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이모, 고래삼촌이 되어주세요.
'2021/12'에 해당되는 글 11건
2021/12/31 12:13
2021/12/28 10:23
언젠가 비전향 장기수 노인 한 분과 대화하며 다소 상투적인 질문을 드렸다. 수십 년을 어떻게 버티셨는가? 그는 답했다. 수십 년도 역시 하루하루니까요. 매일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동지들과 토론하다 보니 수십 년이 흐른 거라고 했다. 그분의 이념은 다 동의할 수 없지만(특히 북한 지배체제에 관한)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다. 586의 행태는 많은 사람에게 도를 넘은 탐욕이라 여겨진다. 굳이 저렇게까지 탐욕을 부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실은 빈곤이다. 가치의 빈곤. 삶에 남은 가치가 그런 것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직함, 부동산, 자식의 체제 내 안정 등. 그들은 그 가치들을 위해 오래전 다른 가치들을 위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지들과 함께 굴하지 않고 투쟁한다. 그들의 가치들은 어떻게 사라졌을까. 그들도 잘 모른다. 그들의 수십년 역시 하루하루였다.
2021/12/24 15:54
고래 아트포스터 신청, 오늘 마감입니다. 일찍 신청한 분 중엔 이미 받아서 건 경우도 있구요. 사진은 이정호 작가 작품들인데 공간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이 댁 주인은 "벽에 작은 창이 하나 열린 것 같다"고 합니다. 27개 중에 내 공간엔 뭐가 좋을지, 천천히 골라보시지요.
2021/12/24 00:01
예람의 첫 정규 앨범 <성>을 듣고 놀랐었다. 특별한 뮤지션을 발견하는 기쁨. 무심코 따라 적을 만큼 가사도 좋다. 가령 타이틀 곡의 이런 구절.
‘나는 일 하는 소녀
나는 서쪽의 마녀’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지나간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에도 마녀가 등장한다. 두 뮤지션의 마녀 이야기는 젠더와 계급이 함께 담겨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마녀들이 속속 출현하길.
2021/12/21 09:43
장예찬 씨와 꽤 전부터 친분이 있다. 그는 열렬한 리버테리언이다. 리버테리언(혹은 고전적 자유주의자)은 사회가 사적 이익과 지위 향상을 위해 경쟁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게 인간본성에 부합하고 모두에게 이롭다고 본다. 나는 그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지만, 제 이념대로 살아가는 그를 존중한다.
제 이념대로 살아간다는 말은, 그가 리버테리언으로서 윤리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는 재즈드럼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입시생을 볼모로 돈 뜯어먹고 사는 게 싫어’ 다른 일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그 역시 내 이념에 동의하지 않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를 존중한다. 몇 안 되는 리버테리언 고래 후원자이기도 하다.
신지예 씨는 오래전 그가 활동하던 청년 단체에 강연을 몇번 했었다. 그리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그의 요청으로 후원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선거 후 그는 이후 활동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고, 나는 우연히 생긴 껍데기 명성에 집착 말고 정치인으로서 이념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더욱 자신을 부각하는 데 주안점을 이런저런 정치 기획에 열중했다. 나는 그의 새로운 요청을 고사하는 방식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 또한 리버테리언이었던 셈이다. 리버테리언이 리버테리언 선거 캠프에 참여했으니 변절이랄 건 없다. 오히려 문제는 그가 리버테리언으로서 윤리를 심각하게 위배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대의를 내세워 많은 사람의 선의로 형성한 공유 자산을, 사적 이익과 지위 향상을 위해 사용했다. 그건 사기이며 절도다. 변절은 옛동지들에게 비난받지만, 사기와 절도는 모두에게 비난받는다.
2021/12/13 14:25
소수는 더 부자가 되고 다수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망해가는 징후라고들 한다. 더 내밀한 징후는 거의 모든 사람이 부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상품 사회에서 부자를 아예 부러워하지 않기는 어렵다. 다만 존경할 이유는 없다. 존경은 그에 관한 일이지 그가 가진 화폐량에 관한 일은 아니다. 부자를 부러워하고 빈자에게 연민을 느끼던 사람들이 부자를 존경하고 빈자를 경멸하는,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인물의 시답지 않은 말조차 인류를 이끄는 선지자의 말로 여겨지는, 존경의 마법.
