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2/06/27 추천사
  2. 2022/06/21 오류와 희망, 그 후
  3. 2022/06/16 현상 너머
  4. 2022/06/03 고기
2022/06/27 09:58
"내 생각에 이 책의 특별함은 미국식 교육 미담 클리셰의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클리셰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데 있다. 엘리트 교사의 열정과 헌신으로 하층계급 청소년이 중산층 세계에 편입한다는 식의, 개운치 않은 감동극에서 말이다. 인간이 신념을 갖는 일은 곧 다른 인간과 정직하고 대등하게 관계하는 일이며, 교육의 성과는 여느 상품처럼 숫자로 계량할 수 없음을 되새겨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책 추천사를 참 오랜 만에 썼다. 언젠가 문득 책 추천사라는 게 쉽지 않은, 혹은 쉬워선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2022/06/27 09:58 2022/06/27 09:58
2022/06/21 10:20
정의당 상황(몰락이라 표현되는)에 대한 여러 논의를 본다.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결국 핵심은 정체성 문제일 것이다. 한국 제도 정치는 공고한 보수 양당 체제에 있고, 진보정당은 리버럴 정당과 별개로 굳이 존재할 이유나 정당성을 인민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애석한 일이지만 진보정당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내파(implosion)의 속성이 있고, 대중적 차원까지 불거질 무렵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엄격히 말하면, 정의당의 정체성 문제는 태생적인 것이기도 하다. 민노당의 엔엘 그룹과 결별하고 나온 피디 그룹이 만든 진보신당이, 다시 엔엘 그룹(이정희 등)에다 리버럴 그룹(유시민 등)까지 합쳐서 통진당을 만들었다가, 또다시 엔엘 그룹과 결별하고 만든 게 정의당이다. 정의당의 구성 이념 하나가 리버럴이라는 점에서, 정의당이 리버럴과 분별이 안 된다는 비판은 어폐가 있는 셈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정체성을 말하려면 짧게 잡아도 진보신당부터 시작해야 한다.

2010년, 진보신당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한겨레에 '오류와 희망'이라는  글을 썼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대중성 강박으로 인한 ‘프레임 오류’에 있다고 본다. 물론 모든 정치는 대중성이 중요하며 분당을 통해 만들어진 진보신당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대중성은 진보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중요하다. 그걸 넘어서버리면, 다시 말해서 당장의 대중적 호응에 집착해 자유주의적 의제에 몰입해버리면 대중들은 ‘굳이 진보신당을 지지할 이유’를 잃게 된다."

진중권 씨가 반박 글을 썼고 한동안 논쟁이 진행되었다. 싱거운 사람들에게서 논객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필요한 말만 하고 끝내는 나로선 예외적으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조국, 오연호가 <진보집권플랜>을 낸 것과 함께, 진보정치 운동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라 파악했기 때문이다. 논쟁의 의미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보수와 전선 앞에서 힘을 합쳐야 할 둘이 싸운다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일련의 논쟁은 진 씨가 '다시는 진보 안 한다'며 진보신당을 탈당하는 코믹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오해 마시길. 나는 정의당 상황을 이미 12년 전에 문제 제기했다, 내가 옳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틀렸다는 말을 하려 한다. 물론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좀더 일찍 진보정당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했다면 적어도 이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오늘 상황이 완전히 달랐을까. 진보정당이 건강하게 성장했을까.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엔 더 크고 깊은 원인과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진보정당이란 대개 유럽 사민당을 모델로 한다. 자본주의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의회 활동을 통해 사회 개혁을 좇는 정당이다. 이 모델의 기반은  복지국가 혹은 케인스주의라 부르는 계급 타협 체제이다. 복지가 있는 정규직 노동과 국가와 결합한 독점자본, 둘을 기본 요소로 하는 타협 체제다. 그런데 이  체제는 40여 년 전 붕괴했다. 자본주의는 2차대전 후 30여 년간 예외적 번영을 마치고 70년대 중반부터 장기 불황에 빠져든다. 결국 자본은 기존의 계급 타협 체제를 파기, 타협 상태에서 노동 계급 몫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이윤율 회복과 축적을 진행한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자본 운동이다.  

