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들의 노선이 아니라 'GUESS' 모자와 'NIKE' 티셔츠를 입고도 '자주'를 외치는 그들의 분방함이 정말 좋다. 필자가 학교 다닐 무렵의 운동권 학생들은 밝고 화사한 빛깔이나 영문이 들어간 옷을 입는 것은 금기였다. 집회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심각한' 빛깔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같은 담배를 피웠고 같은 음악을 들었으며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소설을 읽고 같은 공연을 봤고 같은 어휘로 말했다.
파시즘은 어디에 있는가. 파시즘은 이른바 5,6공 인사나 한국논단 같은 극우집단에만 남아 있는가. 천만에, 파시즘은 우리 안에도 남아 있다. 파시스트 치하에서 몇십 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파시스트와 닮아 갔고 파시즘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구제금융을 부른 '국가'가 그 원인을 '국민의 과소비'라 둘러대면 '국민'은 가슴을 치며 금가락지를 빼들고 방송국에 간다. '국민'의 대다수인 근로대중들이, 30여 년을 경제개발 현장에서 뼈빠지게 고생만 하던 사람들이 요 몇 년 아이들과 놀이동산 몇 번 가고 갈비도 사먹고 한 것이 구제금융의 원인인가. 우리 안의 파시즘은 우리를 한없이 비굴하게 만든다.
한 대중음악 평론가가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뜨는 노래 절반이 일본 곡 표절인데 지금 전면 개방하면 그게 다 밝혀질 거고 그러면 국민들은 배신감 때문에 우리 가요에 등을 돌릴 거다. 개방을 미뤄야 한다." 이런 게 바로 우리 안에 남은 파시즘이다. 여당 쪽에서 일하는 선배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물었다. "미국영화 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지만 개방해서 경쟁하게 하는 게 근본적으로 자생력 기르는 거 아니냐?" 그 선배는 나를 일종의 영화인으로 보고 물었지만 그다지 영화인이 아닌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고 얼마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그 문제를 물었다. 놀랍게도(아무래도 나만 놀란 것 같다) 하나같이 개방이 바람직하지만 그걸 '주장'할 순 없다고 답했다. 이런 게 바로 우리 안에 남은 파시즘이다. 이젠 물어야 한다. 이른바 '민족'의 이름 하에 덮어 둔 한국 대중문화 '업자'들의 '무능'과 '배신'에 대해 물어야 한다. 그들의 정조가 과연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인지 따져봐야 한다.
세상의 모든 파시즘은 언제나 '민족'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북에 가본 강남의 중딩이 통신에다 소감을 썼다. "강북 형들 넘 무섭게 생겼당. 다신 안 간당..." 이 중딩과 점심을 거르는 강북의 고딩이 과연 같은 민족인가? 오늘 아침 농성장에 출근하는 노동자와 반성하지 않는 자본가가 굳이 같은 민족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은 무조건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민족적인 것이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파시즘을 부른다. 전두환이 광주를 토벌하며 더러운 집권욕을 드러낼 무렵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이 지껄였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다. 들쥐의 습성은 한 마리가 맨 앞에서 뛰면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것이다." 위컴은 '망언'을 사과했지만 '들쥐들'은 18년 동안 덮어놓고 맨 앞에서 뛰는 놈만 따라다녀 왔다. 파시즘은 우리 안에 남아 있다. | 씨네21 1998년_5월
'1998/05'에 해당되는 글 2건
- 1998/05/26 우리 안의 파시즘
- 1998/05/12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1998/05/26 16:12
1998/05/12 16:08
대학로에 춤 공연을 보러 나갔다. 초대권으로였지만 영화고 연극이고 이른바 예술 감상을 못한 지가 1년이 넘는 나로서는 오랜만의 즐거운 외출이었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민족춤 제전'은 출품작들의 수준이 비약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제 의식에 대한 강박이 없어졌다는 점이 춤 언어를 세련되게 만들었고 보는 사람을 안심하게 했다. 행사를 꾸린 김채현 선생에게 "민족춤 같지 않네요."라는 농을 던지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자못 문화적 포만감에 젖어 극장 밖으로 빠져 나오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굉장한 음량의 음악과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예정에도 없던 공짜 라이브를 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수백 명의 교복들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머리를 가지각색으로 물들이고 헐렁한 옷을 입은 10대들이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또 하나의 춤공연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조명도 없이 민족춤 제전이 열리는 문예회관 대극장의 외등에 의지하는 소박한 공연이었지만 그 열기는 대단했다. 대략 열 명쯤인 댄서들이 군무를 하다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묘기에 가까운 애드립을 할라치면 수백 명의 교복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댄서들 가운데는 그쪽에서 꽤 알려진 친구들도 있는지 "삼식이 오빠 짱이야!" 하는 실명이 들어간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은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으며 그들의 댄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같은 곳에서 판을 벌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썰렁함과 퇴폐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자꾸만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내내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긴장했다. "댄스음악을 다시 봐야겠다. 저 친구들한텐 그게 록이었구나."
