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 이름보다는 곰탱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세살 짜리 내 아들이다. 나는 애당초 아들을 갖기를 바라지 않았다. 세상에 한 명의 가해자를 추가하느니 차라리 한 명의 피해자를 낳아 강하게 키우는 편이 낫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첫째(몇 달 전 이 칼럼에 등장한 바 있는 김단)는 딸이었고 더는 아이를 두지 않으려 했다. 장가를 들고 아내와 딸까지 건사하며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지던 나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곡절이란 늘 생각대로가 아니어서 한 아이를 더 갖게 되었고 나는 결국 아들을 키우게 되었다.
4.5킬로그램. 장대한 몸을 갖고 나온 김건을 보고 사람들은 "사내답게 생겼다" 말했고, 김건이 걷게 되고 생김새에 걸맞은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주저 없이 "사내답다" 말하기 시작했다. 사나이. 어정쩡한 건달로 살아온 나를 그 부록인 '의리'와 함께 언제나 마법처럼 지배해온 그 말이 내 아들에게 사용되었을 때 나는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과연 사내답다는 건 무엇인가. 사나이의 실체란 무엇이며 그게 있기나 한 걸까. 잊고 있던, 아들을 갖기를 바라지 않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의구심은 커져갔다. 김건이 가진 사내다움, 제 누나하고는 확연히 다른, 다른 남자아이들과 비교해서도 두드러진, 아비 눈에 흐뭇하게만 비치는, 씩씩함 같기도 하고 난폭함 같기도 한 그 기질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김건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타고난 사내다움은 제 여자에게 제 자식이나 부하나 후배들에게 제가 속한 사회망에 그리고 무엇보다 제 세계관에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이른바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나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삶의 진보성. 공허한 거대담론(이른바 '빛나는 시절', 수재형 좌파들의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던)이 아닌 일상과 생활의 진보성을 체득하는 일.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갖은 불공정함을 놓아 둔 채 어떤 진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성적 차별은 '사나이'로부터 나온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사내다운 사나이가 존재'하기 위해선 언제나 '여자다운 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나이'라는 말은 온갖 범죄, 온갖 악행, 온갖 불평등, 온갖 권위주의, 온갖 파시즘의 면죄부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더러운 세상은 그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나이들이 뒤섞여 저마다의 사내다움을 과시하고 경합하는 과정의 부산물인 것이다.
나는 김건을 부드러운 남자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사내다움의 결정체로 계획된 듯한 김건의 어떤 부분을 제어하고 어떤 방향으로 조정해야 할 것인가. 박학기는 내시 같고 김현식은 사내답다고 느끼는 정서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다만 김건은 그 모든 노력을 아비보다 좀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아비보다는 좀더 나가기를 바란다. 나는 김건이 세상에 유익을 주진 못할 망정 아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남자들처럼 세상을 가해하는 사나이가 되지 않길 바란다.
김건이 깁스를 풀었다. 김건은 1월 1일 '사내답게' 놀다가 다리가 부러졌었다. 집에 돌아와 욕조에 더운물을 받고 넣어주니 연신 첨벙대며 좋아한다. 한달 만의 목욕인 것이다. 깁스를 했던 자리에 낀 더께를 벗겨주다 옷이 젖어 나도 욕조에 들어갔다. 비스듬히 앉아 김건을 다리 위에 앉혀 놓고 그 씨름꾼 같은 몸과 능글맞은 얼굴을 들여다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어쩌다 이런 놈이 나왔을까. 이 순간만은 '사나이'의 사회적 역기능 따위는 접어 두자. 뿌연 수증기 속에, 발개진 얼굴을 맞대고 웃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을 뿐이다. | 씨네21 1999년_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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