복지국가 체제에서 진보정당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 건 당연하다. 정규직 조직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이 일반화한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대변하긴 어렵다. 자본은 신자유주의로 변신했지만 진보정치는 변신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유럽 사민당의 몰락은 처음엔  '제3의길'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로 포장되었지만 이내 대대적인 몰락으로 이어졌다. 민노당에서 진보신당, 정의당에 이르는 한국 진보정치의 몰락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노선 파탄(유럽에서 제3의길, 한국에선 '민주당 2중대')이나, 지목되는 인물들(토니 블레어, 심상정 등)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상황의 근본 원인이라기보다는 상황에서 불거진 현상들이라 보는 게 합당하다.

진보정당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체제적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자본주의의 동학에 진보정치 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오늘 정의당 상황은 일개 당의 개혁을 넘어 진보정치 운동의 근본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그 작업이 자본주의의 현재 상태와 그 하에서 노동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서 출발하는 건 물론이다. 분석도 없이 남발되는 깊은 반성, 뼈를 깎는 각오, 섬기는 자세 같은 감성어들은 혜민이나 김난도 따위에게 던져주는 게 낫다.

결코 쉽지 않은 숙제다. 진보정치 운동은 ‘진보정치는 무엇인가’ ‘진보정치의 주인은 누구인가’ 같은 기초적 질문을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숙제에 앞서 우리는 이미 판명된 '해선 안 되는 일 두가지'부터 분명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나는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리버럴화로 오해하는 고질적인 태도이다. 또 하나는 그와는 반대로 진보정치의 옛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태도이다. 둘 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우파가 애용하는 표현을 빌면 적폐이며, 우리 대부분은 아직은 그 자장 안에 있다.

2022/06/21 10:20 2022/06/21 10:20
2022/06/16 14:58
<예술 시민을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가제) 1차 원고가 나왔고, 어제 그에 대한 편집자 리뷰를 받았다.

"20장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전체적으로 논리적이고 짜임새 있습니다. 한 장의 주제와 그다음 장 주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논의가 확장되어가고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구성상으로는 고칠 부분은 없어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추가했으면 하는 내용과 부연이 필요한 장 말씀드립니다..."

사회 현상의 구조나 본질보다 현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타임라인의 사회 비평들은  대체로 '이주의 나쁜놈 선발대회' 범주에 있다. 현상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 비판할 수 있다. 비인간적인, 위선적인, 폭력적인, 반생태적인 것들과 차별과 혐오는 넘쳐난다.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를, 그런 현상을 일반화하는 구조와 본질을 탐색하지 않는다면 해결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때 사회 비판은 변화에 관한 일이 아니라 중산층으로서 양식과 교양을 전시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부러 그러는 사람이야 몇이나 되겠는가. 지랄 같은 세상을 하루하루 살다 보니 너나없이 그리 흘렀을 뿐. 현상 너머를 사유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할 때도 된 것 같다.
2022/06/16 14:58 2022/06/16 14:58
2022/06/03 11:43
지식인을 가장한 체육인, 소릴 들어온 사람으로서 요즘 운동이나 신체 단련과 관련한 이야기들은 그런 의문이 든다. 이것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인가 고기에 관한 이야기인가.  인간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신체를 정신과 조화로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운동은 인간이 살아있음에 도리를 갖추는 일이며, 또한 의식하는 것보다 영적인 행위다. 신체를 부위별로 나누어 계측 계량하며 관리하고 품평하는 일은 운동의 과학화일 수도 있지만, 인간을 고기 취급하는 일에 좀 더 가깝다. 고기는 단지 판매된다. 인간은 살아가며 존재한다.
2022/06/03 11:43 2022/06/03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