대중문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댄스음악이 판치는 현실, 10대들이 댄스음악에 경도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거기에는 장르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 말고도 댄스음악이라는 장르의 뒤편에 숨겨진 음험한 상업성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웬만하면 한 주에 한번쯤은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싶지만 양파 까듯이 반복되는 댄스음악을 견뎌내지 못하고 번번이 포기하고 마는 처지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댄스음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 1. 댄스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10대들이다. 2. 그들이 댄스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춤추기 위해서이다. 3. 그들은 왜 춤을 추는가? 그냥, 좋아서. 4. 굳이 복잡하게, <시네21> 독자들 수준으로 얘기하면?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
댄스음악은 록이 아니다. 그러나 록을 진정한 록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이른바 록정신에 있다면, 다름 아닌 탈출과 저항의 정신에 있다면 98년 한국의 틴에이저들은 댄스음악으로 록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들이 원전(미국 대중음악사)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록으로 댄스음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10대들의 정서가 많이 서구화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록까지는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그들의 사회적 처지가 60년대 미국 노동계급의 10대들과 달라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중음악사가 이 나라에서 똑같이 반복되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댄스 하는 그들,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이른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준비해 놓았나. 모든 갓난아이들이 20년 동안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이름의 '계급 결정시험'만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대인국에서 바로 그 '계급 결정시험'을 목전에 둔 10대라는 소인들이 춤을 춘다. 그들의 적은 그들을 뺀 전부이며 그들은 댄스로 록을 한다. 끝없이 탈출하고 무작정 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의 사회성을 모르며 역사적 전망을 모르며 어떤 종류의 전략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록정신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록정신으로 충만하다.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 씨네21 1998년_5월
예정에도 없던 공짜 라이브를 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수백 명의 교복들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머리를 가지각색으로 물들이고 헐렁한 옷을 입은 10대들이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또 하나의 춤공연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조명도 없이 민족춤 제전이 열리는 문예회관 대극장의 외등에 의지하는 소박한 공연이었지만 그 열기는 대단했다. 대략 열 명쯤인 댄서들이 군무를 하다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묘기에 가까운 애드립을 할라치면 수백 명의 교복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댄서들 가운데는 그쪽에서 꽤 알려진 친구들도 있는지 "삼식이 오빠 짱이야!" 하는 실명이 들어간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은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으며 그들의 댄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같은 곳에서 판을 벌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썰렁함과 퇴폐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자꾸만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내내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긴장했다. "댄스음악을 다시 봐야겠다. 저 친구들한텐 그게 록이었구나."
대중문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댄스음악이 판치는 현실, 10대들이 댄스음악에 경도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거기에는 장르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 말고도 댄스음악이라는 장르의 뒤편에 숨겨진 음험한 상업성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웬만하면 한 주에 한번쯤은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싶지만 양파 까듯이 반복되는 댄스음악을 견뎌내지 못하고 번번이 포기하고 마는 처지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댄스음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 1. 댄스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10대들이다. 2. 그들이 댄스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춤추기 위해서이다. 3. 그들은 왜 춤을 추는가? 그냥, 좋아서. 4. 굳이 복잡하게, <시네21> 독자들 수준으로 얘기하면?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
댄스음악은 록이 아니다. 그러나 록을 진정한 록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이른바 록정신에 있다면, 다름 아닌 탈출과 저항의 정신에 있다면 98년 한국의 틴에이저들은 댄스음악으로 록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들이 원전(미국 대중음악사)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록으로 댄스음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10대들의 정서가 많이 서구화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록까지는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그들의 사회적 처지가 60년대 미국 노동계급의 10대들과 달라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중음악사가 이 나라에서 똑같이 반복되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댄스 하는 그들,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이른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준비해 놓았나. 모든 갓난아이들이 20년 동안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이름의 '계급 결정시험'만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대인국에서 바로 그 '계급 결정시험'을 목전에 둔 10대라는 소인들이 춤을 춘다. 그들의 적은 그들을 뺀 전부이며 그들은 댄스로 록을 한다. 끝없이 탈출하고 무작정 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의 사회성을 모르며 역사적 전망을 모르며 어떤 종류의 전략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록정신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록정신으로 충만하다.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 씨네21 1998년_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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