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여기다 쓴 <교양>을 읽은 독자들이 보내 온 이메일들. "그런데,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 '구사대'가 뭔가요.(저는 20대)" <교양>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라디오를 듣던 내가 '구사대'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에 놀라 쓴 글이었다. 나는 '구사대'를 모르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 진행자의 교양을 가련하다 했다. 그러나 독자들 가운데는 '구사대'를 모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나는 <씨네21>의 20대 독자들이 '구사대'가 창궐하던 시대에 10대였음을 잊고 있었다.
지식인의 자족적인 글쓰기에 대해 여러 차례 폭언을 서슴지 않은 바 있는 나로선 민망한 일이었다. 나는 '구사대'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다 사과의 말을 덧붙여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메일들이 거듭되었고 모범 답장을 만들어 보내는 꾀를 내보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불편해졌다. 그 얘기를 주변 사람 몇몇에게 했더니 다들 믿어지지 않아 했다. '편집장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씨네21> 편집장은, '구사대'는 역사인데 '구사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면 다음 번에 꼭 '구사대'가 뭔지 적어달라 했다. 그러마 했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해 내가 얘기한다는 게 어쩐지 민망해서 미루고 말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구사대. 救社隊. 회사를 구하는 부대? '구사대'란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자본가가 만든 조직이다. '구사대'라는 이름 속에는 노동조합을 회사를 망하게 하는 불순한 노력으로 보는 이 나라 자본가들의 봉건성과 무지가 담겨 있다. '구사대'라는 이름 속에는 때려잡아서라도 노동조합을 깨고 싶은, 노동자의 몫을 한푼이라도 더 자기 몫으로 돌려놓고 싶은 자본가의 파렴치와 욕심이 담겨 있다. '구사대'는 야만적이다. '구사대'는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농성장을 습격하고 여성노동자들을 능욕하고 백주 대낮에 노동운동가들을 납치 테러한다. '구사대'는 4.19 학생혁명 때 학생데모대를 습격한 정치 깡패의 자식이고 도시 빈민들을 압살하는 철거 깡패의 언니다. 나는 '구사대'가 창궐하던 80년대에 성인이었으면서 '구사대'가 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의 교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을 정당한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금강산에 유람선이 뜨면 '구사대'가 생각난다. 금강산 유람선을 그 주인인 왕회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왕회장을 생각하면 그의 '구사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왕회장의 잔치, 소떼를 몰고 평양에 가서 혈육을 만나고 김정일과 사진을 박고 만찬장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금강산에 자기 유람선을 띄우고 금강산 어귀에 자기 주유소를 세우는 그의 행복한 잔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잔치는 달랑 풍경사진 한 장만 갖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공사를 따낸 그의 놀라운 패기로부터 오는가, 제임스 리라는 교포깡패까지 수입해다 만든 '구사대'로 노동자들을 테러한 그의 잔인무도한 악행으로부터 오는가. 내가 강퍅한 인간이라선가. 그의 소떼를 보면 저게 누구 손데 싶고, 그가 <아침이슬>을 부르면 저게 누구 노랜데 싶고, 그의 유람선이 뜨면 저게 누구 밴데 싶다.
나는 금강산 유람선을, 그 경사스러운 잔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잔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는 그 잔치에 대해 온 나라에 덕담만이 오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 완벽한 대타협이 언제 어느 새 이루어졌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현대자동차(98년 7월), 대전성모병원(98년 7월), 태광산업(98년 8월), 청구성심병원(98년 8월), 한양대병원(98년 9월)... 구사대는 계속되고, 잔치는 여전히 불편하다. | 씨네21 1998년_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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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81년에 지방서 태어나 현재 서울에서 비정규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미혼 남성입니다. 구사대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다가 이렇게 블로그에 쓰신 글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나름 정치와 경제문화에 대한 의식을 최소한이나마 가지고 있는 식자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저에게 현대 한국에 대한 역사의식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러 제 미진한 식견을 넓혀보고자 합니다. 젊은 놈의 예의 없고 치기 어린 방문과 댓글이 많이 부족해 보이겠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