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1/08/18 인민에게는 민족이 없다
  2. 2021/08/13 능력주의
  3. 2021/08/12 개탄의 상투성
  4. 2021/08/10 여름방학 선물
  5. 2021/08/04 윤석열의 프리드먼
2021/08/18 09:38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지배를 민족 해방, 민족 자주의 이름으로 환영하는 걸어다니는 화석들을 다시 한번 본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본질은 ‘외세’가 아니라 ‘지배’이다. 인민을 억압 수탈하는 세력에 대한 저항이다. 그 세력은 외세일 수도 동족일 수도 있다. 동족이 더 악랄할 수도 있다.

민족 해방, 민족 자주 같은 구호에는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가 지배하겠다’는 민족 엘리트의 의지가 숨어 있다. 민족 독립은 많은 경우 외세 지배를 동족 지배로, 외세의 억압 수탈을 동족의 억압 수탈로 교체하는 일에 그친다. 인민의 삶은 다를 바 없다.

2천 넌 전 예수가 민족자주 세력인 바리사이파와 반목했던 이유도 그들의 목표가 다윗왕의 영광 회복, 결국 로마의 지배를 자신들의 지배로 교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민족의 양심 세력으로 널리 존경받고 의인 행세하는 걸 보며, 예수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한다.

아프카니스탄에 필요한 건 민족 해방이 아니라 인민의 자기해방이다. 민족 자주가 아니라 인민의 국제주의, 국제 연대이다. 먼 나라 일만은 아니다. 현 정권은 인민의 해묵은 반일 감정을 집요하게 부추겨서, 치유와 평화의 방향이 아니라 지배력 강화와 경쟁 세력 견제에 이용한다.

‘노동자 인민에게는 민족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시절이다.
2021/08/18 09:38 2021/08/18 09:38
2021/08/13 09:47
청년 세대에서 나타나는 능력주의 신봉 현상에 대한 비판과 개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현상이 생겨난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정의가 자유주의 원리에 갇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 성원들이 각자의 상품(노동력이든 화폐든)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교환하는 곳이라는 원리하에서, 정의는 평등이 아니라 경쟁의 ‘공정성’이 된다. 합법적이기만 하다면 결과는 정의롭다. 사회 성원 간의 격차나 빈곤은 애석한 상황일 순 있으되, 사회 원리를 위반하는 건 아니다. 복지는 그 애석한 상황에 대한 동정과 시혜다. 그런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정의를 구현하는 최선의 방식’이 된다. 현재 청년들은 자유주의 원리가 한국 사회를 완전 장악한 후 첫 세대다. 비판과 개탄의 대상은 그런 사회 변화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지,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아니다.
2021/08/13 09:47 2021/08/13 09:47
2021/08/12 12:43
자본주의의 본디 형태인 자유 시장 상태가 아니라는 것, 국가와 결합한 거대독점자본(재벌)이 경제를 장악하고 상당 수준의 계획경제를 운영한다는 것.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다. 재벌과 중소기업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하청계열화로 수탈 관계에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평균 이윤율’은 더는 실재하지 않는다. 재벌의 독점 이윤율과 중소기업의 과소 이윤율이 있을 뿐이다. 자본의 그런 상황에 따라 노동자도 20:80으로 분리 절단되어 있다. 20은 재벌과 그 파트너로서 공공부문 정규직을 뼈대로 한다. 그들은 80으로부터 초과 착취된 이윤을 분배받아, 국가 안의 복지국가에서 살아간다.

정부나 정권은 이 시스템 내에서 구성된다. 여야나 보수/진보 대립 역시 이 시스템 내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충분히 안다. 이런 현실에서 정의를 말하고 사회 진보를 말하는 일은, 그 상투성은 무엇일까. 내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람임을 과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좀 더 나가야 한다. 재벌의 사회화를 모색하는 일을 이재용 가석방을 개탄하는 일쯤으로 면피해선 안 된다.
2021/08/12 12:43 2021/08/12 12:43
2021/08/10 11:01
근사한 방학 선믈입니다.

2021/08/10 11:01 2021/08/10 11:01
2021/08/04 12:23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학자이자 하이에크를 잇는 우파 사상가(개인적으로는 감히 하이에크에 빗대다니 싶지만, 하여튼)라 여겨지곤 한다. 그에 대한 평가도 당연히 좌파와 우파가 전혀 다르고 접점도 없다. 이를테면 ‘시카고 보이스’라 불리는 그의 칠레인 제자들이 피노체트 독재정권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한 일에 대해서도, 좌파는 격렬히 비판부터 하지만 우파는 그 기간의 경제성장부터 상찬한다. 그러니 그런 대립은 일단 ‘차이’라고 해두자.

자유시장주의자(한국식 표현으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윤석열 씨가 프리드먼을 신봉하는 것도 존중할 수 있다. 남는 문제는 이해 수준일 것이다.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시간과 현실 체험으로 익혀 제 생각으로 만들었는가. 그런데 이 사람의 프리드먼 이해는 딱 책 한권 읽고 세상 이치를 다 깨친 듯 구는 중학교 남학생 느낌이다. 게다가 예순을 넘긴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입만 벌리면 ‘울아빠가 그랬다’니, 참 딱한 일이다.
2021/08/04 12:23 2021/08/04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