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머리말
지금 가진 정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 그게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정신은 늘 변화하고 세상은 그 변화한 정신으로 늘 달리 해석된다. 정신의 변화는 고갈이나 폭발에 이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97년 <랜드 앤 프리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영화가 낡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한때는 저런 걸 보면서 피가 끓었었지, 하며 쓰게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99년 그 영화를 다시 봤을 때 나는 피가 끓었다.
97년과 99년 사이에 내 정신이 변화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 98년 시작한 글쓰기가 있다. 내 삶에 글쓰기라는 불의의 습격이 없었다면 나는 <랜드 앤 프리덤> 따위 신념에 가득 찬 영화는 아예 거들떠보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90년대는 80년대의 자식들을 대개 그렇게 만들었다. 90년대는 그 시간 속에 끼어 산 우리에게 결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 10년의 세월 또한 (모든 역사가 그렇듯) 매우 간명하게 기록될 것이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전세계적인 우경화와 한국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진보세력의 대대적인 청산으로 이어졌다. 한국인들은 자본의 신에게 모든 인간적 위엄과 존경을 내주는 대신 핸드폰과 자동차를 얻었다. 10년 후 ….”
이 책은 바로 그 ‘10년 후’에 관한 것이다.(독자들은 3년 동안 쓴 이 책에서 80년대의 한 졸렬한 성원이 10년 후, 놓았던 정신을 추스르고 ‘B급 좌파’로 거듭나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역사를 내다볼 순 없지만, 역사의 파도는 이미 최저점을 통과했다. 승리감에 도취한 자본주의는 이제 자신의 위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세상에 제출한다는 것은 운동이다. 내 글이 자본의 신과 싸우는 일에, 사람들의 위엄과 존경을 되찾는 일에 개입하는 한 운동이길 바란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올 순간을 기대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독자들께 고개 숙인다.
2001년 6월 일산 작은 거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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