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11/17 허황된 충고
  2. 2018/11/09 혁명가
  3. 2018/11/09 자기 해방
  4. 2018/11/01 전사들
2018/11/17 17:27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 같은 충고는 지당하면서도 허황되다. 사람들이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나답게 살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흐트러진 심리(스스로 정신만 차리면 회복되는)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곧 상품으로써 가치다. 그의 인격적 면모, 개성이나 특징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써 가치로 추상화하거나 환원된다. 그게 자본주의에서 보편적 삶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은 나 자신을 찾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앞서 충고와 같은 심리 조정이나 무책임한 위로 따위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와 대면을 수반한다. 자본주의와 그 가치 체계에 승복하면서 나 자신을 찾고 나답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지적 각성으로부터 말이다. 세상엔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멋스럽게 자신을 찾고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그런 삶의 스타일을 구매했으며, 그럴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상품이다.
2018/11/17 17:27 2018/11/17 17:27
2018/11/09 12:15
혁명은 인민의 자기 해방이다. 혁명가는 인민을 해방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의 자기 해방에 기여하는 존재다. 혁명가가 인민을 해방시키는 존재일 때 혁명은 새로운 지배로 귀결한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11/09 12:15 2018/11/09 12:15
2018/11/09 10:36
극히 사적인 억압에서든 거대한 구조적 억압에서든 해방은 오로지 ‘자기 해방’이다. 누군가 위기에 빠진 나를 구출해 줄 수 있다. 내 해방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해방시켜 줄 순 없다.
2018/11/09 10:36 2018/11/09 10:36
2018/11/01 10:23
넬슨스와 보스턴 심포니의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는 연주도 연주지만 감탄스러운 녹음 때문에 더 자주 듣게 된다. 타이달에 MQA 음원이 있다. 시리즈 중 두개는 '스탈린의 그림자 아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015년과 2016년에 나왔는데 2015년의 1번 트랙이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1934)중 한 곡이다.
1936년 1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던 스탈린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다음날 프라우다엔 ‘부르주아적 혼돈’이라는 비판이 실리고 공연 금지 처분이 내려진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완성한 교향곡 4번의 초연을 포기한다. 그리고 4개월 만에 교향곡 5번을 써낸다. ‘당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에 대해 당은 ‘낙관적 비극’이라는 호평을 내린다. 쇼스타코비치는 가까스로 위기를 빠져나온다.
교향곡 5번은 당시에도 혁명을 그린 음악으로 여겨졌고 여전히 그렇다. 누가 듣기에도 혁명의 전형적 과정과 이미지들(군중의 함성, 거대한 저항, 투쟁의 드라마, 위대한 승리 같은)이 그려진다. 그러나 5번엔 혁명을 망가트린 당에 대한 예술가의 조소도 숨겨져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제자인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음악의 전사들이야. 어떠한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전사들.”

여기에서 ‘어떠한 바람’을 반공주의적으로 빠져나가면 안 된다. 오늘 우리에겐 명백하게 ‘자본의 바람’이다. 쇼스타코비치에 따르면 '예술가는 자본의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전사들'이다.
2018/11/01 10:23 2018/11/01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