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정치는 당연히 존재하는 ‘기본값’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근대성의 요체는 자본주의를 반대/견제하는 좌파 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이든 북유럽이든 좀 낫다는 사회들의 공통점이며, 그 사회들이 ‘좀 나은’ 비결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적 근대화는 ‘민주화’로 대변되는데 민주화는 곧 ‘독재 타도’였다. 문제는 독재가 해소되고도 정치적 근대성은 독재 타도(‘수구 청산’으로 이름 바뀌어)로 축소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갈수록 정치적 근대성은 퇴행해왔다.(참고로, 민노당의 2004년 의석수는 10명이다.) 독재가 해소된 지 30년이 더 지났지만 한국의 진보 시민들의 가장 큰 정치적 관심은 변함없이 독재 타도이다. 정치는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현재와 미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주제는 뭘까. ‘자유주의 정치와 수구 정치의 연합으로서 자본 독재’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는 ‘과거의 무한 복기’를 의미한다. 정치권과 정치인의 기만과 후진성을 탓하는 건 터무니없다. 이 모든 상황은 전적으로 시민 스스로의 선택이며, 정치권과 정치인은 그 선택을 충직하게 반영할 뿐이다. 노동이나 교육, 집 등 시민들이 제 삶에서 토로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고통이 자본 독재에 기인하는데도 시민들이 자본 독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기이한 일이긴 하다.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한국은 “마술에 걸려 왜곡되고 뒤집힌 사회이며, 자본 선생(Monsieur le Capital)과 토지 여사(Madame la Terre)가 사회적인 인물이자 단순한 사물로서 괴상한 춤을 추고 있는 사회”인 셈이다. 그러나 ‘마술에 걸려 왜곡되고 뒤집힌 사회’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연히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는 온전한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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