복'이다. 그런 분명한 사실 앞에서, 가해자의 무소불위한 권세 덕에 단 한번도 제대로 인류 앞에 제 억울함을 알릴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한 앞에서 '폭력은 모두 나쁘다'는 지당한 말씀(폭력을 사용하는 누구도 폭력이 좋은 거라 말하진 않는다)이나 읍조리는 일은, 동네 양아치의 싸움 앞에서 '누가 먼저 때렸는가'를 따지는 파출소 순경보다 한가롭다.

그는 다시 말한다. ꡒ모세는 앙갚음을 하라고 했지만,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ꡓ우리는 기독교를 대표할 만한 이 유명한 경구가 역사 속에서 피억압자의 정당한 분노를 무마하는 데, 늘상 동원되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는 평화주의자였으나 뼈없이 흐물거리는 무작정한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예수는 어떤 극악한 상대도 끝내 용서했지만, 그 극악함에 분노하는 데 폭력적일 만치 분명했다. 이를테면 예수는 타락한 성직자들과 뒤로 결탁하한 장사치들을 성전에서 한번에 쫓아낸다. 갈릴리 출신의 별볼일 없는 청년은 단지 자애로운 얼굴로 "여러분의 행동은 부적절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 일을 성공할 수 있었을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 23:33)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은 '끝내 용서하되, 분명히 분노하는' 방식으로 점철된다. 예수가 결국 정치적 혁명가의 혐의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의 그런 독특한 지점을 드러낸다.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의 행적은 늘 정치적 혁명가로 오해받곤 했다. 예수는 끝내 용서하되 분명히 분노했으며, 정치적 해방을 구원으로 삼지 않았으되 매우 정치적이었다. 그것이 예수가 단지 분노하지 않거나 단지 정치적이지 않을 뿐인 얼치기 도사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며, 끝내 용서할 줄 모르거나 정치적인 해방을 구원으로 삼는 하고많은 혁명가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역사적 격변 앞에서 얼치기 도사들은 '깨우침'으로써 비루하고 덧없는 현실을 '초월'한다. 그러나 예수나 부처와 같은 가장 위대한 성인들은 도리어 '깨우침' 이후에 그 비루하고 덧없는 현실에 자신을 녹여 넣곤 했다. 그 비루하고 덧없는 현실 속에, 그 비루하고 덧없는 현실에 얽메어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서러운 가슴 속에 우주와 생명의 이치가 있다.(한겨레 20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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