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지배를 민족 해방, 민족 자주의 이름으로 환영하는 걸어다니는 화석들을 다시 한번 본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본질은 ‘외세’가 아니라 ‘지배’이다. 인민을 억압 수탈하는 세력에 대한 저항이다. 그 세력은 외세일 수도 동족일 수도 있다. 동족이 더 악랄할 수도 있다.
민족 해방, 민족 자주 같은 구호에는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가 지배하겠다’는 민족 엘리트의 의지가 숨어 있다. 민족 독립은 많은 경우 외세 지배를 동족 지배로, 외세의 억압 수탈을 동족의 억압 수탈로 교체하는 일에 그친다. 인민의 삶은 다를 바 없다.
2천 넌 전 예수가 민족자주 세력인 바리사이파와 반목했던 이유도 그들의 목표가 다윗왕의 영광 회복, 결국 로마의 지배를 자신들의 지배로 교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민족의 양심 세력으로 널리 존경받고 의인 행세하는 걸 보며, 예수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한다.
아프카니스탄에 필요한 건 민족 해방이 아니라 인민의 자기해방이다. 민족 자주가 아니라 인민의 국제주의, 국제 연대이다. 먼 나라 일만은 아니다. 현 정권은 인민의 해묵은 반일 감정을 집요하게 부추겨서, 치유와 평화의 방향이 아니라 지배력 강화와 경쟁 세력 견제에 이용한다.
‘노동자 인민에게는 민족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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