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8 16:28

오늘날 '바리사이인'은 기독교나 성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조차 '위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즉 바리사이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를 통틀어 가장 양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랜 외세 침략으로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헬라 문화의 유행은 상류층에 만연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헬라 식 운동경기 구경을 위해 제의 시간을 바꿀 정도였다. 성전 지배 세력이자 귀족계급인 사두가이파는 로마와 야합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다. 대제관의 임명권도 이미 로마가 갖고 있었다.

바리사이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전통이 완전히 결딴나려는 그런 상황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이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든 이방 문화로부터 이스라엘을 분리시켜 그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사두가이인들이 장악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인민들은 로마와 야합하고 타락한 사두가이인들을 존경하지 않았지만 바리사이인들은 존경했다. 바리사이인들은 오늘 윤리적이며 정의감에 넘치는 시민운동가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왜 그리 바리사이인들과 갈등했을까?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의 바리사이인들에 대한 분노가 워낙 불거지다 보니, 마치 예수가 사두가이파나 헤로데 괴뢰 세력보다 바리사이인들을 '더 나쁜 놈들'이라 여겼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진 않다. 바리사이인들은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려고 애쓰던 사람들이다. 사두가이인들이나 헤로데 괴뢰 세력이 바리사이인들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나쁜 사람들인 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예수는 그 자신이 '선생'(랍비)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리사이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악한 세력은 그 악함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어, 뒤집어 말하면 그들에 대한 인민들의 적대감이나 반감 또한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들을 비판하는 일은 그런 일반화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에 머물기 쉽다. 너무나 지당한 일은 하나마나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세력은 두 가지 요건을 갖는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가질 것,  그러나 그 갈등과 적대의 수준은 지배 체제 자체를 뒤흔들 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 그 두 가지 요건의 절묘한 조화가 바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인민들은 사두가이인들과 헤로데 괴뢰 세력을 혐오했지만 이스라엘의 현실과 미래를 고뇌하며 실천하는 바리사이인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리사이인들은 젤롯당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열정적이지 않았고, 성전 지배 세력과 완전히 절연하고 광야에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처럼 순수하지 않았다.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순수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삶의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사회 개혁의 실천으로, 지배 세력의 폭압이 혁명의 불길로 번지는 걸 차단하고 인민들의 변혁 의지를 중화하는 체제의 안전판이었다. 예수는 놀라운 통찰로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 살던 바리사이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수 당시 바리사이인들이 자신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듯,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자신들이 바리사이인인 줄 모른다.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2천 년 전 바리사이인들을 매우 진지한 얼굴로 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2천 년 전 바리사이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핌으로써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해 볼 수 있다.

2009/04/08 16:28 2009/04/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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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서울비의 생각

    Tracked from seoulrain's me2DAY 2009/04/08 23:03  삭제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순수로 무장한 바리사이들 — 김규항

  2. Subject: 바리사이들

    Tracked from DEOKKYU.NET 2009/04/09 01:00  삭제

    김규항, 바리사이들 http://gyuhang.net/1458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악한 세력은 그 ?

  3. Subject: 바리사이들

    Tracked from DEOKKYU.NET 2009/04/09 01:00  삭제

    김규항, 바리사이들 http://gyuhang.net/1458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악한 세력은 그 ?

  4. Subject: 분노를 소비하지마라

    Tracked from 삐딱하게 보기 2009/04/09 14:0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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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Subject: 십년차의 생각

    Tracked from sugiii's me2DAY 2009/04/12 22:51  삭제

    바리사이인 - 글쎄… 썩은 고기는 물어뜯겨 당연한 거겠지. 갈기갈기 물어뜯고 나서 그자리에 한움이라도 희망의 씨앗을 볼수 있었음 좋것네. - - 여전히 나는 정신못차리는 노!빠!인듯.

  6. Subject: 나는 21세기 바리사이인

    Tracked from TUESDAYMOON 2009/04/13 01:19  삭제

    김규항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바리사이인들과 같구나..라는 혼잣말을 했다.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순수함.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세상과 타협하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합리화와 ?

  7. Subject: 바리사이들

    Tracked from PG덴드로네 집(아직 정리중) 2009/04/14 13:22  삭제

    규항넷에 올라온 바리사이들. 뭐 이 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자는 건 아니고... 김규항의 글을 보다가 불현듯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인물과 사상 3월호에서 김어준이 한 말이다. "... 원래 ?

  8. Subject: 지하생활자의 생각

    Tracked from friedpotato's me2DAY 2009/04/16 01:02  삭제

    밀렸던 글들 읽으면서 김규항 블로그도 다시 보았다. 하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그의 글을 보면 소재가 뭣이 되었든 몇 개의 깔때기로 수렴해 가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