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998,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2021/03'에 해당되는 글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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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1
예술가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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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추레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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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6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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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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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자연을 좋아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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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노예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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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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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세 가지 틀
2021/03/31 12:39
“지금 우리는 상품 생산과 예술 창작의 차이를 아는 작가들이 필요합니다. (중략) 이윤 추구와 예술의 목적은 자주 충돌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성한 권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권력도 인간이 저항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항과 변화는 종종 예술에서 출발합니다.” 어슬러 르 귄 선생의 2014년 미국도서상 수상 연설. 자본주의 문명 하에서 인간과 자연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는 오늘, 선생의 말씀은 예술가/작가의 상식이라 할 만하다.
gyuhang
2021/03/31 12:39
2021/03/3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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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12:31
더 포악한 시절도 더 야만적인 시절도 있었지만, 추레함으로 본다면 현대사에 지금 같은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추레함의 극단은 물론 현 정권과 민주당, 즉 신 수구세력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는 피로에 더해, 그들의 파렴치한 행태와 졸렬한 언어를 매일같이 보고 들어야 한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진지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 세력에 대한 경악과 개탄으로 채워지다시피 하는 건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나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아니, 그거야말로 가장 나쁜 일이다. 내 일상까지 추레함으로 채우는 일은 말이다. 완전한 파렴치함과 졸렬함 외에, 그 세력에 대해 더 분석하거나 해명할 게 남아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 일상은 더 아름다운 것에, 더 진취적이고 대안적인 고민과 토론에 좀 더 할애되어야 한다. 결정적으로, 그래야만 이 유례없이 추레한 현실을 빠져나갈 수 있다.
gyuhang
2021/03/29 12:31
2021/03/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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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6 11:59
커트하는데 미용사가 물었다. ‘이번에 재산세, 보유세 같은 거 어떻게 되세요?’ ‘전 재산이 없어서요.’ ‘아 그러세요? 저도 아직 없는데, 내는 사람들은 불평이 참 많더라고요.’ ‘그렇더군요.’ ‘빠듯하게 월세 내며 장사하는 처지에서 건물 가지고 편히 사는 사람이 그런 소리 하는 걸 보면 기분이 안 좋죠.’ ‘예...’
그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토지 공유화,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몰수, 저렴한 임대주택이 인간 공동체의 기본이라 믿지만, 오늘따라 그가 많이 고단해 보였으므로.
gyuhang
2021/03/26 11:59
2021/03/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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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17:48
흥미로운 아티클 하나를 검색하다, 89년에 편역 된 한 이론서를 구해 읽게 되었다. 부록으로 편역자가 쓴 ‘여성해방 이론의 기초적 이해’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자유주의, 급진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기본 논리와 현실에서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지금 봐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론의 실천적 역동이 느껴진다. 오늘 어느 부문에서든 ‘이론’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론 비슷한 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포스트모더니즘 말장난 열풍이었을 것이다. 이론의 빈자리를 채운 건 감정과 감상이다. 최근 수년간 진보 성향 인텔리 시민의 정치 토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명박 나쁜 인간, 박근혜 미친 인간, 문재인 좋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나쁜 인간. 거기에 선거가 다가오면 ‘그래도 국힘은 아니지’ 추가. 현실에 대한 구조적 분석, 대안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내 감정 상태(나쁜 인간들 때문에 나 화났다!)를 매일 SNS에 밝히는 걸로 그 수고를 대신한다. 정말 이 모든 상황이 이명박과 박근혜와 문재인과 그 패거리 몇몇 인물의 탐욕이나 아둔함의 결과일까? 세상이 그리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론이 다는 아니다. 역사 속엔 이론 과잉의 시대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론의 사멸을 고민할 때다.
gyuhang
2021/03/17 17:48
2021/03/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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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16:23
내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애호하는 이유 하나는 거의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그러나 대부분 인간이 자각하지 못하는 위선을, 싱거울 만치 힘들이지 않고 드러내는 데 있다. 이를테면 그는 <옛거장들>(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인지도)에서 ‘자연을 좋아한다’는 말을 지적하며, 자연이 끔찍하고 도시가 좋다고 말한다. 사실 입버릇처럼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우리 대부분은 온전한 자연 속에서 단 하룻밤도 못 견딘다. 위험과 공포에 치를 떤다. 우리가 자연이 좋다고 말할 때 자연은 어디까지나 자연을 훼손하고 만든 도시 구조(도로, 공원, 캠핑장, 리조트 등)이며, 그것으로 안전하게 분리하고 대상화한 자연이다. 우리는 정말 자연을 싫어한다. (코로나가 일없이 왔겠는가.) 우리는 도시를 좋아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도시의 방식으로 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으로 늘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gyuhang
2021/03/11 16:23
2021/03/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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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09:10
“사회에 관한 대부분의 서술에서 민중은 피해자로 묘사된다. 민중은 아무런 특권도 기득권도 없이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갈 뿐인데, 불의한 사회가(나쁜 정치인들이,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권력욕에 물든 법조인들이, 타락한 언론이 등등) 그들을 수탈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술엔 중요한 질문 하나가 빠져 있다. 그런데, 불의한 사회는 어떻게 지속하는가?”
gyuhang
2021/03/09 09:10
2021/03/0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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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7:33
남자, 여자, 한국인, 일본인, 크리스천, 무슬림 등등. 제 자아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욱여넣는 태도는 지난 세계가 남긴 쓰레기로 여겨질 때도 되었다. 복합적이며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려는 노력만이 인간적이다. 세련되고 지적이며, 평화와 지혜를 준다.
gyuhang
2021/03/06 17:33
2021/03/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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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22:53
이제 진지한 사람들은 현재 문명이 사회(인간과 인간의 관계) 측면에서, 생태(인간과 자연의 관계)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기획은 기존의 사고 틀 중 세 가지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합의에 이르고 있다. 생태주의+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
gyuhang
2021/03/02 22:53
2021/03/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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