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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1/25
  2. 2021/11/24 그놈 죽다
  3. 2021/11/23 상식의 회복
  4. 2021/11/19 좋은 어린이책
2021/11/25 21:24
서점을 돌아보는데 책이 지성을 만들어준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익숙하고 오래된, 정겹기까지 한 거짓말. 책은 지성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흉내 내게 해줄 뿐이다. 흉내가 지성이 되는가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달렸고, 그 과정은 언제나 느리고 고요하다. 우리는 확실히 책을 빠르게 많이 읽는 게 유리한 사회에서 살아간다. 책을 많이 읽고 지식도 많이 가지려 애쓰지만, 지성을 갖는 건 불리하며 불편한 일인 사회.
2021/11/25 21:24 2021/11/25 21:24
2021/11/24 11:03
국가를 숭상하는 보수우파가 아니라면, 그놈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고 욕할 건 없다. 나쁜 헌정질서는 파괴될 수 있고, 더 나은 헌정질서를 만드는 일은 시민의 소임이며 자부다. 우리가 그놈을 욕하는 이유는 그놈이 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인민을 도륙했고, 내내 짓밟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놈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든 것 또한 그놈 자신이다. 용서는 사과와 반성을 전제한다. 그놈은 죽는 순간까지 사과도 반성도 거부함으로써, 영원히 용서를 불가능하게 했다.
2021/11/24 11:03 2021/11/24 11:03
2021/11/23 09:52
많은 사람이 민주당 세력의 부패에 분노하며 '상식의 회복'을 외친다. 그 일부는 아예 국힘 대선후보 지지를 말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상식의 회복'은 20여 년 동안 국힘 세력(수구 기득권 세력) 공격에 사용된 구호이다. 대체 그들에게 상식이란 무엇일까.

부패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나, 더 중요한 건 부패의 원인이다. 민주당 세력은 왜 부패했을까. 흔히 말하듯 청년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잃고 기득권에 찌든 위선자가 되었기 때문인가. 물론 그렇지만,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되어버린 원인은 무엇인가.

견제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민주당 세력은 수구 기득권 세력을 능가하는 기득권을 축적하면서도, 희한하게도 정의와 진보를 독점함으로써 견제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성인이라도 부패하지 않기 어렵다. 민주당 세력은 어떻게 정의와 진보를 독점할 수 있었을까.

민주당 세력을 견제하는 힘, 즉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진보정치를 비롯한 진보적 힘과 자원은 수구 기득권 세력을 공격한다는 명분 아래 민주당 세력에 흡수되어 소진되었다. 결국 민주당 부패의 책임은 '상식의 회복'을 외치며 그런 소진을 주도하거나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있는 셈이다. 그들은 오늘 민주당 세력을 공격하며 '상식의 회복'을 외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줄 나는 몰랐다" 말하는 사람들.

상식이란 무엇인가. 사회에는 여러 견해와 태도가 공존하고, 저마다 상식이라 주장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상식, 상식적인 행동은 있다. 사회적 상황을 비판할 때 현상에만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고, 그 원인과 구조를 생각하는 것. 사회적 상황에 관한 책임을 남에게만 묻지 않고 나에게도 묻는 것.

한국을 상식이 무너진 사회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당이니 국힘이니 이전에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회의 정치가 '사상 최악의 대선 후보들'의 교활하거나 무지한 언어들로 채워지는 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2021/11/23 09:52 2021/11/23 09:52
2021/11/19 13:34
책을 가장 좋아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읽어치웠다. 새 책을 편히 살 형편이 아니라 더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일 내 문장에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면 기반은 그즈음 만들어졌을 것이다. 달에 한번 어머니는 나를 시내 헌책방에 데려갔다. 몇시간씩 머물렀다. 살 책을 고르느라, 사지 못하는 책들을 조금이라도 더 읽느라. 결국 고른 책들을 매대에 올리면 헌책방 주인은 으레 어머니에게 그 중 일부를 '더 좋은 책'으로 바꾸길 권했다. 헌책방 주인 중에 배운 사람이 꽤 있던 시절이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냥 아이가 고른 걸로 주세요.' 어머니의 대답은 늘 같았고 헌책방 주인의 마땅치 않은 얼굴도 같았다. 반복되는 긴장이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개운했다. 어머니의 선택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30여년 후 고래가그랬어 창간을 준비하면서다. 도움말을 구하기 위해 몇몇 어린이책 전문가들을 만나던 나는 심각한 질문에 맞닥트렸다. 어린이책의 주인은 어린인데 왜 좋은 어린이책은 언제나 어른이 좋아하는 어린이책일까? 나는 적어도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좋은 어린이책' 같은 건 만들진 않기로 했다. 일 년 넘게 준비한 창간호 가편집본을 폐기했다. 그걸로 갔다면 상품으로서 성과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이책의 구매자는 어른이므로. 안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
2021/11/19 13:34 2021/11/19 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