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인 전주로 내려보내고 사무실을 겸하는 방을 구해 살게 되었다. 한국춤을 하는 아내는 늘 창작춤에 열중하다 서른 다섯이 되어서야 전통춤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다. 창작춤에서 전통춤으로 관심을 바꾸는 일은 적어도 아내의 경우 절대적인 정신적 안식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의 관심은 춤계에서 춤 자체로 바뀌었다. 어떤 경우든 욕심을 버리면 사람은 평화를 얻는다.
몇 달 전 나는 아내에게 1, 2년 예정으로 전주에 내려가 살면서 전라도의 전통춤들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내가 가질 유익 외에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김단(8살, 지난번 나온 김건의 누나)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지방이 서울의 보조품일 뿐인 세상에서 아이가 일생을 지방에서 살기 어렵다면 어린 시절 한 때라도 지방에서 살기를 바랬다. 그것은 아이의 삶에 분명한 유익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살게 되었는데 희한한 일은 이제 나는 애초 계획에 없던 살림을 하게까지 되었다. 나는 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하며 살고 있다. 애초 살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표면적으론 시간적 효율성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남자라서일 것이다. 알다시피 남자의 경우 살림은 전적으로 여자의 도움을 받는다.
내가 내 살림을 직접 챙기게 된 건 주로 인근에 사는 한 선배 덕이다. 그는 15년 가량 혼자 살고 있는데 내가 한달 전 근처로 이사하자 나를 앉혀놓고 살림의 중요성을 몇시간 동안 피력했다. 그의 말의 골자는 살림이라는 게 효율성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그의 큰 냉장고 두 대엔 온갖 음식 재료들이 알뜰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나는 당시 그의 말을 혼자 사는 요령이나 지혜 쯤으로 받아들였지만 손수 밥을 짓고 빨래하는 일을 거듭하면서 나는 내가 놀랄 만큼 안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몇해 동안 늘 일에 치어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급기야 감당할 수 없을만치 고단해져서 몇가지 일들을 어거지로 정리하기까지 이르렀는데,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밥짓고 빨래하는 일에 할애함으로써 외려 편안해진 사실은 참으로 의외였다.
현명한 사람들은 늘 밥이 하늘이고 살림은 사람의 기본이라 말해왔다. 그러나 그런 멋들어진 주장을 하는 건 대개 현명한 남성들이었지만, 손수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 일은 어떤 경우든 여성들(현명하든 그렇지 않든)의 몫이었다. 일반적으로 살림은 여성의 일이고, 일반적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의 정신이 허풍선이 같은 주요한 이유 또한 거기 있는 것 같다.
(여성신문)
2001/01/27 22:11
2001/01/07 22:09
며칠 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김건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뭐해요?" "설거지." "왜 남자가 설거지를 해요?" "남자는 설거지 하면 안 돼?"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건데." "설거지는 남자가 할 수도 있고 여자가 할 수 도 있는거야." "아닌데 여자가 하는 건데..."
김건의 볼을 감싸쥐며 "어휴, 이 마초 자식."하고 웃는데, 보고 있던 아내가 "아빠 닮아 그렇지."하며 또 웃는다. 아내가 나를 마초라 하는 건 그리 나쁜 뜻만은 아니라 믿지만(적어도 내 생각엔) 내가 내 또래의 한국남성 일반보다 좀더 마초 경향을 가진 건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남자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데 녀석들과 대할 때 나는 보통때의 나보다 약간 불량해진다. 녀석들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곤 한다.
반장난이긴 하지만 책상에 붙어 앉아 어줍잖은 글쪼가리로나 세상과 대화하는 나는 한편으로 그런 유치한 장난을 즐기는 게 틀림없다. 10대의 한 시절을 마초 정신(이른바 사나이 정신)을 숭상하며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내 정신속에 거부할 수 없이 뿌리내려 있다.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복잡한 가치들이 한마디로 판가름하던, 이른바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인간들을 나는 가슴아프게 추억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지식인 노릇을 하고 사는 현재에도 내 그런 경향은 발견되곤 하는 모양이다. 강준만 선생은 얼마 전 나를 다룬 글에서 "김규항은 좋은 말로 사나이다운 의리와 정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냉철한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지적을 했고, 딴지의 김어준은 어디서든 기회만 있으면 "규항이 형은 실은 마초이며 보통 마초들과 다른 점이라면 조금 섬세하다는 정도"라고 놀리곤 한다.
나는 그런 지적들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 정신 속에서 근절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문제는 내 그런 노력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할까. 머리속의 정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내 속 깊이 스며든 정서적 흔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마초'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설거지와 관련한 김건과의 대화는 좀더 이어진다.
"김건, 설거지를 남자가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냐." "그림책에도 설거지는 다 여자들만 하는데..." "김건, 어제 엄마가 피곤하셔서 김건이 장난감 다 치웠다며." (자랑스런 얼굴로)"히히." "그래, 엄마가 피곤한데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아빠가 안 하면 김건은 좋아?" (주먹을 흔들며)"내가 아빠 때려줄 거요." "어휴, 이 마초 자식."하며 나는 김건을 안고 볼을 비비고 김건은 자지러지며 아내와 김단(김건의 누나)은 두 마초를 바라보며 웃는다.
(여성신문)
김건의 볼을 감싸쥐며 "어휴, 이 마초 자식."하고 웃는데, 보고 있던 아내가 "아빠 닮아 그렇지."하며 또 웃는다. 아내가 나를 마초라 하는 건 그리 나쁜 뜻만은 아니라 믿지만(적어도 내 생각엔) 내가 내 또래의 한국남성 일반보다 좀더 마초 경향을 가진 건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남자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데 녀석들과 대할 때 나는 보통때의 나보다 약간 불량해진다. 녀석들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곤 한다.
반장난이긴 하지만 책상에 붙어 앉아 어줍잖은 글쪼가리로나 세상과 대화하는 나는 한편으로 그런 유치한 장난을 즐기는 게 틀림없다. 10대의 한 시절을 마초 정신(이른바 사나이 정신)을 숭상하며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내 정신속에 거부할 수 없이 뿌리내려 있다.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복잡한 가치들이 한마디로 판가름하던, 이른바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인간들을 나는 가슴아프게 추억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지식인 노릇을 하고 사는 현재에도 내 그런 경향은 발견되곤 하는 모양이다. 강준만 선생은 얼마 전 나를 다룬 글에서 "김규항은 좋은 말로 사나이다운 의리와 정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냉철한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지적을 했고, 딴지의 김어준은 어디서든 기회만 있으면 "규항이 형은 실은 마초이며 보통 마초들과 다른 점이라면 조금 섬세하다는 정도"라고 놀리곤 한다.
나는 그런 지적들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 정신 속에서 근절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문제는 내 그런 노력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할까. 머리속의 정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내 속 깊이 스며든 정서적 흔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마초'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설거지와 관련한 김건과의 대화는 좀더 이어진다.
"김건, 설거지를 남자가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냐." "그림책에도 설거지는 다 여자들만 하는데..." "김건, 어제 엄마가 피곤하셔서 김건이 장난감 다 치웠다며." (자랑스런 얼굴로)"히히." "그래, 엄마가 피곤한데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아빠가 안 하면 김건은 좋아?" (주먹을 흔들며)"내가 아빠 때려줄 거요." "어휴, 이 마초 자식."하며 나는 김건을 안고 볼을 비비고 김건은 자지러지며 아내와 김단(김건의 누나)은 두 마초를 바라보며 웃는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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