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보수라는 이재명의 말은 그저 사실일 뿐이지만, 민주당이 오랫동안 진보를 참칭해왔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통용되어 왔기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우리는 오랜 가면극의 마감을 목격하고 있다.
진보 가면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온 민주당이 가면을 벗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및 자본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가면을 벗는 구체적 시점은 윤석열이 마련해준 셈이다. 그의 기상천외한 난동 덕에 국힘을 극우로 규정할 수 있었고, 민주당은 보수(이재명 표현으로 ‘중도 보수’) 간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상황은 국힘에게 얼마간의 곤란을 안겨준다. 하지만 국힘, 더 나아가 한국의 보수 세력은 애초부터 보수로서 철학이나 사상을 가진 적이 없는, 순수한 기득권 추구 집단이다. 늘 하던 대로 어떻게든 적응해 갈 것이다. 대중의 양당 구도 선호는 일단 지속될 것이고, 남성 청년층의 지지 역시 이들의 중요한 자산이다.
가장 심각한 곤란에 처한 집단은 중산층 리버럴, 특히 옛 운동권 출신 중산층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민주당의 가면극 덕분에 기득권 추구와 진보 행세를 동시에 영위해왔다. 자산 증식과 자녀 입시 문제에서는 (민주당의 실체인) 보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사회 문화적으로는 (민주당의 가면인) 진보적 가치를 내세웠다.
중산층 리버럴들이 ‘국힘만 집권하지 않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유지하는 동안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의 자원은 가면극에 빨려들어가고 지속적으로 소거되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가면을 벗는 것은 선거에서 표 계산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가진다. 얼마간의 논란도 그들에게 큰 문제일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리버럴들에겐 매우 심각한 곤란이다. 더 이상 진보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와 일상 전반에 걸쳐 구축한 문화 체계와 생활양식을 스스로 철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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