2021/12/11 15:57
"유시민의 반복이 이젠 끝나길 바란다. 사회적 해악이 너무 많았다. 유시민의 반복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도 이젠 그만하길 바란다. 그에 관한 오랜 속담이 있다. '유시민을 좋아하지 않는 데 필요한 건 기억력뿐이다.'"
그러나 끝나긴 어렵다. 유시민의 반복을 만들어내는 두 조건이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유시민, 그리고 유시민의 반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들(혹은 쉽게 잊는 사람들).
2021/12/10 11:13
<간결한 생각들>은 조금은 특이한 예술 프로젝트다. 미술 작가 둘(권병준, 유비호), 큐레이터(양지윤) 그리고 내가 수평적으로 결합했다.
몇가지, (이즈음엔 그리 유별날 건 없는) 교감이 이루어진 게 출발이었다. 1)현재 지구적으로 동시에 펼쳐지는 노동위기와 생태위기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다. 2)지식 사회와 현대예술계의 자본주의 담론은 지적 유희나 클리셰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3)생태주의, 페미니즘, 코뮤니즘의 성과를 결합한 사유가 의미 있는 시기다.
프로젝트는 7월에 ‘예술 시민을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를 열었고, 어제 부터 본전시를 한다. 전시는 퍼포먼스와 산책으로 구성했다. 관객은 루프에서 10분 가량 퍼포먼스를 감상한 후, 준비된 헤드폰을 끼고 40분가량 경의선 책거리를 산책한다.
퍼포먼스는 권병준의 두 로봇(오체투지 사다리봇, 수피댄스봇)과 유비호의 영상으로 구성했다. 헤드폰 음원은 공개 모집을 통해 11분의 아티스트, 시민이 참여했다. 헤드폰 지급과 반납 절차만 있을 뿐, 산책은 개인적으로 진행한다. 천천히 걷고, 잠깐씩 벤치에 앉으면 적당한 코스다.
어제 방문한 지인과 관객으로서 퍼포먼스를 보고 산책했다. 꽤 근사했다. 이달 26일까지 하루 3회, 예약제로 진행된다.
2021/12/07 18:41
'고래가그랬어식' 일러스트들. 아트 포스터로 보급합니다. 근사한 작품도 소장하고 의미 있는 후원도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시장이라 생각하시고, 찬찬히 둘러보시지요.
“〈고래가그랬어>는 표지 작가에게 다른 요청을 한다고 했다.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그릴 것.' 그래서 어떤 전형성에서도 벗어난, 창작자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고래가그랬어식' 일러스트들이 탄생한다.”
2021/12/02 22:33
알빈 루시에 선생이 돌아갔다. 2018년 봄 친구가 그의 공연을 보러 도쿄에 가지 않겠냐고 했고, 주저없이 동행했다. 슈퍼디럭스에서 만난 루시에는 걷기 힘들 만큼 노쇄했음에도, 무사히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공간은 존경과 교감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혁명노트> 에필로그에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루시에를 언급했었다. 영면을 빈다.
2021/12/01 10:46
<태일이> 오늘 개봉한다. 2003년 <고래가그랬어> 창간호부터 연재했던 동명 만화로부터 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들이 만든 좋은 영화다.
이 영화에 관한 관심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건 역시 586일 것이다. 이 영화는 ‘586의 영화’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오늘 586이 그토록 비난받는 이유는 전태일을 말하면서, 전태일과 적대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제는 단지 흔히 말하듯 윤리나 양심의 차원에 있지 않다. 진보의 허울 아래 자본의 이윤 축적을 한국 경제의 유일한 목적으로 만든 데 있다. 그들이 주도한 세 번의 정권은 사회를 공동체가 아니라, 더 심각한 계급 사회로 만들었다. <태일이>는 586의 영화가 아니다. 586을 부끄럽게 하는 영화이며,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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