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5/02/28 파괴
  2. 2025/02/20 가면극의 마감
  3. 2025/02/19 래디컬 이디엇
  4. 2025/02/17 조선일보의 제자들
  5. 2025/02/17 이해관계 충돌
2025/02/28 14:36
“한국 교육은 파시스트를 키우는 교육”이라는 김누리 선생의 주장은 매우 선동적이지만, 그만큼 엉성하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독일 교육을 언제나 이상화하는데, 그렇다면 최근 독일에서 극우 정치가 확대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파시스트를 키우는 교육은 아버지에게 고무 호스로 맞아가며 법대를 가고 검사가 된 윤석열과 그의 세대에는 해당할 수 있다. 그들에겐 파시스트적 질서와 위계가 깊이 배어 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간 한국 교육이 길러낸 것은 파시스트 괴물이 아니라 물신주의 괴물이다. 돈을 인생의 유일한 가치로 여기도록 길러진 인간들 말이다.

아이들은 밤늦도록 학원을 돌며 공부하지만 돈 외의 다른 인생의 가치를 배울 기회는 얻지 못한다. 부모와 양육자들은 아이가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쓸데없는 가치들’에 관심을 가질까 세심하게 단속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막상 사회에 나와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의 부담을 느끼는 남성 청년들은 ‘너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는 선고를 듣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 중 일부가 부정당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 선택한 나름의 방법은 ‘파괴’다. 동세대 여성을, 빨갱이들을, 공화국을, 그리고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2025/02/28 14:36 2025/02/28 14:36
2025/02/20 12:50
민주당이 보수라는 이재명의 말은 그저 사실일 뿐이지만, 민주당이 오랫동안 진보를 참칭해왔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통용되어 왔기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우리는 오랜 가면극의 마감을 목격하고 있다.

진보 가면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온 민주당이 가면을 벗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및 자본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가면을 벗는 구체적 시점은 윤석열이 마련해준 셈이다. 그의 기상천외한 난동 덕에 국힘을 극우로 규정할 수 있었고, 민주당은 보수(이재명 표현으로 ‘중도 보수’) 간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상황은 국힘에게 얼마간의 곤란을 안겨준다. 하지만 국힘, 더 나아가 한국의 보수 세력은 애초부터 보수로서 철학이나 사상을 가진 적이 없는, 순수한 기득권 추구 집단이다. 늘 하던 대로 어떻게든 적응해 갈 것이다. 대중의 양당 구도 선호는 일단 지속될 것이고, 남성 청년층의 지지 역시 이들의 중요한 자산이다.

가장 심각한 곤란에 처한 집단은 중산층 리버럴, 특히 옛 운동권 출신 중산층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민주당의 가면극 덕분에 기득권 추구와 진보 행세를 동시에 영위해왔다. 자산 증식과 자녀 입시 문제에서는 (민주당의 실체인) 보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사회 문화적으로는 (민주당의 가면인) 진보적 가치를 내세웠다.

중산층 리버럴들이 ‘국힘만 집권하지 않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유지하는 동안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의 자원은 가면극에 빨려들어가고 지속적으로 소거되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가면을 벗는 것은 선거에서 표 계산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가진다. 얼마간의 논란도 그들에게 큰 문제일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리버럴들에겐 매우 심각한 곤란이다. 더 이상 진보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와 일상 전반에 걸쳐 구축한 문화 체계와 생활양식을 스스로 철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25/02/20 12:50 2025/02/20 12:50
2025/02/19 11:47
삼겹살집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 뒤풀이. 작가 보얀 파이프리치에게 <혁명노트>를 선물했다. 그는 한국어를 모른다. 제목만 알려주었다. 그는 연신 책을 펼치고 만지며 감탄했다. 전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평소처럼 이름만 쓰려다 왠지 아쉬웠다. 잠시 궁리하고 ‘Reinvention of Radicalism’이라고 적었다. 요즘 내 화두다.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며 “규항은 코뮤니스트”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그저… Radical Idiot이야.” 문득 떠오른 말이지만, 입에 담기는 순간 마음에 들었다. 아나 니키토비치(큐레이터이자 보얀의 파트너)가 탄성을 지르며 “나도!” 했다. 자리는 즐겁게 새벽까지 이어졌다. 동유럽 출신 예술가 중에는 옛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 분명히 비판적이면서도 자본화에도 분명히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이 있다.(참고로 보얀 커플은 40대 후반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품위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80년대 사회주의자 출신들에게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것이며, 아마도 일제나 해방 공간의 사회주의자들에게선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를 그런 종류의 품위다.
2025/02/19 11:47 2025/02/19 11:47
2025/02/17 14:38
조선일보의 제자들

