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에 해당되는 글 8건
- 2020/11/30 놀이가 밥이다
- 2020/11/26 조직
- 2020/11/17 혜민에게 필요한 것
- 2020/11/11 새로운 10년, 고래 주주가 되어주세요
- 2020/11/10 뒤집힌 책읽기
- 2020/11/06 몰락 풍경
- 2020/11/05 진보 풍경
- 2020/11/03 그런 사회
2020/11/30 16:24
편해문 선생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 와 함께 ‘놀이 3부작’을 이루는 책이다. 2012년 초판 때 쓴 추천사가 이번 판에도 유지되었다. 무슨 소릴 했더라... 천천히 읽는다. 코로나로 아이들은 뛰어놀기 어렵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도 아이들은 뛰어놀기 어려웠다. 우리의 고민이 그 지점에 있다.
2020/11/26 12:52
전에 친구가 한 신설된 국립 문화공간과 계약을 맺고 몇 달 일을 했다. 그가 그곳 조직 운영이나 일하는 방식이 말도 안 되는 지경임을 파악하게 되는 데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연일 힘들어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면들이야말로 그 조직을 유지하는 동력일 거야. 만일 그 조직이 우리가 수긍할 정도로 합리화한다면, 일단 구성원 대부분은 필요 없음이 드러날 테고, 결국 그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지. 일상에서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탓할 대상이 생기고 힘들고 해야 조직도 성원도 유지될 수 있겠지.’
모든 공적 성격의 조직은 명시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전제된다. 그러나 단지 조직의 성원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친구가 일한 곳처럼 정권에 따라 기여하고 줄을 선 아재들을 위해 전국 곳곳에 급조되는 온갖 세금도둑 단체/기관들이 그렇고,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절박한 아이들의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후원금 대부분을 단체 운영에 사용하는 구호/자선 단체들도 그렇다.
내 노동과 상업 활동만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인민으로선 참 기분 더러운 풍경이지만, 아직은 한국 사회의 관행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 정부가 참 특별한 건 정부라는 조직이 그 주요 성원의 사적 이해와 욕망 구현을 위해 존재하고, 그 사실을 이전 정권들처럼 이면이나 비선으로가 아니라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워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런 조직은 적어도 세금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2020/11/17 14:07
한동안 강연 같은 데서 혜민이라는 사람과 그의 책(주로 <멈추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받는 일이 잦았다. 내가 <예수전>을 쓰고, 영성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여하튼. 심각하게 의견을 낼 만한 일도 아니고 해서, 적당히 웃으며 말하고 넘어가곤 했다.
“사람이 반복되는 일상을 멈추면 새삼스레 보이는 것들이 있죠. 그러나 멈춤은 선택이기 이전에 조건입니다. 대개의 사람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거나 매우 어렵죠. 궤도에서 탈락하니까요. 그러니 언제든 멈추었다 갈 수 있는 부유한 승려가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니죠. 철딱서니에게 필요한 건, 수행이 아니라 성인으로서 자의식입니다.”
2020/11/11 11:13
코로나 이후 아이도 어른도 모두 처음 겪는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고래는 오히려 고래운동의 새로운 전기로 삼으려 합니다. 고래는 ‘어린이 교양’이라는 본디 소명을 더 충실히 하며, 동시에 ‘부모 교양’을 화두로 새로운 10년을 시작합니다. 이념이나 진영을 넘어 함께 해주시길 정중히 요청합니다.
2020/11/10 21:32
김민식 씨의 칼럼 내용은 한겨레에 게재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며, 그에 대한 거센 비판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조금 덧붙이고 싶은 건 책읽기에 대한 그의 생각에 관해서다.
책읽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일상에서 실천 요령들을 페북을 통해 꽤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내가 이해하기에 그에게 책읽기는 대부분 삶의 ‘효용성 증진’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책이라는 게 다 같지 않고, 실용서라든가 애초부터 그런 목적을 가진 것들도 많다. 그러나 지적 행위라는 측면에서 책읽기의 본령은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나로선 특별한 사유와 조우하는 데 있다. 책읽기는 효용성 원리로 작동하는 현대 세계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 효용성 강박으로 범벅이 된 채 흘러가는 내 삶에 대해, 새삼스럽게 질문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김민식 씨의 책읽기는 그와 정반대 편에 있고, 이번 칼럼에서 책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대비가 자아낸 파탄 역시 그런 뒤집힌 책읽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0/11/06 10:08
미국 정치,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정치쇼엔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번 선거는 제국의 몰락이라는 맥락에서 조금씩은 살펴보게 된다. 펜실베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북동부공업지대는 백인노동자들이 많고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다. 공업이 쇠락하면서‘러스트벨트’라 불린다. 지난 선거에서 기득권 진보로 지목된 힐러리에 대한 반감이 가장 격렬하고 표현되었고 트럼프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러스트벨트의 반란’이라 불린다.
이번 선거에서 인상적인 건 러스트벨트에서 도시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CNN 화면을 보면 펜실베니아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등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한국 선거에서 투표 결과가 광주가 전남과, 혹은 대구가 경북이 전혀 다른 걸 상상하긴 어렵다. 러스트벨트 상황을 두고 노동자들은 무지해도 중산층은 의식이 있다고 해석할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의 양극화 현상이 최근 어떤 수준인지 잘 보여준다고 하는 게 좀더 합리적일 것이다. 미국의 몰락은 코로나나 트럼프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2020/11/05 16:05
몇해 동안 트럼프의 망나니짓을 치르고도 선거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진보(리버럴)에 대한 미국 인민의 깊은 반감을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샌더스와 청년 세대에서 사회주의 바람은 저 나라가 사회적 신진대사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샌더스 바람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강고하게 연대한 건 트럼프나 반공주의 세력이 아니었다. 오바마, 폴 크루그먼, 글로리아 스타이넘, 뉴욕타임스 같은 진보기득권 세력이었다.
기존 진보에 대한 인민의 반감은 전지구적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정치 상황도 같은 맥락에 있다. 유럽에서 진보(사민당)에 대한 인민의 반감은 극우와 급진좌파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고착화한 우편향 사회인 미국과 한국은 아직은 우파 양당(공화 : 민주, 미통 : 민주)의 틀을 넘어서진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피시에 능한 지배계급’이라는 진보의 실체가 폭로되고 시스템의 변화 징후를 보인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몰락을 피할 수 없는 제국에서 펼쳐지는 대선쇼는 전에 없이 서글프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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