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민주당이 저렇게 교활하고 집요하게 망가트리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의 편이기 때문인가? 물론 그렇다.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진영의 이익을 좇는 집단이기 때문인가? 역시 그렇다. 우리는 그 사실들을 이미 잘 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꾸는 게 좋을 것이다. 자본의 편이며 진영의 이익을 좇는 집단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일하고 전적인 방법은 여론이다. 강력한 여론이 있다면 민주당이 현재보다 더 반동적인 집단이라 해도 그래서 속이 쓰리고 아파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추진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건 여론이 애매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 사실을 간파하고 이 법안을 요령있게 망가트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현재 한국의 주요한 여론을 형성하는 시민, 인터넷에 수시로 드나들며 제 견해를 피력하는 시민 대부분은 일하다 중대재해를 당할 가능성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관심은 조국이나 윤석렬, 추미애 따위에, 일하다 중대재해를 입는 사람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기득권 투쟁의 드라마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다. 정의와 윤리 추구도 그 드라마 안에서다.
만일 모든 사람이 나에게 해당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굳이 ‘사회’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은 않아서 사회이고, 사회가 유지된다. 시민 사회에서 개인이 남의 문제에 관심과 열의를 보이는 동인은 대체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연민’. 이것은 감성의 차원이라 그것을 자극하는 특별히 불거진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작동한다. 이 법과 관련해서 태안화력발전소나 구의역 사건이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연민(동정심, 측은지심 등)은 그것을 자극하는 특별히 불거진 상황이 없다면 이내 식거나 무뎌진다. 또 하나는 ‘연대 의식’. 이것은 사회 구조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반으로 우리 문제를 내 문제/남의 문제로 분리하지 않는 태도이다. 연대의식은 사회를 비로소 사회로 만드는 시민의식의 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하게 만들 만큼의 연민은 있지만, 민주당이 그 법을 제대로 추진하게 만들 만큼의 연대의식은 충분치 않은 셈이다. 민주당을 욕하고 개탄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나의 연대’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그들이 자본의 편이며 진영의 이익을 좇는 집단이라는 이미 수없이 확인된 사실을 전제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에게 ‘나의 연대’보다 무서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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