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중순, 김단이 제 학교 독서축제인가에 창작동화를 내기로 했다며 원고를 보여주었는데 “리아의 모험 1 - 흩어진 왕국”이라는 제목의 판타지 소설이었다. 분량도 길고 표현이나 구성이 꽤 그럴싸해서 속으로 좀 놀랐다. 학교에서 무슨 상을 받은 모양인데 늘 내가 “상이라는 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해 버릇해서인지 기쁜 걸 많이 내색하진 않는다. (아내 말마따나 속으로야 좀 다르겠지만.) 반면에 제 아비의 칭찬에는 많이 고무된 것 같다. 웬만한 일엔 부러 칭찬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체질적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약한 나는 내 딸이 판타지를 써냈다는 게 꽤나 기뻤던 모양이다. 하여튼 김단은 요즘 부쩍 밝아져서 종일 생글거리며 다닌다. 며칠 전 김단과의 대화.
“아빠, 나 만화가 말고 소설가 될까?” “만화가든 소설가든 니가 알아서 할 일인데 두가지는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단이가 좋아하는 상뻬도 그림도 잘 그리지만 그 그림에 글 쓰는 사람보다 더 깊은 생각이 들어 있어서 훌륭한 거잖아.” “맞아.” “그래서 단이도 이젠 책임감 있게 행동할 때가 된 거야.” “책임감?” “엄마 아빠가 단이 학교공부 갖고 뭐라 하지 않지?” “응.” “다른 동무들도 그런 것 같아?” “아니. 이제 다 학원 다니고 그러지.” “지금은 단이가 공부를 곧잘 하지만 육학년 되고 중학교 들어가면 성적이 떨어질 거야. 다른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니까.” “알아.” “단이가 만화가나 소설가가 될 거라면 학교 성적이 가장 중요하진 않아. 그런데 그건 단이가 그런 일을 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전제에서야.” “맞아.” “그런 공부도 안 하면서 학교공부도 안 한다면 엄마 아빠가 단이를 존중할 수 있을까?” “아니.” “바로 그게 책임감이야.” “알았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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