‘안티조선’ 운동은 1999년경 강준만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이 시작하여 일부 좌파들이 참여한 연대운동이었다. 두 세력이 조선일보를 공동의 적으로 삼은 이유는 단순히 조선일보가 극우 성향 신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조선일보를 신문이 아니라 저급한 찌라시라고 보고, 나아가 사회적 흉기라 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미디어 환경을 전제로 한다. 극우나 극좌 매체도, 물리적 폭력을 선동하지 않는 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념적 차이를 떠나 모든 미디어가 반드시 지켜야 하며, 지키지 않으면 즉각 미디어의 자격을 잃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팩트 훼손 금지’이다.

미디어는 각자의 이념과 관점에 따라 팩트를 해석할 수 있지만, 팩트 자체를 왜곡하거나 은폐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는 오랫동안 진영 논리에 따라 팩트를 왜곡하거나 은폐해왔다. 그렇게 사회를 분할했고, 대중을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와 선악 구도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 파괴 행위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시간이 흘러, 팩트 훼손을 통한 진영 논리는 자유주의 진영 미디어에서 자주 목격된다. 특히 김어준과 유시민, 그리고 민주당 계열의 미디어들에게 그것은 주요한 업무다. 예컨대, 이들은 조국을 억울하게 감옥에 간 인물이자 민주 투사로 묘사한다. 그러나 팩트는 단순하다. 조국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검찰이 조국을 가혹하게 수사한 점을 강조하면서, 사익을 추구한 범법자라는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한다.

이들은 조선일보가 했던 것처럼 팩트 왜곡과 은폐를 기반으로 한 진영 논리로 사회를 분할하고 대중을 이분법적 선악 구도에 가둔다. 대중이 성숙한 주권자로서 사회 모순의 근본 원인을 깊이 성찰하고 사유할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는 대신, “모든 문제는 오로지 저놈들 때문이다”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강화함으로써 무지와 분노의 정치로 유도한다. 그리고 역시 조선일보가 그랬듯, 결국 이런 행위는 돈이 된다.

이들 모두가 과거 안티조선 운동에 앞장서거나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안티조선 운동은 이념과 진영 논리를 떠나, ‘팩트 훼손 금지’라는 미디어의 최소한의 원칙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 ‘팩트 훼손을 통한 여론 조작’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며, 그 과정이 얼마나 쉽게 돈이 되는지를 조선일보로부터 배웠다.

조선일보는 반공적 시장주의를 표방했지만 이들은 민주주의를 말한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이들에게 갖는 진정한 의미는 ‘상품으로서 변별성’일 뿐이다. 만일 이들이 진심으로 민주주의를 고민했다면, 적어도 팩트를 훼손하지 않았을 것이고, 진영 논리와 이분법적 선악 구도의 폐해에 누구보다 먼저 분노하며 그것을 깨트리는 데 앞장섰을 것이다.
2025/02/17 14:38 2025/02/17 14:38
2025/02/17 14:37
L이 말하길, 체포 명단을 보면서 전에 내가 “급진주의는 주장되는 게 아니라, 체제의 탄압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라고 쓴 게 기억났다고 했다.

“그럼 명단에 나오는 인물들이 현재 한국에서 급진주의자들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죠. 모두 체제 내의 인물들인데요.”
“예, 체제 위협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이해관계 충돌이죠.”
“하지만 사살 이야기까지 나왔던 것 같은데요.”
“그랬죠. 우리는 명예가 아니라 이해관계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2025/02/17 14:37 2025/02/17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